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EC121 정찰기 격추사건

  • 오세영│역사작가, ‘베니스의 개성상인’ 저자│

    입력2010-10-05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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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미 해군 정보기 EC121.

    1969년 3월 초.

    EC121 워닝스타(Warning Star) 정찰기는 강력한 3400마력 라이트 R-3350 엔진 4기를 가동시키며 동해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일본 도쿄 인근의 아쓰기 해군기지에서 발진한 미 해군 제1정찰대 소속의 전자정찰기 EC121의 임무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북상해서 소련 태평양함대의 동태를 탐지한 후 동해를 따라 남하하면서 북한 연안을 정탐하고 귀환하는 것.

    레이더를 들여다보던 전탐 담당 하사는 따분한 듯 하품을 했다. 기지를 이륙한 지 7시간이 지난 지금 정찰기는 북한의 항구도시 청진 상공을 날고 있었다. 발진에서 귀환까지는 통상 10시간가량 소요되는데, 비좁은 공간에서 30명 넘는 인원이 뒤섞여 지내려니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대로 남하를 계속해 북위 40도에서 방향을 틀고 일본 기지로 귀환하면 임무는 끝인데 이때쯤이면 슬슬 긴장이 풀리게 마련이다.

    그 순간 레이더에 휘점이 번쩍거렸다. 레이더가 뭔가를 감지한 것이다. 정찰기에 탑재된 APS-95 레이더는 반경 400㎞를 샅샅이 훑는 최신형 레이더다. 전탐사는 얼른 정찰기의 위치를 살폈다. 정찰기는 현재 청진 앞바다 150㎞ 지점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명확히 공해상이고 접근하고 있는 정체불명 비행체도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탐관에게 보고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전탐사는 고개를 돌려 전탐관을 찾았다.

    “미확인 비행체가 접근 중입니다.”



    “어랑에서 출격한 미그15 같군. 50㎞ 이내로 접근하거든 보고해.”

    전탐관이 레이더를 살피더니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듯 계속 감시할 것만을 지시했다. 북한 공군의 미그기들이 출격해서 동해상을 정찰비행하는 EC121을 요격하는 일은 그동안 몇 차례 있었지만 큰 위협은 아니었다. EC121의 고성능 레이더는 동해안은 물론 북한 전역의 군사기지를 샅샅이 훑고 있기에 이륙하는 미그기를 즉시 포착했고, 미그기가 요격 위치에 도달하기 전에 충분히 대피할 여유가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북한은 매우 호전적인 나라다. 지난해(1968년)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피랍 된 바 있고, 또 1965년 4월28일에는 동해상을 정찰비행 중이던 미 공군 RB47 스트라토 정찰기가 북한 공군 미그17의 공격을 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요코다 기지로 귀환하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미군은 정찰기를 고성능 레이더를 탑재한 신형 EC121로 교체했고, 정찰비행 노선도 연안으로부터 80㎞ 공역에서 150㎞ 공역으로 후퇴시켰다. 그렇게 되면서 미그기의 요격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휘점은 오래가지 않아 사라졌다. 역시 위협비행이었다. 정찰기 EC121은 아쓰기 기지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美, ‘한국은 1일 작전권’ 경고

    1969년은 무엇보다도 인류가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미국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달에 무사히 착륙했고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디디면서 인류는 새로운 역사를 향해 힘찬 출발을 했다.

    그렇게 인류가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동안에도 아시아에서는 위기가 계속 고조되고 있었다. 한반도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고, 베트남은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지루한 전쟁의 수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한반도에서 푸에블로호 사건을 겪고 베트남에서 구정공세를 당하면서 미국의 반전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존슨 대통령은 결국 재출마를 포기했고, 아시아에서 철수를 공언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은 정말로 아시아에서 손을 뗄 것인가. 그것은 남과 북 모두에 지대한 관심사였다. 군사력은 북한이 한국보다 우세하다. 그러니 미군의 철수는 곧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의미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그리 간단하게 포기할 대상이 아니었다. 한반도가 공산화하면 일본의 안보도 위협을 받게 되면서 미국의 태평양 전략은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다. 어느 한 국가가 공산화하면 아시아 대륙 전체가 공산화할 것이라는 도미노 이론이 불변의 철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미국은 ‘벼랑 끝 전술’로 재미를 본 북한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낼 필요를 느꼈고, 그 결과 1969년 3월 포커스레티나 훈련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포커스레티나 훈련은 완전무장한 공정대원 2500여 명이 미 본토에서 C141 대형 수송기로 31시간 만에 한반도로 긴급 공수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훈련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미 본토에서 1일 작전권에 들어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북한에 섣부른 오판을 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 것이다. 미국은 지상군이 일부 철수하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철저하게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오산 미 공군기지 주기장에 F106A 델타다트 전투기 편대가 특유의 삼각형 날개를 번쩍이며 줄지어 서 있었다. 미 본토에서 오산기지로 긴급 이동한 제318요격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들이다. 그리고 활주로 건너편에는 오키나와 나하기지에서 날아온 82요격전투비행단 소속 F102A 델타대거 전투기들이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양쪽 다 지난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이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긴급 전진배치된 전투기들.

