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아스팔트우파‧조국기부대‧개딸 공통점

[노정태의 뷰파인더] 주술적 일탈로 치닫는 한국정치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3-03-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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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방법’, 2023년 ‘양밥’

    • 윤석열‧이재명이 모두 겪은 일

    • 베버가 본 ‘탈주술화’의 장단점

    • 전근대로 향하는 정치 문법

    • 전광훈‧김민웅 목사의 접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검찰 조사를 앞둔 1월 10일 경기 성남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앞에서 지지자들과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검찰 조사를 앞둔 1월 10일 경기 성남시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앞에서 지지자들과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가 모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깔고 안진 나이록 방석 갓다 노라 안갓다 노면 방법 한다 방법 하면 손발리 오그라진다 갓다 노면 안한다.”

    2002년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한 게시물의 사진 속 쪽지에 담겨 있던 문구다. 전후 맥락은 이렇다. 부산 해운대구의 모 아파트 1층 주민 할머니는 아파트의 복도 혹은 현관 바닥에 나일론 방석을 깔고 앉아있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방석이 없어지자 그것을 치우거나 훔친 사람에게 경고문을 써 붙인 것이다.

    그 맥락을 염두에 두고 소리 내어 읽어보면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옮겨보자면 ‘깔고 앉는 나일론 방석 갖다 놓아라. 안 가져다 놓으면 방법한다. 방법하면 손발이 오그라진다. 갖다 놓으면 안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가지 눈에 걸리는 단어가 있다. ‘방법’이다. 방법이 뭘까.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방식이나 수단, ‘method’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주문이나 주술 등 초자연적 수단을 동원해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생기게 만드는 일종의 저주를 뜻한다. 문제의 쪽지를 남긴 할머니는 퍽 진지하게 상대를 협박하고 있던 셈이다.

    2023년에 2002년도 인터넷 문화유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 ‘방법의 추억’을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양밥’ 때문이다. 최근 정치 뉴스를 보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접해봤을 수도 있을 단어다. 3월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이 그 발단이었다.



    ‘질문입니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 그는 한자로 생명(生明), 그리고 진(辰)과 유사하게 생긴 옥편에 없는 글자가 적힌 돌이 찍힌 사진을 첨부하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후손들도 모르게 누군가가 무덤 봉분과 사방에 구멍을 내고 이런 글이 쓰인 돌을 묻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같은 날 올라온 또 다른 게시물. 이재명은 답을 찾은 듯했다.

    “의견을 들어보니, 일종의 흑주술로 무덤 사방 혈자리에 구멍을 파고 흉물 등을 묻는 의식으로, 무덤의 혈을 막고 후손의 절멸과 패가망신을 저주하는 흉매(또는 양밥)라고 합니다.”

    누군가 이재명에게 저주의 뜻을 담은 주술 행위를 했다는 소리다. 그 무덤은 다름 아닌 “1986년 12월 아버님을 모시고, 2020년 3월 어머님을 합장한” 이재명 부모님 묘소. “흉매이지만 함부로 치워서도 안 된다는 어르신들 말씀에 따라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수일 내 제거하기로 했다”며 그는 고개를 떨궜다.

    “저로 인해 저승의 부모님까지 능욕당하시니..죄송할 따름입니다.”

    두 묘지 이야기

    이 사건은 정치권에서 작지만 큰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이재명의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를 비난했다. 이재명 지지자들은 윤석열 부부가 ‘천공’이라는 도인을 따른다고 주장하고 있던 터였다. 이재명 부모의 묘에 누군가 해코지를 한다면 그것은 ‘미신 추종자’일 것이고, ‘미신하면 천공’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몰아간 것이다.

    윤석열의 지지자들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윤석열의 지지자들은 이재명의 페이스북 게시물 중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수일 내 제거하기로 했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남의 조상 묘지에 뭔가 적혀 있는 돌을 묻는 것이 그저 미신에 불과하다면 ‘간단한 의식’을 치르고 어쩌고 할 것 없이 갖다 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다. 진정 미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치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저 내용을 두고 ‘이재명이야말로 미신 숭배자’라는 식으로 손가락질하는 것도 옳지 않다. 이재명 본인은 당장 치워버리고 싶더라도, “어르신들”이 뭔가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면 그런 뜻을 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재명이 너무 억울해할 일도 아닐 듯하다. 이재명 혼자만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아직 그가 전직 검찰총장 신분이던 2021년 6월 12일의 일이다. 세종시의 한 공원묘역에는 윤석열 조부(祖父) 등의 묘지가 있다. 묘를 관리해오던 윤석열의 친척에 따르면 봉분 위에 인분과 계란 껍데기 등이 놓여 있었고, 식칼‧부적‧1m 정도 길이의 머리카락 뭉치 등이 봉분 앞에 묻혀 있었다고 한다. 묘 관리자는 그것을 즉각 버렸다.

