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이커머스 샛별’ 컬리 IPO 앞으로도 험로

[유통 인사이드] 美 진출 실패, 국내서도 기대감 식어…

  • 김민지 뉴스웨이 기자 kmj@newsway.co.kr

    입력2023-12-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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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스닥 가겠다” 당찬 포부 내놨지만…

    • 사업 경쟁력 약화 → 美 상장 포기

    • 몸값 4조 원 → 1조 원 ‘뚝’, 상장 무기한 연기

    • 시장 회복 요원… 일단 내실 다지기

    [Gettyimage, 컬리]

    [Gettyimage, 컬리]

    ‘이커머스 샛별’이라 불리던 컬리의 기업공개(IPO)가 좀처럼 재개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월 컬리는 IPO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게 되자 코스피 상장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상장을 재추진할 것이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증시 변동성 확대로 ‘대어급’ 공모주가 사라지고, 도전장을 내민 기업마저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 참패를 면치 못하면서 공모 시장 회복은 요원해졌다. 컬리 처지로선 애가 탈 수밖에 없다.

    쿠팡 美 입성? “나도!”

    김슬아 컬리 대표가 상장 계획을 언급한 시점은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시장(NYSE)에 상장한 2021년 3월께다. 당시 김 대표는 팀장급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내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공유했다. 김 대표의 ‘깜짝 발표’에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컬리는 오래전부터 IPO를 준비해 왔다. 2018년 삼성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2019년 코스닥 시장 상장을 목표로 준비하며 ‘더파머스’에서 ‘컬리’로 사명을 바꿨다. 이런 상황에 쿠팡이 NYSE 상장에 성공하자 컬리도 미국 시장에서의 ‘장밋빛 미래’를 엿본 듯했다. 컬리도 당시 쿠팡과 마찬가지로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고, 지속적 투자 유치로 사업을 연명해 오던 터였다.

    적자 지속 상황에서 김슬아 대표는 컬리의 국내 증시 상장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곧장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증시는 재무건전성보다 성장잠재력을 더 높게 평가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에서는 국내와 달리 ‘차등의결권(복수의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컬리가 계속해서 투자 유치를 받으면서 김 대표의 지분율은 한 자릿수대까지 하락한 상황이다.

    쿠팡의 증시 입성 성공으로 미국 시장 내 한국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들의 인지도가 덩달아 높아진 것도 컬리의 나스닥행 결정에 한몫을 했다. 이에 컬리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JP모간으로 상장 주관사를 변경하고 나스닥 입성 채비를 시작했다.

    업계의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애당초 쿠팡과 컬리는 체급에서 차이가 컸다. 쿠팡이 NYSE에 입성할 당시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72조 원이었다. 상장 첫날엔 시가총액 100조 원까지 넘기며 성장잠재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반면 컬리는 2020년 시리즈E 투자 당시 평가된 기업가치가 8000억 원에 불과했다. 또 상장이 당장 1년 사이 빠르게 이뤄지는 문제가 아닌 만큼 컬리의 강점인 신선식품 새벽배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메리트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런 관측대로 컬리의 IPO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몸집 불리기에 초점을 맞추자 수익성은 더 악화했고, 그 와중에 이커머스 시장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출혈경쟁이 심해졌다. 우선 컬리는 할인 쿠폰을 대량으로 배포하면서 매출 끌어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할인 쿠폰과 광고비를 쏟으면 그만큼 플랫폼에 방문하는 소비자가 늘어난다. 결제까지 이어지면 거래액을 늘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런 마케팅이 수익성 악화와 직결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컬리는 그때그때 투자사를 유치하면서 사업을 연명하던 터라 출혈 마케팅을 지속할 여력이 부족했다. 매출이 일정 비율 이상 늘어난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판매장려금’을 걷기로 하면서 논란도 일었다. 특정 분기 납품액이 전년 동기보다 20~30% 증가할 경우 이 기간 납품 총액의 1%, 30~50% 증가하면 2%, 50% 이상 증가하면 3%를 다음 분기 초 컬리에 납부하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컬리가 거래액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쿠폰 행사로 늘리고, 수익성은 납품업체를 대상으로 챙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비식품 영역 확대로 컬리 色 잃어

