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광복절에 생각한다, 최재형家의 애국가 4절 제창을

[노정태의 뷰파인더㊻] MZ세대가 이해하는 애국주의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1-08-1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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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초 논란 될 이유조차 없는 사안

    • 자녀·며느리 강요당해? 초점 잘못된 비판

    • 美 철학자 로티, 애국이 진보운동 동력

    • 애국심 부정해야만 진보? 20세기 유물!

    • ‘레드 콤플렉스’와 ‘태극기 콤플렉스’를 넘어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동아DB]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4일 경기 파주시 문발동 미라클스튜디오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동아DB]

    지난 8월 4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대선 출마의 뜻을 밝혔다. 동시에 ‘중앙일보’를 통해 후보자 본인과 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여럿 공개했다. 그의 아버지인 고(故)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을 중심으로 한,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의 단란한 장면들이 주를 이뤘다.

    그 중 2019년 명절 모임 사진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속 일가족은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사진 설명을 읽어보자.

    “2019년 최재형 전 감사원장 가족이 명절 모임에서 국민의례를 하는 모습. 맨 뒷줄에 서 있는 사람이 최 전 원장. 가족 모임 때는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는 게 최 전 원장 가족의 전통이다.”

    흔한 일 아니나 이해할 수 있는 일

    집안마다 독특한 가풍이나 전통이 존재한다. 이 집안은 그것을 남에게 드러냈다. 그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비판할 수 있을까.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사고실험을 해볼 수 있다. 입만 열면 반일(反日)을 외치지만 실은 뼛속까지 친일파이고 ‘토착왜구’인 한 대학 교수가 있다면 어떨까. 그 교수는 매년 명절마다 욱일기를 걸어놓고 가족과 함께 기미가요를 제창한다. 통상적인 한국인의 감수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그런 행위를 비난하거나 금지할 수는 없다. 다른 문화와 관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중 하나인 ‘똘레랑스(관용)’의 핵심이다. ‘김일성 만세’를 불러도 잡혀가지 않을 자유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라면 더욱 그렇다.

    최재형 가족의 ‘애국가 4절 행사’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집안의 전통이라는 면에서 이는 애초에 논란이 될 이유조차 없는 사안이다. “참 독특한 가풍을 지녔구나”라고 말하고 지나가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떤 집은 명절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다른 집은 기도를 하거나 혹은 불공을 바친다. 이런 사례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듯 최재형 가족의 사례도 논란거리가 될 수 없다. 가족 모임에서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을 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지만, 한국전쟁 영웅인 최영섭 대령의 영향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자녀와 며느리가 강요당하는 것 같고 불쌍하다는 의견은 초점이 잘못된 비판이다. 며느리의 경우부터 생각해보자. 현행 민법상 미성년자의 혼인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성인이 된 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혼했을 여성들을 ‘피해자’로 단정 짓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다.

    아이들은 어떨까. 부모님이 독실한 종교인이어서 태어나자마자 ‘모태 신앙’을 갖게 된 경우와 비교할 수 있다. 성장하면서 부모와 다른 가치관, 종교, 취향을 갖게 돼 갈등할 수 있고 그것은 개인과 가족의 불행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나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 누군가는 태어나면서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어떤 전통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악을 논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허공의 백지 속에 그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8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오간 대화를 살펴보자. 진행자는 “좋게 보면 애국적이고, 안 좋게 보면 너무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강조하는 분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자 최재형은 “국가주의, 전체주의는 아니다”라며 “나라 사랑하는 것하고 전체주의하고는 다른 말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요컨대 ‘애국가 4절 행사’ 논란이 애국주의 논쟁으로까지 비화해버린 셈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무명용사의 묘역에 참배를 하고 있다. [동아DB]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8월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무명용사의 묘역에 참배를 하고 있다. [동아DB]

