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한발 뒤처진 롯데의 변신… 신동빈 말 먹힐까

[유통 인사이드]

  • 나원식 비즈니스워치 기자

    setisoul@bizwatch.co.kr

    입력2022-02-2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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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辛, 실적 개선에도 사장단 변화 촉구

    •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수도”

    • 이커머스 혁신 더뎌

    • 롯데쇼핑 창사 이래 처음 ‘비(非)롯데맨’ 중용

    • 미니스톱 인수 편의점 업계 3강 체제 구축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8월 경기 최대 규모 ‘스테이플렉스’ 동탄점을 오픈했다.  [롯데백화점]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8월 경기 최대 규모 ‘스테이플렉스’ 동탄점을 오픈했다. [롯데백화점]

    “그동안 생각해 왔던 성과의 개념을 바꾸겠다. 과거처럼 매출과 이익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고 해서 만족하지 말아달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월 20일 열린 2022년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 눈에 띄는 메시지를 내놨다. 기업 성과의 개념을 바꾸겠다는 언급이다. VCM은 각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등이 모인 자리다. 각 조직의 성과를 책임지는 경영진을 앞에 두고 기업 총수가 “매출이 개선됐다고 만족하지 말라”고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기업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의 경우 아무래도 ‘숫자’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각 조직의 수장이긴 하지만, 매년 평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실적이 가장 명확한 평가지표라는 점에서 이를 공들여 관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제 이런 숫자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방침을 오너가 직접 공언했으니 새로운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

    물론 평소(?) 같았으면 이 언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수도 있다. 총수가 경영진에게 도전과 혁신, 변화 등을 언급하는 건 익숙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관성을 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것은 기업에 숙명과도 같다. 신 회장 역시 올해 신년사에서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 계속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내놓은 터다. 때마다 내놓는 틀에 박힌 발언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롯데그룹의 행보를 보면 신 회장의 메시지가 단순히 말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롯데그룹은 전에 없던 시도를 하는 등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통 공룡’ 롯데, 유독 변화 더뎌

    롯데그룹은 유통업계를 이끌어온 대표적 기업이다. 주력 계열사인 롯데백화점 등을 앞세워 오랜 기간 업계 1위 기업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국내 유통시장은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다.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커머스로 급속하게 쏠리면서다. 쿠팡과 네이버, 카카오 등 강력한 사업자가 등장해 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롯데는 워낙 덩치가 큰 탓에 빠른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물론 어떤 기업이든 기존의 경영 방식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실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유통 공룡’으로 성장한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은 모두 온라인 사업 영역에서 애를 먹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롯데의 더딘 발걸음이 더욱 부각됐다. 경쟁사인 신세계가 발 빠른 행보를 보이면서다. 신세계 그룹 이마트는 지난해 6월 이커머스 업체 ‘이베이코리아’를 3조4400억 원에 인수하며 단숨에 온라인 강자 대열에 합류했다. 그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지분교환을 통해 손을 맞잡았고, 온라인 패션 플랫폼 ‘W컨셉’을 사들이는 등 공격적 행보를 보이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발판으로 신세계 그룹의 기존 온라인 플랫폼인 ‘SSG닷컴’은 올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롯데는 지난 2020년 그룹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으로 야심 만만하게 선보인 ‘롯데ON’이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지 못한 데다가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도 고배를 마시면서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롯데는 오프라인 중심 업체 중에서도 유독 시대 흐름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순혈주의’ 원칙 깬 인사로 혁신

    롯데마트는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을 리뉴얼해 ‘제타플렉스’를 선보였다. [롯데마트]

    롯데마트는 서울 송파구 롯데마트 잠실점을 리뉴얼해 ‘제타플렉스’를 선보였다. [롯데마트]

    그러던 롯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 그룹 정기인사 때였다. 신 회장이 그동안 롯데를 지탱해 온 이른바 ‘순혈주의’ 원칙을 깨고 외부 인사를 대거 영입하면서다. 단순히 몇몇 인재를 보여주기식으로 영입해 온 게 아니었다. 유통 부문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외부 인사를 앉혔다. 업계에서는 “신 회장이 드디어 순혈주의에 칼을 빼 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 회장은 롯데의 유통 부분을 총괄하는 롯데쇼핑 신임 대표이사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비(非)롯데맨’을 중용했다.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인 P&G와 국내 홈플러스 등에 몸담았던 김상현 대표다. 또 롯데쇼핑 내 핵심 부문인 롯데백화점 대표에도 신세계 출신 인사인 정준호 전 롯데GFR 대표를 내정했다. 정 대표는 롯데가 2018년 패션 자회사인 롯데GFR를 신설한 뒤 영입한 인물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4월에는 롯데ON 대표에 나영호 전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을 임명했고, 9월에는 디자인경영센터를 새로 만들어 배상민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센터장으로 영입했다.

