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미켈란젤로 다비드상이 외설이라 말하는 세상

[노정태의 뷰파인더] ‘다양성’과 ‘시장주의’의 나쁜 융합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4-0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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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리다에서 온 이상한 뉴스

    • ‘고객은 무조건 옳다’는 신념

    • 미국 차터 스쿨의 정체성

    • 100명 중 2명이 항의한 결과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 상. [동아DB]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 상. [동아DB]

    2023년 현재, 우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단 한 번도 맞닥뜨린 적 없던 질문을 고민하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 상은 예술인가, 외설인가.

    현지시각 3월 23일 ‘탤러해시 데모크라트(Tallahassee Democrats)’라는 플로리다 주 지역 신문에 이상한 뉴스가 실렸다. ‘탤러해시 클래시컬 스쿨(Tallahassee Classical School)’이라는 한 지역 차터 스쿨(charter school)의 교장 호프 카라스키야(Hope Carrasquilla)가 이사회로부터 “사임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았고,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얘기다.

    해외 토픽을 통해 뉴스를 접한 이들은 대략 이렇게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어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다비드 상을 보여줬는데 음란물이라는 논란이 벌어져 교장이 해고됐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옳다고 하기도 어렵다. 너무 많은 세부사항이 축약돼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엄격한 종교적 교리에 입각한 학교여서 다비드 상 같은 고전이라 해도 누드라면 보여주지 않는 곳이었는가? 논란이 벌어졌다고 하는데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슨 논란을 일으킨 것인가? 아이들에게 다비드 상을 보여준 사람은 해직당한 교장 본인인가?

    국내 언론은 거의 대부분 이 사안을 단순한 ‘해외 황당 뉴스’로만 치부한 터라,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신동아’의 마감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기다려 봤지만 그다지 보도 가치가 높은 사안이라 생각하지 않아서인지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영어권 주요 언론 역시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애석하지만 필자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플로리다에서 현장 취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쉬운 대로 주어진 정보를 최대한 종합해 이 황당한 사건의 내막을 알아본 후, 그로부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얻어내 보도록 하자.



    종교보다 절대적인 자녀 교육권

    ‘탤러해시 데모크라트’의 최초 보도 이후 수많은 언론이 달려들어 외려 혼란을 가중시킨 가운데,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Slate)’가 나름의 특종을 했다. 카라스키야 교장의 해임을 주도한 장본인, 탤러해시 클래시컬 스쿨 이사회 이사장인 바니 비숍 3세(Barney Bishop III)의 인터뷰를 따냈던 것이다.

    이름을 보고 오해할 수 있지만 비숍은 종교인이 아니다. 바니 비숍 컨설팅 유한회사(Barney Bishop Consulting LLC)의 창업자이며 대표인 컨설턴트, 로비스트다. 본인 스스로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자유 기업 체계의 열성적인 옹호자”이기도 하다. ‘알몸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교조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이슬람교나 기독교, 혹은 다른 종교의 열성적인 신자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비숍의 진짜 신념은 따로 있다. ‘고객은 무조건 옳다’는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컨설팅 회사 뿐 아니라,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학교의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부모의 자녀 교육권을 절대적인 가치로 여긴다. ‘슬레이트’ 기자인 댄 코이스(Dan Koi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본인의 신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녀 교육권(Parental rights)은 절대적입니다. 한 사람이건, 열 사람이건, 스무 명이건 쉰 명이건, 모든 부모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미국의 학교 체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학교는 크게 공립학교(Public school)와 사립학교(Private school), 그리고 차터 스쿨(Charter school)로 나뉜다. 공립학교는 말 그대로 공교육 기관이고, 사립학교는 비싼 학비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대체로 사립학교는 종교계 재단이나 관련 기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부류인 차터 스쿨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중간에 위치한다. 주 또는 지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일종의 자율형 공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으며 이는 탤러해시 클래시컬 스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교육 과정과 내용 등에 있어서는 학교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된다. 공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낼 여력이 없거나 성향에 맞는 사립학교를 찾지 못하는 부모들을 위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미네소타 주에서 최초로 설립된 차터 스쿨은 오늘날 67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미국 전역에서 300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차터 스쿨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낙후된 천편일률적 공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바로 이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학부모가 원하는 것만 가르치는 학교’라는 이상은 현실 속에서 이상한 결과를 낳게 마련인 것이다.

    ‘고객 만족’을 위한 필요악

    비숍 이사장은 '모든 학부모를 100%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었다. 문제의 미술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100명도 넘지만, 그 중 단 2명의 부모가 익명의 항의 편지를 보내자, 그것을 근거로 카라스키야 교장을 해임해버렸다.

