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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정치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부끄러움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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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대한민국’을 대변하는 표현 중 하나가 ‘혼용무도(昏庸無道)’다.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정치와 이를 부추긴 세력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이다. 극단적 표현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 현실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라는 시각을 반영한다.
대학 교수들이 연말 연례행사처럼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난해엔 ‘혼용무도’가 선정됐다. ‘혼용(昏庸)’은 ‘어리석다’는 뜻인데, 구체적으로는 ‘두뇌가 모자라고, 어떤 재능도 없는’ 상태나 사람을 가리킨다. ‘무도(無道)’는 ‘도가 없다’는 뜻인데, 대개 ‘대역무도(大逆無道)’나 ‘황음무도(荒淫無道)’라는 표현에 담아 쓴다. ‘대역무도’는 순리나 상식을 멋대로 거스르는 짓이나 그런 자를 가리키며, ‘황음무도’는 음탕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무도’는 덕을 베풀지 않는 포악한 정치, 그로 인해 조성된 암울하고 혼란한 정치 상황, 그런 정치를 일삼는 통치자를 나타내는 단어로 수천 년 동안 사용됐다.



2015년 대한민국 자화상

‘혼용’은 비교적 후대에 등장한 단어다. 송나라 때 문학가 소동파(蘇東坡)가 ‘사자대부(思子台赋)’라는 작품에서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뜻으로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고, 그 후 몇몇 문인이 비슷한 뜻으로 사용했다. 같은 송나라 때 사람 왕명청(王明清)은 ‘옥조신지(玉照新志)’에서 정치가 암울하다는 뜻으로 ‘혼용’을 사용한 바 있다.
‘무도’의 출전은 ‘논어(論語)’의 ‘계씨(季氏)’편을 비롯해 ‘한비자(韓非子)’ ‘사기(史記)’ 등으로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회와 정치의 분란, 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것, 보편적 상식과 정리를 벗어나는 것, 정도를 걷지 않고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과 폭군, 할 말이 없거나 방법이 없는 것 등 다양한 뜻으로 사용됐다. 특히 ‘사기’의 ‘진섭세가’에선 ‘벌무도(伐無道)’라고 해서 포악한 군주를 토벌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2015년 한 해 우리의 상황을 대변하는 단어로 이렇듯 대단히 부정적인 두 단어가 합쳐진 ‘혼용무도’가 선정된 것은 충격적이다. 그래서 혹자는 지난 15년 동안 ‘교수신문’에 발표된 ‘올해의 사자성어’ 중 가장 강력하다는 촌평도 내놓았다. 그만큼 우리 상황이 엉망이라는 지적일 게다. 더욱이 통치자에게 붙일 수 있는 최악의 수식어가, 그것도 합성이라는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통해 선정될 정도라면 얼마나 심각한 현실 인식인지 짐작할 수 있다.
혼용무도한 통치자와 그것을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긴 측근들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추상같은 책임 추궁이 따르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되기 마련이다. 역사상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의 행태와 최후, 그리고 그들을 혼용무도하게 만든 요인을 살펴보자.



중국 10대 혼용무도 군주

중국은 수천 년 왕조체제를 거치면서 약 600명의 황제나 왕을 칭한 제왕을 배출했다. 여기에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의 최고통치자인 국군을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그런데 거친 통계이긴 하지만 이들 제왕 중 제 명에 죽은 자가 절반을 조금 넘을 정도라고 하니 제왕이란 자리가 얼마나 불안한 자리였는지 알 수 있다. 분열기나 혼란기엔 비정상적으로 죽은 제왕의 숫자가 더 늘었다.
하지만 이 수치의 이면을 좀 더 파고들면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삶을 마감한 제왕 대다수가 혼용무도한 군주였다는 씁쓸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제왕 중 중국 네티즌이 선정한 10대 혼용무도 군주의 행적을 간략히 소개한다. 이들보다 훨씬 혼용무도한 자도 많지만 행적이 비교적 뚜렷한 인물들로 한정했다.