    대기업이 상품군 비중을 늘리며 비식품 영역까지 손을 뻗치면서 컬리만의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컬리는 소비자에게 질 좋고 가치 있는 제품을 제공한다는 모토를 바탕으로 상품을 매입했다. 김 대표는 상품 선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본인이 만족하지 않으면 컬리에서 판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이 때문에 다른 이커머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수입 제품, 유기농 식품, 디저트 등 ‘특화상품’이 곧 컬리의 경쟁력이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쿠팡(로켓배송), SSG닷컴(쓱배송) 등 대기업이 속속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력이 약화하기 시작했다. 배송 경쟁력은 대규모 물류센터를 갖춘 대형 이커머스 업체에 밀렸고, 이들 업체가 취급하는 프리미엄 식품도 늘면서 ‘컬리에서만 판매하는 상품’이라는 메리트가 사라졌다.

    게다가 일부 상품에 대해서는 온라인 최저가 정책을 시행하고 식품과 전혀 관련 없는 대형 가전, 호텔·리조트 숙박권까지 판매했다. 컬리는 결국 미국 증시가 아닌 한국 증시에서 상장하기로 선회했다. 2021년 7월 기존 투자자들인 에스펙스 매니지먼트(Aspex Management)와 DST Global, 세콰이어캐피털 차이나, 힐하우스 캐피털 등과 신규 투자자 CJ대한통운 등으로부터 2254억 원의 시리즈F 투자 유치를 완료하면서다. 이때 컬리의 기업가치는 2조5000억 원 규모로 평가됐다.

    컬리가 국내 증시 상장으로 방향을 바꾼 이유는 국내 제도가 컬리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컬리의 사업 모델이 국내 기반이라 국내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기에 적합하다고도 봤다. 한국거래소는 2021년 3월 시가총액 1조 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한결 쉽게 할 수 있도록 상장 규정을 완화했다. 정부와 국회 역시 비상장사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는 법안을 추진해왔다.

    컬리 역시 거래소와 여러 차례 긴밀히 소통했다. 특히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직접 나서 김슬아 대표와 면담해 국내 상장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이사장은 유니콘 기업들이 국내 상장 매력을 갖도록 증시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슬아 컬리 대표. [컬리]

    김슬아 컬리 대표. [컬리]

    컬리 측은 “고객, 생산자 및 상품 공급자 등 컬리 생태계 참여자와 함께 성장의 과실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 상장을 결정했다”며 “한국거래소가 K-유니콘의 국내 상장 유치를 위해 미래 성장성 중심 심사 체계 도입 등 제도개선과 함께 적극적으로 소통한 점도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사업 차별화 난항도 이유가 됐다. 컬리가 국내에서 최초로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도입하긴 했지만 대기업 유통업체들도 새벽배송 시장에 속속 진출하면서 새벽배송은 특별한 서비스가 아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컬리라는 기업을 모르는 미국의 증권시장엔 상장이 까다로울 가능성이 있고, 상장을 추진하더라도 원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국내 증시에선 컬리의 사업 모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컸다. 이외에도 국내 기업이 외국 시장에 상장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10배 이상 높다는 점과 상장 이후에도 소송 등 법률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컬리의 나스닥행 철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상장으로 유턴, 만만치 않아

    국내 상장 준비도 녹록지 않았다. SSG닷컴이 상장을 서두르면서 주관사 선정에서부터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국내 상장을 결정한 컬리는 지난해 상반기를 목표로 상장 준비에 매진해 왔다. 이를 위해 2021년 8월 대형 증권사들에 입찰 제안요청서를 보냈다.