    공중도발 타깃은 서해 5도?

    이즈음 한국군과 주한미군 수뇌부들은 한시도 경계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커스레티나 훈련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올해(1969년)는 북한 김일성 수상의 회갑이다. 군부에서 위대하신 수령 동지에게 뭔가를 선사하려들 지 모른다. 도발을 한다면 이번에는 공중일 것이다. 군 수뇌부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북한은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납치를 통해서 지상과 해상 도발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공중 도발을 감행한다면 타깃은 어딜까. 서울은 휴전선에서 불과 40㎞밖에 떨어지지 않아 전투기가 발진 수분 만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군 수뇌부는 서울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서울 공습은 곧 전면전인데 북한이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북한 공군은 어디를 노릴까.

    정보당국은 백령도를 포함한 서해 5도를 유력한 후보지로 꼽고 있었다. 백령도는 북한의 옹진반도가 바로 건너다보이는 곳으로, 북한이 기습 공격을 감행하면 고립될 위험이 있다. 북한이 백령도를 기습 점령해버리면 아시아에서 또 다른 전쟁을 원치 않는 워싱턴 당국은 확전 대신에 북한의 서해 5도 점령을 현실로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전쟁을 통해 미군은 아시아 전쟁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여차하면 미국이 발을 뺄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 동요가 걷잡지 못할 정도로 극심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북한이 노리는 바다. 기습침공에 취약한 서해 5도와 흔들리는 미국. 그야말로 국지전의 효과를 극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군 정보당국이 백령도를 꼽은 데는 중국의 금문도 침공도 큰 참고가 됐다. 금문도는 중국 푸젠(福建)이 코앞에 건너다보이는 대만의 영토로 여러모로 한국의 백령도와 비견되는 섬이다.

    중국은 금문도와 그 옆의 마조도를 기습점령하기 위해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이에 대응해 대만 공군이 요격에 나서면서 1958년 8월23일에 금문도 상공에서 대대적인 공중전이 벌어졌다. 중국은 미그15와 미그17 전투기를 출격시켰고, 대만 공군은 F86F 세이버 전투기로 대항했는데 공중전 결과는 29대 0. 중국의 미그기가 29대나 격추되는 동안에 대만 공군기는 단 1대도 피격되지 않았다. 대만 공군은 공대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 겨냥하고 발사하는 기관포와 적기 꽁무니의 열을 감지해서 추적하는 미사일 간의 싸움은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이었다.

    전탐관이 비명을 질렀다. 전탐관이 기장에게 보고를 하려는 순간 미그21이 스치듯 EC121을 가로지르는 게 창문을 통해 똑똑히 보였는데 북한 공군을 상징하는 붉은 별과 기수에 새겨진 기체번호 803이 전탐관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피시베드’는 서방에서 미그21에 붙인 별칭이다.

    도대체 미그21이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당황하던 전탐관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그21이 초저공으로 비행하다 급상승해서 치고 빠지는 일격이탈 전술로 쏠쏠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현재 위치는 청진 동북방 152㎞ 상공으로 분명히 공해상이다. 그렇지만 안심할 수 없다. 북한은 아주 호전적인 국가고 EC121은 아무런 무장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꼬리 내린 닉슨 행정부

    현기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미군 정찰기가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이제 남은 마지막 고비는 K13 미사일로 격추하는 것. 현기수는 격추는 요기에 맡기기로 하고 EC121의 앞을 가로질렀다. EC121이 급히 회피기동을 하는 것과 요기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명중인가. 그러나 기대와 달리 미사일은 목표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날아갔다. 연료는 무서운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현기수는 얼른 기체를 선회했다.

    미군 정찰기는 해면을 향해 급강하를 시도했다. 반사파를 이용해서 미사일 추적을 따돌릴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미군 정찰기를 놓쳐버린다. 현기수는 비장한 각오로 두 번째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에도 명중시키지 못하면 그대로 미군 정찰기를 들이받을 각오였다.

    날개 끝에서 작은 진동이 전해지면서 K13미사일이 미군 정찰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회피기동을 하려는 미군 정찰기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쫓아갔고 곧 후미에서 번쩍하며 섬광이 일었다. 명중이었다. 명중을 확인한 현기수는 급히 기수를 틀었다.

    31명의 승무원을 태운 미 해군 정찰기 EC121은 불길에 휩싸인 채 동해상으로 추락했다. 시곗바늘은 1969년 4월15일 오후 3시5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기수는 그 공로로 공화국 영웅이 됐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추천됐다.