    미국 진보가 책 한권에 충격 받은 까닭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보수 정치는 애국주의와 친화적이다. 그렇다면 진보는 애국주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가 ‘우리나라 이룩하기’(Archieving Our Country: 국내에는 ‘미국 만들기’로 번역)를 통해 던진 질문이다. 그는 좀 더 건실한 진보 운동을 위해서는 애국주의를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의 강의를 통해 미국 진보 진영에 큰 충격을 줬다. 이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1998년 펴낸 책이 ‘우리나라 이룩하기’다.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지만 패권까지는 틀어쥐지는 못했던 1차 세계대전 무렵. 당시 미국 진보의 주류는 혁신주의(progressivism) 운동이었다. 혁신주의는 애국주의와 서로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다.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진보적인 나라가 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애국적 열정이 진보 운동의 주요 동력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며 미국이 소련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게 됐다. 이후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진보주의는 크게 달라진다. 미국에 대한 자부심, 애정, 열광 등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진보의 주류 담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문화 상대주의와 정치적 올바름 등의 새로운 가치 체계가 애국주의의 자리를 대신 채워나갔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러한 흐름은 계속됐다. 진보주의자라면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사고방식이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진보’의 얼개는 대체로 이 무렵 형성됐다. 특히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유입된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과 비판 이론을 통해 국가와 애국심 뿐 아니라 성별, 문화, 관습, 종교, 전통 등 기존의 모든 가치를 ‘해체’하는 것이 유행했다. 이에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진보는 거대 담론을 잃어버렸다.

    로티가 볼 때 그러한 지적 조류는 위험천만했다. 로티는 미국에 대한 자부심을 잊고 ‘해체’에만 몰두하는 이들을 ‘문화적 좌파’로 지칭한 후, 문화적 좌파의 득세를 이겨내고 이전 시대의 건강한 애국주의를 회복할 때 진보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애국주의

    로티의 논리는 간결했다. 미국의 좌파가 미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나라보다 미국의 사정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열성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관심과 개입은 이성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애착을 필요로 한다. 미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좌파가 미국에 대한 일체의 자부심을 부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미국의 좌파는 미국의 우파만큼이나 미국을 사랑해야 한다.

    다들 막연히 생각하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던 이 단순명료한 주장의 여파는 매우 컸다. 미국의 지성계가 일대 충격에 빠졌다. 그 중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사람은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법철학을 가르치고 있던 마사 너스바움이었다. 너스바움은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라는 글을 통해 “민주적 시민권이나 국가적 시민권보다는 세계 시민권을 시민 교육에 중심으로” 두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애국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너스바움의 글은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에 대한 반론이 ‘보스턴 리뷰’에 쏟아져 들어왔다. 벤저민 바버, 힐러리 퍼트넘, 찰스 테일러, 마이클 왈저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그 논쟁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한계 논쟁’(삼인, 2003)이라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 중 정치철학의 거장인 찰스 테일러의 비판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세계시민주의가 애국주의나 국가주의의 해악을 막는데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애국주의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 둘 다 필요하다. 왜냐하면 근대 민주주의 국가는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지극히 많은 것을 요구하는 공동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성원들에게 대단히 많은 것을 요구하고, 전체 인류보다는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더 큰 연대 책임을 요구한다. 강력한 공통의 귀속 의식 없이는 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 세계의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을 고려할 때, 우리가 이 사업에서 실패하면, 그것은 인류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는 미국 중심의 애국주의에서 벗어나 코스모폴리탄이 되자는 주장, 즉 세계시민주의가 미국 사회 주류 담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무렵이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승리가 가시화되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힘을 얻었다. 좌파가 문화의 영역에서 애국주의를 부정하고 있었다면, 우파는 시장 경제의 영역에서 코스모폴리탄의 길을 걸었다. 자국 중심주의를 버리고 글로벌 시장과 자유로운 노동력의 이동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20세기 유물 탈피한 MZ세대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16년 영국에서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운동이 일어났고, 같은 해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세계시민주의를 표방하며 문화적으로는 좌파, 경제적으로는 우파의 길을 걸어온 글로벌 엘리트를 향해 세계화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반격을 가한 결과다. 게다가 그 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세계 시민의 정체성을 지닌 엘리트가 국경 없는 세상을 마음껏 즐기던 시대는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넘어간 듯하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온 국민이 오후 6시마다 국기하강식을 하기 위해 길을 걷다 멈춰 서야 했던 나라다. 최재형의 가족 모임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하는 모습이 ‘올드’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애국심을 원천봉쇄하고 부정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또한 20세기의 유물일 뿐이다.

    곧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MZ세대는 ‘레드 콤플렉스’뿐 아니라 586세대와 X세대가 공유하는 ‘태극기 콤플렉스’로부터도 자유로운 세대다. 맹목적인 애국심에 대한 경계는 늘 필요하겠지만, 애국심의 존재와 가치를 완전히 도외시할 수는 없다. 더 나은 세계시민이 되기 위해서라도 더 나은 애국주의를 고민해야 한다.

    #최재형 #애국주의 #세계시민주의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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