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코로나 휴가 통제’ 빠져나가는 군인들의 편법‧불법

[사바나] “거짓말해서라도 휴가 나가고 싶다!”

  • 김민서 고려대 한문학과 4학년

    kminseo98@naver.com

    입력2021-08-1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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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로 장병 휴가‧외출‧외박 통제하자…

    • 휴가 행선지로 ‘코로나 청정지역’ 지인 주소 기재

    • 부대 내 여가시설도 모두 폐쇄

    • ‘우울 증세’ 연기하며 출타 허가 받기도

    • 행정부사관 “아프다 하면 어쩔 수 없다”

    • 엄연히 군법과 행정명령 위반한 행위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의 줄임말입니다.

    “나 너희 집 주소로 출타 행선지 좀 써도 돼? 우리 집은 위험지역이라 출타 허가가 안 떨어져서 그래.”

    지난 2020년 11월, 병장으로 복무 중이던 김준성(가명·23) 씨는 친한 대학 친구에게 급하게 연락을 남겼다. 본가인 경기 성남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지역으로 분류돼 휴가를 통제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청정지역’인 지인의 주소를 행선지로 거짓 기재하고 출타를 허가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휴가 중 위험지역인 수도권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부대 복귀 이후에도 거짓으로 동선을 보고했다. 김 씨는 다행히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아 거짓말을 들키지 않았다. 만약 그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고 코로나19 감염됐다면 순식간에 부대 내 집단감염이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5월 10일 서울역에서 휴가를 나온 군 장병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5월 10일 서울역에서 휴가를 나온 군 장병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장병들의 스트레스

    2020년 2월 22일, 국방부는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이 군부대까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장병의 휴가, 외출, 외박과 면회를 전면 통제했다. 기한 없이 출타가 제한된 장병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에 국방부는 같은 해 4월 24일부터 부분적으로 통제를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부대 소재지에서 7일 이상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장병들은 외출 및 휴가를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김준성 씨는 통제가 완화된 이후에도 다른 장병들과 달리 외출이나 휴가를 나갈 수 없었다. 본가인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집단감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거짓으로 행선지를 작성해 출타를 허가받았다.

    부대 내 집단감염 예방을 위해 확산세가 심한 지역을 가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것은 마땅한 처사지만, 그렇다고 장병들의 억울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체력단련실이나 사이버 지식 정보방, 노래방 등 부대 내 여가시설이 모두 폐쇄됐다. 통제가 완화된 이후에도 코로나 위험지역 분류로 인해 계획했던 출타가 전부 금지되자 장병들의 스트레스는 한계치에 도달했다. 이에 일부 장병들은 출타 허가를 받기 위해 갖가지 ‘편법’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김 씨처럼 출타 행선지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한재원(가명·23) 씨는 “출타 행선지를 속이는 것은 매우 빈번히 발생하는 일이고, 거의 모든 부대에 이런 방법으로 출타를 허가받은 사람이 분명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육군으로 복무한 양건모(23) 씨도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다. 지난 1월, 양 씨의 부대에서 병사 한 명이 외출 위치를 거짓으로 보고한 뒤 위수지역을 벗어나 위험지역인 대전으로 외출을 나갔다. 그러나 해당 병사는 제시간에 부대에 복귀하지 못해 결국 거짓말이 발각됐다. 이에 해당 병사는 무기한으로 출타가 제한되는 징계를 받았다.

    간부도 예외는 아니다. 육군으로 복무했던 백승우(24) 씨는 “짬(연륜)이 높을수록 더 대담하게 위수지역을 벗어나거나 동선을 쉽게 속이는 노련함을 보이기도 한다”며 “간부와 병사가 출타 제한 지역에서 마주쳤는데 서로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육군 부사관으로 복무 중인 A씨는 “코로나 이전에도 외출 때 위수지역을 벗어나는 경우는 정말 수없이 많고, 실제로 이는 행정명령 위반이다. 그러나 부대에서 모든 병사의 동선을 매시간 파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일일이 색출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행선지 거짓말’은 동선을 거짓으로 보고하는 행태로 이어졌다. 군에서 병사의 동선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경우 거짓말이 드러나지 않는다. 문제는 병사의 실제 동선이 확진자와 겹쳤을 경우다. 특히 최근에는 건물에 출입할 때마다 QR코드를 찍거나 방문명부를 작성해야 해서 동선이 모두 기록에 남아 숨길 수 없다.