    북한은 영공을 침입한 미군 정찰기를 격추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닉슨 행정부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푸에블로호 때 존슨 행정부는 북한에 사실상 굴복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82명의 승무원이 무사히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돌아올 승무원이 없다. 북한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인가. 아니면 미국은 역시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인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가 숨을 죽이고 사태를 지켜보았다.

    상황은 전과 비슷하게 진행됐다. 미국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동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해서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북한이 큰소리를 치는 것도 똑같았다.

    군사정전위원회 북한 대표 이춘선은 미군 정찰기의 소속을 들먹이며 도리어 유엔 수석대표인 냅 미군 공군소장을 몰아붙였다. 미국을 직접 상대할 테니 유엔군 대표는 빠지라는 것이었다. 이춘선은 기세등등했고 한국은 아무 소리 못하고 사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치킨 게임의 승자는 이번에도 북한이었다. 처음에는 펄펄 뛰며 대량보복을 호언하던 닉슨 행정부는 조금씩 말꼬리를 내리더니 결국 어물쩍 넘어가는 쪽을 택했다. ‘아시아에서의 전쟁은 아시아인들에게’를 표방하며 당선된 닉슨에게 아시아에서의 또 다른 전쟁은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오 세 영

    1954년 충남 홍성 출생

    경희대 사학과 졸업

    1993년 역사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으로 글쓰기 시작

    저서 : ‘만파식적’ ‘화랑서유기’ ‘창공의 투사’ ‘소설 자산어보’ ‘구텐베르크의 조선’ 외


    또 한 차례의 벼랑 끝 전술이 성공하면서 북한은 미국과 대등한 상대가 됐고 대한민국은 남북문제에서 국외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북한과 속절없이 밀리는 대한민국. 언제까지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나 아직은 경제력도 군사력도,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명분도 북에 밀리는 현실이었다.

    북한은 종이호랑이 미국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적화통일을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이번에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번영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여전히 짙은 구름이 한반도 상공을 덮고 있는 가운데 1970년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남과 북은 영구집권과 세습화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시선은 동해 상공에 머물고…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년 3월 포커스레티나 훈련에 참가한 미군 공정대원들이 C141 수송기를 타고 한반도로 이동하고 있다.

    금문도 기습점령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군 수뇌부는 백령도는 경우가 다르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11년 전 대만 공군이 완승을 거둔 이유는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북한 공군의 전력이 우세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인 F5A로는 북한 공군의 신예 미그21을 대적하기 힘든 게 엄연한 사실. 거기에다 북한 공군은 한국 공군에는 없는 IL28 경폭격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IL28 경폭격기는 서해 5도 기습전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한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미 공군은 F102A 델타대거와 F106A 델타다트 전투기 분견대를 오산기지에 급파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우리의 하늘을 미 공군에 맡길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은 알토란 같은 추가 군원 1억달러를 공군력 강화에 집중적으로 쏟아 부었고, 그 결과 피스 스펙테이터 프로그램(Peace Spectator Program)에 따라서 한국 공군은 최신예 팬텀 전폭기를 보유하게 됐다. 하지만 팬텀기가 실전배치(1969년 8월) 되기 직전인 1969년 4월에 먹구름이 한반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함경북도 김책시 북한 공군대학. 동해안의 항구도시 김책시는 일제강점기까지 성진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묵묵히 지도를 들여다보던 공군대학장 김기옥 소장은 천천히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밤늦게 출어를 하는 걸까, 유진단 쪽에서 어선의 불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김기옥은 6·25전쟁 때 미 공군 최고의 에이스 조종사였던 토머스 젤레스 대위가 몰던 전투기를 격추하면서 북한 공군 최초로 공화국 영웅이 된 인물이다. 그리고 1994년에 70회 생일을 맞았을 때 김정일로부터 직접 생일상을 받았을 만큼 북한 공군에선 독보적인 존재였다.

    김기옥 소장은 입맛이 썼다. 뭔가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데 마땅한 방책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해군은 푸에블로호 납치로 수령 동지에게 큰 칭찬을 들었다. 공군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데 어디가 좋을까. 다시 상황판 앞으로 돌아온 김기옥은 서해에서 휴전선 전역을 거쳐서 동해상으로 차례로 시선을 옮겼다. 일단 서울은 아니다. 전면전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기옥의 눈이 백령도에 머물렀다. 역시 저곳이 좋을까. 그러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안포로 포격하고 IL28 경폭격기로 폭격한 다음 병력을 상륙시키면 백령도를 수비하는 한국 해병대는 고립될 것이다. 긴급발진한 남한 공군의 F5 전투기는 태탄기지의 미그21이 차단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주한미군의 F102와 F106 전투기들이 문제였다. 미 공군과 공중전을 벌이면 자칫 전면전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

    김기옥은 시선을 동해 쪽으로 돌렸다. 지도에 미군 전자정찰기가 동해상을 비행하는 경로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발진하는 미군 전자정찰기는 제집 드나들 듯 동해 상공을 비행하며 북한을 정찰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눈에 거슬리던 참인데 차제에 저걸…. 정찰기는 주한미군 소속이 아니니 전면전으로 번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격추하느냐는 것인데…. 잠시 생각하던 김기옥은 결심을 한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차를 대기시켜라. 평양으로 가겠다.”

