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마, 물어보지 마, 정해진 건 없다”
법인카드로 구입한 생일 선물, 김혜경은 몰랐을까
주말 밥상 차리기부터 이불 빨래까지, 비서관은 다 합니다
내가 한 일이 ‘카드깡’과 불법 의전이라고?
첫 제보, 국민권익위, 2차 제보, 얼굴과 실명 공개까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공금 횡령
[+영상] "조직적, 계획적, 지속적 공금 횡령" 법카 공익제보자 A씨를 만나다
단정한 헤어스타일, 머리카락 한 올 흐르지 않는 반듯한 이마, 검정 뿔테(금속테가 섞인) 안경, 구김 없는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 구두는 보나마나다. 원칙주의자 모범생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과 정직이 ‘정의’라 믿는 그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오후 3시임에도 거뭇해진 수염 자국만이 그가 오늘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음을 말해준다.
전 경기도청 7급 공무원 조명현(45) 씨는 11월 9일 ‘신동아’와 인터뷰를 위해 회색 넥타이를 맸다. 10월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음으로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때도 맸던 넥타이다. 회색을 선호하느냐고 묻자 그는 “비서는 넥타이를 마음대로 고르지 못한다”며 “경기도청 시절 넥타이 색이 좀 진하면 진하다고, 튀면 튄다고 눈치를 줘서 늘 조심스러웠다. 당시는 가급적 빨간색 계통(국민의힘 상징색)은 피하고 주로 파란색(민주당 상징색)을 맸지만 요즘은 특정 정당을 떠올리는 색상은 매지 않는다”고 했다.
빨강도 파랑도 아닌 회색 넥타이를 매며 그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2022년 1월 첫 제보, 2023년 8월 2차 제보. 나는 극심한 공포, 긴장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매일매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지난 2년의 시간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피해자로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반드시 승리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 당당히 내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내가 이기는 것이다.”(2023년 11월 출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 중에서)
2022년 1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법인카드 유용과 관련한 익명의 제보를 시작으로 ‘공익제보자 A씨’로 불리던 조명현 씨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뒤 11월 9일 ‘신동아’ 인터뷰에 응했다. [박해윤 기자]
국감 출석 무산과 실명 공개 기자회견
10월 1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그의 부인 김혜경 씨의 공금횡령, 법인카드 유용 등 세금 횡령 범죄 및 공무원 사적 유용 등을 언론에 제보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뒤 오랫동안 ‘경기도청 7급 공무원’ ‘공익제보자 A씨’로 불리던 조명현 씨가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섰다.애초 10월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민권익위 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공익신고자의 지위 확보와 이에 따른 권익위의 행정 처리 미흡’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었다. 10월 15일 정무위원장 직인이 찍힌 참고인 출석요구서까지 받았다. 하지만 뒤늦게 조명현이 바로 공익제보자 A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민주당 측이 출석 취소를 요구했고 이틀 뒤 출석이 취소됐다.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보낸 참고인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공익제보자의 처지와 현실에 대해 증언하는 자리였다. 뼈저리게 경험하고 느낀 사안이었다. 그리고 공익제보와 연관된 이재명 부부의 법인카드 부패행위에 대해서도 말할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용기를 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의 방해로 가로막혔다. 당당하다면 왜 나를 출석하지 못하게 하겠는가?”
결국 국정감사 출석이 무산되자 그는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며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 “왜 익명으로 보호받아야 할 공익신고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기자회견을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명현 씨는 물러나지 않았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법카’라는 책을 펴내며 사실상 3차 제보를 이어갔다. 그는 이 책에서 이재명 김혜경 부부와의 첫 만남부터 경기도청 7급 공무원 조명현의 하루 일과, 첫 제보와 국민권익위 신고,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 불발과 기자회견까지의 일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빙 자료(사진과 문자메시지)를 꼼꼼하게 첨부했다.
