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나는 군산 해망동 어판장에서 자본주의를 배웠다

[함운경의 생업전선]

  • 함운경 네모선장 대표·前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입력2024-01-14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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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는 상대에 이득 주고 내 이득 취하는 사회

    • 노동력 착취해야 돈 번다는 착각

    • 시장에서 거래는 서로 간 이익

    • 택배비는 고객의 시간과 노력 절약하는 방법

    인생을 살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든지 ‘재산 증식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의 노예로 사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면 생활을 어떻게 했을까.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돈을 벌었다. 좋은 대학을 다니고 좋은 학과를 다녔으니 과외를 해서 쉽게 돈을 벌었고 정치활동을 하면서는 후원도 받았다. 어느 때부터인가는 일명 ‘등처가’로 돈 버는 와이프 옆에서 곤궁함을 모르고 살았다. 자본주의는 임금노동과 자본으로 나뉜 사회이고, 자본은 임금노동을 착취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내가 대학에 다닐 때 배우고 익힌 경제학이다.

    사람 손을 거치면서 가격이 오른다

    생선을 사고파는 어시장.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거래가 성사된다. [뉴시스]

    생선을 사고파는 어시장.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거래가 성사된다. [뉴시스]

    생선 가게를 하면서 내가 팔 물건 가격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얼마에 파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다 이유가 있어 그 가격을 정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이 가격 결정은 참으로 어려웠다. 수산물은 일정한 수요가 있지만 공급이 정말 불규칙한 상품이다. 며칠 동안에 서너 배가량 뛰는 것은 다반사였다. 같은 조건에서 경매되는 물건 가격이 전국에 공개되기 때문에 구입 단가는 별 차이가 없는데도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소비자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내가 경험해 본 바로는 꽃게는 사람 손을 거치면서 가격이 오른다. 위판장에 가면 이런 표어가 붙어 있다. “제대로 분류해서 제값 받자” 그렇다. 꽃게는 바닷가 항구에서 일하는 항운노조원들의 손이 닿으면 가격이 오른다. 나처럼 배에서 내리는 물건, 즉 어부들이 눈대중으로 대충 큰 놈 작은 놈 분류해서 가져온 것은 싸다. 반면 항운노조원들이 무게별 분류하는 기계로 꽃게를 분류하고 나면 가격이 오른다. 또 꽃게들끼리 가까이 놔두면 집게발로 서로 싸우기 때문에 집게발을 잘라버리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당연히 가격이 오른다. 결국 사람 손이 닿을 때마다 인건비가 누적돼 꽃게 값도 그만큼 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인건비를 줄이면 이득을 본다고 한다. 꽃게 작업하는 사람값을 적게 주면 나에게 이익이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즉 투입된 노동력을 착취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 가격을 끌어내리겠다고 탄압을 하거나 협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 시간에 장사치들은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을 소화해서 돈을 더 벌든지 손님이 원하는 다른 상품으로 바꿔서 돈을 번다.

    손님이라는 사람을 상대하기도 힘든데 왜 일하는 사람과 노임 협상을 하는가. 동네에 가면 대충 원하는 가격이 정해져 있고 굳이 국가가 나서 가격을 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최저임금 기준에는 영향을 받겠지만 ‘갑오징어 한 상자 손질하는 데 얼마’라고 하지 ‘몇 시간 노동에 얼마’라는 계산은 생선과 수산물 손질 과정에는 별로 통용되지 않는다. 숙련도에 따라 자기에게 맡겨진 것만 처리해 주면 되는 생선 손질에는 상자당 얼마라는 가격이 더 적합하다. 공장에서야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기에 통일적 계산 방법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노동가치설에 입각한 노동시간에 따른 노동력 계산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수산물을 다루면서 만나는 삶의 현장에서는 노동력의 거래든 상품의 거래든 모두 서로 이득이 되면 성사되고, 한쪽이 손해다 싶으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이나 상품 거래에서 상대방이 손해를 봐야 나에게 이득이 생기는 것일까. 노동자를 착취해야 자본가들이 돈을 벌고 이득을 얻을 수 있는가.

    자본주의 초기, 어린이 노동이 있고, 장시간 노동이 당연시되던 시기에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그런 방식으로 돈 버는 것은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부에 불려 다니는 쓸데없는 일이 많아진다.

    나는 군산 해망동 어판장에서 온라인으로 상품을 팔면서 상호 이익이 되는 거래를 배웠다. 시장에서 거래는 서로 간에 이익이 된다. 서로 이익이 되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는다. 내가 판매하는 물건은 고객이 필요해서 산다. 고객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대구 1마리를 사러 마트에 가는 대신 택배비 4000원을 지불하고 집에서 편하게 받는다. 즉 고객의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방법이 택배비 지불이다. 고객에게 편익을 제공한 만큼 이익을 얻는 것이다.

    이 같은 거래가 많아져야 시장규모가 커진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 거래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이 이득을 본다. 즉 서로에게 이득의 규모가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다. 어린이 노동 등 불평등 노동을 근절한 현재의 자본주의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이타적 제도다.

    나는 사람들이 욕망을 가진다는 것을 긍정한다. 잘살고 싶다, 돈 많이 벌고 싶다 이런 욕망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긍정적 에너지다. 합리적으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든 게 여러 법률과 관습 문화다. 욕망을 이루겠다는 긍정적 에너지가 터져 나와야 역동적인 사회가 된다. 일하는 사람을 잘 조직해서 더 많은 상품을 만들어내고 서로 이익이 되는 거래를 활성화해 성공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런 것을 격려하고 장려하는 사회가 나는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이익 준 만큼 이득 얻는다

    정치든 국제관계든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는 상대가 있고 상대에게 이익을 줄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 혼자 독식하거나 지배할 수 있나. 상대에게 이익을 준 만큼 나도 이득을 얻는다.

    20세기 중반까지 국제질서는 식민 지배가 더 많은 이익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민 지배는 비용이 많이 든다. 군대를 주둔시키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감옥에 가둬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비용이 든다. 식민 지배 대신 거래를 하면 된다. 그 거래를 통해 서로 이득을 보는 것이 훨씬 유익한 방법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잘 해왔다. 전 세계를 상대로 좋은 상품을 만들고 서로 이익이 되는 거래를 키워왔다. 그래서 무역액 규모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일본, 미국과의 관계도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거래를 해왔다. 중국, 러시아와도 좋은 거래 관계를 유지해 오다가, 핵무기를 만드는 북한을 편들고 대국이라고 힘자랑을 하는 그들과 불편한 관계가 됐다. 중국도 대한민국이 가진 좋은 점과 매력을 거래할 생각을 해야 한다. 100년 전 번속국이던 조선으로 생각하고 대하면 좋은 거래가 성립할 수 없다.

    내 가게에서 생선 손질을 하면서 생각한다. 생선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제거해서 요리하기 좋게 깔끔하게 손질한다. 이걸 사가는 분들은 집에서 가족들에게, 장사하는 분들은 찾아온 손님들에게 맛있게 요리하는 것에 집중한다. 생선 손질이 차가운 물을 만져야 하는 일이라 고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이 사회에서 상대에게 이득을 주고 내 이득을 취하는 방법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함운경
    ● 1964년 출생
    ●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조직부장
    ● 現 네모선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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