    김기옥이 급히 기호군관을 불렀다.

    또다시 몰려오는 전운(戰雲)

    지금은 남과 북의 경제 규모가 비교도 되지 않지만,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북한이 군사력은 물론 경제력에서도 남한을 능가하고 있었다. 1956년에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고 식량도 괄목할 만큼 증산됐다. 그리고 배급제 실시로 1100만명의 북한 주민은 최소한 굶지는 않게 됐다. 굶주림 해결이 최대의 현안이던 당시로서 굶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분명 내세울 만한 업적이었다.

    평양은 전쟁의 상흔을 완전히 복구하고 번듯한 현대도시가 됐고 농촌에도 전기가 들어갔다. 북한은 대약진운동의 실패에 이어서 문화대혁명의 광기로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보다도 잘살았으며 당시 아시아에서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에 속했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0년 8월6일 김포공항에서 일반에게 공개된 북한의 미그15 제트기. 사흘 전 북한 공군 소속 정낙현 소위가 타고 귀순한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2800만 국민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일념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경제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출발은 북한만큼 순조롭지 못했다. 나라 살림은 외국 원조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었고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났다.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고 노동자의 임금은 일본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였다. 미국은 필리핀 원목으로 만든 가구를 한국에서 수입했다. 필리핀에서 직접 수입하는 것보다 원목을 한국으로 가져가서 그곳에서 가공해 수입하는 게 더 경제적일 만큼 한국 노동자의 인건비가 쌌다.

    1965년을 ‘열심히 일하는 해’로 정한 정부는 1966년을 다시 ‘또 열심히 일하는 해’로 정하고 국민에게 허리띠를 졸라맬 것을 당부했다. 오로지 죽어라 하고 일하는 것만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다가 1·21사태 이후엔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세’로 표어가 바뀌었다. 일만 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출발은 힘들었지만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대한민국은 조금씩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나갔다. 아직은 북한보다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뒤지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이 막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한반도에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위기를 무사히 극복하고 번영의 길로 올라설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전쟁의 폐허로 굴러 떨어질 것인가. 지난해(1968년)부터 시작된 위기는 해가 바뀌고도 계속되었다.

    공군 소장 오극렬을 중심으로 김기옥 소장과 조명록 대좌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앉아 있었다. 급히 평양으로 달려온 김기옥은 공군의 두 실력자와 비밀회동을 갖고 있었다. 남한과 미국은 지금 포커스레티나 훈련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령 동지의 회갑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세 사람은 긴급 회동을 했고 공중기습을 감행할 것에 의견일치를 본 것이다.

    “IL28을 출격시켜 백령도를 때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만하면 해군 쪽보다 큰 선물이 될 텐데.”

    김기옥-오극렬-조명록 회동

    시선이 줄곧 백령도에 머무르고 있었던 조명록 대좌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남한과 미국에서 반격하기 전에 충분히 서해 5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1977년부터 1995년까지 18년 동안 공군사령관을 지내는 조명록 대좌는 북핵 위기 때 북한 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한 바로 그 인물이다.

    “백령도는 위험해. 자칫 전면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소.”

    김기옥이 반대를 했다. 사실 그는 김책시를 출발할 때 이미 복안을 마련해놓고 있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대수입니까. 그까짓 남반부 군대야 우리 인민군이 얼마든지 밀어붙일 수 있고 미군들은 종이호랑이 아닙니까. 전쟁이 나면 꽁무니를 뺄 겁니다. 베트남전을 통해서도, 또 작년의 푸에블로호 납치를 통해서도 미국이 종이호랑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조명록 대좌가 호기 있게 받았다.

    “수령 동지께 선물을 드리자는 것이지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오.”

    김기옥이 핀잔을 주었다.

    “백령도를 치더라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남반부에서는 펄쩍 뛰겠지만 미국이 뒤를 잡고 늘어질 테니까요. 미국은 지금 전쟁을 벌일 형편이 아닙니다.”

    조명록 대좌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나중에 공군사령관 시절인 1981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미그기와 IL28 경폭격기를 동원해서 백령도를 위협한다.

    “포커스레티나 작전은 괜히 하는 게 아니오. 그것은 미국이 절대로 남조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보내는 것이오.”

    “그러면 김기옥 소장 동지는 무슨 좋은 복안이라도 있소?”

    오극렬이 입을 열었다. 혁명투사 집안으로 김정일 위원장과는 어릴 적에 같이 자란 사이인 오극렬은 나중에 공군사령관과 인민군 총참모장을 역임하는 인물이다.

    “내 계획은….”