조명현 씨가 경기도청에서 주무관으로 일하던 당시 사용한 신분증과 이재명 김혜경 부부의 법인카드 사용과 관련한 각종 증빙 자료. [조명현]
“이재명 대표가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몰랐을 리 없다”
뒤늦게 민주당 측이 ‘국감 참고인이 공익제보자 A씨와 동일 인물’임을 알고 출석을 무산시킬 만큼 지난 2년 동안 철저히 익명으로 살아왔다. 왜 갑자기 공개를 결심했나.“솔직히 말해 끝까지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만약 1차 제보 후 이재명 대표가 본인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졌더라면 나는 끝까지 익명으로 남았을 것이다. 1차 제보 때 한 유튜브를 통해 변조되지 않은 내 음성이 공개됐을 때에는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국감 출석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예정대로 국감에 출석했다면 무엇을 증언하려 했나.
“국감에서 거짓을 이야기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고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말이 사실임을 공개적으로 인증받고 싶었다. 이재명 전 지사의 세금 횡령과 불법 의전, 그리고 공익신고자의 보호와 지원 제도의 미비점, 직접 겪어본 공익신고자의 삶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자 했다.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겠지만 나는 정직하게 사실만 이야기하면 그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했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후 무엇이 달라졌나.
“내가 공익신고자였음을 알게 된 주변 지인들이 많이 응원해 주고 걱정도 해준다. 신분이 알려져 두려움도 커졌지만 대신 더 많은 분이 내 이야기를 신뢰해 준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법카’는 언제부터 준비했나.
“2022년 1월 28일 SBS에서 첫 보도가 나가고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첫 제보 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사람들의 오해나 혹은 2차 가해가 있었고, 내용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 없으니까 메신저인 나를 공격해서 망가뜨리려 했다. 개인적으로 명예 회복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책을 쓰기로 했다. 매일 A4 용지 한 장 분량쯤 썼다.”
실제로 1차 제보 후 제보자를 흠집 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돈이 목적이다.” “의도가 불순하다.” “왜 대선 시점에서 터뜨리나.” “누구와 결탁한 스파이 아니냐.” “왜 한 번에 안 하고 나눠서 제보하느냐.”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여전히 ‘7만8000원 사건’이라고 하지 않나. 단편적인 사실만 아는 사람들은 김혜경 씨가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유용한 액수가 고작 7만8000원밖에 안 된다(법인카드로 민주당 인사 3명에게 식사를 대접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고 생각한다. 얼마나 조직적으로 긴 기간 동안 법인카드를 유용했는지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청 내부 분위기와 시스템, 법인카드 사용 과정을 소상히 얘기하면 국민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법의 심판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8월 국민권익위에 부패행위를 신고하며 2차 폭로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인가.
“1차 때 수사기관에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증언을 했다. 이재명 대표가 법적 책임을 질 거라고 생각했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당대표이고 국회의원이다. 1차 제보 이후 2년 동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사과를 원한 게 아니다. 말로만 사과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럴 거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죄를 지은 만큼 책임을 지라는 얘기다.”
첫 제보 이후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는 사과를 했다. “지사로서 직원(5급 공무원 배소현)의 부당행위는 없는지 꼼꼼히 살피지 못했다”고 입장문(2022년 2월 3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을 냈다. 직접 KBS라디오에 출연해 “제 아내가 법인카드를 썼다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법인카드 사용에 절차상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런 논란을 야기한 것조차도 저의 불찰이고 관리 부실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2022년 2월 22일)라고도 했다. 이후로도 비슷한 사과를 몇 차례 더 했다.
배우자 김혜경 씨도 “(배소현과는) 오랜 인연이다 보니 때로는 여러 도움을 받았다. 공직자 배우자로서 모든 점에 더 조심해야 하고 공과 사의 구분을 분명히 해야 했는데, 제가 많이 부족했다. 국민 여러분과 제보자 당사자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2022년 2월 9일)고 했다. 어디까지나 불찰이었고 부족했을 뿐이었다.
조명현 씨는 2023년 8월 20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이재명 대표를 부패행위로 신고했다. ‘경기도 법인카드 불법 유용의 주범은 이재명’이라고 고발한 것이다. 신고 제목은 ‘공무원의 권한 남용 및 법령 위반 등을 통한 사적 이익 도모 행위’였다. 조 씨는 신고서에 “이재명 대표를 피신고인으로 적시하며, 경기도청의 법인카드를 불법적으로 이용해 사적 용도로 물품을 구매한 것을 피신고인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기술했다. 두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경기도 공무원을 김혜경 씨가 개인 비서처럼 썼다. 그리고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을 몰랐을 리 없다.”
