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감시 사각지대에 미사일 집중 배치
무용지물 된 南 공대지 정밀 유도폭탄
南 영해 서해 5도서 군사행동 금지
한강 진입 海圖까지 그려 北에 제공
2018년 11월 15일 강원도 철원지역 중부전선 GP가 철거되고 있다. [동아DB]
군사합의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북한은 지난해 말까지 군사합의를 17회나 위반했다. 한국 정부만 착실히 합의를 준수했다. 북한이 합의를 위반해도 한국 정부는 유감 표명만 했을 뿐이다. 북한은 이를 틈타 핵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상공까지 무인기가 침투하자 군사합의 무용론이 퍼졌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군사합의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데도 효과적이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반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올해 9월 19일 9·19 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군사합의는 남북 간 군사 충돌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이라며 “군사합의 덕에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에 남북 간 단 한 건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도 없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는 11월 13일 9·19 군사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정부는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공식화할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합의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정부가 이 같이 결론지었을까. 정치적 시각을 배제하고 군사적으로만 분석해 봤다.
정찰 금지하면 전시에도 타격 제한
감시 제한 구역 설정으로 북한 정찰 사각지대가 늘어난 것을 나타낸 그림. [신원식 의원실]
군사합의로 감시는 어려워졌다. 공중에서는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MDL) 기준 서부는 20㎞, 동부는 40㎞ 상공에서 전투기 등 고정익 항공기의 군사 정찰 및 감시 활동이 금지됐다. 무인기도 MDL 서부 10㎞, 동부 15㎞ 지역을 날 수 없다. 군사합의로 재설정된 정찰 가능 지역에서 직선거리 50㎞ 떨어진 지역에는 1000m 높이 산이 늘어서 있다. 이 뒤로 17.5㎞의 사각지대가 생겼다. 북한은 이 구역에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를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도 국회의원 시절이던 2020년 7월 국방부에 이 문제를 공식 질의했다. 당시 신 장관은 “사각지대를 포함하면 20~40㎞ 공중감시 제한 구역은 실제로는 40~70㎞ 감시 제한 효과가 된다”며 “이를 극복하려고 비행고도를 높여야 하는데 해상도가 떨어져 물체 식별이 어렵게 되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지형도 북한에 유리하다. 북한군 주력이 배치된 구역은 서부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 대부분 험준한 산악 지형이다. 산에는 계곡과 회랑이 많아 사각지대가 늘어난다. 북한군은 김일성 집권기부터 이 같은 이점을 활용해 왔다. 주요 화기는 산 등 고지대로 가려진 곳에 은·엄폐해 배치했다. 화기를 다룰 부대도 한국 몰래 진입할 수 있다. 북한은 전 국토에 8000~1만2000개의 지하터널을 설치했다. 이 터널로 언제든 주요 부대가 진군할 수 있다.
군사합의 전까지 한국군은 무인기(UAV)를 통해 해당 구역을 감시할 계획이었다. 육군 전방 14개 사단과 해병대 2개 사·여단에 무인기(UAV) 총 16기 배치가 예정돼 있었다. 무인기 16조가 15㎞씩 나누면 240㎞에 걸쳐 감시망을 펼치면 휴전선(1248㎞) 일대를 들여다볼 수 있다. 2018년에 새로 도입된 정찰용 무인기는 북한보다 한국군이 우위에 있는 정찰 전력이지만 군사합의로 인해 무용지물이 됐다. 현재는 교육훈련용으로만 쓰이고 있다.
조보근 전 합동참모본부 국방정보본부장(예비역 육군 중장)은 2018년 10월 1일 공감한반도연구회 발표회에서 군사합의를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무인기는 유사시 북한의 이동식 장사정포, 전차와 같은 이동 표적들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 전송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체계다. 평시에 무인기는 근거리 감시를 통해 북한군의 장사정포를 포함한 주요 표적들을 좌표화해 유사시 정밀 타격할 수 있도록 만든다. (군사합의 이후로는) 표적(이동식 장사정포, 전차 등)화가 어렵다. 단순히 정찰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전시에도 타격이 제한된다.”
이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 사용 징후를 알아채기도 어렵고, 어렵게 알아낸다고 해도 선제 타격(킬체인)은 불가능하다.