    지금 이재명 지지자들이 근거 없이 윤석열 측을 비난하듯, 당시 윤석열 지지자들은 이재명 혹은 민주당 전반을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누가 그런 ‘양밥’을 심었는지, ‘방법’을 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탈주술화와 문명의 발전

    독일의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탈주술화(Entzauberung; Disenchantment)’를 꼽았다. 종교나 전통의 권위가 사라지고, 대신 그 빈자리를 도구적 합리성이 채우게 된다는 뜻이다. 가령 중세 유럽의 신민이 왕의 명령에 따르는 이유는 왕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를 통해 지상의 질서를 구현하는 자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의 시민들이 나라의 법을 따르고 지키는 이유는 다르다. 국민 모두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삶의 수많은 영역은 도구적 합리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가령 한의사가 ‘서양 의사’보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도 대체로 병세가 심각해지면 큰 병원에서 의학적으로 확인된 방법에 따라 검사와 치료를 받으려 한다. 건강 혹은 질병의 치료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합리적인 도구는 ‘서양 의학’이라는 당연한 상식에 따르는 것이다. 우리가 도로교통법을 지키는 이유는 법을 어겼을 때 돌아올 처벌을 겁내서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도로교통법을 잘 지킬 때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집단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버는 근대 국가의 작동 원리를 다각도로 규명했지만, 근대화가 불러오는 부작용과 단점에 대해서도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려 했다. 그는 탈주술화에도 장단점이 있다고 봤다. 종교와 전통은 사람을 억압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뭉치게 한다. 요컨대 사회를 이루는 구심력이다. 그것이 점점 약해지는 가운데, 도구적 합리성에 충실할 뿐 아니라 적법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료제 국가만이 득세하게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베버의 비관론은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출현으로 현실화했다. 공산주의는 종교에 적대적이다. ‘과학적 유물론’에 입각해 역사가 발전한다는 세계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집중시킨다. 오직 도구적 합리성으로만 무장한 채 통제받지 않는 국가는 종교와 전통이 지배하던 전근대사회만큼이나 바람직하지 않다.

    근대 이후의 사회라 해도 종교적 헌신과 영성을 추구하는 인류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교가 힘을 잃은 현대 사회, 우리는 다양한 집단에 소속되고 여러 의제에 헌신함으로써 그러한 내면적 수요를 채우고자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다는 MZ 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 해도 충분한 달리기를 사람들과 모여서 한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지구를 위해 채식을 하고자 한다. 집단에 속하고 싶은 마음, 나보다 더 큰 가치에 헌신하고자 하는 본능의 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탈주술화를 지향해야 한다. 주술화는 인류의 원시적 본능과 문화적 관성에 기대고 있는 반면, 탈주술화는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등장한 이례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탈주술화의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통제받지 않는 집단적 정서가 종교와 전통의 탈을 쓰고 개인을 억압하던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코로나19가 확산중이던 2020년 대규모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월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코로나19가 확산중이던 2020년 대규모 광복절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2월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도구적 합리성에 입각해 정책을 토의하고 비판하며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이다. 탈주술화가 전제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정치 문법은 근대가 아닌 전근대의 그것과 더욱 닮아가고 있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아스팔트 우파는 전광훈 목사의 마이크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국기부대’와 ‘개딸’들은 김민웅 목사가 이끄는 기도회 혹은 집회에서 시위를 하고 헌금을 낸다. 야당 지지자들은 윤석열과 김건희, 천공 등의 모습을 담아낸 인형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뺨을 때리고 조롱하는 사진을 찍어댄다. 스스로는 풍자와 해학이라 하겠지만 이 또한 주술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닮거나 그의 소지품, 머리카락 등을 넣어 만든 인형을 해하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방법’의 유형이니 말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오늘의 주제인 ‘정치인 조상 묘지 훼손’으로 돌아와 보자. 이재명 부모님 묘지 양밥 사건. 윤석열 조상 묘 훼손 사건. 이 각각은 사안 자체만 놓고 보자면 심각하게 볼 일이 아니다. 마치 어떤 종교인이 날아가는 비행기를 향해 ‘추락하라’며 기도를 한다 해서 그 사람을 항공기 납치범이나 테러리스트와 동등하게 여길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주를 받은 입장에서는 불쾌한 일이겠지만, 형법학에서도 그러한 유형은 ‘미신범’이라 하여 애초에 처벌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사건을 합쳐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력 정치인의 조상 묘지를 해하는 행위가 연이어 벌어지는 건 단순히 개인의 일탈 차원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른바 ‘조상 묘 저주’ 사건은 한국 정치가 심각하게 퇴행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부 지지자가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조상 묘에 해코지하는 주술 행위를 했다는 것만으로는 그리 큰 문제라 보기 어렵다. 2023년이 아니라 2123년이 되어도 누군가는 미신을 믿고 ‘방법’을 수행하려 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넘어가야 할 그런 사건에 확대 해석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사회의 일부가, 혹은 상당수의 대중이 탈주술화를 거부하고 재주술화에 돌입하려 해도, 현대 민주국가의 정치인과 정당이라면 그런 경향에 제동을 걸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소리다.

    근대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와 함께 시작됐다. 도구적 합리성에 입각해 사회를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method)을 찾는 것이 현대 정치의 임무다. 일부 지지층의 전근대적, 주술적 일탈을 정치인이 모두 막을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의 상식선을 지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겠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신동아 4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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