    이처럼 롯데백화점 등 기존 주력 사업 부문은 물론 롯데ON 등 차세대 사업군에도 줄줄이 외부 인사를 수장으로 앉히면서 그룹 내부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변화하겠다는 신 회장의 강한 의지가 읽히는 인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롯데의 행보는 눈에 띄게 변화했다. 우선 롯데백화점은 정준호 대표 취임 6주 만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 기존의 3개 지역본부를 통합하고, 각 지역본부가 책임졌던 아웃렛 부문을 분리하는 등 기존의 복잡하고 비대했던 조직 구조를 효율화한 게 특징이다. 그러면서 식품 부문을 대표 직속으로 배치하고, 명품의 경우 3개 부분으로 세분화하며 앞으로 집중할 영역에 대해서는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정 대표는 특히 사내 게시판을 통해 “향후 외부 전문가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속적인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로 신세계백화점 경기점장 출신 인사와 디자인 담당 임원 출신 인사 등을 영입하며 눈길을 끌었다.

    롯데마트의 경우 기존 창고형 할인점인 ‘빅(VIC)마켓’을 ‘맥스(Maxx)’로 리뉴얼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그간 롯데는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서 코스트코, 이마트 트레이더스와 경쟁했지만 성과를 내는 데는 실패했다. 기존 단점을 보완해 다시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롯데마트 잠실점을 리뉴얼해 ‘제타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하는 시도도 했다. 신선식품을 대폭 강화하고, 매장 1층 면적의 70%를 와인 전문점으로 꾸미는 등 변화를 꾀했다. 오프라인의 강점으로 꼽히는 주류, 신선식품, 리빙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커머스 부문인 롯데ON의 경우 기존 담당-대리-책임-수석 등의 직급제를 폐지하고 팀장과 팀원만 남기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커머스 기업답게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나영호 대표는 지난해 부임 직후 ‘조직문화 태스크포스’를 설치하는 등 조직문화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과감한 베팅으로 미니스톱 인수 성공

    이처럼 각 사업 부문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끈 행보는 바로 편의점 업체 ‘한국미니스톱’(이하 미니스톱) 인수전 참여였다. 편의점은 유통시장이 온라인으로 쏠리는 와중에도 성장을 지속해 온 오프라인 채널로 주목받고 있다. 온라인 채널은 빠른 배송으로 기존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영역을 잠식해 왔다.

    편의점의 경우 수많은 점포가 골목골목에 자리 잡은 터라 ‘빠른 배송’으로 인한 타격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유통업체 매출 중 편의점 3사(GS25·CU·세븐일레븐) 매출의 비중은 15.9%로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매출 비중 15.7%를 넘어섰다. 연간 매출 기준으로 편의점이 대형마트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편의점 사업은 최근 유통업체들이 공을 들이는 ‘퀵커머스’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퀵커머스는 신선식품과 생활용품 등을 30분~1시간 이내에 소비자에게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기존 온라인 업체들의 배송보다 빠르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런 이유로 미니스톱 인수전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미니스톱은 매장 2600개를 보유한 국내 편의점 업계 5위 업체이기도 하다. 한국 편의점 시장은 GS25와 CU가 각각 1만5000개의 매장을 보유하며 2강 구도를 유지했다. 3위 세븐일레븐의 점포는 1만1000개, 4위 이마트24는 5000개가량으로 다소 격차가 벌어졌다. 대부분 업체가 지속해 점포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는 데다 이미 곳곳에 편의점 점포가 자리 잡은 터라 이런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았다. 3~4위 업체들이 미니스톱을 사들여 단숨에 점포 수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는 의미다.

    애초 롯데는 미니스톱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편의점 업계에서는 이마트24만 참여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따라 국내 편의점 시장이 2강(GS25·CU) 2중(세븐일레븐·이마트24)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롯데가 본입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인수전의 승자가 됐다. 롯데지주는 미니스톱의 지분 100%를 3100억 원가량에 인수했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한 인수가는 2000억 원대였는데, 롯데가 과감한 베팅으로 미니스톱의 새 주인이 됐다. 지난해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는 경쟁사인 신세계에 밀렸지만, 미니스톱 인수로 일격을 가할 수 있게 됐다. 또 세븐일레븐 입장에서는 편의점 업계 3강 구도를 만드는 동시에 이마트24를 멀찍이 따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실적 없는 혁신 감내할지 미지수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연달아 보이면서 업계의 관심은 롯데가 이번에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지에 쏠린다. 사실 신 회장은 지난 수년간 여러 차례 ‘변화’를 주문해 온 게 사실이다. 조직이 워낙 큰 데다가 문화가 보수적인 탓에 잘 먹혀들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의 전망은 엇갈린다. 우선 신 회장의 의지가 뚜렷한 만큼 이번에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다. 특히 신 회장이 VCM에서 기존 성과 개념의 변화를 주문했던 점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당장 실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혁신’ 과정을 기다려주겠다는 메시지 아니냐는 해석이다.

    외부 인재를 영입하고 조직개편을 한다고 해서 당장 변화가 나타나기는 힘들 거라는 시선도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조직문화를 바꾸는 과정에서 언제까지 최근의 실적 저하 흐름을 감내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롯데쇼핑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1조7892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 떨어졌다. 누적 영업이익은 983억 원으로 40.3% 급감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의 경직적인 조직문화는 오랜 기간 이어지며 굳어진 만큼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며 “더군다나 보수적이면서 조직 전체를 중요시하는 문화는 롯데가 발전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던 만큼 내부의 반발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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