배소현 거느리고 관용차 타고 온 ‘시장 사모’
조명현 씨가 이재명, 김혜경, 배소현 세 사람과 악연으로 얽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성남문화재단 시절 ‘의전’을 무리 없이 잘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2005년 성남문화재단에 입사한 조 씨는 재단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 성남아트센터의 개관 멤버로 공연 기획과 진행, 안내직원 관리, VIP 의전을 총괄했다. 성남시 산하기관인 성남문화재단은 성남시장이 당연직 이사장을 맡았다. 한나라당 소속 고(故) 이대엽 시장이 설립했지만, 2010년 6월 민주당 소속 이재명 시장이 당선되자 재단 내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이사장의 당적까지 바뀐 만큼 기존 정책과 예산뿐만 아니라 인사까지 대대적 물갈이가 예고됐다.그는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이취임식 행사에서 새 시장 부부와 첫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이 의전에 실수라도 하면 그 여파가 재단 전체에 미칠 만큼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VIP 의전은 잘하면 본전, 못하면 독박이라고 했다. VIP실 운영을 맡고 있던 조 씨는 새 시장 부부가 취임식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다시 차를 타고 나가는 순간까지 빈틈없이 챙겼고 그날 이후 이 시장 부부의 공연장 의전은 당연히 조 씨의 몫이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동선을 챙기는 일이었으나 나중에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가 맡아서 했다. 김혜경 씨는 비공식적으로 VIP실을 자주 이용했는데 그때마다 관용차(체어맨)를 타고 왔고 배소현 씨가 수행했다.
2018년 6월 은수미 성남시장이 당선되자 이재명 시장 부부를 의전했던 조 씨의 입지가 확 줄어들었다. 보이지 않는 눈총을 받으며 버텼지만 결국 2020년 하반기에 15년이나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문화예술정책기획으로 석사학위를 받으며 공연 기획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성도 빛을 잃었다. 그 무렵 배소현 씨가 경기도청 비서관 근무를 제안했다. 조 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이미 6개월을 쉰 터라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2021년 3월 15일 경기도청으로 첫 출근을 했다. 조명현 씨의 직속상관이었던 5급 공무원 배소현 씨는 업무 지시를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생각하지 마, 물어보지 마, 정해진 건 없어.” 돌이켜 보면 “판단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고 그때그때 알아서 편법으로라도 처리하라”는 말이었다.
경기도지사 비서실 소속 의전팀에서 배소현과 함께 일했다. 경기도청 조직도에 사모님팀이 있었나.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비서실에는 정무와 의전 두 개 팀이 있었다. 정무팀에는 정진상·김현지 등이 있었고, 의전팀은 다시 ‘지사님팀’과 ‘사모님팀’이 있었다. ‘지사님팀’에서는 수행비서와 운전비서가 이재명 지사의 일정 전반을 맡고, 사모님팀에서는 나와 배소현이 김혜경 씨 수발을 전담했다. 물론 사모님팀이 공식 명칭은 아니었지만 의전팀 내에서는 다 그렇게 불렀다.”
배소현 “사모님 모시는 일 같이 하자”
단체장 배우자의 의전 전담팀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았나.“처음부터 배소현 씨로부터 사모님 모시는 일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갔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남문화재단에서 일할 때부터 배소현 씨가 김혜경 씨를 의전하며 관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10년 넘게 보아왔기에 불법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당시 시 관계 공무원, 성남문화재단 간부들까지도 누구 하나 의문을 달지 않았다. ‘시장 사모’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의전인 줄 알았다.”