주지육림, 황음무도, 과대망상

1. 은나라 마지막 군주 주(紂). 주왕은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인 ‘걸주’로 불리는데, 주지육림(酒池肉林)과 포락(炮烙, 불에 달궈 지지는 형벌)이라는 황음무도와 포악한 통치를 상징하는 용어들을 창조했다.
2. 수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양제(煬帝). 그 역시 사치와 향락, 포악한 통치의 대명사로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양제는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났다면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과대망상증을 보인 군주로도 유명하다. 술에 취하면 늘 거울을 보며 “이 좋은 머리를 누가 와서 자를까나”라며 스스로를 조롱했으며, 618년 난을 일으킨 측근 우문화급에게 붙잡히고도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대하느냐”며 악을 쓰다가 목 매달려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쉰, 황제 노릇 15년 만이었다.
3. 진나라를 멸망으로 이끈 2세 호해(胡亥). 진시황의 작은아들인 그는 측근 조고(趙高)의 정변으로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조고의 꼭두각시가 돼 국정을 문란케 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나아가 최초의 통일제국을 망쳤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유명한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4. 진(晉) 혜제(惠帝). 혜제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군주의 대명사로 꼽힌다. 당시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는 사태가 속출해 하루가 멀다 하고 보고가 올라오자 혜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배를 채울 곡식이 없다면 어째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루이 16세의 왕비로 국고를 탕진하고 민중을 탄압하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와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일까.
5. 명나라 황제 세종(世宗), 즉 가정제(嘉靖帝)도 혼용무도의 반열에 올랐다. 재위기간 내내 황음무도한 생활에  빠져 살았는데, 그 뒤에는 간신배들의 농락이 있었다. 미신에 심취했고, 불로장생을 추구한답시고 단약 등 약물에 중독됐다. 이 때문에 통치계급 내부의 모순은 가속화하고 국력은 갈수록 쇠퇴했다.
6. 청나라 황제 함풍제(咸豊帝)는 중국이 열강에 능욕을 당하고 내분에 시달리는데도 나랏일은 뒷전이고 여색에만 몰두했다. 2차 아편전쟁이 터지고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공격하자 1860년 서태후와 함께 피서산장으로 도주했는데, 거기서도 자신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황음무도한 생활에 빠져 살다가 이듬해 병사했다.
7. 진(陳)의 후주(后主) 진숙보(陳叔寶)라는 자는 나라가 뭔지도, 나랏일이 뭔지도 모르는 황제였다. 그저 술과 향락만 알았고, 대대적으로 토목공사를 일으켜 후궁들에게 나눠줬다. 진숙보의 곁엔 영혼이 썩어빠진 지식인들이 달라붙어 그의 어리석음을 부추겼다. 훗날 수나라 군대가 도성 건강(建康)을 함락한 뒤 그를 찾았을 때 그는 아끼는 후궁 둘과 우물 속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8. 명나라 희종(熹宗) 주유교(朱由校)는 특별한 취향 때문에 나라를 망친 황제다. 그는 별스럽게도 목수 일에 심취해 직접 집을 지을 정도로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는데, 이 때문에 국사를 돌보지 않고 환관 위충현(魏忠賢) 등에게 맡겨 나라를 망쳤다.
9. 한나라 성제(成帝) 유오(劉鰲)는 서한 말기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상황에서도 나랏일을 돌보기는커녕 조비연(趙飛燕), 조합덕(趙合德) 자매에게 빠져 황음무도한 생활을 일삼다가 병이 골수에까지 침투해 비참하게 죽었다. 이후 권력은 왕망(王莽)의 손에 들어갔고, 결국 한나라는 왕망의 신(新)에게 망했다.
10.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낸 명나라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钧), 즉 만력제(萬曆帝)는 장장 48년을 재위하는 동안 30년 넘게 조정 회의에 나가지 않은 신기록을 남긴 혼군이다. 허구한 날 후궁에 틀어박혀 방중술(房中術) 등에 심취해 나라를 거덜냈다. 훗날 ‘명사(明史)’에선 그런 그를 두고 “명나라는 사실 만력제 때 망했다”고 평했다.
이 밖에도 숱한 제왕이 혼군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리더의 자질 하나가 나라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제왕체제의 한계와 문제점이 이들에게서 고스란히 확인된다.

