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이대로라면 보수는 ‘서울의 봄’ 못 만든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좌파 영화’ 비난보다 중요한 것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jeongtaeroh@ries.or.kr

    입력2023-12-1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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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광한 野 불편한 與의 속사정

    • 싫어하는 방향 각색도 관용해야

    • 1000만 영화 중 좌편향? 적어!

    • 대중의 성향, 편중돼있지 않다

    • 할리우드 ‘내부자’의 조건은…

    • 관객은 우상화보다 낙관 원해

    11월 26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영화 ‘서울의 봄’ 예고편이 상영되고 있다. [뉴스1]

    11월 26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영화 ‘서울의 봄’ 예고편이 상영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봄’ 회사 측에 건의합니다. 영화 보고나온 관객을 위하여 영화관 출구에 ‘전두광’ 얼굴이 새겨져 있는 펀치볼을 설치해주십시오! ^^”

    12월 10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이다. 전후 맥락은 이렇다. 영화 ‘서울의 봄’은 전두환을 모델로 한 전두광(황정민 분)과 하나회의 12‧12 군사 쿠데타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그런데 한 극장에서 전두광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포스터에 관객들이 주먹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그것을 보고 너무도 즐거웠던 조국은 아예 펀치볼을 설치해달라는 게시물을 올렸던 것이다.

    ‘서울의 봄’이 흥행하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것은 조국만이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월 1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는 “‘서울의 봄’이 저절로 오지 않았음을 똑똑히 기억하겠다”며 “피로 쟁취한 민주주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사적 욕망의 권력 카르텔이 국민의 삶을 위협하지 않도록 비극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겠다”고 썼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서울의 봄’은 엄연한 픽션이다. 그런데도 민주당과 그 지지층의 반응이 유별난 이유는 분명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을 공격할 수 있는 소재로 보기 때문이다. “군부독재와 지금의 검찰 독재는 모습만 바뀌었을 뿐”이라던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의 발언이나 “하나회가 검란을 일으켰던 검찰 특수부와 오버랩 됐다”던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물 등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2월 둘째 주 현재 ‘서울의 봄’ 누적 관객수는 7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추세라면 1000만 영화 등극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한동안 이렇다 할 히트작 없이 근근이 버티던 한국 영화계와 극장 산업에 쏟아진 가뭄의 단비다.



    문제는 지금이 총선을 넉 달 앞둔 시점이라는 점이다. 앞서 인용한 민주당 인사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전두환과 하나회,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 자신들에게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국민의힘과 그 지지층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20‧30대 관객이 ‘서울의 봄’에 호응하고 있다는 것은 ‘이대남’ 표가 궁한 여당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일종의 음모론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좌편향’된 영화계가 선거 날짜에 맞춰 보수 세력을 음해하는 영화를 내보냈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와 경북 포항 남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 단체관람을 추진하면서 ‘서울의 봄’을 둘러싼 논란은 한층 더 커졌다. 일부 학부모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영화를 단체 관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하면서 계획이 취소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아이들까지 동원해 관객수를 늘려 민주당에 정치적 이득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단체 관람까지 찬성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치적 편향성 이전에 초등학생들이 볼만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당성을 지니는 권력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폭력 집단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 나이에는 ‘라이언 킹’처럼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접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울의 봄’을 둘러싼 논란은 전반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는다. ‘서울의 봄’의 흥행을 불편해하며 화를 내는 분들의 태도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성공을 마치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겨야 할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는 정치권 일각의 행태 역시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문화적 역량을 더 키우지 못한다. 오히려 장기적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아주 기본적인 논리적 오류

    12월 12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3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 ‘서울의 봄’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뉴스1]

    12월 12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3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 ‘서울의 봄’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뉴스1]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어떤 영화가 정치적으로 편향성을 지니면 안 되는 걸까. 영화를 만들거나 출연하는 사람에게 어떤 정치적 성향이 있거나, 그러한 성향이 작품 내에 비교적 쉽게 노출되는 것 등은, 모두 바람직하지 못한 일인가.

