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질 건강에 좋은 유산균 영양제, 난임에도 도움 줄까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 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3-04-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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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에 사는 유익 세균총 집단이다. [Gettyimage]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에 사는 유익 세균총 집단이다. [Gettyimage]

    유산균 영양제 시장이 1조 원대를 돌파하는 등 그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단순히 변비를 해결하기 위해 유산균 영양제를 찾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면역 기능 활성화, 다이어트, 여성 질 건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대로 섭취를 권장하고 있다. 필자에게 시험관아기 시술(IVF)을 받는 난임 여성들까지 섭취를 게을리하지 않는 걸 보면 유산균 영양제가 얼마나 대중화됐는지 체감할 수 있다.

    실제로 유산균 영양제의 효능이 이토록 광범위할까. 필자는 유산균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 몸에 공생하는 세균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인체는 여러 가지 세균과 공생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과의 경제적 유대로 서로 윈윈(win-win)하자”고 강조하는 것을 들으면서 세균과 인체의 공생관계를 떠올렸다. 과거에 머물러 있을 게 아니라 이웃 나라와 서로 장점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하자는 메시지가 우리 몸과 세균의 관계와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 알면 놀라울 것이다.

    유익 세균총 집단을 칭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우리 몸에 없어서는 안 될 공생관계를 지탱하며 몸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어느 학자는 마이크로바이옴 수가 인간 세포의 10배에 달하며 몸무게의 1~3%를 차지한다고 얘기한다. 기존의 균 배양으로 확인된 세균은 1%에 불과하고, 아직 파악하지도 못한 다양하고 방대한 종류의 세균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며 건강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제2의 인간 유전자(Second human genome)’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까지 한다.

    우리 몸에 공생하는 세균으로는 대장 안에 사는 대장균이 대표적이다. 대장균은 음식물 소화와 영양분 흡수에 도움을 주며 숙주인 우리 몸과 공생한다. 만약 여기에 장티푸스를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이 자리를 잡으면 설사, 구토, 고열 등이 일어나거나 탈수가 심해져 사망할 수도 있다.

    세균은 제2의 인간유전자

    우리 몸 안에 사는 세균뿐만 아니라 진균이나 바이러스도 마이크로바이옴에 포함된다. 자궁 안에 사는 세균은 질의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종류가 다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난관(나팔관)과 난소에도 숫자는 적지만 다양한 종의 세균이 존재한다. 따라서 정상 균총(Eubiosis)을 정의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이런 균총은 민족, 나이, 호르몬의 변화, 생리 주기에 따라 변화하며 정상 균총의 유익균(有益菌)이 유해균(有害菌)으로 바뀔 때 질환이 생기는 것(Dysbiosis)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질내 유산균이 유해 곰팡이인 진균으로 바뀔 때 진균성 질염(모닐리아시스)이 발생한다. 자궁 안에 유해균이 증가하면 자궁 내 수축을 일으켜 자궁혈이 역류하면서 난관을 거쳐 복강 내로 들어가 자궁내막증을 일으킬 수 있다. 자궁 내 유해균은 에스트로겐 대사나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를 분비해 고(高)에스트로겐 환경을 만듦으로써 자궁내막증을 야기하기도 한다.

    산모의 태반, 양수, 양막, 탯줄, 혈액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이 관찰된다. 분만 과정에서 균의 전파가 일어나 질식 분만과 제왕절개 시 각각 세균총이 달라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모체의 자궁경부와 장내 세균이 임신 중 태아에게 전달돼 임신성 당뇨나 조산 같은 산과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신생아의 면역 형성에도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임신부에게 유산균 영양제 섭취를 적극 권장하는 것도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 세균총으로 만들어진 제품) 투여로 임신 예후나 태아 발달을 개선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산모에게서 채취한 대변, 혈액, 모유와 신생아의 대변에서 같은 세균총이 발견되는 이유는 배 속에서 태아가 삼킨 양수나 장간막 임파선, 모유를 통해 엄마 몸에 있던 마이크로바이옴이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아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면 산모에게 투여하는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유산균이 장뿐 아니라 질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알려지며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박해윤 기자]

    유산균이 장뿐 아니라 질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알려지며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속속 나오고 있다. [박해윤 기자]

    또 프로바이오틱스의 조합에 따라 태아 장내의 선천면역에 관여하는 유전자 표현이 조절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즉 프로바이오틱스가 태아의 면역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더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 소아기 영양학회 발표에 따르면 염증성 장 질환의 하나인 궤양성 대장염에 유산균GG를 투여했을 때 호의적 결과가 나타난 사례가 많다. 즉 영유아기에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한 경우 설사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프로바이오틱스를 투여한 어린이들에게서 자폐증, 불안, 우울 등 신경정신의학적 증상이 완화됐다고 한다.
    최근 들어 프로바이오틱스 소비량이 크게 늘었고, 건강을 위해 유산균 제재를 복용하라고 권장하는 분위기지만 이러한 영양제가 아직은 치료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앞으로 치료제로 사용되는 날이 오겠지만 현재는 아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산균 영양제는 건강보조제일 뿐이다. 난임을 해결하고, 부인과적 질환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을 수 없다.

    장운동 활발한 여성, 임신 가능성 높아

    다만 질강 내에 사는 유산균이 질강 내 환경을 약산성으로 만들어 다른 병균의 침입을 막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산균 영양제가 직접적으로 난임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원활한 장운동과 질강 내 건강을 이끌어 임신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더 넓은 의미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돼야 한다.

    그동안 무균 상태라 믿었던 자궁, 난관, 난소에도 마이크로바이옴이 산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임신부의 태낭, 양수, 탯줄에도 공생하는 유익균(Eubiosis)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여성의 생식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유익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생 영역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의 인생사가 그러하듯이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은 고달프다.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윈윈’하며 공생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도 공생에 답이 있다. ‘한국이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질 최초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언 앞에 우리도 이제는 동남아의 우수한 청년 인재의 유학과 이민을 받아들여 인구를 늘리고 복지 인력 충원, 산업 현장의 인적 확충을 꾀해야 한다. 다른 민족을 받아들여 로마시민을 만든 로마제국처럼 말이다. 공생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마이크로바이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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