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 [오뚜기]
“후원 사실 절대 알리지 않길”
3월 1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장 교수는 “함태호 명예회장님께서 ‘잘 먹고 해야 하는 운동이니 더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수 때부터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시합이나 전지훈련에 가면 뭐가 필요하다고 말을 못 하는데, 기억력이 좋으셔서 언제 가는지 기억하셨다가 선수촌에 음식을 보내주셨다”며 “내겐 후원자를 떠나 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나를 조건 없이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주셔서 다른 선수들의 화려함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고 감사를 표했다.함 명예회장은 현물‧현금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후원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는 것’이다.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후원을 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다소 남다른 조건이다.
3월 1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장미란 용인대 체육학과 교수는 “내겐 후원자를 떠나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며 함 명예회장을 회상했다.[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캡처]
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던 함 명예회장은 장 교수가 올림픽 출전을 위해 억지로 음식을 먹어가며 체중을 늘린다는 소식을 듣자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 잘 먹고 국민께 기쁨을 주시기 바란다”며 후원을 시작했다. 후원에 힘입어 장 교수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이후 몇 차례 인터뷰에서 감사함을 표현하고자 했지만 함 명예회장은 이마저도 극구 사양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함 명예회장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철학을 갖고 계셨다. 당시 장미란 선수가 이적 문제 등 고충을 겪는 걸 보시곤 ‘저런 훌륭한 선수가 어려움을 겪는 게 안타깝다’며 후원하셨다”며 “쭉 비밀로 해왔는데, 함 명예회장이 돌아가신지 꽤 시간도 지난 지라 장 교수가 보은 차원에서 말한 듯싶다”고 밝혔다. 이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장 교수 경우처럼 함 명예회장이 후원한 사람이 많다. 기업의 기부활동 일체를 조용히 해왔다. 함 명예회장이 돌아가시고 난 후 삶이 조명되며 의도치 않게 알려졌다”고 말했다.
“기업 이익은 소비자 덕, 환원 당연”
함 명예회장은 1930년 원산에서 태어났다. 1959년 대학을 졸업하고 부친이 경영하던 식품원료제조업체 조흥화학에 입사해 일했다. 1969년 독립해 오뚜기의 전신 풍림상사를 설립했고 1996년 사명을 ‘주식회사 오뚜기’로 바꿨다. 오뚜기를 이끄는 동안 ‘함께 사는 세상’을 강조했다. 창업 초창기부터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지역사회에 공헌했다. 1996년 설립한 ‘오뚜기함태호재단’이 구심점이다. 함 명예회장이 재원 전액을 사비로 출연했다.다양한 학술진흥사업과 장학사업을 전개했다. 1997년 5개 대학 14명 지원을 시작으로 2021년 기준 총 대학생 1100명에게 장학금 75억 원을 전달했다. 2009년엔 오뚜기 학술상을 제정해 식품산업 발전과 식생활 향상에 기여한 학자와 연구원에게 해마다 2회 시상하고 있다. 2012년엔 장애인 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단순 후원에 그치지 않고 자립 프로그램 ‘굿윌스토어’로써 일자리를 제공해 자생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2012년 9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오뚜기가 굿윌스토어에 임가공을 위탁한 선물세트는 총 719만 세트다. 34억 원 상당이다.
심장병 어린이 후원사업도 오뚜기의 대표적 사회공헌 활동이다. 1992년부터 한국심장재단을 통해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했다. 매월 5명으로 시작해 22명으로 후원 인원이 늘었다. 함 명예회장이 타계할 때까지 4265명의 심장병 환아가 새 삶을 얻었다. 이후에도 그의 유지는 이어졌다. 지난해 8월 기준 오뚜기가 새 생명을 선물한 심장병 환아는 5727명이다.
오뚜기 관계자는 “함 명예회장은 살아생전 ‘기업의 이익은 소비자가 물건을 사주기에 발생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사회공헌을 당연한 책무로 여기셨다”며 “지금의 오뚜기가 ‘착한 기업’으로 회자되는 것은 함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의 유지는 아들 함영준 회장이 고스란히 계승했다. 앞으로도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과거와 현재 대화로 ‘K-아트’ 새로 태어나다
대한항공, ‘복 주는 도시’ 푸저우 가는 길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