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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접점 | 이스탄불과 아나톨리아<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무함마드의 낙원’에서 ‘분칠한 창부(娼婦)’까지

  • 김윤경|대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ykyungkim@gmail.com

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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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영국인들의 터키 여행기

메흐메트 3세의 초상(왼쪽). 오른쪽은 시계 오르간의 한 형태.

댈럼은 별다른 준비와 목표 없이 여행을 떠났다. 이 때문에 그의 기록은 일차적인 인상에만 충실할 뿐 특별한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 미천한 신분임에도 그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핵심인 토프카피 궁전에 머물렀다. 소시민답게 댈럼은 그의 여행을 둘러싼 정치적 맥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여행비용에만 신경을 썼다.

그는 여행 중에 발생한 통역과 지역 주민과의 갈등에 대해 소박한 불평을 털어놓았다. 지중해의 풍광에 대해서는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토프카피 궁전에 들어간 후에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대한 이해는 안중에 없고, 재조립해야 할 오르간의 상태와 자신이 경험한 터키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말투로 기술한다.





고향과 런던밖에 몰랐던 댈럼이 경험한 오스만 투르크는 풍요로운 자연과 화려한 궁전이 여행객을 감동시키는 곳이었다. 토프카피 궁전과 술탄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장관 앞에 복잡한 자의식이 없었던 댈럼은 질투심이나 불편함을 표현하는 일 없이 그저 경탄했다. 그의 기록은 평범한 유럽인들이 터키를 방문했을 때 느꼈을 감탄을 짐작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가 순수한 눈으로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도 보통의 유럽인들처럼 터키나 터키인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다. 오르간이 마음에 든 술탄이 아랫사람들을 통해 댈럼에게 터키 정착을 강권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유럽인들의 판타지에 부합하는 이야기도 한다.

그는 문지기가, 자신이 터키에 정착하면 술탄이 아름다운 부인을 두 명이나 줄 것이라고 유혹했고 공놀이를 하고 있는 첩들을 하렘으로 난 틈을 통해 엿보게 해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지 형태로 기록했고 출판을 의도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기록물이니 댈럼이 허구와 사실을 얼마나 섞어놓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댈럼이 대단한 지식 없이 터키에서 경험한 것과 느낀 것을 여과 없이 썼다면, 1610~1611년 터키와 예루살렘 등을 방문하고 1615년 여행기를 출판한 샌디스는 그 대척점에서 기록을 남겼다. 샌디스는 귀족이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과 성경의 시편(詩篇)을 번역한 인문학자였다. 유럽의 정세와 문화를 두루 알고 있었고 종교적 관용이라는 문제에도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아는 만큼 본 여행자

샌디스는 당시 식자층이 그러했듯이 그리스·로마의 고전, 성경의 배경 지역을 본다는 생각으로 터키와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이 때문에 그의 여행기는 고전 작품에 대한 소개와 번역, 현장 답사를 통한 고전의 재평가, 현재의 터키에 대한 감상과 분석을 덧붙인 인문학적, 민속학적 탐구이자 백과사전이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의 배경이 되는 지역에서는 그 작품과 관련된 원문을 싣고 그가 운문으로 번역한 것을 제시하며, 그 지역을 고전 텍스트와 함께 탐험할 수 있게 해준다. 오스만 투르크의 역사와 정치를 소개할 때는 당시 출판된 터키 관련 서적에 실린 정도의 정보를 가져왔다. 그리고 상세한 분석을 덧붙여 영양가 있는 읽을거리를 만들었다.

교양 있는 상류 식자층을 위한 샌디스의 여행기는 보통 여행기보다 큰 판형인 4절판 형태다. 정교한 이미지와 지도가 많이 삽입돼 있어 공을 들인 고급 여행기란 인상을 준다. 그 덕분에 여러 번 재판됐고 번역도 됐다.

샌디스는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지식이 넘치도록 풍부했다. 오스만 투르크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지식과 목격한 바를 조합하려는 학자적 노력도 기울였다. 경험의 한계에 매몰되지 않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터키를 소개하고자 하는 냉철한 시선을 유지했다. 샌디스는 열린 마음으로 이스탄불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면서도 오스만 투르크의 정치적 특성을 날카롭게 평가한다. 거의 모든 이스탄불 방문자가 언급했던, 성소피아 사원에 대한 묘사를 보자.



샌디스는 예술적인 감동을 표현하면서 종교적인 관점으로 개입하려는 욕망을 잘 억제했다. 기독교인에게 콘스탄티노플 실함(失陷)은 뼈아픈 상처다. 이교도의 성전이 된 성소피아 사원은 현재의 굴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샌디스는 모스크가 이스탄불의 일곱 언덕을 장식하고 있는 모습을 장관이라고 묘사했다. 성소피아 사원의 현재 모습에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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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대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y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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