    ‘서울의 봄’의 흥행 앞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분들이라면 모두 ‘그렇다’고 하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 영화감독이나 배우 등은 모두 사람이고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선호도 역시 지니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인도 정치적 성향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러한 성향이 작품을 통해 드러날 수도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는 바로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서울의 봄’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은 어떨까. 작품 내에서 묘사되고 있는 극적인 액션 장면은 거의 대부분이 허구다. 시민들이 교통체증을 불러일으켜 공수부대가 다리를 못 건너게 막는 일도 없었고, 수도경비사령관이 직접 병력을 끌고 나가 경복궁 앞에서 반란군과 대치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대단히 감상적으로 묘사돼 있는 그러한 장면들의 허구성은 대부분의 관객들도 스스로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만든 김성수 감독도 인터뷰를 통해 과장된 묘사의 허구성을 순순히 인정한다. “재미있게 보면 이제 그 일에 관심을 갖게 되잖아요. 그러면 그분들이 그때 정말, 1979년 12월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스스로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 봄’ 흥행 후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역사적 격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공부할 계기를 제공하는 영화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김성수 감독이 11월 9일 오후 서울 한 영화관에서 진행된 영화 ‘서울의 봄’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기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김성수 감독이 11월 9일 오후 서울 한 영화관에서 진행된 영화 ‘서울의 봄’ 언론배급시사회에서 기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서울의 봄’이 12‧12 군사 쿠데타 주동 세력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데 불만을 품고 역사왜곡 논란을 벌이는 이들은 그런 면에서 아주 기본적인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가령 그들 중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를 받아, 이번에는 12‧12 군사 쿠데타가 왜 필요한 일이었는지, 하극상이라는 큰 죄를 범하면서까지 정승화를 체포하고 대통령의 사후승인을 받는 과정이 있어야만 했는지를 다루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전두환의 군사반란에 정당성이 있다는 주장이 여전히 존재하나 필자는 그런 근거 없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그 경우에도 역사 왜곡 논란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학술적, 법적, 정치적, 판단이 모두 끝난 12‧12 군사 쿠데타에 대한 표준적 해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그런 영화를 만드는 일이 금지돼야 할까. 이것은 한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냐의 문제다.

    그러한 논쟁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건 분명한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이 북한과는 달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라면, 역사적 실화를 본인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각색한 영화의 상영에 찬성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실화를 본인이 싫어하는 방향으로 각색하거나 재해석한 영화의 상영 그 자체를 ‘똘레랑스’(관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명량, 극한직업, 신과함께 그리고 국제시장

    ‘한국 영화계가 좌편향돼 있어 우파 영화가 나오기 힘들다’, ‘설령 우파 영화가 나온다 해도 서로 끈끈하게 밀착해 있는 좌파의 등쌀에 쫓겨 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 등등. 비단 영화계뿐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예술계에 대해 자주 등장하는 불만의 레퍼토리다. 좌파가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 문화계가 대중을 선동하고 있기에 우파는 언제나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볼멘소리다. 이러한 목소리는 특히 최근 ‘정치적 올바름’을 고려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들을 향한 불만 여론과 동조해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목소리에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 영화계 역시 업무의 성격에 부합하는 특정한 성향의 사람들이 더 몰리게 돼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대중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선악구도가 분명하고 인과관계가 확실한 스토리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다. 아무래도 현실주의자보다 이상주의자들이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업계인데, 이상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우파보다 좌파에, 보수보다 진보에 많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할리우드 영화인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거나, 민주당이 아니라면 그보다 더 진보적인 정당이나 정치 운동에 참여하는 일이 많다. 보수주의자로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매우 흔치 않다. 이제는 영화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가 그런 드문 사례에 속한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가 많은 것과 ‘좌파 성향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앞서 말했듯 영화업계는 사회 평균보다 조금, 혹은 훨씬 더 진보 좌파 성향이 강하다. 대중은 영화업계보다 훨씬 더 보수 우파 성향이 크다는 말과 같다.
    그러므로 영화‘계’가 진보 성향이 크다고 해서 흥행하는 영화 대다수가 좌파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이는 지금껏 개봉한 영화 중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들 중 한국 영화들만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소위 ‘1000만 대박’을 터뜨린 영화 중 노골적으로 ‘좌편향’된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적다.

    1위 명량 1761만3682명
    2위 극한직업 1626만4944명
    3위 신과함께-죄와 벌 1441만754명
    4위 국제시장 1425만7115명

    ‘명량’은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다룬 작품이다. 정치색이 강한 작품이라 보기 어려운 사극이다. ‘극한직업’은 마약 수사를 위해 위장근무를 하는 경찰들의 이야기이며, 3위 ‘신과함께-죄와 벌’은 신파적인 이야기와 연출이 싫다고 평론가들이 불만을 토로했을지언정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4위를 기록한 ‘국제시장’의 존재가 더욱 이채로운 것은 그래서다. 개봉 당시 ‘국제시장’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 때문에 좌와 우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당했던 작품이다. 진보 성향 관객과 비평가들은 국기계양식과 국민의례가 영화에 나온다는 사실 자체에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작품 속 주인공 부부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마지못해 하면서 싫어하는 내색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 애국적이지 않다며 화를 내는 일부 보수 성향 관객과 비평가도 있었다.

