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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담백함…아, 꿈이어라”

[르포] ‘농축액’만 모아놓은 ‘이건희 컬렉션’ 전시

  •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안개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담백함…아, 꿈이어라”

  • ● 국현·국박 21일 ‘이건희 컬렉션’ 전시 동시 개막
    ● 무더위, 거리두기 4단계에도 온라인 ‘예매 전쟁’
    ● 국박, 이건희 회장 취향 살려 작품 엄선
    ● 국현, 유명 작가 작품 중 인기 작품 먼저 전시
    ● ‘선택 받은 소수’가 되지 못해도 너무 아쉬워 말자
    ● 두 전시관 모두 기증 1주년 기념 기획전 예정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서 한 관람객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감상하고 있다. [오홍석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서 한 관람객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감상하고 있다. [오홍석 기자]

“관람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예매에 실패해도 너무 낙담하지는 말자.”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국박)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국현)에서 각각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 대한 한 줄 평이다.

고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수준 높은 미술품을 모았다. 그가 사망한 뒤 유족들은 소장품 중 2만3000여 점을 국박과 국현에 분산 기증했다. 4월 말의 일이다. 이후 약 석 달만인 7월 21일, 두 기관이 나란히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시작했다. 이 회장 마음을 사로잡은 명작의 면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첫날 현장에 다녀온 기자의 소감을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의 핵심만 모아놓은 ‘농축액’ 같다. 국박은 국보·보물 28건을 포함한 주요 소장품 77점을 선보인다. 국현에서는 김환기·이중섭·천경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34인의 주요작 58점을 감상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관람이 쉽지는 않다. 두 미술관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사람만 입장을 허용한다. 국박은 전시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 회당 20명씩 예약을 받는다. 국현은 시간 당 동시 관람 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한다. 매일 0시 시작되는 ‘예매 전쟁’을 통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초 만에 마감된다”고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대신 일단 예약에 성공하면 쾌적한 관람 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다.



명불허전 인왕제색도, 흑백대비 돋보이는 역작

7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이 열리는 국박 상설전시관 2층을 찾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전시실 안에 들어서자 가족 단위 관람객이 여럿 눈에 띄었다. 자녀들과 함께 온 성모 씨(46)는 “평소 국박을 자주 찾는다. 오늘은 ‘인왕제색도’를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인왕제색도(국보 제 216호)는 겸재 정선(1676~1759)이 비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 풍경을 그린 수묵화다. 먹을 이용한 흑백대비가 돋보이는 역작으로, 국박 기증이 확정된 시점부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이 작품 앞 1인용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인왕제색도를 감상한 유정희(73) 씨는 “이 그림을 직접 보다니 감회가 새롭다”며 “문화 발전을 위해 소장품을 기증하고 간 이건희 회장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염색한 고급 종이 ‘감지’에 장인이 금과 은으로 불교 경전을 한 땀 한 땀 필사한 사경(寫經)이 펼쳐져 있었다. 그 옆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섬세함이 돋보이는 청동 불상 6점이 있었다. 초기 철기시대, 최고 권력자 제사장이 사용한 여러 모양의 청동 방울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인왕제색도 옆에는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가 나란히 걸려있었다. 이 외에도 고려·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담백한 백자와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조선시대 목재 가구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강경남 국박 학예연구사는 “이건희 회장 유족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에 제작된 방대한 양의 유물을 국박에 기증했다”며 “그 가운데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기술 혁신’과 ‘디자인’에 초점을 맞춰 전시작을 엄선했다”고 설명했다.

국현에서는 김환기‧이중섭 작품이 인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김환기의 ‘산울림’ 앞에 앉아 있다. [오홍석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김환기의 ‘산울림’ 앞에 앉아 있다. [오홍석 기자]

오후 1시 찾은 국현에서는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기증자의 벽’에는 아직 이건희 회장 이름이 올라가 있지 않았다. 미술관 관계자는 “올해 말 2021년 기부자 이름을 벽에 새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현에서는 홀로 미술관을 찾은 젊은 사람이 여럿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무선 이어폰을 이용해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했다. 이 오디오 가이드는 연기자 유해진의 재능기부로 제작됐다.

홀로 미술관을 찾은 정세민(37) 씨는 “같이 오기로 한 친구가 예매에 실패했다”며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보고 싶어 혼자라도 왔다”고 말했다. 그는 “환기미술관이 코로나19로 당분간 휴관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여기서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어 무척 기쁘다”며 김환기 작가의 ‘산울림’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관람객들은 교과서에 등장하는 이중섭 작가 작품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어린 딸과 미술관을 찾은 손모 씨(43)는 “이중섭 작가의 ‘흰 소’가 가장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현 관계자는 이번 전시 작품 선정 기준에 대해 “국민이 잘 아는, 한국 근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을 엄선했다”고 설명했다.
7월 21일 서울은 최고 기온이 36도에 육박할 만큼 무더웠다. 관람객들은 더운 날씨에 연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도 한 작품 한 작품 꼼꼼히 미술품을 감상했다. 이윽고 오후 2시가 다가오자 안내요원이 전시실을 돌며 관람 시간 종료를 알렸다. 이날 국현에서는 한 시간 단위로 예약 관객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내년 4월 ‘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 기획전 예정

‘이건희 컬렉션’ 전시 관람객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의도치 않게 최적의 관람 환경을 누리고 있다. 시간 당 관람객 수가 제한돼 한산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 내부 풍경. [오홍석 기자]

‘이건희 컬렉션’ 전시 관람객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의도치 않게 최적의 관람 환경을 누리고 있다. 시간 당 관람객 수가 제한돼 한산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실 내부 풍경. [오홍석 기자]

이번 전시는 화제성에 비하면 비교적 작은 규모로 열리고 있다. 이에 대해 국현 관계자는 “전시 하나를 기획하는 데 보통 2년 이상이 걸린다”며 “이번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부응하고자 최대한 서둘러 전시를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미술관 인력이 총동원되다시피 해 전시를 준비했는데 코로나19 탓에 많은 분께 관람 기회를 드리지 못해 아쉽다”며 “내년 4월 ‘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에 맞춰 기획전을 열 계획이니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국박 또한 내년 4월 좀 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이번 전시를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한다. 강경남 국박 학예연구사는 “전시회 기간 동안 국박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모든 작품 사진과 설명을 볼 수 있다. 또 8월 중 네이버TV를 통해 전시회를 생중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미술관은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회당 관람 인원도 늘릴 예정이다. 국박 전시는 9월 26일, 국현 전시는 내년 3월 13일까지 이어진다. 지금 당장 전시 예매에 실패해도 크게 낙담하지 말자. 아직 기회는 있다.



신동아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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