귀 막은 통치자들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말이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심각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단히 똑똑하고 잘났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바른말을 하거나 충고하는 사람에겐 증오심을 품고 박해한 반면, 자신의 말과 판단에 맞장구를 치거나 기분을 맞춰주는 아첨배와 간신들을 총애했다. 간신 정치와 환관 정치라는 왕조체제의 부조리가 이렇게 해서 나타난 것이다.
하나라 마지막 임금 걸은 포악한 정치의 대명사였다. 이윤(伊尹)이 “좋은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라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자 걸은 “백성에게 군주는 하늘의 태양과 같은 것이다. 태양이 없어져야 나도 없어지는 것”이라며 화를 냈다. 그러자 백성들은 “태양아, 빨리 없어져라. 우리가 너와 함께 망하련다”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 그가 죽기를 기원했다.
상나라 마지막 임금 주도 걸에게 뒤지지 않았다. 주 임금은 자질이 형편없는 군주는 아니었다. ‘사기’에 따르면 그는 “지혜는 남의 말을 듣지 않을 정도로 충분했고, 말솜씨는 잘못을 감추고도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하들앞에서 자기 능력 뽐내기를 즐겼고, 자신의 명성이 천하의 누구보다 높다고 생각해 모든 이를 자기 아래로 여겼다. 포락이라는 혹형으로 충직한 신하들과 백성을 해치자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러자 주 임금은 형벌을더 강화했다. 서백 창(주 문왕)이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 한숨을 쉬자 숭후호라는 간신배가 이를 고자질했고, 주 임금은 서백을 유리성에 감금했다.
그는 자신의 비위를 잘 맞추는 아부꾼이자 사리사욕을 밝히는 비중이란 자를 중용했고, 남의 비리를 캐내 헐뜯길 좋아하는 오래라는 자를 옆에 두고 아꼈다. 이 때문에 선량한 신하들과 백성의 마음은 더욱 멀어졌고, 끝내는 주 무왕을 따르는 수많은 제후의 공격을 받아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신 조이(祖伊)가 하늘이 장차 상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고 경고하면서 백성도 상나라의 멸망을 간절히 바란다는 여론을 전달하자 주 임금은 “나는 천명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랴”라며 딱 잘라 무시했다. 그러자 조이는 “좋은 말로는 안 되겠다(不可諫矣)”라는 말로 주의 비참한 몰락을 예견했다고 한다.


탐욕의 화신

혼용무도한 통치자의 거의 모든 특징을 두루 갖춘 군주로는 주나라 여왕(厲王)을 들 수 있다. 여왕은 무엇보다 탐욕스러웠다. 특히 영이공이라는 간신배를 앞세워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각종 특혜를 독점하게 해 사사로운 이익을 잔뜩 챙겼다. 이에 대부 예량부가 이렇게 직언했다.
“왕실이 쇠퇴하고 있습니다. 영이공이란 자는 이익을 독점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닥쳐올 큰 재앙은 모릅니다. 무릇 이익이란 만물과 천지자연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독점하면 그 피해가 커집니다. 천지만물을 모든 사람이 같이 나눠 써야 하거늘 어찌 독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랬다간 많은 사람의 분노를 초래해 큰 재앙에 대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왕을 이끌면 왕이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무릇 왕이란 이익을 개발해 위아래로 공평하게 나눠야 합니다. 신과 인간과 만물이 모두 알맞게 이익을 얻게 하고, 행여 원망이 있지는 않은지 걱정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지금 왕께서 이익을 혼자 차지하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필부가 이익을 독차지해도 도적이라 부르거늘 왕이 그리하면 왕을 따르는 사람이 줄어듭니다.하지만 여왕은 그의 경고를 듣지 않았고, 끝내 영이공을 고위직에 임명해 권력을 장악게 했다.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여왕은 위나라 무당을 불러 비방하는 사람을 감시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적발되면 죽였다. 그러자 비방하는 사람은 줄었지만 민심이 떠나고 권력층 내부의 마음도 떠나기 시작했다. 이에 여왕은 자신이 비방을 없앴다며 기뻐 날뛰었다. 그러자 소공(召公)이 충언했다.
“그것은 말을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는 일은 홍수를 막는 일보다 심각합니다. 막힌 물이 터지면 피해가 엄청난 것처럼 백성들 또한 같습니다. 따라서 물을 다스리는 자는 물길을 터주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 백성들에게 입이 있는 것은 대지에 산천이 있어 사용할 재물이 나오는

