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벤저민 그레이엄 “싼 주식은 사고 비싼 주식은 팔라”

[구루의 투자법]

  • 강환국 퀀트 투자자

    christianeum@naver.com

    입력2022-03-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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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8년 전 출간 ‘증권분석’ 최초 투자서

    • 계량화 규칙, 오늘날에도 유효

    • 14년간 복리 19.1%, 원금 11.6배

    • 청산가치보다 시가총액 낮은 기업에 투자해야

    • 2월 1일 기준 한국엔 36개 종목 존재

    벤저민 그레이엄. [위키피디아]

    벤저민 그레이엄. [위키피디아]

    ‘투자를 잘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돈을 많이 번 사람? 나는 딱히 그렇게 보지 않는다. 투자 결과에 운이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방법일지라도 그대로 투자했다가 돈을 잃기도 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한 방법으로 독특한 종목에 투자해 돈을 벌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투자를 잘하는 사람’이란 ‘본인이 설립한 투자 원칙을 최대한 잘 지킨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쉬운 얘기 같지만 요즘처럼 장이 나쁘면 ‘원칙’이라는 것을 지키기 힘들어진다. 원칙대로 투자하더라도 돈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장이 너무 좋을 때도 원칙대로 투자하기 힘들다. 남들은 테마주나 시대 흐름을 타는 종목을 사서 몇 배를 버는 것처럼 보여 휘둘리게 마련이다.

    투자를 연구해 보면 자신만의 원칙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이 좋든 나쁘든 꾸준히 지켜온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고, 부자가 되고, 경제적 자유에 도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투자 원칙’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럴 때 역사 속 위대한 투자자를 연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위대한 투자자들이 만든 투자 원칙을 최대한 계량화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투자 레시피’를 만드는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 이렇게 ‘계량화된 규칙’을 따르는 투자를 ‘퀀트 투자’라고 한다.

    앞으로 이런 전략을 따랐을 때 과거 특정 시기에 어느 정도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지, 현재 이 전략에 적합한 종목이 무엇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의 첫 번째 위대한 투자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을 통해 계량화된 투자 규칙을 알아보자.

    주식 투자계 뉴턴, 벤저민 그레이엄

    나는 ‘투자의 대천재’가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늘 벤저민 그레이엄과 해리 마코위츠를 꼽는다. 마코위츠는 다음에 알아보고, 우선 왜 그레이엄이 투자 천재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레이엄은 1894년 영국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어릴 적부터 다방면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20세에 컬롬비아 대학을 졸업했는데, 당시 같은 학교 대학원 고대철학과, 영문과, 수학과에서 동시에 입학 제안이 왔을 정도로 박학다식한 인물이었다. 특히 여러 언어에 능통했는데 라틴어 책을 그리스어로, 그리스어 책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그레이엄은 모교의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돈을 벌기 위해 월가에 뛰어들었다. 그러곤 뛰어난 투자 실적으로 승승장구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1920년 26세 나이에 투자회사 파트너가 됐으며, 연봉도 5만 달러(현재 가치 약 8억5000만 원)로 뛰었다. 이후 32세이던 1926년 독립해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그레이엄 같은 투자 귀재도 대공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1929~1932년 사이 3년간 약 70% 손실을 봤는데, 그를 믿었던 투자자들 덕분에 겨우 살아남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실패가 없었다면 그레이엄의 대작 ‘증권분석(Security Analysis)’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실패한 그레이엄은 수년에 걸쳐 주식시장을 다시금 분석했고, 그 고뇌의 결과가 1934년 출판한 투자서 ‘증권분석’이다.

    그레이엄이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세상에 ‘투자 이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차트를 보고 시장의 크고 작은 흐름을 예측하는 ‘다우 이론’, 가격의 흐름을 보고 추세를 파악해 투자하는 제시 리버모어 같은 이의 투자법이 전부였다. 물론 ‘가치 투자’ ‘퀀트 투자’라는 개념은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런 생각을 한 사람조차 없었다.

    학문이란 대개 선구자가 존재하고 거기에 새로운 연구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조금씩 덧붙여 발전해 나간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과학자지만 그 전에 뉴턴 같은 뛰어난 천재들이 물리 이론을 정립해 과학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레이엄 역시 그가 투자 이론을 개발하기 전에는 어떤 이론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다름없다.

