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文은 대국 사대, 尹은 MB 답습… 이념 外交 그만두라

[한반도 지오그래픽]

  • 백범흠 서울대학교 초빙교수·전 駐프랑크푸르트총영사

    입력2024-01-0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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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복되는 井底之蛙 유형 인사에 개탄

    • 與野 막론, 지정학 현실 도외시한 대외정책

    • 文 정부 北에 급진적, 中에 대국 사대

    • 尹 정부 MB 시절 뉴라이트식 대외정책 답습

    • 한반도 현상 변경 정책이 국가 발전 걸림돌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따라 9·19 군사합의 중 일부 내용(1조3항)의 효력정지 관련 조치 사항을 발표한 2023년 11월 22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U-2S 고고도정찰기가 착륙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 내용 중 일부 효력은 이날 오후 3시부로 정지됐으며, 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 간 합의 및 같은 해 11월 1일 해당 조항의 효력 발생 이후 5년여 만이다. [뉴스1]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따라 9·19 군사합의 중 일부 내용(1조3항)의 효력정지 관련 조치 사항을 발표한 2023년 11월 22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공군기지에서 U-2S 고고도정찰기가 착륙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 내용 중 일부 효력은 이날 오후 3시부로 정지됐으며, 2018년 9월 19일 남북 정상 간 합의 및 같은 해 11월 1일 해당 조항의 효력 발생 이후 5년여 만이다. [뉴스1]

    2023년 10월 국민의힘의 패배로 끝난 서울 강서구청장 보선(補選) 이후 여야는 윤석열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열 정비에 나섰다. 어느 쪽이 총선에서 승리하든 극단의 정쟁이 지속되겠지만, 늦어도 2026년 하반기에는 여야 대선후보가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 여야는 서로의 약점만 물고 늘어질 뿐, 초저출산율 문제를 포함해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에 해답은커녕 관심조차 두지 않아왔다. 2년 뒤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출될 여야 후보는 이전과 별다를 것 없는 인사일 가능성이 높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국의 좌표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 없으며,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온 ‘정저지와(井底之蛙)’ 유형의 인사일지 모른다.

    분단국가 한국이 생존과 번영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는 국가안보와 성장 동력 확보 △중기적으로는 선도적 과학기술 개발 △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 극복 등 세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생존·번영 위한 세 가지 전제

    첫째, 국가안보와 성장 동력 확보다. 2023년 11월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로 인해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파기되고, 한반도의 긴장은 더 고조됐다. 접적지역 주민들은 불안해한다. 이는 한국의 성장 동력은 낮추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높이는 역할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3년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4년 1.7%로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골드만삭스 2022년 보고서도 한국 경제는 2040년대 0%대 성장에 그치고, 2060년대부터는 역성장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했다. 우리 정치의 무능력과 무책임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둘째, 선도적 과학기술 개발이다. 인공지능(AI)과 차세대 무선정보통신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오래전 시작됐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 독일 등보다 인적자원, 신(新)과학기술, 법령과 제도 등의 분야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AI 포함 신기술에 대한 충분한 연구개발(R&D) 투자 없이는 국가 차원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셋째, 저출산·고령화 극복이다. 가장 광범한 영향을 미치는 저출산·고령화와 이것이 야기할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1990년대 이래 줄곧 악화돼 온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한국의 미래는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을지 모른다.

    이에 더해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 보수는 진보를 ‘빨갱이’라 비난하고, 진보는 보수를 ‘토착왜구’라고 부른다. 필자가 가끔 만나는 네덜란드 출신 지리학과 교수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한국에는 ‘빨갱이’와 ‘토착왜구’만 사느냐고 묻는다. 보수는 미국·일본과의 관계만 중시하고, 진보는 중국·북한과의 관계에 비중을 둔다. 둘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

