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지금과 같으면 내년 총선도 이준석 예측 들어맞는다

[윤태곤의 총선 읽기]

  •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입력2023-11-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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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의힘 스스로 3연승 구조 해체

    • 선거 패배 지형으로 회귀

    • 윤석열黨 만들면서 인재풀 확대 못 해

    • ‘분칠’로 총선 임할 상황 아냐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1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연말 정기국회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분위기가 달아오르겠지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총선이 확 다가온 느낌이다. 참패를 맛본 여권이 혁신위를 띄우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실이든 당이든 ‘하던 대로는 안 된다.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데, 아직 갈피를 잡지는 못한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이미 다 나와 있다. 10월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복기해 보면 훤히 알 수 있다.

    애초에 서울 강서구는 여당 처지에서 쉽지 않은 곳이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김태우 후보가 3%포인트 차이로 신승을 거뒀지만 오세훈 시장 득표율에는 훨씬 못 미쳤다. 앞서 진행된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을 2%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분위기가 좋아야 겨우 해볼 만한 지역이었다.

    ‘조국이 유죄면 김태우도 무죄’라는 착각

    게다가 올해 하반기 들어선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35%선에서 오락가락했다. 무엇보다 이 보궐선거 자체가 국민의힘 소속 김태우 전 구청장의 대법원 유죄판결로 인한 궐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 탓에 애초에 국민의힘에서는 무공천 기류가 강했다. 어차피 어려운 상황이니 후보를 내지 않으면 ‘책임 정당’이라는 명분이나마 건질 수 있고, 선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여당에 대한 심판 정서가 달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3개월 만인 8·15 광복절에 윤석열 대통령이 김태우 전 구청장을 사면 복권하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윤 대통령이 김 전 구청장에게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김 전 구청장은 “조국이 유죄면 나 김태우는 무죄”라며 출사표를 냈다. 결국 국민의힘은 그에게 공천장을 쥐여줬다. 여권 스스로 ‘조국 vs 김태우’ ‘문재인 vs 윤석열’ 전선을 만들어 선거에 임한 것이다.

    그때부터 국민의힘 내에선 “전망이 어둡지만 구청장을 1년 지낸 후보니 민주당 후보보다 지역 상황에 밝고, 재보궐선거 특성상 투표율도 낮을 테니 당력을 총동원하면 5%포인트 안팎에서 뒤처지는 결과가 나올 수 있고 그 정도면 선방”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국민의힘이 총력을 다하긴 했다. 강서구에 충청권 원적자가 많다며 충청권 중진 의원인 정진석·정우택 두 사람을 맨 앞에 세워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불과 6개월 전 전당대회 국면에서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장제원 의원 발언),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이진복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발언)고 몰아세웠던 나경원·안철수 두 사람도 불러냈다. 선거운동 실적을 평가해 공천에 반영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영남권, 충청권 의원실에서 모은 당원들이 상경해 지리도 모르는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총력 체제이긴 했지만 캠페인 전략은 도통 보이지 않았다.

    지역 현안 뒷전으로 밀린 정치선거

    나경원 전 의원(왼쪽), 안철수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나경원 전 의원(왼쪽), 안철수 의원(왼쪽에서 네 번째)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유세를 하고 있다. [뉴시스]

    김태우 후보 본인은 표를 열심히 깎아먹고 다녔다. 자신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보궐선거에 40억 원의 혈세가 사용되고 그 선거에 자신이 출마한 데 대한 비판에 “애교 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을 정도였다. 갑자기 불려나온 사람도 아니고 구청장을 1년이나 이미 지냈고, 그 이전에 이 지역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아파트를 한 채씩 보유하고 있지만 강서구에는 반전세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대해 김 후보의 대응은 창의적이었다. 강서구 자택에 거주하는 민주당 진교훈 후보를 향해 “이해충돌방지법에 걸려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역공하며 “강서구에 집을 보유하지 않은 저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에 저촉되지 않으며 어떠한 오해나 의심도 사지 않고 속전속결로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날에는 “당선되면 단 한 푼도 급여를 받지 않겠다”는 ‘히든 카드’를 던졌다.

    당과 후보만큼 용산 대통령실의 역할도 컸다. 김태우 후보 사면 즈음에는 연일 이념을 강조하는 발언이 나왔다. 선거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는 유인촌·신원식·김행 세 사람을 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관으로 한 번 기용했던 유인촌 후보자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조용했고, 신원식·김행 두 사람은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사전투표 전날에는 김행 여가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장을 박차고 나가는 초유의 모습을 연출했다.

    당, 후보, 대통령실이 3위 일체가 돼 움직이다 보니 부동산이나 교통, 교육 같은 지역 현안은 모두 뒷전으로 밀린 정치선거가 진행됐다. 국민의힘이 바랐던 조국 vs 김태우, 문재인 vs 윤석열 전선도 형성되지 않았을뿐더러 민주당 vs 국민의힘 혹은 이재명 vs 윤석열 전선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직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에 대한 절대평가가 선거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주말인 금요일, 토요일 양일간 진행된 사전투표의 최종 투표율은 22.64%였다. 사전투표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중 1위였다. 일과가 그대로 진행된 날 치러진 본투표를 합산해 48.7%라는 최종 투표율이 나왔다. 기초자치단체장인 구청장 단 1석이 걸린 보궐선거였고, 그렇기에 선거 지역도 서울 강서구 한 곳밖에 없었고 정치 거물들이 붙은 선거도 아닌데 50%에 육박하는 유권자가 투표장으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김태우 후보는 민주당 진교훈 후보에게 17.15%포인트 차이로 대패했다.