    김기옥이 지시봉으로 동해 상공을 가리키자 오극렬과 조명록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군 정찰기가 동해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고 있소.”

    김기옥이 비로소 속내를 털어놓았다.

    ‘소련군도 불가능한 일’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오극렬과 조명록(오른쪽).

    “그럼 미군 정찰기를 격추하자는 겁니까? 미군 정찰기는 육지로부터 150㎞ 떨어져서 비행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오극렬이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다. 1931년생이니 이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의 공군 지휘관 중에서는 제일 연하지만 그래도 당 서열은 그가 가장 높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소련 해군도 미군 정찰기를 손보려 하고 있지만 마땅한 요격 수단이 없어서 참고 지내는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재주로 미군 정찰기를 격추하겠다는 겁니까.”

    조명록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일본 아쓰기 기지에서 출격하는 미 해군정찰대 소속 EC121 전자정찰기는 북한은 물론 소련에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지만 현실적으로 마땅한 요격 수단이 없었다.

    “하늘을 나는 정찰기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정찰함과 경우가 다르지 않소?”

    오극렬 소장은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정찰함과 정찰기는 경우가 다르다. 솔직히 정찰함 나포는 배짱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정찰기 격추는 고도의 수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비행기가 떨어지면 승무원이 전부 죽을 테니 협상 수단도 마땅치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가능성도 희박하고 실리도 별로 없어 보이는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물론 요격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오.”

    김기옥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미군 정찰기를 요격한 선례는 있다. 4년 전에 미그17이 긴급발진해서 북한 연안으로부터 80㎞ 떨어진 공해상을 비행하던 RB47 스트라토 미군 정찰기를 공격했던 적이 있다. 미군 정찰기는 피격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상처투성이가 돼 귀환했다. 그 사건 이후 미군은 정찰비행 코스를 연안으로부터 150㎞ 공해상으로 바꾸었고 기종도 최신예 EC121 워닝스타로 교체했다. 비행코스가 70㎞나 더 멀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요격이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미그15는 최고속도가 시속 652마일에 달해서 최고속도가 시속 290마일에 불과한 EC121을 쫓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EC121에 탑재된 신형 APS-95 레이더는 반경 400㎞를 샅샅이 훑으면서 북한 공군기의 출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기에 미그기가 접근하면 즉시 안전지대로 피할 것이다. 무리해서 추격하다가는 미그기의 연료가 떨어져 바다에 추락할 것이다. 연안으로부터 150㎞ 떨어져 비행하는 적군 정찰기를 격추하는 것은 당시 소련 공군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미그21로 일격이탈”

    그걸 모를 김기옥이 아니다. 그런데 왜 자꾸 요격을 고집하는 걸까. 오극렬과 조명록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김기옥을 쳐다봤다. 김기옥은 절대로 무모한 계획을 입안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동안 어랑기지에서 미그15를 긴급발진시키면서 미군 정찰기의 대응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소.”

    두 사람은 잠자코 듣기로 했다.

    “그 결과 미그21이라면 미군 정찰기를 격추할 수 있을 거란 결론을 얻었소.”

    김기옥이 확신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그21은 애초부터 소련에서 미국의 B52 전략폭격기를 요격할 목적으로 개발된 전투기다. 긴급발진해서 적기를 요격하고 신속히 이탈하는 일격이탈 성능은 베트남전에서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미그21이라니…북창기지의 미그21을 말하는 겁니까?”

    조명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최신예 미그21기는 평안남도 북창기지에 배치돼 있다.

    “그렇소.”

    김기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명록은 여전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신예 미그21이 기존의 미그15나 미그17에 비해서 뛰어난 성능을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150㎞나 떨어져서 비행하는, 그것도 고성능 레이더를 장착한 정찰기를 격추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미그21을 어랑기지로 옮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정찰위성이 북한 전역을 훑어보고 있었다. 미그21이 북창기지를 떠나 어랑기지로 이동을 하면 즉각 정찰위성에 포착될 것이다.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소.”

    오극렬이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며 난색을 표했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 정찰위성이 평양을 촬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소. 그래서 정찰위성의 감시를 피할 방법을 강구해냈소.”

    미그21을 출격시켜 미 정찰기를 요격하는 것은 사실 다음 문제다. 급선무는 미그21을 어떻게 미국의 감시를 피해 어랑기지로 옮기느냐는 것이다. 김기옥은 첫 번째 과제에 대해서는 이미 해결책을 갖고 있었다.

    “미군 정찰기가 기지를 이륙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싶은데, 그 일은 아무래도 노동당 연락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소.”

    김기옥은 벌써 두 번째 과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리 자신을 하는데 더 반대할 수 없었다. 두 공군 지휘관은 적극 도울 뜻을 비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운명의 이륙

    드넓은 여주평야 훈련장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본스틸 유엔군 사령관을 위시해서 국내외 VIP들이 관람대에 자리를 잡고서 미 본토에서 긴급 공수된 미 육군 102공정사단의 낙하산 강하훈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의 공수작전과 이어서 포항에서 벌어질 한미 해병대의 연합상륙훈련은 한미합동 포커스레티나 훈련의 하이라이트다.