군사합의로 국방비만 가파르게 상승
김일성 집권기(왼쪽)와 김정일 집권기의 북한군 주요 부대 배치 비교. [김기호]
김정은은 군사합의 직후인 2019년부터 핵미사일과 발사체를 집중 개발했다. 북한은 올해 3월 28일 ‘화산-31’ 전술핵탄두를 공개했다. 길이는 90㎝, 직경은 50㎝, 중량은 500㎏ 미만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이 핵탄두가 600㎜ 초대형 방사포(KN-25), KN-23, KN-23B, KN-24, 신형 전술유도무기, 화살-1형, 화살-2형, 핵 무인 수중 공격정 8종에 탑재된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9월 25일부터 ‘인민군 전술핵 운용부대’의 존재를 노출했다. 이 부대들은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DMZ)로부터 50~90㎞ 지역에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은 북한 접경지역 공격 수단을 잃었다. 비행금지구역으로 사거리 20㎞ 이내 공대지 정밀 유도폭탄 사용이 제한됐다. 군사합의 이전 이 무기들은 북한의 장사정포를 타격할 계획이었다. 군사 합의문 발표 당시 국방부는 50㎞ 이상의 미사일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거리 50㎞ 이상의 미사일은 비싸다.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 갱도를 파괴할 위력을 가진, 사거리가 긴 현무나 타우루스 미사일은 1발에 20억~40억 원을 호가한다. 20㎞ 이내 공대지 정밀 유도폭탄은 한 발당 7000만 원선이다. 단순 계산해도 최소 30배가량의 재원이 더 든다. 미사일을 탑재할 항공기 추가 소요까지 고려하면 최소 17조 원 정도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장사정포 외에도 전선 지휘소 등 추가 군사 표적까지 포함하고 운영 유지비를 계산하면 가히 천문학적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북한은 2018년 6월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각각 60㎞까지 전투기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 직선거리는 160㎞ 정도. 서울은 60㎞에 불과하다. 전투기 외에도 무인기와 헬기는 분계선에서 각각 40㎞, 20㎞까지 띄우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합참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 대표단은 이런 북한의 요구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그대로 북한안(案)을 받아 왔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합참 실무진이 군사합의 초안을 강력히 반대해 북한안이 그대로 합의되는 것은 간신히 막았다고 한다.
인천공항 근처도 완충구역 포함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 5도 아래 인천국제공항이 있고, 더 내려가면 덕적도가 보인다. 9·19 군사합의 내용에 따르면 남북의 해상 군사행동이 중지된 완충구역은 덕적도까지다. [네이버 위성지도]
한국은 완충구역을 설정할 때 기준선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방한계선(Nothern Boundary Line·NLL)을 기준으로 서해 완충구역을 살펴보면 역시 북한에만 유리한 합의였다. NLL에서 북한의 초도까지 거리는 50㎞. 반면 NLL과 덕적도 사이의 거리는 85㎞에 달한다. 남북이 서로 동등한 비율로 양보해 완충구역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우리가 35㎞를 더 양보한 셈이다.
이는 한국과 북한이 그어놓은 해상 경계가 달라서 생긴 문제다. 1953년 정전협정에는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명기됐으나 동해 및 서해 경계선 표지는 확정하지 못했다. 북한은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 이후부터 NLL 무력화 시도를 강화했다. 1999년 9월 2일부터 새로운 ‘서해 해상 경계선’을 주장해 왔다. 이는 유엔(UN) 해양법상 등거리선과 중간기선에 근거한 것으로서 서해 5도보다 한참 남쪽에 있는 등산곶과 굴업도의 중간을 지나는 선이다. 군사합의상 완충구역은 서해 해상 경계선과 닮아 있다. 완충구역의 끝인 굴업도는 바로 덕적도 옆의 섬이다. 북한은 군사합의로 자신들이 주장하던 해상 경계선을 그었다.
반면 한국은 서해 5도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서해 5도는 완충구역 내에 있다. 특히 백령도와 연평도는 주요 군사 거점이자 실제로 북한의 포격을 받은 적이 있다. 군사합의 때문에 이 지역에선 더는 군사훈련이 불가능하다. 서해 5도는 항상 북한의 침략 위험이 있는 곳이다.
황해도 해안에서 서해 5도는 불과 10여㎞ 떨어져 있다. 북한 황해도 용연군 고암포에는 여느 상륙함정보다 4~5배 빠른 공기부양정이 있다. 공기부양정이 한꺼번에 움직일 경우 특수부대원 3000명 이상을 동시에 침투시킬 수 있다. 서해5도는 북한 4군단 및 서해사령부 전력 대비 절대적으로 약세에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 지역 해상 군사행위 중단에 동의했다. 사실상의 무장해제다. 심지어 해병대는 9·19 합의 이후 4년 동안(2018~2022) 연평도·백령도에 배치된 K-9 자주포를 육지로 옮겨와 사격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100억 원에 가까운 국방비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합의가 아니라면 안 써도 될 돈이었다.