    이 결과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의 예측에 정확히 부합한 것이었다. 이 전 대표는 공식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방송에 출연해 “2020년 21대 총선에서 강서 갑·을·병의 양당 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17.87% 정도 차이가 난다. 저는 그게 그대로 간다고 본다”면서 “18%포인트 차이로 우리 당 김태우 후보가 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

    강서구에서 국민의힘이 2021년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대승,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접전, 2022년 6월 지방선거 신승을 거둔 효과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선거 다음 날 국민의힘 의총에서 “강서구는 원래 험지였다” “송파구청장 선거였으면 이겼을 것이다” 같은 정신 승리 발언이 나왔다. 조선일보가 보궐선거 바로 다음 날 “與에 등 돌린 중산층… 尹이 7%p 이겼던 마곡서 16%p 졌다”는 기사를 낸 후 그런 소리는 쑥 들어갔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2021년부터 3연승을 거뒀던 구조를 해체하고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임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의 오세훈 후보는 당 밖에 있던 금태섭·안철수 후보와 순차적 단일화를 통해 선출됐다. 중도보수 내지 중도가 결합하면서 확장성을 키웠고 후보 본인도 확장성이 강한 인물이었다. 이때는 ‘친윤’은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다. 당시 비대위원장은 김종인이었다.

    이후 국민의힘은 30대 0선 이준석을 대표로 선출해 혁신의 이미지까지 갖췄고 당 밖에 있던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을 대선후보로 선출했다. 선거기간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2021년의 확장 기조가 완전히 꺾이진 않았고 결국 정권을 되찾았다. 그 직후 진행된 지방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종인·금태섭은 일찌감치 갈라섰다. 유승민·이준석은 당적만 유지하고 있을 뿐 매서운 비판자가 됐다. 여기까지야 당사자들의 의지도 반영된 것이지만 나경원·안철수 같은 인물은 전당대회에 나섰다는 이유만으로 몰매를 맞고 구석으로 밀려났다. 당과 대통령실은 완전히 단일대오가 됐고, 강서구 보궐선거의 공천·기획·전략·캠페인까지 모두 친윤 몫이었다. 책임도 그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혁신위원장이 새로 들어오고 정책위의장, 사무총장 정도가 교체된 걸 제외하면 라인업에는 큰 변화가 없다.

    방향이 틀렸고 실무도 안 돌아갔다

    대선 이후 새 대통령이 자기 중심으로 여권을 재편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게 했다. 역대 최소 득표율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심의 화살을 전임자에게 돌려 그를 백담사로 보낸 후 3당 합당을 성사시켜 민자당을 만들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역사 바로 세우기와 불법 정치자금 척결을 통해 전임자 노태우를 전두환과 묶어 사법처리하고 신한국당을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요구한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해 차별화를 시작하더니 전임자가 만든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뛰쳐나와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아예 여당 후보 시절에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친윤 중심으로 국민의힘을 재편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이 “멀쩡한 여당 대표를 억지로 축출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함께 목숨을 건 ‘쿠테타 동지’이자 자신을 여당 후보로 만들어준 전임자도 거세하는 것이 권력의 냉혹한 생리다.

    윤 대통령과 전임자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전임자들은 가치를 추구하고 민의를 수용하는 명분을 세워 권력 지도를 다시 그렸다. 5공의 2인자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5공 청산’이라는 야당과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고 국정 운영 전반을 민주화하면서 전두환과 그 친위 세력을 밀어냈다. 3당이 합당한 민자당의 소수파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의 원죄, 권위주의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야당과 국민의 요구가 커지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이를 실행해 민정계를 해체했다. 덧붙여 하나회 해체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명분과 실리가 가장 완벽하게 일치한 장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국 정당화, 지역주의 해소, 3김 정치의 완전한 청산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복지, 청렴, 정권 재창출의 가치를 내세워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리모델링했고 그 여세를 몰아 집권에 성공했다.

    ‘자기 당’을 만든 대통령들은 그 과정에서 인재풀도 확장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 출신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박철언·김종인·사공일·현홍주 등 정무적 감각을 갖춘 엘리트 테크노크라트를 전진 배치했고, 이들은 경제와 외교 양면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민정계 일부를 흡수하는 동시에 이재오·김문수·정의화·홍준표 등을 정치판에 데뷔시켜 새 판을 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86그룹을 대규모로 내세워 정치권의 연령대를 낮추고, 김진표·이용섭 등 중도보수 성향의 관료들도 여권에 편입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새누리당 창당 시점에 김종인·이상돈·이준석 등을 비대위원으로 포진해 이미지를 확 바꿨지만 집권 후에는 이들에게 역할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을 윤석열당으로 만드는 과정에 특별한 명분이나 가치를 내세운 것이 없다.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외교 방향 전환 등이 앞선 정부와 큰 차별점이지만 여당 재편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안들이다.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국민의힘 입당을 염두에 둔 시점부터 인연을 맺은 이른바 ‘윤핵관’ 말고 확장한 인력풀이 없다. 오히려 경선, 대선 캠프에 몸담고 있던 중도적 성향의 인사들은 떨어져 나갔다. 윤 대통령이 서울법대, 사법고시, 검찰 특수부 출신이어서 엘리트 위주로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지만 대통령실과 내각의 면면을 보면 ‘엘리트’들도 잘 안 보인다.

    다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로 돌아가 보자. 공천, 선거 전략, 캠페인, 선거 기간 중 정무적 이슈 관리, 후보의 메시지, 후보 주변 정리까지 전부 다 함량 미달이었다. 방향은 잘 잡았지만 실무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방향은 틀렸지만 실무가 잘 돌아간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분칠’ 정도로 총선에 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걸 세상이 다 알아버렸다. 당사자들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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