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문 닫는 서울 도봉고 일대엔 학생은 없고 어르신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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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3-04-1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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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신입생 42명으로 급감

    • 학령인구 감소, 내신 상대평가의 악순환

    • 학교 앞 아파트 주민 60%가 고령자

    • 폐교 후 3년간 임시 초등학교로

    내년 2월 28일 문을 닫는 도봉고 전경. [지호영 기자]

    내년 2월 28일 문을 닫는 도봉고 전경. [지호영 기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출산율 저하로 학령인구(학교에 다닐 수 있는 아동과 청소년의 총 인원수, 6~21세)가 감소하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한둘이 아니다. 서울·경기·인천을 아우르는 수도권은 학령인구가 전체의 49.8%(2020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밀집했는데도 최근 폐교가 결정된 학교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서울 도봉고등학교(도봉구 도봉산길 27)도 그중 하나다. 서울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가 폐교되는 건 도봉고가 처음이다.

    도봉고는 2024년 폐교가 확정돼 올해 신입생을 받지 않았다. 작년에 입학한 신입생 42명은 모두 다른 학교로 전학했다. 지금은 3학년생 64명(특수교육을 받는 학생 포함)만 남았다. 학교 정보를 공시하는 인터넷사이트인 학교알리미에 따르면 도봉고는 2003년 12월 설립돼 2004년부터 신입생을 받았다. 개교 이후 학생 수가 한동안 197명(남 102명·여 95명)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2020년 103명이던 도봉고 신입생이 2021년 75명, 지난해 42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 학생 수 급감은 도봉고 폐교 결정에 직접적 원인이 됐다. 그렇다면 이 학교의 학생 수가 갑자기 큰 폭으로 빠지고, 다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학생 없어 경제적 타격 커

    “애를 안 낳으니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니겄슈?”(식당 주인)

    “여긴 주변에 국립공원이 있어서 노인이 많이 살아요. 젊은 사람은 별로 없어.”(인근 아파트 15년 거주자)

    경칩이 막 지난 3월 8일, “도봉고 학생 수가 왜 급감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인근 주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취재에 응한 주민은 대부분 저출산 기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학령인구는 2010년 1011만8920명에서 2020년 789만8876명으로 줄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2010년 186만10명에서 2020년 129만3373명으로 56만6637명이 줄며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주민들은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등산로가 가까이에 있는 지리적 여건과 노인 인구가 많은 데서 또 다른 원인을 찾았다. 도봉고가 속한 도봉구와 인근 강북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고령화 속도가 빠른 지역으로 손꼽힌다. 부동산 중개사 박복덕(가명) 씨는 “거주 환경이나 교육 여건이 좋지 않아 젊은 층이 잘 유입되지 않는다. 학생이 별로 없다. 대신 여기는 공기가 좋고 집값이 싸서 어르신이 많이 산다”며 “인근 30평대 아파트 매매가가 4억5000만~5억 원 선”이라고 말했다.

    분식집 주인 김순오(가명) 씨는 “학생 손님이 별로 없고 어르신이 주로 온다”면서 “학교 근처라 학생 손님이 많을 줄 알고 6개월 전 가게를 냈는데 점심때든 하교 시간대든 학생 보기가 힘들다. 장사를 계속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매출이 신통치 않다”고 하소연했다. 도봉고 후문 쪽에서 학생컷 전문 미용실을 8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미연(가명) 씨는 “처음 오픈할 때는 학생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그 학교에 학생이 아직 60여 명 남아 있다고요? 학생이 하도 안 보여서 이미 폐교한 줄 알았어요. 학생 손님이 없어서 경제적 타격이 커요. 요즘은 장년층이 주된 고객이에요. 노인층이 많이 사는데 머리 하러 오는 분은 많지 않거든요.”

    도봉고는 서울 도봉구 도봉산길 27에 자리한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구간 등산로가 학교 정문 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날씨가 따뜻해져선지 등산로로 가는 길은 울긋불긋하고 가벼운 옷차림의 등산객으로 북적였다.

    정문 맞은편에 늘어선 음식점과 카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 앞 편의점을 찾는 학생도 제법 있을 줄 알았는데 1시간을 기다려도 교복 차림 방문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편의점 직원은 “학교 바로 앞에 있어도 학생을 거의 보지 못한다. 하루 많아야 네다섯 명 정도 온다.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자주, 많이 온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단지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학교 가까이에 있어도 학생 보기가 힘들다. 후문에서 3분 거리에 있는 가든아파트는 노인이 전체 주민의 60%에 달한다. 다음은 이 아파트의 동 대표인 김영배 씨의 전언이다.

    “도봉산이 가깝다 보니 건강을 생각해 이곳에 사는 노인이 많아요. 나도 정년퇴직 후 이곳으로 이사했어요. 젊은 층은 많지 않아요, 고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도 별로 없어요.”

    교육과 생활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 활동에 익숙한 젊은 엄마들은 노인층이 많은 동네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봉고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선아(가명) 씨는 “아들이 고등학생에 진학하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며 “입시 정보를 얻기 쉽고 학원가가 잘 조성된 동네로 갔다”고 했다.