    드디어 미 본토에서 직접 날아온 C141 스타리프터 장거리 수송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를 따르는 C130 허큘리스 중거리 수송기는 일본에서 발진한 것인데, 곧 미 육군의 공정대원들이 낙하를 하면서 여주벌 하늘에는 하얀 꽃이 만개할 것이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년 포커스레티나 훈련 당시 여주벌에 낙하한 미군 공정부대원들.

    훈련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각 한국에 병력을 파견할 의사를 분명히 했고 또 그럴 능력도 있음을 과시했다. 그런데도 공수훈련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북한은 계속해서 포커스레티나 훈련을 비난하고 있었다. 훈련을 구실 삼아 또 다른 도발을 획책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푸에블로호 사건을 통해서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의 단맛을 톡톡히 보았다.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면 닉슨의 공화당 정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궁금하기는 북한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쿄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쓰기 시는 편리한 교통과 수려한 주변 환경을 갖춘 전원도시다. 4월의 이아야마벚꽃 축제와 8월의 은어 축제가 유명한데 이때가 되면 인근 도쿄와 요코하마는 물론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이 도시로 몰려든다.

    시 외곽에 위치한 미 해군항공대 기지에서 중형 비행기 한 대가 굉음을 울리며 기지를 이륙하고 있었다. 긴 동체에 특징인 수직꼬리날개 3개. 기체 위로 높이 솟은 탑에는 고성능 정찰장비들이 탑재돼 있다.

    쓰레기통을 옮기던 청소부는 이륙하려는 기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길이는 38.6m, 너비는 35.4m, 그리고 높이가 8.23m에 무게는 65.8t이라고 교육을 받았는데 눈어림으로 봐서 대충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비행기가 전자정찰기 EC121이 틀림없을 것이다. 청소부는 얼른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조총련 지부에서 EC121이 이륙할 때마다 정확한 시각을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시각을 확인한 청소부는 미리 정해놓은 암호를 상기하며 서둘러 공중전화로 향했다.

    EC121M-일련번호 135749-워닝스타 정찰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길고 지루한 임무지만 참고 귀대하면 외출의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31명의 승무원은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각자가 담당한 계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그들에게 닥칠 운명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미그21 분해해 열차로 이송

    정비사들을 독려하던 지도원이 김기옥 소장과 현기수 대위를 보더니 황급히 달려왔다.

    “떼어내는 것도 그렇게 어려웠는데 조립하는 건 더 힘들었습니다.”

    미그21기 2기가 분해돼 열차편으로 어랑기지로 이송됐다. 정찰위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김기옥 소장이 그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다시 조립을 해야 하는데 좁은 천막 안에서 작업을 하려니 정비사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답답하지만 미국 정찰위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천막 안에서 작업을 한 것이다.

    “수고 많았다. 이제 천막을 걷어도 좋다.”

    천막이 걷히자 두 대의 미그21이 위용을 드러냈다. 미국의 정찰위성 사모스가 까마득한 고공에서 북한 전역을 샅샅이 훑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숨을 필요가 없다. 1960년대에 개발된 사모스 정찰위성은 지금의 키홀 위성과 달리 동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하지 못하고 지정된 장소에 이르러 필름 박스를 투하하면 대기하고 있던 정찰기가 공중에서 박스를 수거해서 정보부대에 인계하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필름 투하와 회수, 그리고 이송과 분석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니 출격이 임박한 마당에 정찰위성은 더 이상 경계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김기옥이 현기수에게 물었다. 김기옥은 정찰기 EC121을 격추하는 임무를 최고의 조종사 현기수 대위에게 맡겼다. 김기옥 소장이 북창기지에서 가지고 온 비행기는 미그21 중 개량형인 BIS형. BIS형은 추력 7500㎏의 투만스키 R-25 엔진을 장착해서 급상승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 고공 요격용 전문 기종이다.

    일단 조립은 마쳤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당장 시급한 것은 발진이다. 긴급발진이 특기인 미그21은 상대적으로 활주거리가 짧은 편이지만 그래도 활주로가 최소한 800m는 돼야 하는데 구식 기종을 운용하는 어랑기지의 활주로는 600m에 불과했다.

    “기관포를 제거해서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면 그럭저럭 이륙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기수가 기체를 꼼꼼히 살피더니 긍정적인 대답을 했다. 그러나 김기옥은 여전히 신중했다. 장착된 GSH-23 기관포를 제거하면 무게가 훨씬 가벼워지겠지만 그렇게 되면 무기는 AA-8 공대공 미사일밖에 남지 않는다. 미사일은 명중률이 많이 떨어진다. 더구나 AA-8 미사일은 열추적 방식이어서 제트기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열을 발하는 프로펠러 비행기를 맞히는 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김기옥은 기관포를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무사히 이륙하더라도 접근이 쉽지 않을 겁니다.”