위험에 빠진 것은 서해 5도만이 아니다. 수도권 서측방도 위험하다. 덕적도는 인천 이남에 위치한 섬이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도 덕적도보다는 북쪽에 있다. 최악의 경우 북한이 서해안 일대를 기습 공격한다면 속수무책으로 수도권 해안선을 내줄 위험이 있다. 군사합의에 따르면 남북은 항행하는 선박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뱃길 정보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당시 한국 정부는 한강하구 해안가의 수심, 해안선, 암초 위치 등이 표기된 해도를 북한에 보냈다. 한강하구는 암초와 물살 때문에 천혜의 요새라고 불린다. 정부는 천연 요새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지도로 만들어 적인 북한에 제공했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의 포도 수도권을 더 쉽게 조준할 수 있게 됐다. 이기식 전 해군작전사령관은 공감한반도연구회 발표회에서 “북측 해안선 안쪽 내륙에 있는 북한군 제4군단의 포병 및 장사정포는 군사합의 이후에도 가동할 수 있다”며 “이와 반대로 우리는 수도군단에 있는 화력만 쓸 수 있게 돼 있으며, 서해구역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사거리를 가진 화력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전 사령관은 또 군사합의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서해 5개 도서에 있는 해병부대는 해상으로의 사격훈련을 실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육상에서의 훈련구역도 확보하기가 곤란하다. 그 부대는 그냥 주둔만 하고 있는 것 이외의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이러다 보면 병사들은 훈련도 못 하고 화력도 사용하지 못해 전비(戰備) 태세가 약화되고 장비에 대한 신뢰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한국군의 대비 태세에 치명적인 심각한 문제다.”
南 GP 15.7% 줄일 동안 北 7.3%만 철수
GP 철수 교환에도 한국이 손해를 봤다. 남북은 우선 상호 1㎞ 거리 내에 있는 GP 11개씩 철수했다. 양측이 동등한 수준의 양보를 한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다르다. 한국이 설치한 GP는 70여 개, 북한은 150여 개의 GP를 설치했다. 비율로 따지면 북한은 전체 GP의 7.3%를 정리했고, 한국은 전체 GP의 15.7%를 줄였다.GP는 국경을 지키는 보루다. 한국군의 방어선은 GOP(일반 전초) 라인, 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전투지역전단) 알파, 브라보, 찰리, 델타로 구성돼 있다. 이 중 가장 강력한 방어선은 GOP 라인이다. 삼중철책과 장애물 등으로 보강해 왔다. 게다가 70년간 상시 병력을 투입, 경계 및 관리도 해오고 있다. GOP를 포탄을 쏴서 무너뜨리기는 매우 힘들다. 결국 GOP를 넘으려면 전차나 포병 등 실제 병력이 내려와야 한다. GP는 이 GOP의 눈이다. 군사행동은 물론 귀순자도 올 수 있어 최대한 촘촘하게 설치해야 한다.
북한의 포 공격을 막기 위해서도 GP는 필요하다. 북한은 20만 명이 넘는 경보병 부대를 육성했다. 이 부대가 전시에 숨을 벙커도 북방한계선 2㎞ 이내에 구축해 뒀다. 경보병은 포병의 눈 역할을 한다. 먼저 침투해 사격할 지역의 좌표를 찾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이미 북방한계선 근처 진지에서 좌표를 포병부대에 불러줄 통신수단도 설치된 상태다. 이 경보병 부대의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수단이 GP였다. GP가 줄어든 만큼 북한 경보병들의 동태 파악이 어려워졌다. 군사합의로 한국군은 DMZ에 설치된 지뢰마저 제거했다. 북한의 경보병 부대는 더 편안하게 한국군의 철책에 닿을 수 있게 됐다.
남북은 공동 유해 발굴이라는 명분으로 2018년 말 DMZ를 관통하는 12m 폭의 전술도로를 신설했다. 무수한 지뢰지대로 덮여 있던 장애물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도로를 깔았다. 평시에는 공동 유해 발굴이 이뤄질지 모르나, 전시에는 이 도로로 북한군 전차와 장갑차가 진입하기 쉬워진다. 북한의 전차 및 주요 궤도 차량의 폭이 4~5m인 점을 고려하면 유해 발굴용 도로로 한 번에 북한 전차 1개 소대(3대)가 병진할 수 있다. 남북 간 분위기가 해빙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켜야 할 국경의 성문을 떼버린 셈이다.
● 예비역 육군 대령, 국제정치학 박사
● 한미연합사 작전계획과장, 합참 군사전략과 전략기획장교
● 국방대 안보대학원 군사전략과 교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 現 강서대 교수(국제관계학)
[신동아 1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