    학생 수 적을수록 내신 경쟁 강도 높아

    교육 전문가들은 고교 내신 상대평가도 도봉고 학생 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도봉고가 원래 규모가 작다. 학령인구와 학생 수 감소가 폐교의 주된 원인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근에 사는 아이들이 통학거리가 멀어도 다른 학교를 선(先) 지망하는 경향이 있다”며 “학생 수가 적은 학교는 내신 상대평가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그의 부연 설명이다.

    “내신 상대평가는 학생 수가 적을수록 체감하는 경쟁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어요. 이를테면 1000명 중에서 경쟁하는 것과 100명 중에서 경쟁하는 것을 비교해 보자고요. 상위 4% 학생에게 1등급을 주는데 1000명의 4%는 40명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100명의 4%는 4명이니 학생이 떠안는 심적 부담이 엄청나거든요. 도봉고처럼 학생 수가 줄어든 학교는 학생들이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일반고는 3지망까지 쓸 수 있는데 거기에 이런 학교는 잘 안 써요. 그러다 보니 학생수 감소 폭이 갈수록 커지며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른 거예요.”

    중학교는 현재 모든 과목에 내신 절대평가를 적용한다. 도봉고처럼 학생 수가 줄어 학생들이 더 기피하는 문제를 해소하려면 고등학교에서도 내신 절대평가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 전문가들은 “내신 상대평가가 지역별 균형 선발 효과를 이유로 오랫동안 유지돼 왔지만 학생들 간에 과도한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인성을 파괴하고 입시 스트레스를 심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내신 상대평가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라며 “울타리를 쳐놓고 몇 명 안 되는 아이들에게 제로섬 경쟁을 하라고 강요하는 건 굉장히 잔인한 짓”이라고 꼬집었다. 또 “내신 절대평가를 시행하면 학생들이 학업 성취를 목표로 하지만 상대평가를 하면 남을 밟고 올라서는 데 집중한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시행을 예고한 고교 내신 절대평가제를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유예해 공교육의 질적 후퇴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고교 전학년의 교과(내신) 평가를 2025년 성취평가(절대평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이후에도 1~9등급 상대평가를 존치하기로 했던 고1 공통과목에도 성취평가가 도입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2011년 내신 9등급제 폐지와 성취평가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석차등급제가 폐지되면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만 획득하는 것으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성적 부풀리기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성취평가를 시행하면 학생 스스로 적성과 소질, 진로에 따른 다양한 교과목 선택이 가능해진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내신에 일관되게 절대평가를 적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폐교, 주거 환경 개선에 일조하길

    학령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추세이니만큼 폐교하는 학교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학생이 졸업하고 교사가 떠나도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지은 학교 건물은 그 자리에 남는다. 폐교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도봉고는 내년 3월부터 인근 도봉초등학교가 그린스마트미래학교로 리모델링되는 3년 동안 임시 초등학교 건물로 쓰인다. 2027년 이후 활용 방안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도봉고 인근에서 살았다는 83세 주민 오혜순 씨는 “공기가 좋아서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다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맨 노인인데 노인들이 다닐 만한 병원이 가까이에 없어 아쉽다”며 “폐교에 종합병원이 들어서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또 다른 주민은 “도봉고 자리에 아파트가 지어지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가 앞에 지어지면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가치도 올라가고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도봉고 후문 쪽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 중에는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가 많았다. 한 점포 주인은 “국립공원이 지척에 있어 개발이 제한돼 있다. 아파트는 들어서기 힘들 것 같다”면서 “등산객이 차를 시장 거리에 마구 세워 주차 문제가 심각하다. 학교 운동장이 넓으니 주차장으로 쓰면 그런 문제가 바로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삶의 질이 낙후된 지역이니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주민의 쉼터이자 힐링 공간으로 조성됐으면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청소년 진로 체험과 진로 선택을 돕는 센터나 초등생 돌봄 공간, 가방끈 짧은 어르신을 위한 학력인증제 교육기관 등으로 쓰이길 바라는 주민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건물과 부지를 활용할 방안을 연구용역과 주민 의견을 고려해 결정할 방침이다.

    보통의 고3처럼 평범하게, 무사히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도봉고 주변 상점이 온통 썰렁하다. [지호영 기자]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도봉고 주변 상점이 온통 썰렁하다. [지호영 기자]

    도봉고는 내년 2월 28일 문을 닫는다. 교장과 교사를 만나보고 싶었으나 취재를 꺼렸다. 대신 학교 관계자에게 전화로 간략하게나마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박진선 도봉고 교무기획부장은 “신입생 급감으로 재작년부터 교육부, 교육청과 학교 통폐합에 관한 얘기를 계속 해왔고 지난해 신입생이 40명대로 급격히 줄어 결국 폐교가 결정됐다. 작년에 받은 신입생은 2학기에 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냈다. 올해는 신입생을 안 받았다”며 “특수교육 대상자를 포함해 고3 학생 64명이 다니고 있으며 학급당 인원은 10~11명 정도”라고 말했다. 또 “학생과 학부모가 도봉고 얘기가 계속 나오는 걸 불편하게 여겨 언론의 취재 협조에 응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교내 분위기를 전하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그는 학교 측 공식 입장을 이렇게 전했다.

    “일반 학교 통폐합은 교육청에서 결정한 사안이기에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남아 있는 고3 학생들이 심리적 안정 상태에서 보통의 고3 학생처럼 평범하게 무사히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마쳤으면 한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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