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팥을 심어놓고 콩 나기를 기대할 순 없다. 무엇을 하든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경제성장, 일자리, 복지 등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다른 그 무엇을 포기해야 한다. 세상일이란 게 이러함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양 국가정책을, 특히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도 정부의 무능과 비효율에 대해 탄식하면서도 모든 문제를 정부더러 해결하라고 아우성이다. 정부란 세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에도 국민은 온갖 복지사업을 요청하면서 세금 부담이 커지는 건 원치 않는다.
경제는 재정을 구속하고 재정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재정전략의 구사든, 재정제도의 개혁이든 경제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튼실한 경제성장이야말로 일자리 창출, 복지재원 확보, 재정 건전성 유지 등의 기본 바탕이 된다. 문제는 재정운용의 받침대인 경제성장에 오래전부터 경고등이 켜져 있다는 데 있다.
경제성장은 재정의 기초
최근 우리 경제는 선진국들이 겪은 ‘영국병’ ‘네덜란드병’ ‘복지병’이 결합된 ‘복합 후퇴’로 접어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반토막 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경제가 자체 잠재성장률보다 더 낮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9%대였던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8%로 급락했다. 김영삼 정부 때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7.4%, 세계 경제성장률은 3.3%로 우리가 4.1%p나 높았다. 김대중 정부 때도 세계 경제가 매년 평균 3.2%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5.0%씩 성장했다. 노무현 정부 때 처음으로 우리의 성장률(4.3%)은 세계 경제성장률(4.8%)보다 낮았다. 이명박 정부의 5년간 평균 성장률 2.9%는 세계 경제성장률과 같은 수준이다.
오래전부터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지만 우리는 애써 문제를 외면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만병의 근원은 사실 경제 저성장에 있다. 고용악화와 청년실업, 소득 양극화, 가계부채 증대, 자영업자 부도, 부동산시장 침체 등 현안들은 모두 경제성장률이 2~3% 수준으로 하락한 결과다. 우리 경제가 다시 매년 5% 이상 성장한다면 이런 문제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최근 경제민주화가 화두인 것도 장기 저성장으로 인한 사회불안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후보들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주창했지만 정작 이를 떠받칠 경제성장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언급이 없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 재정적자가 불가피하고 재정건전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이 무너지면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한 가계부채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것이므로 다시금 경제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경제성장률을 최소 4% 이상으로 올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13가지 재원 조달 방법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은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5년간 매년 27조 원씩 총 135조 원이 필요하며 재원의 60%는 세출절감, 40%는 세입 확대를 통해 조달하겠다고 했다. 재원 조달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차입하는 것, 둘째는 국민 부담을 증대시키는 것, 셋째는 기존 세출에서 다른 용도의 지출을 줄이거나 전용하는 것이다.
차입의 방법으로는 ①국공채 발행이 있다. 국민 부담 증대 방안으로는 ②기존 조세의 세원 확대 및 강화 ③새로운 세목 신설 ④조세감면(조세지출) 축소 ⑤수익자 부담 확대 등이 있다. 세출 조정 방안으로는 ⑥세출구조 조정 ⑦공공자금 활용 ⑧정부 보유자산 매각 ⑨예산제도 밖에서 운영되는 자금의 제도 내 흡수 ⑩재정의 효율적 운영과 재원 절약 ⑪재정투융자 관련 자금의 자체 조달을 통한 재정 의존 감축 ⑫민간부문과 지방정부의 기능 확대 ⑬세출예산 동결 등이 있다. 새누리당 공약집에 언급된 재원조달 방안은 ②기존 조세의 세원 확대 및 강화, ④조세감면 축소, ⑥세출구조 조정, ⑩재정의 효율적 운영과 재원 절약 등으로 매우 단편적이다. 종합적으로 고심한 흔적이 없다.
위에서 열거한 13가지 재원 조달 방안 중 가장 손쉬운 ①국공채 발행을 제외하고 이론적 측면에서 타당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은 ②기존 조세의 세원 확대 및 강화, ④조세감면 축소, ⑤수익자 부담 확대, ⑫민간부문과 지방정부의 기능 확대, ⑬세출예산 동결 등이다.
특히 ⑫의 구체적 방법 중 하나로 강조돼야 할 것은 ‘민영화’다. 민영화는 정부가 운영하는 사업과 서비스를 과감히 매각함으로써 세출을 절약하는 동시에 매각 대금이 일시적으로 재원이 될 수 있다. 공기업 및 정부사업 민영화는 재원 확보 차원을 넘는 정책과제이지만, 김영삼 정부 이후 민영화가 진행된 사례가 거의 없기에 차제에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세출 조정을 가장 확실히 하는 방법은 ⑬세출예산 규모를 동결하는 것이다. 예산 동결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민부담 증대를 논의하기 전에 현재의 세출 낭비와 비능률을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은 자명하며,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예산 동결이다. 동결된 예산 내에서 중요 정책들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 관리들은 바짝 긴장해 효율성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세출예산 동결이 정부 관리들로 하여금 조세감면 축소나 민영화 등 중요 정책을 실시하도록 유인한다. 돌 하나를 던져 새를 여러 마리 잡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