경기도청 주무관 조명현 씨는 2021년 3월 15일부터 2021년 10월 26일까지 비서실 ‘사모님팀’에서 근무했다. 당시 그의 하루 일과를 보자. 조 씨가 살던 경기 광주시에서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까지는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걸렸다. 오전 7시 집을 나서 오전 8시 50분 출근 완료. 차량보관소에 가서 전기차를 배차받고, 경기도청 3층 정책자문단실에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는다. 배소현 씨에게 출근 보고. 오전 10시 30분경 차를 타고 나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공관(굿모닝하우스)에 넣을 샌드위치와 과일을 픽업해 공관 2층 냉장고에 채워둔다. 샌드위치, 과일, 약 등을 채워 넣고 일일이 사진을 찍어 배소현 씨에게 보고한다. 다음은 침실에 있는 속옷과 양말을 거둬다 세탁을 한다. 속옷과 양말을 건조기에 넣고 공관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세탁소에 가서 세탁물을 맡기거나 찾아온다. 가명으로 맡기고 외상 거래 후 법인카드로 결제하기 위해 일부러 도청에서 멀리 떨어진 세탁소를 선택한다. 세탁된 와이셔츠를 공관으로 가져와 옷장에 걸어놓는다. 파란색과 흰색 하나씩. 김혜경 씨가 공관에 왔을 때 사용하는 방에도 똑같이 셔츠를 걸어놓는다. 이 상태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 배소현 씨에게 보고한다. 다음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는 이재명 지사 자택으로 보낼 과일과 각종 음식을 픽업해 전달한다.
그 밖에도 경기도지사실로 들어온 물품을 자택으로 올리는 일, 이 지사가 주말에 공관에 머물 때 일명 ‘굿모닝하우스 휴일 수라상’을 차려 2층으로 배달하는 일도 했다. 주말 휴일에 ‘혼밥’ 하는 지사를 위해 비서들이 공관으로 출근해 식사를 마련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그 밥과 반찬도 세금으로 결제한다. 다시 수내동 자택. 관용차 제네시스의 주유 및 세차 점검, 운행일지 관리도 주기적으로 했다. 경기도 관용차가 왜 이재명 지사 자택 지하주차장에 항상 있어야 하는지 그때는 몰랐다. 이재명 지사 개인 소유 차량(뉴체어맨)의 정비도 그의 업무 중 하나였고, 비용은 관용차 수리비용으로 처리했다. 이 지사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검소함을 자랑했던 2006년식 차량이었다.
가사도우미처럼 일했는데 업무를 수행하면서 의문을 품은 적은 없나.
“순간순간 ‘이런 것도 다 비서 업무인가?’ 하고 의구심과 자괴감을 느낀 적은 있지만 말단 공무원이 으레 해야 하는 업무인가 보다, 생각했다.”
김혜경 씨는 공관에 올 때 캐리어를 끌고 왔다. 그리고 수내동 자택으로 돌아갈 때 그 캐리어에 공관 냉장고에 있는 음식을 담아 갔다. 오죽하면 김혜경 씨가 공관에 오는 날이면 배소현 씨는 조 씨에게 “다 가지고 가니 적당히 넣어둬라”고 지시했다. 조 씨가 모는 차를 타고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김혜경 씨는 운전을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비서가 생각보다 지저분한 일이 많아요.”
내가 행한 업무가 불법 의전이라니!
2021년 11월부터 배소현 씨의 수행을 문제 삼는 ‘김혜경 씨 불법 의전’에 대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보도를 접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나.“그동안 내가 한 일이 ‘불법 의전’이라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행정안전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배우자를 공무원이 공무가 아닌 사적 일을 수행하게 하거나 의전 지원을 금하며 단체장의 배우자를 지원하는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것은 배소현 씨의 ‘갑질’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모님팀 자체가 불법이었다. 아내와 나는 의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잘못된 일을 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영부인이 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겁도 났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은 하얘졌지만 오히려 아내는 명료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2차 폭로 때 등장한 에르메스 로션과 청담동 일제 샴푸, 일제 클렌징 오일, 김혜경 씨의 생일 선물, 소고기와 꽃다발, 생일 케이크, 미역국. 이런 물품을 채워놓거나 배달하는 것이 7급 공무원의 일이었다.
