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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자 리스크 늪 빠진 고려아연 속사정

[이현준의 G-zone] 갈라서고 싶은 崔 vs 놔주기 싫은 張… “동업 함부로 하는 것 아니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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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3-11-20 10: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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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 고려아연]

    장형진 영풍 고문(왼쪽).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 고려아연]

    “사실상 그렇게 지분 갖고 싸워봐야 양쪽 다 실익이 없다. 결국 갈라서야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텐데, 가능성이 ‘제로(0)’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루한 싸움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늪에 빠진 격이다.”

    장‧최 두 오너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경쟁을 바라보는 한 철강업계 관계자의 시각입니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 아연제련업체로서 영풍그룹 계열사입니다. 사실 ‘계열사’라곤 하지만 일반적 경우완 다소 다른데요, 지배구조가 특이해서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동행 → 불편한 동거

    고려아연 로고. [고려아연]

    고려아연 로고. [고려아연]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함께 영풍기업사를 설립한 이래 지분을 나눠가진 채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로 영풍그룹을 운영해 왔습니다. 무려 74년간 동업을 해온 거죠. 구체적으론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영풍을 장 씨 일가가,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을 최 씨 일가가 맡아 경영했습니다. 독립 경영이 이뤄지긴 했지만 상대 일가의 계열사 주식을 각자 보유했죠. 예컨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영풍입니다. 최 씨 일가의 영풍 지분도 20%에 달하고요.

    강산이 일곱 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을 함께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렇다보니 그간 두 오너 가문의 모습을 ‘아름다운 동행’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건 없다죠. 결국 균열이 생겼습니다. 2021년 최 씨 3세 최윤범(48)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을 맡으면서부터인데요. 최 회장은 지난해 8월 한화그룹에 대한 유상증자를 시작으로 11월 LG화학과 자사주 교환, 올해 8월 현대차그룹 상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우호지분을 대폭 늘리며 지분율을 끌어 올렸습니다.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했고요. 물론 장 씨 측도 계열사를 총동원해 고려아연 주식을 사들이며 맞불을 놨죠.

    치열한 각축전이 이어지는 모양새입니다. 기세는 최 씨 측이 더 맹렬합니다. 지난해 8월 지분 경쟁 본격화 전만 해도 장 씨 측 지분율이 최 씨 측 지분율보다 약 10%포인트 더 높았는데, 올해 11월 기준 최 씨 측 지분이 약 32%, 장 씨 측 지분이 31% 정도로 최 씨 측이 근소하게 역전했기 때문입니다. 최 씨 측에 우호지분이 대거 포함됐음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최 씨 측이 얼마나 무서운 기세로 지분율을 끌어올렸는지 알 수 있는 셈이죠.



    누가 먼저 동업자 정신 깼는가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오던 양 가가 왜 이토록 싸움을 벌이게 됐을까요. 최윤범 회장의 신사업 추진이 발단이 됐다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최 회장은 회장 취임 후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골자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적극 추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차입금을 들여왔죠. 6월 말 기준 고려아연 차입금 규모는 총 1조575억 원으로 2021년 말 4460억 원이던 것에 비해 약 2.3배 늘었습니다. 1993년 이후 가장 큰 수준이죠.

    장 씨 측은 이러한 모습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신사업 특성상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빚을 내고 있다는 거죠. 장 씨 측의 필두 장병희 창업주의 아들 장형진(77) 영풍 고문은 원래 고려아연 이사회에 ‘개근’하다시피 했는데, 유독 유상증자를 결의하는 이사회에만 불참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영풍그룹은 두 창업주의 창립으로부터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는데, ‘남의 돈 끌어다 일 벌리지 않기’입니다. 이 원칙에 의한다면 장 씨 측은 최윤범 회장이 그룹 창업 때부터 지켜진 ‘동업자 정신’을 깨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최 씨 측도 할 말은 있습니다. 장 씨 측이 지분을 더 많이 가진 게 사실이지만 고려아연 경영에 대한 권리는 창립 때부터 전적으로 최 씨 측에 속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장 씨 측이 경영에 대해 간섭하는 것이 오히려 동업자 정신을 해치는 행위라는 겁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영풍그룹은 동업을 시작한 이래로 고유 영역을 설정하고 각자 체제로 운영됐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최 씨 측으로선 장 씨 측이 ‘월권’ 행위를 하고 있다고 보는 셈이죠.

    차입금도 문제가 안 된다고 봅니다. 현대, 한화, LG 등 기업이 고려아연에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그냥’ 했겠느냐는 겁니다. 그들이 투자를 한 까닭은 그만큼 트로이카 드라이브가 유망한 사업임을 방증하는 셈이니 장 씨 측의 걱정은 ‘기우’라는 것이죠.