    이미 오아시스마켓은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으로 주관사 선정을 마친 상태였다. 컬리와 SSG닷컴을 두고 저울질하던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은 SSG닷컴으로 노선을 정했다. 이른바 ‘빅3’ 하우스인 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이 모두 경쟁사를 택하게 된 것이다.

    컬리는 주관사 한 곳으로는 국내 상장이 쉽지 않다고 보고 선정 연기로 가닥을 잡았다. 지정감사인을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먼저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지정감사는 상장 예정 기업 의무 사항으로 금융 당국에 감사인을 의뢰해 회계 투명성을 검토받는 절차다.

    2021년 10월 컬리는 NH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JP모간을 IPO 공동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공교롭게도 오아시스마켓의 상장 주관사가 컬리의 상장까지 함께 맡게 된 것. 컬리는 계획한 시기보다 늦은 지난해 8월 우여곡절 끝에 이커머스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재무적투자자(FI)들에게 최소 18개월 이상 보유 지분을 팔지 않을 것과 20% 이상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아 거래소에 제출한 것이 심사 승인의 결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다만 상장 승인 결정에도 적정 기업가치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컬리는 2021년 말 사모펀드 앵커애쿼티파트너스(앵커PE)로부터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를 유치할 때 2500억 원을 조달하면서 4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 국내 증시가 불안해지며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기업가치가 이것의 절반 수준인 2조 원대로 떨어졌다는 게 중론이었다.

    얼어붙은 증시, 상장 재개 불확실

    컬리는 예심 통과 이후 5개월 넘게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증시 탓에 원하는 몸값을 받기 어려워지자 장고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올해 1월 코스피 상장 계획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예상했듯 ‘글로벌 경제 상황 악화로 인한 투자 심리 위축’이었다.

    실제 IPO 시장 침체로 컬리의 기업가치는 1조 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컬리는 향후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상장 철회 이후 숨 고르기에 나선 컬리는 내실 다지기에 돌입했다. 그간 컬리의 전략은 상장만을 보고 달려왔던 터라 외형 성장에 무게중심이 맞춰져 있었지만 추가 자금 조달을 통해 내실을 다져 흑자 전환을 노리겠다는 심산이었다.

    컬리는 앵커에쿼티파트너스(앵커PE)를 중심으로 기존 투자자로부터 1200억 원 규모의 추가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급한 불을 껐다. 2021년 11월 이후 1년여 만의 투자 유치다. 컬리는 추가 확보한 현금으로 샛별배송 가능 지역을 확대하고 서비스 고도화를 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수익성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컬리의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은 전년보다 크게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액은 1% 감소한 1조174억 원, 영업손실은 778억 원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컬리의 적자가 대폭 줄어든 이유는 판관비 절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상반기 컬리의 판관비는 3777억 원으로 전년 대비 6.2% 줄었다. 판관비 가운데 특히 광고선전비는 지난해 상반기 287억 원에서 올해 상반기 164억 원으로 43% 줄었다. 또 매출총이익률은 29.4%로 전년 27.4% 대비 2%포인트 개선됐다. 매출총이익률이 소폭 개선된 것은 바잉파워가 점차 강해지면서 원가경쟁력을 확보한 덕분이다.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인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컬리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지난해 상반기 –998억 원에서 올 상반기 –612억 원으로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컬리는 하반기에도 수익성 개선과 효율성 높이기에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투자 유치에서 올해 말 연결 재무제표상 흑자를 내지 못하면 전환주식의 전환 비율을 기존 1대 1에서 1.85대 1로 조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주당 발행가액이 6만6148원에서 3만5829원으로 낮아진다. 기업가치도 종전 2조9000억 원에서 1조5000억 원 수준으로 떨어진다.

    컬리의 상장 재추진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SSG닷컴이 내년 상반기 상장 준비 작업에 돌입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며 군불을 지피고 있지만, 증시가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상장 적기’라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최적의 시점이 올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도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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