    산 넘어 산이다. 현기수와 함께 출격할 동료 비행사가 다음 문제를 제기했다. 최고속도가 마하 2.1에 달하는 미그21이 느린 정찰기를 쫓아가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고성능 레이더를 피해서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물론 쉬운 임무가 아니다. 동무들은 공화국 최고의 비행사란 사실을 명심하라.”

    김기옥이 두 조종사를 격려했다. 북창기지에서 제일 우수한 조종사 둘을 선발해온 터였다.

    “정 안 되면 들이받겠습니다”

    그 무렵 대한민국은 4만4000명에 달하는 지상군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하고 있었지만, 베트남에 전투병력을 파병한 것은 남한보다 북한이 먼저였다. 북한은 베트남에 공군을 파병했는데 북한 공군 203비행연대 소속의 전투비행사들은 북폭을 감행하는 미국 전투기들을 상대로 요격에 나서 최신예 F105 선더치프와 F4 팬텀을 격추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당연히 북한 공군에는 실전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조종사가 여럿 있었다.

    “출격일은 4월15일이다. 수령님 생일선물로 이만한 게 없을 것이다.”

    150㎞ 떨어져 비행하는 정찰기를 요격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임무가 아니다. 갔다가 돌아오기도 벅찬 거리다. 하지만 정확한 비행 스케줄을 안다면 위험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쓰기 현지에서 정찰기의 출격 시간을 면밀히 살핀 결과 김기옥은 출격 일자를 4월15일로 정했다.

    두 조종사는 말없이 상황실로 향했다. 답답한 것은 예행연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랑기지에 미그 21이 배치돼 있다는 사실이 미국 정찰위성에 포착되면 만사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비행정보가 정확하다면 일단 조우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상황판을 들여다보는 현기수의 얼굴에 비장한 각오가 흘렀다. 요격 예상 지점은 청진 동남방 152㎞ 해상. 그곳은 미군 정찰기의 비행코스 중에서 육지와 가장 근접한 곳이며 어랑기지에서도 가까운 지점이다.

    현기수가 ‘일단’이란 단서를 붙인 것은 이륙에 성공하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연료를 가득 실으면 시간상으로는 요격이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미그21은 연료탱크가 기체의 앞쪽에 편중돼 있어 연료가 소모되면서 기체의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최소한 20%에 해당하는 150갤런은 남겨놓아야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공중기동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 150갤런을 남겨놓아야 한다면 아무리 길게 봐도 요격 가능 시간은 5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현기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5분이면 각 기에서 공대공 미사일을 겨우 1발씩 발사할 수 있는 시간밖에 안 된다. 첫 발에 명중시켜야 한다는 얘긴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년 9월 주한 미8군 사령관직을 떠나는 찰스 본스틸 대장 부부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 이임 인사를 하고 있다.

    “까짓거, 정 안 되면 그대로 들이받겠습니다.”

    요기(僚機) 조종사가 비감한 얼굴로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현기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군 정찰기에 근접한 다음의 일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무사히 이륙해서 접근하는 것이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1969년 4월15일. 어랑기지.

    두 대의 미그21이 활주로 끝에 정렬했다. 관제탑에서 이륙을 지켜보는 김기옥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성공 여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머지는 천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필요한 연료 350갤런과 공대공 미사일 외에 불필요한 장비는 모두 제거했다. 이론상으로는 이륙이 가능하지만 단 한 차례도 예행 훈련을 실시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억눌렀다.

    기지의 레이더는 벌써부터 미군 정찰기의 비행경로를 추적하고 있었다. EC121 정찰기는 지금 블라디보스토크 소련 해군기지를 정탐하고서 남하 중이다. 곧 청진을 지나서 경성, 어랑에 이를 것이다. 고도와 항로 모두 예상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미그21이 강렬한 엔진음을 토해내며 활주로를 질주했다. 삽시간에 활주로 끝에 다다른 미그21은 곧 기수를 쳐들었고 맹렬한 기세로 하늘로 솟아올랐다. 김기옥은 비감한 얼굴로 두 대의 미그21기를 응시했다.

    레이더 화면을 들여다보던 전탐사는 슬슬 지루함을 느꼈다. 아쓰기 기지를 떠난 지 벌써 7시간이 흘렀다. 긴장이 풀리면서 슬슬 싫증이 날 때다. EC121 전자정찰기의 승무원은 모두 31명. 해병대 소속 전탐사 1명을 빼면 전부 해군 소속이다.

    “…!”

