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금융 선진화 가로막는다

[집권 보수 다섯 기둥 大해부] “이렇게 노골적으로 낙하산을?”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3-03-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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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감원장 취임하자마자 은행 때린 이복현

    • 사기업에 정치 논리 들이대서야…

    • “검사 출신에 尹 신임 받아 못 건드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 후 금융권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노골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느낌”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Gettyimage, 대검찰청]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취임 후 금융권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노골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느낌”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Gettyimage, 대검찰청]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린다. 상급기관 금융위원회 수장을 가릴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현재 금융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실력자로 여겨진다. 대개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관련 기관 수장이 그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오히려 반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 원장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면 뒤이어 대통령이 그의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니 행보에 더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尹의 이복현 힘 실어주기

    2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여러 차례 경고 메시지를 통해 금융계에 압박을 가했다. [뉴스1]

    2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 후 여러 차례 경고 메시지를 통해 금융계에 압박을 가했다. [뉴스1]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큰 이슈는 정치권과 당국의 ‘은행 때리기’다. 2월 13일 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언급한 게 시작이다.

    나흘 후 이 원장은 은행 영업 방식에 대해 “약탈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다”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또 엿새 후엔 “사상 최대 이익을 냈음에도 국민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부정적 여론에 은행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며 재차 은행을 압박했다.

    이 원장이 대통령의 정책 기조에 발맞춰 목소리를 내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금융계 인사들은 그가 취임 초부터 은행 때리기에 나선 점에 주목한다. 지난해 6월 이 원장은 취임한 지 2주 만에 국내 17개 은행장과 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이른바 은행의 ‘이자 장사’에 경고장을 날려 주목받았다.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지자 “(은행 경영에) 간섭할 의사가 없다”면서도 “은행의 공공적 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이 은행을 압박하며 언급한 ‘공공재’ 발언은 사실상 이 원장의 행보에 힘을 더 실어주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들에 미운털 박힐 이유가 없는 건 아니다. 근래 서민경제는 코로나 팬데믹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 전 세계적으로 긴축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이건만 금리가 오르니 금융비용 증가로 허덕이는 이가 많아졌다.



    이 와중에 은행들의 실적은 날아올랐다. 지난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13조8482억 원이다. 전년보다 17.2% 증가했다. 호실적을 이끈 건 단연 이자수익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5대 은행이 지급한 성과급 총액은 전년 대비 약 35% 증가한 1조3823억 원이다. 서민들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들 수 있다.

    은행이 공공성을 갖는다는 지적도 일견 타당하다. 국내 은행 시장은 사실상 5대 은행이 과점하고 있다. 지난해 총 18개 은행의 순이익 가운데 5대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량에 달한다. 특히 은행업은 정부가 면허를 발급해야 영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 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은행 등 금융사의 회생을 위해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은행 발전 저해하는 官治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외환위기 이후 금융사의 재기를 위해 투입한 자금 규모는 168조7000억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약 절반인 86조9000억 원이 은행을 회생시키는 데 쓰였다. 대부분 상환했지만 5대 은행이 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써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은행권엔 오랜 기간 ‘관치’가 당연한 듯 존재했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민간 금융사 수장이 줄줄이 낙하산 인사로 채워지는 일이 허다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금융권 4대 천왕으로 불리던 강만수 전 산업은행, 어윤대 전 KB금융, 이팔성 전 우리금융,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대표적 사례다.

    관치금융이 은행산업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 정치적 개입이 지나칠 경우 경영 자율성이 훼손돼 산업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정치권에서는 여론이 우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제가 위기에 처할 때 정부는 은행을 압박해 자금을 지원하도록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지난해에도 레고랜드 사태로 자금시장이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가 금융권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5대 금융지주가 95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이 가운데 90조 원을 은행이 맡았다.

    은행권에서도 경기가 어려울 때 은행이 공공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이 여론만 의식해 과한 요구를 할 경우 되레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은행은 자본 여력이 충분해야 하는데, 정치권의 요구로 서민 금융 지원에만 내몰리면 리스크가 확대돼 자칫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

    대형 은행 관계자 A씨는 “지난해부터 금융 당국이 은행에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을 요구하는 등 부실 관리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서민금융 등 공적 기능을 요구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이런 압박을 지속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 등 주주들이 떠나면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엔 적어도 여론 눈치는 봤다”

    낙하산 인사가 노골적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 놀랍다는 반응도 나온다. 금융사 관계자 B씨는 “금융업 특성상 정부 개입이 끊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물밑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젠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듯하다”고 지적했다.

    2018년 금융 당국과 하나금융이 당시 회장의 연임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감원장은 회장 연임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구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압박을 가했지만 회추위는 예정대로 당시 회장을 최종 후보로 결정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정도를 제외하면 정치권의 압력이 민간 금융사 수장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최근 금융권엔 낙하산 인사가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실행되는 모양새다.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내정자나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이 선임되는 과정이 그렇다. 3연임이 확실시됐던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해 갑작스레 사퇴를 선언한 것 역시 외풍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금융 당국 관료 출신 인사 C씨는 “이 원장이 검사 출신인 데다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는 인식 탓에 민간 금융사는 물론 금융위조차 쉽게 견제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라며 “금융 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금융사를 규제할 필요도 있지만 반대로 산업 발전을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하는 균형 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아 4월호 표지.

    신동아 4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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