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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의 리걸 에세이

위안부 문제의 국제법 쟁점

불법성 인정이 먼저다

  • | 정재민 전 판사·소설가

위안부 문제의 국제법 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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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1월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향후 조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히면서 위안부 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논란과 한국의 대응 전략을 국제법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판사 시절 성폭력 사건을 재판하면서 애로가 있었다. 남성 판사로서 여성 피해자의 상처를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피해자의 떨림과 눈물에 비추어 그동안 내가 당한 그 어떤 폭력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일 것이라고 머릿속으로만 가늠할 뿐이었다. 하물며 청춘에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남의 나라 군인에게 하루에도 수차례 몹쓸 짓을 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내가 어찌 감히 공감하겠는가. 나는 모른다. 은하계에 태양계가 1000억 개 있고, 온 우주에 그런 은하계가 1000억 개 있다는 말을 들으면 우주의 넓이가 가늠되지 않고 그저 아득해지기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둔감한 내 가슴인데도 위안부 문제를 생각하면 을씨년스러운 겨울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마음이 시리다. ‘을씨년스럽다’는 말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년(1905)스럽다’에서 유래했다. 그때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긴 일, 남의 나라가 벌인 정의롭지 않은 전쟁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강제로 동원된 일, 여성을 장기간 감금해놓고 강간한 일, 그러고도 불법이라 인정하지 않는 일. 이 모든 일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 위안부 문제인데 어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분노와 슬픔이 없겠는가. 위안부 문제가 우리 국민에게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둔감한 가슴으로

그러나 공감이든 공분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이는 모두 ‘우리’ 국민이기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은 국경 밖을 넘어가는 순간 기압골을 벗어난 태풍처럼 힘을 잃는다. 국경 밖에서도 실효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국력이나 법이다. 국가 간에 적용되는 법이 국제법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국제법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위안부 관련 법적책임은 1965년 체결된 이른바 청구권협정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이후 1951년부터 한일교섭을 시작해 14년 만인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과 이에 부속하는 4개 협정(이를 통틀어 흔히 ‘한일협정’이라 한다)을 체결했는데 부속협정 중 하나가 바로 청구권협정이다. 

청구권협정 제2조는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고 이전 사유에 기인한 ‘모든 청구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위안부 문제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일본도 위안부 문제의 비윤리성과 심각성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청구권협정상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청구권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으로 본다. 그 경우 다른 과거사 청구권 문제들도 잇달아 분출될 것이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1965년 어렵게 수립한 한일관계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내부적으로는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와 청구권협정의 관계에 대해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일본에 대해서도 ‘응분의 조치’ ‘진상규명’ ‘사과’ 외에 법적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2005년 한일회담 문서 공개를 계기로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민관공동위원회가 ‘위안부 문제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법적책임이 남아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청구권협정을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존속하고 만약 개인청구권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면 우리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외교적보호권

2017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한일 위안부 야합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2017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회원들이 ‘한일 위안부 야합 폐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그러나 당시 정부도 일본을 상대로 법적책임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청구권협정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그만큼 국내외적으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련 단체 등에 향후에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위안부 피해자들이 이러한 정부의 부작위(不作爲)가 헌법을 위반해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이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30일 청구권협정 제2조에 관한 한일 간 해석상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있는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말하는 해석상 분쟁이란 ‘모든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일본 입장과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한국의 입장 차이를 말한다. 

특기할 것은 이 헌재결정문의 주문과 이유의 취지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주문에서는 정부에 ‘해석상 분쟁 해결 의무’를 인정했지만 이유에서는 ‘외교적보호권 행사의무’를 인정했다. 헌재결정문을 보면 당시 정부는 ‘우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하여 경제적 지원 및 보상을 해주는 한편, 일본 정부에 대해서는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 문제인 철저한 진상규명, 공식적인 사죄와 반성, 올바른 역사교육의 실시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위안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택하였는바, 이는 우리 정부에 폭넓게 인정되는 외교적 재량권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이고 이 사건 협정 제3조 제1항의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분쟁해결조치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므로 공권력의 불행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작위의무를 다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결정문 이유에서 일본의 ‘법적책임’을 강조하면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를 도외시한 외교적 조치는 작위의무의 이행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정부의 국제법상 외교적보호권 행사의무에 대해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재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을 기속(羈屬)하며 당사자인 정부는 이에 따라 새로운 처분을 해야 한다. 기속력은 결정문 이유가 아닌 주문에서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에는 주문과 이유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유에서 정부에 법적의무가 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거기다 헌재결정의 전체 취지나 청구인들의 의사를 고려할 때 헌재결정이 사실상 정부에 외교적보호권 행사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본다. 