    차터 스쿨은 공교육과 달리 자율적인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학교다. 차터 스쿨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는 자녀의 학습 내용에 대해 본인이 더 큰 통제력을 갖는 것을 원한다. 수업 내용을 꼼꼼히 따지고 체크하며 불만이 있을 경우 곧장 학교에 항의한다. 해당 미술 수업을 들은 100명의 학생 중 단 2명이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학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교장에게 사직을 권고하고 압박하는 것은 ‘고객 만족’을 위한 필요악이었다는 주장이다.

    학부모와 학생을 소비자로, 교사를 생산자로 놓고 본다는 전제 하에 비숍의 생각과 행동에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은 없다. 문제는 과연 그 전제가 타당하냐다. 학부모에게는 자녀를 교육할 권리가 있다.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부모는 마땅히 알아야 하고, 잘못된 내용이 있다면 항의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비드 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음란물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 그런 부모들의 ‘내 새끼 내 마음대로 가르칠 권리’를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걸까? 그 사람들은 자식을 교육시킬 권리를 운운하기 이전에, 본인들 스스로가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 아닌가? 모든 문명 세계가 공유하는 상식을 결연히 거부하는 부모의 요구에 순순히 순응할 거라면, 학교가 교육 기관으로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요컨대 이 사건은 차터 스쿨이라는 특수한 제도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두루 겪고 있는 가치관과 제도의 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선택권이란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가? ‘나는 다비드 상이 음란물이라고 생각하므로 내 자녀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사고방식은 존중받아야 할 의견인가, 아니면 계몽의 대상이 돼야 할 무지몽매한 상태일 뿐인가?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존중받을 수 있는 견해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부모가 자신의 ‘다양성’을 자녀에게 주입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비숍이 ‘슬레이트’에 전한 해명에 따르면, 그와 이사회는 지난해와 그 전 해에도 아이들에게 다비드 상을 보여줬다. 단, 조건이 있었다. 수업에서 그 사진을 사용하기 전 학부모들에게 편지를 보내 미리 양해의 뜻을 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번 년도 수업에서는 그 절차가 실수로 인해 생략됐고, 그래서 일부 학부모들은 화가 났다. 우리 아이가 미리 안내받지 못한 채 전라 상태의 남성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설명이다. 탤러해시 클래시컬 스쿨은 아무런 ‘트리거 워닝’ 없이 매년 코스튬을 입는 할로윈 파티를 잘만 치러왔기 때문이다. 인터뷰중인 ‘슬레이트’ 기자도 그 점을 꼬집었다. “당신은 할로윈 코스튬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걱정하지 않으면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에 대해서는 사전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보호했다는 말인가요?”

    지역 유지로 자리를 굳힌 변호사이자 컨설턴트답게, 비숍은 이 질문을 잘 피해갔다. 카라스키야 교장의 해임은 학교에서 규정해놓은 절차를 지키지 않은 문제가 핵심이지, 다비드 상이 음란물이냐 아니냐는 논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만 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다비드 상이 음란물이라고 생각해 이의를 제기한 학부모가 두 명 있고, 그것을 근거로 이사회가 교장을 해임한 것도 사실이므로, 결국 다비드 상이 음란물이냐 아니냐가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21세기는 이런 시대인가

    여기서 우리는 진보의 이념인 ‘다양성’과 보수의 이념인 ‘시장주의’가 가장 나쁜 형태로 손을 맞잡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다양성 혹은 아이의 정서 보호 등을 앞세워 16세기에 제작된 르네상스 시대 조각상을 음란물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통상적으로 작동하는 교육 시스템이라면 그런 말에 휩쓸리지 않는다. 하지만 비숍이 이사장으로 있는 탤러해시 클래시컬 스쿨은 ‘고객 만족 100%’를 추구하고 있었고, 단 2명의 고객 혹은 학부모가 불만족하면 교장이 해임될 수도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이런 시대가 돼있다. 한 사회가 사회답게 작동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과 상식의 합의조차 흔들리고 있다. 왼쪽에서는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 혹은 ‘트리거’나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는 것만을 지상 과제로 삼는 사고방식이 득세한다. 오른쪽에서는 돈이 된다면, 혹은 학교의 학생 수 등 ‘고객 만족’의 지표가 될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확충할 수 있다면, 그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가 큰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탤러해시 클래시컬 스쿨의 미술 수업에 불만을 품은 2명의 학부모는 익명으로 항의 편지를 보냈다. 그들이 누구인지, 정말 진심으로 다비드 상을 6학년 아이들에게 보여줘선 안 될 음란물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해당 미술 교사나 카리스카야 교장을 상대로 비상식적인 트집을 잡은 것인지, 우리는 그 내막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다비드 상을 두고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질문이 오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상식의 개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며, 상식의 수호자이자 전달자가 돼야 할 교육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의 이야기지만 우리의 현실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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