    정권 따라 바뀌는 대외정책

    대륙과 해양 세력의 가운데라는 지정학적 단층선상에 놓인 한국의 현재, 미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라는 세계제국(World Empire) 미국과 근린 강대국 중국이다. 미국은 대병(大兵)을 우리 영토 안에 주둔시킨 동맹국이고, 중국은 제1 무역 상대국이다.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중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적대 세력이 같은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기는 어렵다. 글로벌 패권을 추구하는 미국과 중국 역시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의 존재론적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차기 대선에서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집권하든 지정학적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미동맹 공고화 △중·일과 선린 우호 관계 증진 △동남아와 인도 진출 강화 △한반도 안정 유지가 우리 대외정책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진보 후보가 승리할 경우 NL(민족해방)의 잔재 ‘낭만적 민족주의’ 영향권 안에 있으며, 윤 정부의 외교·대북 정책을 사갈시(蛇蝎視)했을 외교 전문가가 다음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할 것이다. 그 역시 역대 정부 외교책사가 그랬던 것처럼 외교를 자기 이념과 아이디어를 적용해 보는 실습장으로 삼을 것이다. 어떤 외교·대북 정책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 국민은 물론 국회, 심지어 직업 외교관들에게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자기 생각대로 외교를 밀고 나갈 것이다. 윤 정부와 180도 다른 외교·대북 정책을 주문받게 될 외교부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 등 외교안보 부처 공무원들은 또다시 집단 아노미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보수적 국민은 강력히 반발할 것이며, 외교·대북 정책은 국가사회 분열의 촉매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로부터 정권이 교체되더니 다시 한번 더 대외정책을 뒤집는다는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또한 이들은 차기 대통령에게 ‘화려한’ 의전 행사로 가득한 해외 방문을 끊임없이 권유할 것이다. 대통령은 골치 아픈 국내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대신 해외 순방 재미에 푹 빠질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뛰어난’ 외교 능력에 스스로 감탄하게 되고, 의전으로 가득한 정상외교가 외교의 전부이며, 국정의 축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대다수 대내 정책은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대외정책의 방향이 잘못되면 수만, 수십만 명의 국민이 목숨을 잃고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좋은 예다.

    독일이 중유럽에 위치한 미텔 오이로파(Mittel Europa) 국가이듯 한국은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 한가운데 자리한 미텔 아지엔(Mittel Asien) 국가다. 독일은 외교든 전쟁이든 항상 서쪽 프랑스와 영국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난 다음, 동쪽 러시아(소련) 문제에 대처했다. 한국 역시 동쪽 일본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난 다음 서쪽 중국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서독은 우선 친서방 정책을 통해 경제력을 키우고, 나중 소련에 접근(동방정책·Ostpolitik)해 통일을 이뤄냈다.

    文 정부 인사들의 ‘萬折必東’

    노영민 전 주중한국대사가 2017년 12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했다. 노 전 대사는 제정식 이전 방명록에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한·중 관계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담아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다. [주중한국대사관]

    노영민 전 주중한국대사가 2017년 12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했다. 노 전 대사는 제정식 이전 방명록에 ‘지금까지의 어려움을 뒤로하고, 한·중 관계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담아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다. [주중한국대사관]

    한국도 일본 문제를 먼저 해결한 뒤 중국, 북한을 잘 다뤄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들어 NL 노선의 영향도 받은 ‘낭만적’ 민족주의자들이 정권 핵심을 장악한 후 한국의 외교·대북 정책은 기존 궤도에서 다소 벗어났다. 미국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민족 자주’를 주장한 반면, 북한과 중국에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리고 북한 문제 해결에 국가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했다. 그러면서도 노 정부는 북·중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로 이어졌다. 잔재만 남은 NL 노선의 영향도 받았던 문 정부 주도 세력은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미국의 부정적 역할에 대해 해묵은 원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문 정부는 급진적 대북(對北) 정책을 취했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는 저자세를 취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비우호적 태도로 일관했다. 문 정부가 주도한 ‘대북 전단 금지법 제정’과 ‘9·19 군사합의’ ‘종전 선언 추진’ 등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문 정부의 진정한 의도(선한 뜻)를 알 수 없었던 보수적 국민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문 정부는 우리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 문제 해결을 추진해 나가면서도 ‘비밀’이라는 이유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문 정부 인사들은 중국에 대해서는 ‘만절필동(萬折必東·황허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시 조선을 군사 지원한 명나라에 대한 사대부의 절대적 충성을 의미)’과 ‘중국몽(中國夢) 동참’, ‘(중국은) 큰 봉우리’ 등 비굴하게 보이는 언사를 남발했다. 노영민 주중대사는 2017년 시진핑이 주관한 신임장 제정식 방명록에 ‘만절필동’을 썼다. 2018년 방중한 문 대통령은 ‘중국몽 동참’과 ‘큰 봉우리’를 말했다. 2019년 방미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낸시 펠로시(Nancy Peloci) 하원의장에게 손수 작성한 ‘만절필동’ 휘호를 선물했다. 대상 국가는 다르지만, 문 대통령이나 문 의장, 노 대사 모두 대국사대(大國事大)를 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문 정부가 적어도 겉으로는 ‘충성의 뜻’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문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문 정부가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 영향권으로 들어가도록 김정은을 줄곧 설득했다는 데 있다. 중국의 대북 안보 이해관계는 미국의 대(對)멕시코 안보 이해관계 이상이다. 이는 명과 청, 국민당과 공산당 등 어느 왕조, 어느 정부나 같다. 중국을 지배한 세력은 어느 누구든 한반도가 중국에 적대적 세력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지 못하도록 가진 국력 이상을 쏟아부었다. 중국은 1592년 임진왜란,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950년 6·25 전쟁 당시 국력 이상의 군사력을 투입했다.