    물론 순위표를 좀 더 읽다보면 자타공인 진보 성향의 영화감독 봉준호의 ‘괴물’(7위)도 보이고, 김원봉을 독립운동의 정통성 그 자체로 묘사한 ‘암살’(12위)이 등장하기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변호인’(22위)도 눈에 띈다.

    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보수적인 성향이라 볼 수 있는 작품들 역시 적지 않은 편이다. 가령 5‧18 광주를 다룬 ‘택시운전사’(18위, 1218만6684명)의 바로 뒤에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룬 ‘태극기 휘날리며’(19위, 1174만6135명)가 있다는 사실이 함의하는 바를 곱씹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인들이 대체로 진보적이고 좌파 성향을 지닌다 해도 그들이 만드는 영화를 보는 대중의 성향은 그리 편중돼 있지 않다. 히트작 목록에는 진보와 보수가 골고루 등장하며 정치적으로 무난한 작품들이 더 큰 성공을 거두곤 한다.

    시나리오를 어떻게 쓸 것인가

    좌파적 성향이 세계에 대한 비관적 인식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대로 우파적, 보수적 성향은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잘 될 거야’ 같은 소박하고 때로는 천진한 낙관주의와 기질적으로 호응한다. 그렇다보니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대중을 상대로 이야기를 써야 할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와 지망생들이 오직 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만의 ‘예술’에 탐닉하곤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받아 검토하고 피드백을 주는 컨설턴트로 이름을 떨쳤던 로버트 맥키는 그 점을 탐탁찮게 여겼다. 수백만 명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진보 좌파 성향의 할리우드 청년들은 공공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제작조차 할 수 없었을 유럽 예술 영화를 흉내내고 있던 것이다. 영화, 시나리오 업계에서 일종의 ‘바이블’로 읽히는 책, 로버트 맥키의 ‘스토리: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의 한 대목을 읽어 보자.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 특히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어찌 보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낙관적인 경향이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삶에 대한 전망을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결말을 이끌어내는 아크플롯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할리우드 밖의 영화인들은 삶의 변화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어찌 보면 너무 멋을 부린다고 할 정도로) 비관적이어서 삶에는 아예 어떤 종류의 변화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고 설교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맥키가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좌파적 관점, 지식인의 눈높이에서 나오는 본인의 비관적 관점 따위 집어치우고, 어찌 보면 바보스러울 정도로 낙관적인 시선을 장착하지 않는 한 할리우드 ‘내부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몰랐던 진실을 알려주겠다’, ‘세상은 썩었고 바뀌지 않는다’는 태도로 영화를 만들면 관객은 보러 오지 않는다. 돈 내고 혼나고 싶은 사람, 두 시간 극장에 앉았다가 일어날 때 기분 나쁘고 싶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대중이 보아야만 존속할 수 있는 흥행 산업이며,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객은 극장에서 재미와 공감과 위안을 찾을 따름이다.

    건전한 노동과 소박한 일상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서울의 봄’이 역사를 왜곡한 작품이라고 화내는 이들은 좌파가 아니라 우파, 진보가 아니라 보수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바라보는 태도는 로버트 맥키가 비판한 좌파 엘리트들의 그것과 더욱 닮아 있다. 대중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 관객을 설득하는 대신, ‘왜 좌파들은 영화로 역사를 왜곡하느냐’며 화를 내기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를 비롯한 문화계 전반에서 진보와 좌파에 속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에 맞서는 보수 우파들의 태도 역시 그리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다. 이승만, 박정희, 심지어는 전두환 등 대통령이나 거물들의 ‘명예 회복’에나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과도한 비판일까.

    물론 문화예술계가 보수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인 것은 맞다. 하지만 남 탓 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며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야말로 보수의 미덕이다. 관객이 기다리는 것은 우파 대통령들을 우상화하는 영웅적 일대기가 아니다. 건전한 노동과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 속에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삶의 이야기를 원한다. 그러한 수요를 충족시켜줄 제2의, 제3의 ‘국제시장’이 연이어 등장할 때, 영화계의 ‘좌편향’ 역시 어느 정도 균형을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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