    더 놀라운 사실은 90년이 지난 지금 ‘증권분석’을 읽어봐도 틀린 구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심지어 “가치 투자와 관련된 모든 책에는 그레이엄의 주석이 존재한다”는 뼈 있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인용되고 있어 놀라움을 준다. 개인적으로 그레이엄의 업적에 대해 석기시대 원시인이 달을 바라보다가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후 로켓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이론을 스스로 만들고, 로켓 제작까지 성공해 달에 갔다 온 정도라고 평가한다.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 이론은 쉽게 말해 싼 주식을 사고 비싼 주식을 팔라는 것이다. 물론 싸고 비싸게 파는 건 투자자라면 누구나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레이엄의 진정한 업적은 그가 ‘싼 주식’과 ‘비싼 주식’을 구분하는 계량화된 기준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청산가치’에 주목한 그레이엄 이론

    그는 기업의 미래나 성장 가능성보다는 현재 가치, 즉 지금 기업이 가진 자산과 과거 수익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고 주관적 편향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기업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인지했다. 그래서 모든 경제 및 기업 전망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가졌으며 투자에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그레이엄은 특히 기업의 ‘청산가치’를 중요시 여겼다. 기업 청산 시 자산을 다 팔고 부채를 갚은 후 남는 돈을 주주에게 나눠주는데 바로 이 금액이 ‘청산가치’다. 그레이엄은 시가총액(주가×주식 수, 또는 주식시장이 인정하는 기업 가치)이 청산가치보다 현저히 낮을 경우 그 기업이 저평가됐다고 정의했다. 기업의 청산가치가 1000억 원인데 시가총액이 600억 원이라면, 600억 원을 빌려와 기업의 모든 주식을 산 후 기업을 청산하고 1000억 원을 확보한 뒤 빚을 갚을 경우 고스란히 400억 원을 벌 수 있다. 따라서 시가총액이 청산가치보다 낮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런 기업은 너무 저평가된 기업이다. 그런데 이런 기업들이 당시 미국에는 꽤 많았고, 요즘 한국 시장에도 꽤 많다.

    그러면 청산가치는 어떻게 측정할까. 앞서 청산가치란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값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청산에 들어가면 기업의 모든 자산을 장부가격에 청산하기란 힘들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이레미디어]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분석. [이레미디어]

    그는 자신의 책 ‘증권분석’에 위 표를 적어 두었다. 현금형 자산, 매출채권, 재고자산 등 유동자산은 대부분 청산할 경우 장부가와 비슷한 값을 받을 수 있으나 비유동자산은 상대적으로 힘들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청산가치 계산 공식을 유동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값으로 수정했다.

    한국 시장의 경우, 상장기업이 부동산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고 이런 자산은 청산할 경우 제 값을 받을 가능성이 꽤 높기에 위와 같은 청산가치 공식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위와 같은 보수적인 청산가치 계산 결과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이 상당히 많다!

    시뮬레이션 결과, 14년간 복리 19.1% 수익

    그레이엄은 1950년대 “나는 저렇게 청산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에 투자해서 20년간 복리 20% 정도를 벌었다”고 회고했다. 참고로 복리 20%로 20년 동안 투자하면 원금이 37.3배가 된다

    그렇다면 그레이엄이 90여 년 전에 정립한 전략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통할까. 최근 14년간 위와 같은 공식에 해당하는 기업에만 투자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시뮬레이션해 봤다. 퀀트 투자에서는 모든 전략이 계량화돼 있어 과거 성과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이를 ‘백테스트(Backtest)’라고 한다. 나는 주로 ‘퀀트킹’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백테스트를 진행한다.