    또 최 씨 측은 장 씨 측으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고 말합니다. ‘서린상사’라는 회사가 그 이유인데요, 서린상사는 종합비철무역상사로 영풍, 고려아연 등 영풍그룹의 비철금속제품 무역을 담당하는 회사입니다. 사실상 모든 상품 수출입을 여기서 관할하니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계열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배구조상 서린상사는 고려아연의 자회사지만 실질적으론 장형진 고문의 차남 장세준 씨가 대표로 있는 장 씨 측의 회사라는 점입니다. 10월 27일 한국ESG기준원(KCGS)이 기업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및 등급을 발표했는데, 영풍은 B+(환경B+, 사회A, 지배구조B)를 받고 고려아연은 B(환경A, 사회A, 지배구조C)를 받았습니다.

    고려아연이 환경과 사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B등급에 그친 건 지배구조에서 C를 받았기 때문이죠. 이는 고려아연이 서린상사를 통해 상품을 거래하는 것이 ‘일감 몰아주기’로 인식됐기 때문입니다. 최 씨 측으로선 장 씨 측과는 독립 경영을 해왔던 지라 사실상 다른 회사인데, 장 씨 측 회사의 매출을 올려주면서 자신들이 손해를 보니 억울할 법한 일이죠.

    “쇼윈도 부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골자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추진하며 장‧최 두 가문의 지분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이 가운데 2차전지 소재 사업 밸류체인. [고려아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골자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추진하며 장‧최 두 가문의 지분경쟁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진은 이 가운데 2차전지 소재 사업 밸류체인. [고려아연]

    이외에도 지분 구조가 얽혀 있다 보니 생기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장형진 고문은 고려아연의 사내이사입니다. 고려아연의 인수‧합병, 사업 방침 등 대외비 사항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장 씨 측으로서야 경영은 최 씨가 하지만 자신들이 대주주니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겠죠. 최 씨 측 생각은 다릅니다. 장 씨 측이 대주주긴 하지만 어찌됐든 영풍도 같은 비철금속 제련업을 영위하고 있으니 한편으론 경쟁사일 수 있는데, 고려아연의 영업비밀을 모두 열람해간다고 여겨지는 것이죠. 한 지배구조 전문가에 따르면 최씨 측으로선 사업 및 경영에 사활을 걸어야 하기에 다소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은 이렇습니다.

    “장형진 고문을 필두로 그의 장남‧차남으로 후계 구도를 굳힌 장 씨 측과 달리 최 씨 측은 일가 수십 명이 1~3%대 지분을 나눠가졌다. 장 씨 측이 중앙집권국가라면 최 씨 측은 부족국가 혹은 연맹왕국 쯤 된다고 볼 수 있다. 장 씨 측에 비해 지분도 적은데, 집약도까지 떨어진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오로지 경영 성과로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셈이다. 또 우호 지분도 말이 ‘우호’ 지분이지, 경영 성과에 따라 얼마든지 돌아설 수 있다. 여러모로 최 씨 측은 경영에 사활을 걸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최 씨 측과 장 씨 측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란 어려워 보입니다. 사실 누가 틀린 것이라기보다는 입장 차이가 있다고 봐야겠죠. ‘좁힐 수 없는 다름’이 존재한다면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겁니다. 과거 LG그룹의 구 씨, 허 씨 일가가 그리한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장‧최 두 가문은 현실적으로 그러기도 어렵습니다.

    최 씨 측이 계열 분리를 하기 위해선 장 씨 일가의 고려아연 지분을 3% 미만으로 줄이고 임원 겸임을 없애야 합니다. 17일 기준 고려아연 시가총액은 약 10조2000억 원이니 3조 원가량 현금이 필요하죠. 대규모 차입을 들이고 있는 상황에 이만한 현금을 갖고 있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장 씨 측이 영풍그룹 전체 매출 가운데 약 77%를 올려주는 고려아연을 놓아줄 수도 없죠. 5년간(2018~2021) 장 씨 측이 고려아연을 통해 얻은 배당금만 2967억 원으로 전체 배당 수익의 97.2%를 차지하니까요. 두 가문의 관계는 헤어지고 싶어도 보내주기 싫은, 그래서 헤어질 수 없는, 복잡한 형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글 서두의 철강업계 관계자가 말했듯 당분간은 이러한 형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정말 어려운 일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앞선 지배구조 전문가의 말을 전합니다.

    “최 씨 측으로선 신사업에 사활을 거는데, 언제든 장 씨 측이 태클을 걸어올지 모르는 리스크를 안고 경영을 이어가야 하는 셈이다. 동업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도 지금으로선 어쩔 수가 없다. 장 씨 측이 대승적으로 최 씨를 놔주는 게 ‘베스트’지만 그럴 일은 있을 수도, 기대해서도 안 될 일이다. 당분간은 서로가 불편해도 안고 가야 한다. 마치 ‘쇼윈도 부부’처럼. 이래서 ‘동업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나.”

    ※‘이현준의 G-zone’은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을 중심으로 경제 이슈를 살펴봅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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