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모든 분야 도덕 무너졌다”
저출생·노인 빈곤·자살… 행복하지 않은 한국인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침 될 정치 콘텐츠 필요
국민교육헌장 溫故知新 자세로 활용한다면…
내년 총선 ‘윤리 강국 대한민국’ 결정 분기점 되길
1968년 12월 5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국민교육헌장 선포식이 열리고 있다. [동아DB]
최근 이 전 총리는 전쟁기념사업회 주최 특강에서 “한국 사회가 급격한 경제성장,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모든 분야의 도덕이 붕괴된 듯하다”며 “도덕의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회장은 한국 사회가 성취 혹은 상실한 내용을 통계자료로 보이면서 국민의 성찰을 요구했다. 그는 “성장의 그늘로 우리나라는 반(反)인간·반생명적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담세율, 세전세후빈곤율, 공공지출 등 국가 지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가운데 최하위다. 공교육 지출, 노조 조직율, 비정규직 비율, 사회갈등지수 등 사회지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서울대 총장과 보수 정권 총리를 지냈다. 정 회장은 5선 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대표 적장자였고, 전직 의원의 법정기구인 헌정회를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이 지적하는 도덕 위기를 깊이 살필 필요가 있다.
아이 낳지 않고 노인 가난한, 행복 최하위 국가
편안한 생로병사가 곧 행복한 인생이다.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아야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 노후에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야 삶의 질이 좋아질 수 있다. 이러한 생활이 보장되는 체계가 삶의 행복 체인(chain)이고, 행복 체인을 보장하는 국가가 좋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올해 나오는 통계들을 보면 한국인 가정에 태어나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 됐다. 한국은 세계에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다. 출생률이 2.1명은 돼야 현재 인구가 유지될 수 있지만 0.7명 수준에 불과한 나라가 됐다.
태어난 것을 후회하는 행태 가운데 가장 극단적 방법이 ‘자살’이다. 현재 세계 자살률 1위도 한국이다. 가장 열심히 일하지만 노년이 되면 빈곤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40% 이상인 나라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해당 수치들은 가히 국가적 재앙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략적으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출생률 세계 꼴찌
올해 8월 30일 확정 통계 결과 출생률은 소수점 두 자릿 수까지는 0.78명, 세 자릿 수까진 0.778명으로 전년도보다 0.03명 줄었다. 출생아 수는 24만9186명으로 발표됐다. 전년 26만 562명 대비 약 4.4% 감소했고, 이는 세계 최초 국가 단위 출생률 0.7명대 진입이다.
#자살률 세계 1위
올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자살률 1위 국가다. 한국은 이 기간 인구 10만 명당 24.6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졌다. OECD 회원국 평균 수치인 11명보다 2.2배 높은 수준이다. 특히 노인사망률이 매우 높다. 10만 명당 자살률이 70대는 41명, 80대 이상은 61명을 넘는다.
#삶 만족도 OECD 최하위권
10점 만점에 5.9점.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삶 만족도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서른여섯 번째다. 한국 뒤엔 콜롬비아와 튀르키예 단 두 나라뿐이다. 청소년(만 15세 이하)의 삶 만족도도 67%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청소년의 삶 만족도는 네덜란드·멕시코·핀란드가 84% 이상으로 높게 나타나고, 일본(64%)·영국(62%)·튀르키예(53%)가 우리나라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노인 빈곤율 OECD 1위
노인 빈곤율은 소득이 중위소득 50% 이하인 노인(65세 이상)의 비율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3.4%로 OECD 국가 평균인 13.1%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프랑스(4.4%), 독일(9.1%), 스웨덴(11.4%), 영국(15.5%), 일본(20.0%), 미국(23.1%)의 노인 소득빈곤율은 한국의 그것보다 현저히 더 낮다.
어린이날 하루 전인 5월 4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아동복 거리가 한산하다. [동아DB]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1위다. 사진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인 9월 10일 서울 마포대교의 ‘생명의 전화’ 모습. [뉴스1]
노인의 날인 10월 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뉴스1]
現 사회 필요한 지혜 담긴 국민교육헌장
재앙적 지표에 대한 전 국민적 각성과 대안 모색이 절실하다. 국가·사회·국민윤리 혁신도 요구된다. 국민이 태어난 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고 어떤 보람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 인식을 갖도록 하는 정치사회화(political socialization)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국민교육헌장 첫 구절이 생각난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문장 속에 있는 키워드, ‘태어났다’라는 말 때문이다.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2월 5일 탄생했다가 1994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될 당시 필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당시엔 국민교육헌장을 반드시 암기해야 했기에 여전히 뇌리에 맴돈다. 총 393자인 전문(全文) 가운데 필요한 내용을 취사선택하면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월 18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박종홍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안호상 초대 교육부 장관이 주도해 만들었다. 박종홍은 교육자, 철학자, 사상가로서 서양철학을 한국에 소개하면서 성리학을 함께 연구한 석학이다. 박 교수가 국민교육헌장의 초안을 잡았다. 이후 제정 과정에서 심의의원 44인의 심의·수정 작업을 통해 완성됐고, 국회를 통과한 뒤 발표됐다. 박정희 정부는 이 절차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한 시대를 이끌 교육 이념을 만드는 작업인 만큼 절차를 국민적 합의로서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박정희 정부가 헌장을 제정한 이유는 먼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피폐해진 국민 정서를 훌륭한 전통 및 유산에 바탕을 두고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 등 전통문화가 붕괴됐는데, 이를 바로 세울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다음 이유는 국가 유지에 필요한 가치관 확립이다.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실속·효율을 중시하는 개인 윤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 국가 비전을 조기에 달성하기 위해 국민의 비전에 대한 이해 및 내재화가 필요했다. 초·중·고·대 제도권 교육과정은 물론 모든 사회화 과정에서 국가 비전 공유를 우선적으로 추구한 것이다.