    지난 2월 14일 서울역 여행장병안내소(TMO)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임시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지난 2월 14일 서울역 여행장병안내소(TMO)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임시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징계가 두려웠던 병사

    심한 경우 동선을 끝내 보고하지 않는 병사도 있다. 한재원 씨는 상관으로부터 휴가 중 코인노래방이나 PC방 등 위험한 시설에 방문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실제로는 휴가 중 여러 차례 위와 같은 고위험군 시설을 방문했다. 그러나 징계가 두려웠던 안 씨는 자신의 동선을 곧이곧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안 씨는 “몇 달 만에 나간 소중한 휴가인데, 놀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는 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명령 사항을 지키지 못했기에 동선을 솔직하게 윗선에 밝힐 수 없었다”고 말했다.

    행선지 거짓말 외에 가장 흔히 쓸 수 있는 수단은 우울 증세를 연기(演技)해서 출타 허가를 받는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군은 병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주기적으로 개별 상담을 통한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일탈 행위를 저지르거나 우울감을 호소하는 장병의 비율이 월등히 높아졌다. 일부 부대에서는 지휘관 재량으로 우울증 위험군 관심병사에게 출타를 허가해주기도 했는데,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잖게 존재했다.

    김진우(23) 씨는 자신이 막 부대에 전입된 이등병 시절을 떠올렸다. 김 씨와 함께 부대로 전입된 동기 B씨는 부대에 전입된 날부터 여자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져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행정보급관과의 면담에서 여러 차례 이별로 인한 불안 증세와 우울증을 호소했고, 결국 ‘위로 휴가’를 명목으로 이례적인 출타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B씨의 이야기는 전부 거짓이었다. 그는 애초부터 여자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전입 후 여성 지인의 이름과 번호를 여자 친구의 연락처인 척 ‘개인 생활 기록부’에 기재하는 등 상당히 치밀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 병사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통제된 것은 ‘일반 휴가’라는 점을 이용해 연가와 관계없이 보장되는 ‘청원 휴가’를 사용해 출타를 허가받는 것이다. 군은 부대 내 의무시설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 제한적으로 외부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것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출타 제한 이후로는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이외에도 꾀병을 부려 청원 휴가를 나가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한다.

    치과 치료의 경우 청원 휴가를 받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군부대 내에서는 정밀한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충치나 신경치료, 사랑니 등을 이유로 병가를 내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송재원(가명·22) 씨는 “치과 질병은 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이 거의 없어 꾀병을 연기하기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현역 공군 C씨 역시 치과 치료를 빌미로 휴가를 받았다. 그는 매복 사랑니를 굳이 뽑을 시기가 아니었고 통증도 전혀 없었으나, 수개월 동안 부대에만 갇혀있던 게 답답했던 나머지 생니를 뽑기로 결심했다. C씨는 “꾀병을 부리고 출타를 나간 것은 명백한 잘못이지만, 아무 문제도 없는 생니를 2개나 뽑아야만 바깥 공기를 잠시나마 쐴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고 말했다.

    엄연히 군법 위반 행위

    청원 휴가를 더 교묘하게 악용한 병사도 있다. 박경근(23) 씨는 상병 시절 친한 소대원 D씨의 부모님이 모두 건강 문제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매우 긴박하게 부대로 연락이 왔고, 부모 모두 입원한 상황이라 외동아들인 D씨의 간호가 필수적이었다. 이에 D씨는 약 일주일간의 직계가족 질병 관련 청원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나 이는 D씨와 부모가 사전에 계획한 ‘시나리오’였다. 앞선 경우와 달리 병사 본인이 아닌 부모가 꾀병을 부려 아들의 휴가를 얻어낸 것으로, 오히려 병사의 꾀병보다 더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

    이와 같은 병가와 관련하여 행정 담당 육군 부사관 A씨는 “(질병 관련) 청원 휴가를 쓰려면 의무대 소견서가 필요하긴 하지만, 병사 본인이 계속 아프다고 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치료받고 오라고 내보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출타 허가가 잘 나지 않아서) 복귀하면 다시 나가기 어려우니까 기침이나 발열 등 증상이 있다고 하고 아예 휴가를 연장해버리는 인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취재를 통해 확인한 편법은 모두 사소한 일탈이 아닌, 엄연히 군법과 행정명령을 위반한 행위다. 거짓말이 적발될 시, 위법 정도가 심한 경우 외출 금지 등 단순 징계 처분에 그치지 않고 군사재판에 회부될 수도 있고, 특히나 지금은 시설 방문 시 명부나 QR인증으로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동선 거짓 보고가 적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할 경우 그 피해도 크다.

    다만 한편에서는 출타 통제의 장기화로 인해 병사들이 받은 스트레스와 최근 논란이 된 격리 병사에 대한 부실 대우 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점 등을 고려하면 일부 장병들의 비도덕적인 선택을 무차별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군대휴가 #출타행선지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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