    시가총액이 청산가치보다 낮아야 한다는 조건은 기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조건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배당을 주는 기업이어야 한다. 그레이엄은 배당을 주는 기업이 안 주는 기업보다 훨씬 더 건전한 기업으로 여겼다. 배당을 주는 기업은 주주가치에 얼마간 신경을 쓰는 기업이다. 또한 빠른 시기 내 급작스럽게 파산할 가능성도 적다. 파산이 임박한 기업이 한가하게 주주에게 배당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 않은가. 두 번째로 올해 순이익이 작년 순이익보다 커야 한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것임으로 당연히 올해 순이익이 작년 순이익보다 많으면 유리하다. 세 번째로는 올해 순이익이 0보다 커야 한다. 당연히 순이익이 있는, 즉 흑자 기업이 적자 기업보다 좋다.

    또 하나 중요한 조건은 1년에 한 번씩 리밸런싱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리밸런싱이란 위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들의 주식을 산 후 1년에 한 번 교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곤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면 매수일이 2022년 3월 1일이라고 치면 A라는 기업이 그날 시가총액이 500억 원이고 청산가치가 1000억 원이라 샀는데, 정확히 1년 후인 2023년 2월 28일 확인해 보니 주가가 많이 올라 시가총액이 1500억 원, 청산가치는 1100억 원일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은 팔면 된다. 이와는 반대로 2022년 3월 1일 기준으로 B라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2000억 원이고 청산가치가 1000억 원이라면 당연히 이 기업을 살 이유가 없다. 그런데 2023년 3월 1일 보니까 주가가 많이 빠져서 시가총액이 700억 원, 청산가치가 1000억 원일 수도 있다. 게다가 배당도 주고, 순이익도 늘고, 흑자라면 이런 기업은 A라는 기업을 판 돈으로 사면되는 것이다. 만약 C라는 기업이 2022년 3월 1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1000억 원, 청산가치가 2000억 원이라서 샀는데 1년 후에 보니까 청산가치는 2200억 원, 시가총액은 1500억 원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배당은 계속 주고 순이익도 증가했고 흑자라면 이런 기업은 계속 보유하면 된다.

    이런 기업의 주식에만 투자했다면 얼마를 벌었을까. 자그마치 복리 19.1%다. 14년 동안 꾸준히 이런 주식에만 투자했다면 원금이 11.6배 증가한 것이다. 물론 매월 순탄하게 돈을 번 것은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는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도 그렇지 않은 주식과 같이 폭락했다. 폭락장이 오면 모든 주식이 같이 빠지기 때문이다. 2008년 1월부터 10월까지 그레이엄의 청산가치 전략에 합당한 주식에 투자했다면 43.3% 손실을 봤을 것이다. 연간 수익률을 보면 아래와 같다.

    보시다시피 2008년 말고도 2011년, 2017년에도 성과가 신통치 않았으나, 그 이후 해에는 엄청난 수익을 벌어주며 복리 19.1%라는 수익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1930~50년대 그레이엄의 수익인 복리 20%와도 큰 차이가 없다.

    주식시장은 ‘저울’과 같다

    그레이엄의 청산가치 전략을 2022년 2월 1일 기준, 한국 주식시장에 적용하면 표와 같은 종목을 선별할 수 있다. 보시다시피 36개나 된다. 그레이엄의 저평가 주식을 구하는 전략인 청산가치 전략은 21세기 한국에서도 잘 통한다. 14년 전 한국에서 이런 기업들만 골라 샀으면 복리 19.1%라는 수익을 벌 수 있었다.

    그레이엄은 “주식시장은 단기적으로는 ‘투표기계’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울’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단기적으로는 투자자의 심리로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저평가된 기업이 재평가를 받고 고평가된 기업이 추락한다는 뜻이다. 한국 주식시장에서도 그레이엄의 이론이 적중한다. 말도 안 되게 저평가된, 청산가치보다도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은 화려하게 부활해 투자자를 기쁘게 해줄 것이다.


    강환국
    2021년 7월 직장인 투자자에서 ‘30대 파이어족’으로 변신한 인물.
    계량화된 원칙대로 투자하는 퀀트 투자를 통해 연복리 15%대의 수익률을 거둬 입사 12년째인 38세 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를 나와 파이어족이 됐다. 현재 전업투자자이자 구독자 13만2000명 유튜브 채널 ‘할 수 있다! 알고 투자’를 운영하는 유튜버, 투자 관련 서적을 집필하는 작가, 온·오프라인 투자 강의를 하는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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