김혜경 씨가 전날 주문하거나 오전에 주문한 음식은 경기도청 총무과 의전팀 법인카드로 결제해 수내동 자택으로 배달할 수 있었지만, 오후 늦게 갑자기 주문하면 일단 개인 카드로 결제한 뒤 다음 날 다시 음식점에 가서 결제를 취소하고 법카로 재결제하는 일명 ‘카드깡’을 했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에 1~2회씩 온갖 주문 음식을 수내동 자택으로 배달했다. 배소현의 입에서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조 씨는 ‘카드깡’ 된 항목을 도청 내 다른 과에서 공무에 따른 식사비 등의 명목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
가명 ‘김수연’으로 예약한 김혜경 씨의 사적 모임 비용도 이렇게 법인카드로 결제했다. ‘7만8000원 사건’은 이 중 하나일 뿐이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법인카드로 결제할 수 없는 항목은 일단 비서 개인 카드로 결제한 뒤 영수증을 경기도청에 제출하면 비서실에서 처리해 줬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런 비용은 공무원 출장 여비를 갹출한 돈으로 처리했다고 배소현 씨가 얘기해 줬다.
좀 더 빨리 그만두지 못한 것을 후회했나.
“모든 게 불법이라는 걸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법을 인지한 순간 문제 제기를 하고 그 일을 그만뒀을 것이다.”
법인카드 유용의 핵심은 이재명 부부가 불법임을 인지하고 있었느냐에 달렸는데 그렇다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근무하는 동안 이재명 지사는 거의 매일 아침 ‘이재명 세트’로 불리는 샌드위치 세트를 먹었다. 샌드위치 빵이 눅눅하다든지 샌드위치에 채소를 더 추가해서 만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샌드위치 세트 구입에 든 비용은 한 달에 100여만 원이었고 이것을 개인 통장에서 지불하지 않았다. 전부 경기도의 세금으로 지불하는데 이 지사가 몰랐을까. 지출에 엄격한 공무원들이 지출 조건에 맞지 않는 샌드위치 금액을 이 지사의 승인 없이 각과 예산으로 지출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외 주말 수라상, 샴푸, 로션, 향수 등은 이 지사가 모를 수 없는 지출이다. 이재명 지사가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월 100만 원의 식대가 많은 게 아니다, 공관에서 아침식사용 샌드위치를 주문한 게 비리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재명 대표가 말했듯이 단 1원이라도 사익을 취한 것 자체가 문제다. 공무에 쓰이지 않은 세금이 어떻게 불법이 아니고 비리가 아닐 수 있나. 이 전 지사가 매달 수령한 월급도 1000만 원에 달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당연히 자신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며, 국민을 위한 정치인이라면 더더욱 청렴해야 한다. 적은 돈이라지만 그 모든 돈이 국민이 낸 혈세다. 큰 조직의 수장이라면 1원도 헛되게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남시장 시절 부정부패부터 다 밝혀내야
경기도청의 법인카드 유용이나 불법 의전은 장기간, 지속적이고,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즉 경기도 내 많은 이들이 관행이라고 여기고 오랫동안 묵인하고 동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닌가.“이재명 지사만 그런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장 시절부터 그래왔고 내가 본 마지막까지 그랬다는 것이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재명이 해온 일을 다 밝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당신도 이 일에 가담한 셈이다.
“내게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질 것이다. 내 잘못을 감추는 것보다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익 신고 후 가족을 포함해 신변의 위협을 느꼈고 가장으로서 생계를 잇기 위해 택배 일을 하다 다치기도 하는 등 지금까지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년의 시간이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뭔가.
“평범한 가장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끝없는 바닥을 헤맸다.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내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다. 대한민국을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미약한 힘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2년의 과정이 내게 알려준 것이다.”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책을 펴낸 것이 명예 회복에 도움이 됐나.
“제보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현재진행형이다. 한 번도 멈춰본 적이 없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끝으로 조명현 씨는 공익신고자로서 자신의 삶을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린 사람’에 비유했다.
“떨어지면서 다음엔 어떻게 해야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냥 떨어지는 거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계획하거나 예상한 적이 없다. 그냥 정의가 아닌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지금 물에 빠진 사람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거리낌이 없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