    문 정부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 문제 해결에 ‘올인’ 했다. 북·미 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거래가 시작되자 시진핑은 중국 안보의 핵심인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시진핑은 역사적 ‘속국’이라 여겨 무시해 오던 조선의 ‘어린’ 지도자 김정은을 짧은 기간 다섯 차례나 만났다. 문 정부가 그린 ‘빅 픽처(big picture)’ 북·미 정상회담은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독재자 김정은이 미국이 제시한 어음(핵 폐기 대가로 북·미 수교 등 불확실한 정권 안보)보다는 중국이 보여준 현찰(핵 보유와 확실한 정권 안보)을 택한 것이다.

    미국의 복잡한 대북 태도도 회담 실패에 기여했다. 진보 문 정부뿐만 아니라 보수 박근혜 정부 역시 중국의 대북 안보 이해관계에 대해 무지했다. 박 대통령은 2015년 9월 ‘천안문 등정’ 같은 획기적 대중(對中) 접근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정책 변경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오판했다. 중국이 북한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 보고 ‘통일 대박’을 부르짖었다. 문 정부는 ‘떠오른 용’ 중국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일(對日) 관계를 개선해야 했지만, 일본에 비우호적 태도로 일관했다. 문 정부 지지자들은 보수적 인사들을 ‘토착왜구’라고 비난하고, ‘죽창가’를 외쳤다. 다행이었던 것은 문 정부가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였다고는 하지만 한미동맹에 소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尹 정부의 ‘과대망상적 외교’

    2023년 10월 22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리야드 야마마궁 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3년 10월 22일(현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이 리야드 야마마궁 정원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와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정부 외교·대북 정책은 문 정부에 대한 보수 세력의 반감 등으로 인해 문 정부보다 더 심한 이념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윤 정부는 ‘가치(자유) 외교’와 함께 ‘글로벌 중추국가’를 주창하는 등 경제력 기준 세계 12위에 불과한 우리 국력을 크게 벗어난 ‘과대망상적(megalomaniacal)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윤 정부는 내외정(內外政) 모두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일관성이 부족하다. 윤 대통령이 얼마 전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모두 절대왕정 국가이며, 이전 방문한 베트남은 공산주의 국가다. 가치외교가 먹혀들어 갈 나라들이 아니다. 세계에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할 만한 나라는 30~40개국에 불과하다. 미국의 가치외교도 중국, 러시아 등에 대한 동맹국들의 단결을 유지하기 위해서만 적용된다. 글로벌 안보 이슈에 대한 적극 대응을 핵심으로 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는 미국 외에는 없다.

    현재 윤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일 협력체제 강화와 이를 위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 강제 징용공 문제 등 해결 △대중·대북 정책을 포함한 대외정책에는 이명박(MB) 정부 시절 횡행했던, 일제 식민 통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뉴라이트적 요소가 진하게 녹아 있다. 윤 정부는 일본 정부보다 한 술 더 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해양 생태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

    일본은 조선을 침탈하고, 만주를 위성국으로 만들었으며 중국, 미국 등과 전쟁까지 한 나라다. 약화되고는 있지만, 일본이 향후 어떻게 행보해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윤 정부 뉴라이트 인사들은 국내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물론 일제에 대항하기 위한 단 한 가지 목적으로 레닌 집권기 소련과 협력했던 홍범도 등 사회주의 계통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라 하면서 역사적 ‘부관참시’를 자행했다.

    뉴라이트 사관(史觀)에 영향 받은 인사들은 한국이 북한, 일본, 대만 등과 함께 일본제국 해체 결과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신생국가’라고 말한다. 고대에 건국돼 몇천 년을 이어온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전면 부인하는, 이른바 ‘건국절’ 주장이다. 윤 정부는 또한 대다수 국가가 이미지 차원에서 말하기조차 꺼리는 ‘무기 수출’을 동네방네 홍보하고 다닌다.