것과 같고, 대지에 평야, 습지, 옥토 등이 있어 입고 먹는 것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실컷 말하게 하면 정치의 잘잘못이 다 드러납니다. 좋은 일은 실행하고 나쁜 일은 방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재물을 생산해 입고 먹는 것에 쓰는 방법입니다. 백성들은 속으로 생각한 다음 입으로 말하며, 충분히 생각한 다음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런 그들의 입을 막는 일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물론 여왕은 듣지 않았다. 결국 기원전 841년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여왕을 내쫓았다. 여왕은 체(彘)라는 곳으로 도망갔다가 쓸쓸히 죽었다.
주 유왕(幽王)은 총애하는 애첩 포사(褒姒)를 웃기려고 위급한 상황에서나 피우는 봉화를 수시로 피우다가 정작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아무도 구원하러 나서지 않는 바람에 포사와 함께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주나라는 도성을 빼앗기고 한순간 망했다. 평왕이 간신히 수습해 도읍을 낙양으로 옮겼으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 소리도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부끄러움을 가르쳐라

 혼용무도한 통치자들의 또 다른 특징이자 공통점은 부끄러움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권위를 과신하는 과대망상에다 이를 부추기는 간신들의 아부가 합쳐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하든 잘했다고 꼬리치는 자들을 곁에 두고 총애하니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이것이 자신의 능력과 자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결국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반성할 줄 모르는 권력과 권력자는 결국 독재나 폭력으로 흐르고, 그 최후는 예외 없이 비참했다. 자신을 망치는 것은 당연했고, 더 나아가 백성과 나라를 망치는 결과를 낳았다. 망가진 나라를 복구하는 데는 엄청난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는 잘난 인재 열로도 모자라지만, 나라를 망치는 데는 혼용무도한 통치자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다.
통치자가 혼용무도하게 되는 원인을 파고들면 개인이나 패거리의 사사로운 욕심과 만나게 된다. 이러면 공사 구분을 못하게 되고, 결국 부끄러움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변질된다. 선현들은 이런 문제의 근원을 가정과 교육에서 찾았다. ‘성리대전’에선 “사람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부끄러움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敎人使人, 必先使有恥).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無恥則無所不爲)”고 했다. 자신의 언행이 남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만 그릇된 언행을 일삼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청나라 때 학자 고염무(顧炎武)는 “청렴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 없고(不廉則無所不取),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못할 짓이 없다(不恥則無所不爲)”고 했다.
혼용무도한 통치자 대다수가 부끄러움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았다. 설사 받았다 해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게 할 마땅한 제도적 장치나 멘토도 없었다. 결국은 자기수양, 즉 후천적 노력에 의한 자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결론은 왕조체제에서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나 하등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상황이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기에 국민의 절망은 더욱 깊어진다. 2016년의 전망을 더욱 암울케 하는 지표들이 2015년을 내내 휩쓸었고, 그 결정타가 ‘혼용무도’로 정리됐을 뿐이다. 대한민국 역사의 시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민도 ‘혼용’과 ‘무도’의 늪으로 빠져드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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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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