393자로 된 국민교육헌장의 전체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국가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사명이다. 국가 발전과 인류 공영을 강조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이 반영돼 있다. 국가 발전을 중시한 내용은 후일 국가주의를 강조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고, 결국 민주화 과정에서 생명이 다하는 빌미가 됐다. 인류 공영을 강조한 것은 놀라운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시 한국은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는 옹색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30년 이후를 내다본 철학을 담았다고 봐야 한다.
둘째는 개인과 사회,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윤리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기보다는 국가에 대한 참여와 봉사를 더 강조했다. 민주화 시대에 집중 비판을 받은 대목이다. 셋째는 국가 비전이다. 분단 상황에서 국가가 지향해야 할 과업을 ‘통일조국 건설’로 규정하고, 새 역사를 만들어나가자는 호소를 담았다. ‘반공(反共) 정신’을 강조한 부분도 후일 민주화 과정에서 내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수명 다한 내용 폐기하되 고쳐 써야
국민교육헌장의 제정·활용·폐기 과정에선 ‘정치 과잉’이 영향을 미쳤다. 1968년 상황과 현재 상황은 너무 다르다. 달라진 사회 상황을 다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맞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고히 하자’는 내용은 세계 10위권 강국이 된 한국이 주장하기엔 다소 어색하다. 또 낮은 출생률 문제 역시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할 당시 전혀 고민하지 않던 사회문제였지만 이제는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어젠다가 됐다.그럼에도 필자는 국민교육헌장 ‘폐기’보다 ‘개정’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절차나 내용 면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할 만한 것이 많고, 산업화·민주화가 이뤄진 상황에 맞는 교육 이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명을 다한 내용만 폐기하고 업그레이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정 절차에도 배울 점이 많다. 기초의원과 44인의 심의의원을 미리 선정해 놓고 마지막에 국회를 통과하도록 한 절차는 적절했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심의의원 선정에 균형을 매우 중요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물론 현재 기준에선 대통령이 직접 지시·실행하는 것보단 교육부가 제안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심의한 것을 국회 제안으로 진행함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국회에서 이른바 ‘국민교육헌장위원회’를 상설 운영하며 주기적으로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것도 좋은 방안으로 보인다. 국민교육헌장위원회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인사가 참여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할 테다.
또 헌법 정신에 부합하면서도 사회 변화를 수용하는 개인·사회·국가 윤리는 지속적으로 수정 제시돼야 하는 사항이다. 예컨대 낮은 출생률 문제는 한국 사회에 가히 ‘핵폭탄급’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예산이 필요하기에 기획재정부가 할 일이 분명 있겠으나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교육과정에선 물론이고 교회·절 등 종교기관 및 연구원 등 학술기관에서도 새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야 한다.
국민교육헌장의 내용 대부분은 계승해 훌륭히 발전시킬 수 있는 사안이다. 윤리는 지속적으로 강조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는 구절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는 오히려 현재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내용이다.
윤리 바로 서야 국민 행복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본관 전경. [한국학중앙연구원]
당시 촌각을 다투며 산업화에 몰두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재정적 이유로 설립 예산을 확보해 주지 못했다. 1970년 박종홍 교수가 세상을 떠나자 박 대통령은 그를 기리려는 듯 박 교수의 계획을 실행해 1978년 6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사봉 기슭 현 위치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창립했다.
이러한 설립 과정에선 두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정신문화 역시 이에 병행하도록 창달돼야 한다는 석학의 집요한 설득이 있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국가 지도자가 그러한 건의를 적극 수용했다는 것이다. 즉 국가 지도자와 지식인이 서로의 영역과 역할을 존중한 셈이다.
개원 이후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집대성하는 지식 센터로서, 현재 세계에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발하는 ‘K-컬처’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을 보면 지식인의 통찰력과 정치인의 실행력이 결합돼야 국가 어젠다를 선점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교의 성지 중국 산둥성 노산공원 도교사원에 들어가면 왼쪽에 북을 얹어놓는 ‘고루’가 있고, 오른쪽엔 종을 얹어놓은 ‘종루’가 있다. 북소릴 들으면 전의(戰意)가 불타고, 종소릴 들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현명한 지도자는 북을 두드릴 때와 종을 울릴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잘살아 보세”라는 북소리를 듣느라 종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 이수성 전 총리와 정대철 회장은 우리나라 국민이 북소리 대신 종소리를 더 듣길 권한다.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파(政派) 간 운명을 건 승부로 여겨지고 있지만 정파가 아닌 국가를 위해선 ‘윤리 강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분기점으로 남을 선거가 돼야 한다. 윤리가 바로 서야 국민이 행복하고, 윤리는 시대를 반영한 올바른 교육 지침에서 나온다. 각 정당이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교육 지침을 내놓고 대결해 보면 어떨까. 새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기 위한 경쟁을 보고 싶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