    전탐사가 하품을 하려는데 레이더에 휘점이 번쩍였다. 또 북한 어랑비행장에서 미그기를 출격시킨 것인가. 전탐사는 얼른 위치를 확인했다. 북위 129도41분, 동경 41도29분. 틀림없는 공해상이다. 심심하면 한 번씩 시도하는 출격으로 별 위협은 못 됐지만 그래도 보고는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전탐사는 의자를 돌리며 전탐관을 찾았다.

    “뭐야?”

    “북한 전투기가 긴급발진을 한 것 같습니다.”

    “어랑기지의 미그 15겠지. 잘 지켜봐!”

    전탐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데 갑자기 레이더에서 정체불명 비행체의 항적이 사라졌다. 그새 기수를 돌렸나? 전탐사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근거리 공중전을 주임무로 하는 미그15는 항속거리도 짧은 데다 자체 레이더가 없어서 정찰기를 쫓아올 수 없다.

    바닷속으로 처박힐 듯 급강하를 시도한 두 대의 미그21은 수면에 닿을 듯 초저공으로 비행했다. 무사히 이륙했으니 두 번째 고비를 넘긴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더 있다. 어떻게 미군 정찰기에 몰래 접근하느냐는 것과 제한된 시간에 격추해야 하는 일이다.

    바다에서 당한 지 1년 만에 하늘에서 큰코다친 미국

    1969년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의 북한 측 대표 이춘선.

    두 대의 미그21기가 속도를 높이며 정찰기 EC121을 향해 접근을 시도했다. 어랑기지 지상관제소와는 이미 교신이 끊겼다. 이제부터는 알아서 추적해야 한다. 미그21에는 소형이지만 자체 레이더가 장착돼 있다. 그렇지만 아직은 레이더를 작동시킬 때가 아니다. 출력 100kW짜리 I밴드 레이더를 작동시키는 순간 미군 정찰기에 즉각 포착될 것이다.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을까. 현기수는 모든 것을 천운에 맡기기로 하고 조종간을 움켜잡았다. 연료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다. 공기 저항이 심한 수면 위를 비행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청진 남동쪽 150㎞ 해상에 이르렀다. 예상대로라면 고도 1만m 상공에서 미군 정찰기가 비행하고 있을 것이다. 현기수는 고개를 돌려 나란히 비행하고 있는 동료기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조종간을 힘껏 당기며 급상승을 시도했다. 그리고 미그21의 고도가 3000m에 이른 것을 확인하고는 레이더를 작동시켰다.

    EC121의 전탐사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난데없이 파장 990pps 전파가 정찰기를 향해 날아들고 있던 것이다. 망망대해 한복판에서 웬 탐지파란 말인가. 출력이 약하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EC121 정찰기를 추적하고 있었다. 전탐사는 얼른 전탐관을 불렀다.

    “뭐야? 근처에 해군 함정이라도 떠 있나?”

    전탐관도 선뜻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해군 함정에서 발사한 전파치고는 출력이 너무 약했다. 그렇다면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근방에 나타났다는 얘긴데….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화면을 응시하는 전탐사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미확인 비행체는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장에게 보고해야 할 것 같았다. 전탐관은 신속히 인터콤을 들었다.

    숨막히는 추격전

    현기수 대위는 레이더에 미군 정찰기가 포착되는 것을 확인하며 쾌재를 불렀다. 이것으로 세 번째 고비를 넘긴 셈이다. 현기수는 방향을 잡으며 레이더를 추적용 모드로 전환했다. 지금쯤 미군 정찰기에서도 전파를 탐지했겠지만 미그기의 위치는 쉽게 확인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고성능 레이더라고 해도 해면반사 때문에 바로 아래서 수직상승하는 기체는 추적하기 힘들다.

    “사이클이 추적용으로 바뀌었습니다!”

    전탐사가 비명을 질렀다. 정체불명 비행체에서 발사하는 전파의 사이클이 990pps에서 1800pps로 바뀐 것이다. 전탐관은 가슴이 철렁했다. 990pps짜리 수색용 사이클과 1800pps짜리 추적용 사이클을 사용하는 레이더라면 미그21에 장착된 스핀 스캔 레이더인데…그렇다면 미그21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EC121 정찰기가 비행하는 수역에는 미그21이 배치된 비행장이 없다. 그리고 미그21이 이동배치됐다는 첩보도 없었다.

    “접근하는 기체가 있는가?”

    “없습니다.”

    레이더 담당 하사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전탐관은 황급히 레이더를 살펴봤지만 이곳을 향해 접근하는 기체는 탐지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전탐관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무슨 일인가?”

    인터콤에서 기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그21의 추적 레이더에 미군 정찰기가 정확하게 잡혔다. 거리는 4㎞. 미군 정찰기는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서방에서 아톨 미사일이라고 부르는 K13 공대공 미사일의 유효사정거리는 5㎞지만 열추적방식인 만큼 프로펠러 비행기를 격추하려면 더 접근해야 한다. 연료 잔량을 확인한 현기수는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시계를 힐끗 보니 바늘이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웃! 피시베드(Fish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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