    윤 정부 외교·대북 정책이 과거 회귀적 성격을 띠는 이유는 윤 정부 스스로 국정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국정 비전을 갖지 못할 경우 철학적·정책적 아노미에 빠지기 쉽다. 윤 정부는 또한 외교안보 정책 수단의 하나에 불과한 ‘한미동맹’을 신성한 국가 목표로까지 격상시켜 놓았다. 송시열과 최익현 등 조선말 성리학자들이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명나라 숭배를 절대 가치로 만들어놓았던 것과 유사하다. 윤 정부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듣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를 더 분열시키는 한편, 한국을 대중(對中) 최전선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다.

    김대중부터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의 보수와 진보 모든 정부가 각종 방법으로 한반도의 현상 변경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북한은 가장 민족주의적이었던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핵실험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은 북한의 생존 전략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MB 정부 시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 군사 충돌이 빈번히 일어났다. 2015년 박 대통령의 ‘천안문 등정’은 북한의 4, 5차 핵실험과 북·중 재접근으로 돌아왔다. 박 정부 시절 남북 협력의 상징 개성공단이 폐쇄됐다. 문 정부의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하노이 정상회담 주선은 북한에 의한 ‘남북대화사무국 건물 폭파’와 ‘삶은 소대가리’ 비난으로 돌아왔다. 윤 정부의 압박을 통한 북핵 폐기 추구, 북한 인권 개선 시도 등의 정책 역시 전혀 성과 없이 끝날 것이다.

    한국 사회의 분열은 더 심화될 것이다. 차기 정부는 한국이 지정학적 단층선상에 위치해 있으며, 경제력 기준 세계 12위에 불과한 ‘준(準)분열국가(quasi split nation)’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급격한 사회적 쇠퇴도 겪고 있다. 합계출산율 0.78명의 초저출산율과 인구 20%의 고령화로 상징되는 경제사회 위기와 반(反)국민통합으로 표현되는 국가사회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인구는 경제와 복지, 교육, 국방, 과학기술, 지방자치 등 모든 분야와 연결돼 있다. 인구가 곧 국방이자 경제이며, 연금이다.

    초저출산율과 고령화는 한국을 지속 위축시켜 10~20년 후에는 인도네시아, 튀르키예, 나이지리아 등에도 밀리는 중소 국가로 만들어놓을 것이다. 베네치아는 중세 이후 근대까지 해양고속도로를 건설해 1000년 영화를 누렸다. 그런 베네치아도 근대 이후 수십-수백 배의 영토와 인구를 가진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 밀린 끝에 결국 오스트리아에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중국-인도 쌍두마차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말도 결국 이 두 나라가 가진 방대한 영토와 인구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가며 집권했지만, 인구 문제는 줄곧 악화되기만 했고, 노동·연금·공공·교육개혁은 용두사미로 끝났다. 중국이나 독일 경제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걱정해야 한다. 난민 유입을 통해 인구가 증가하는 독일의 경제규모(GDP)는 2023년 일본의 경제규모를 넘어섰다. 경제력의 뒷받침 없는 군사력은 유지될 수 없다. 군인도 먹지 않고는 싸울 수 없다. 재정 능력 없이는 미사일, 잠수함도 만들 수 없다.

    하늘이 내린 재앙과 사람이 자초한 재앙

    차기 정부는 다음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인구 규모 유지, 내지 증대다. 출산율을 높이든, 이민을 받아들이든 인구 규모 유지 또는 증대를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자산을 투입해야 한다. 외교 자산 역시 집중 투입해야 한다.

    둘째, 민주화 이후 모든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한반도 현상 변경 정책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북한 문제는 좌우 이념과도 연관돼 있다. 범국민적 합의 없는 대북정책은 국가사회를 분열로 몰아갈 뿐만 아니라 북한, 중국과의 관계도 더 악화시킨다. 이에 따라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더 커진다.

    셋째, 북핵에 대해 ‘비례 원칙’에 따른 상쇄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초토화하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란이나 시리아 등 적대세력이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갖고 있어서다. 북한이 위협 요소라는 것을 망각하고 ‘송양지인(宋襄之仁)’ 같은 어리석은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통일 후를 대비해서라도 제한적으로나마 파악되는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사례를 기록은 해놓아야 한다.

    넷째, 국가사회의 분열을 촉진할 수 있는 대내외 정책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된다.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국정 최고 책임자가 대중매체에 종종 나와야 한다. 맹자(孟子)는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사람이 자초한 재앙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天作孽猶可違 自作孽不可活)”고 했다. 차기 정부는 이념에 치우친 정책 추진은 바로 그만둬야 한다.

    백범흠
    ● 1963년 경북 예천 출생
    ● 정치학 박사·서울대 초빙교수
    ● 前 주프랑크푸르트 총영사
    ● 前 한·중·일3국협력사무국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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