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군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1970년대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도입하면서 맺은 관련 지침 때문이다. 평양까지의 거리인 180㎞로 제한했던 초기 지침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이슈로 떠오른 이후인 2001년 개정돼 신의주까지 공격할 수 있는 현재의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이후 북한이 준중거리 미사일까지 실전 배치함에 따라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등에 들어선 북한의 주요 미사일기지는 휴전선으로부터 300㎞를 넘어서기 때문.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군은 미사일 지침의 제약을 받지 않는 크루즈미사일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왔고 최근에는 1500㎞급인 현무3C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크루즈 미사일은 음속의 7~8배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보다 속도가 훨씬 느리므로 북한군이 엄청난 밀도로 구축해놓은 대공방어망에 의해 요격당하기 쉽다는 약점이 있다. 특성상 탄두중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파괴력도 떨어진다. 따라서 그간 군 주변에서는 북한은 물론 주변국을 견제할 수 있는 안보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1000㎞ 이상으로 늘여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사실 한국의 공학적 기술수준만 놓고 보면 사거리 연장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미사일 지침이 개정될 경우 사거리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은 6개월 내에, 1000㎞ 이상은 1, 2년 내에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 사거리 연장의 장애물은 기술 개발의 어려움이 아니라 국제정치적 변수라는 것이다.
사거리 연장을 통해 탄도미사일 사거리안에 들어올 수 있는 주변국들은 사뭇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사거리 1000㎞ 범위에는 중국 산둥성과 만주 대부분, 베이징 일부까지 포함되고, 러시아의 경우 극동함대사령부가 포진한 블라디보스토크가 들어간다. 현무3C 배치 소식이 알려진 7월 중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한국이 몰래 칼을 갈아온 것이 증명됐다”며 “한국이 천안함 사건을 핑계로 감히 뛰어들지 못했던 금지구역에 뛰어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현무3C보다 위력이 훨씬 강한 탄도미사일의 경우에는 반발이 더욱 격할 수밖에 없다.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기술의 국제적 확산에 민감한 미국 역시 반가워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자칫 북한에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명분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 특히 워싱턴의 눈으로 보자면, 이는 유사시 정밀타격 능력의 상당부분을 미국 측이 제공하기로 한 그간의 안보 공약을 한국 정부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사거리 연장을 위한 지침 개정의 키를 워싱턴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미국 측의 원론적인 자세는 넘어서기 쉽지 않은 관문이다. 최근 들어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입장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되자 미국 측 역시 반응을 내비치고 있지만, 주한미군과 워싱턴의 기류가 사뭇 다르다는 게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한승수 총리의 관련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직후 프랭크 팬터 주한미군 기획참모부장은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등을 통해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후 논의과정에서 워싱턴 국방부와 국무부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