외교적보호권은 자국민이 외국에서 피해를 본 경우 피해자 국가가 가해국을 상대로 법적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추궁을 당한 가해국은 금전배상, 원상회복 등의 조치를 취한다. 외교적보호권의 요건은 두 가지다. △가해국이 국제법상 위법행위를 저지르는 것과 △피해자가 가해국 안에서 먼저 소송과 같은 구제절차를 완료하는 것이다. 위안부 운영이 국제법상 위법행위라는 점에는 별 이견이 없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재판소에 제기한 소송이 모두 패소했으므로 두 요건 모두 충족된다. 

외교적보호권을 행사한다고 해서 도깨비방망이를 휘두른 것과 같이 일본이 우리 요구에 순순히 응하게 된다거나 그 밖에 많은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외교적보호권 행사의 요체는 법적책임을 추궁하는 것이고 그 경우 일본은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방어할 것이다. 다만 만약 일본을 상대로 법적책임을 추궁할 경우에는 외교적보호권을 인식하고 그 틀에서 추궁하는 것이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좀 더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한다. 

12·28 위안부합의는 한일수교 50주년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사이에 체결된 위안부합의다. 그로부터 꼭 2년 뒤인 2017년 12월 28일 위안부합의TF가 다양한 측면에서 위안부합의의 공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와 관련 현재 외교적·정치적 논의가 활발하므로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12·28 위안부합의에 대한 찬반을 떠나 순수 법적 측면에서 몇 가지 언급한다. 이 합의가 피해자들의 권리를 박탈한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2015년 위안부합의는 한일 ‘정부’ 사이에서만 유효한 것으로서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의 법적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해결’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또 한 가지 짚어둘 것은 ‘해결’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보면 우리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외교적보호권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여부와 무관하다. 즉 향후 정부 차원에서 법적책임을 추궁하거나 외교적보호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섭 과정에서 외교적보호권을 행사한 후에 합의에 이르러 외교적보호권이 소멸되는 것은 그리 문제 될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르고 한 것은 다르다. 궁금한 점은 12·28 위안부합의 교섭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을 상대로 외교적보호권 행사에 해당하는 법적책임을 추궁했는지 여부다. 

위안부합의 문안에 ‘책임’이 들어간 것은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하지만 위안부TF 보고서에는 이 점에 대해 명시적 언급이 없다. 만약 외교적보호권을 행사했다면 이로써 정부가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부과한 외교적보호권 행사의무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의의도 있다.

강간은 맞지만 불법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장 진전된 입장으로 평가되는 1994년 고노담화는 위안부의 모집 등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끝내 불법성은 인정하지 않았다. 강제성은 인정하고 불법성을 부인하는 것은 마치 ‘강간은 맞지만 불법은 아니다’ 같은 궤변이다. 

일본은 같은 논리를 식민지 지배에도 적용한다. 한일협정 체결 당시부터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강제성을 부인해왔다. 그러다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인 2010년에 비로소 간 나오토 총리가 ‘정치적·군사적 배경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나라와 문화를 빼앗기고…’라고 하여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인정했다. (우리 사회는 흔히 아시아 제국에 대한 사죄를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만을 강조하지만 나는 한반도 식민지 지배의 강제성을 특정해서 인정한 간 나오토 담화의 계승도 강조하는 것이 더 실효적이라 본다.) 

간 나오토 담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까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것도 ‘강도는 맞지만 불법은 아니다’는 궤변이다. 식민지 지배 자체를 불법이라고 하지 않는데 위안부 문제만 불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내 소견으로는 식민지 지배든 위안부 문제든 일본에 대해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면 불법성 인정이 최우선이라 생각한다. 법적책임 추궁이나 사과 요구는 그다음이다. 누구든 합법이라 생각하는 일에 어떻게 법적책임을 지고 진정한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장담하겠는가. 일본도 한일수교 당시에는 불법성을 인정하지 못했지만 반세기가 지난 이제는 용기를 좀 더 내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야 ‘강간은 맞지만 불법은 아니다’ 식의 어색한 논리에서 벗어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희망을 찾을 수 있고 한국과 일본이 훨씬 더 가까운 지점에서 조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건대 불법성 인정이 먼저다.


정재민
●서울대 법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사법연수원 수료(32기)
●前 판사, 舊유고유엔국제 형사재판소(ICTY) 재판연구관, 외교부영토법률자문관
●세계문학상, 매일신문 포항국제동해문학상 수상
●저서 : ‘보헤미안랩소디’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 ‘소설 이사부’ ‘독도 인 더 헤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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