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에게 사료를 줄 때는 “사료 왔습니다”, 달걀을 가지러 갈 때는 “집란하러 왔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닭을 사람 대하듯 기르는 것이다. 아니, 기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닭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야마기시즘 양계법의 핵심은 닭들을 억지로 키우고 억지로 알을 낳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닭들이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크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암탉들이 ‘낳아 주시는’ 고급 유정란은 서울 경기 대구 전주 등 전국 각지로 직접 배달된다. 백화점이나 기타 소매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다들 맡은 일이 있다. 양계부, 공급부, 생활부, 학육부, 채소부 등에 속해 있는데, 이것을 직장이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식당, 이·미용, 육아, 사진, 보건·위생, 세차, 소방 등 각자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 세탁하는 사람도 따로 있어 그가 다른 사람의 속옷까지 다 처리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는 강제나 규율이 없다. ‘너는 무슨 일을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도 없고, 빈둥빈둥 논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도 노는 사람은 없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을 안에서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 농장 안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생필품은 모두 공동으로 구매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활비는 들지 않는다. 마을 한가운데는 조그만 창고가 하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품, 면도기, 학용품, 과자류 등이 가득 쌓여 있다. 군대 보급 창고를 연상케 하는데 이곳에는 열쇠가 채워져 있지 않다. 필요하면 누구든지 꺼내 쓰면 된다. 창고에 없는 물건이 필요하면 ‘연찬을 통해’ 결정해 사온다. 마치 우리가 어머니에게 옷 사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낭비하고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없느냐고 물으면, “여태 그런 사람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필요한 만큼 갖다 써라
특별히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각자 함양일(涵養日)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쉬고 싶을 때 쉰다. 무소유를 지향하지만 그래도 각자 돈이 필요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성인들은 월 5만 원씩을 받는다. 젊은 부부들은 이 돈으로 함양일에 영화를 보러 가든지 외식을 하기도 한다. 돈이 남으면 저축을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쯤 되면 묻는 사람이 부끄러워진다. ‘개인적으로 저축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빙그레 웃기 때문이다. 돈이 부족하면 어쩌냐는 질문에도 “더 필요한 적이 없고, 만약 더 필요하면 달라고 해서 쓰면 된다”고 대답한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따로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마을은 무슨 특별한 정신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간혹 산안마을을 생태마을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기순환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자연과 인위의 조화를 지향하지만 생태마을은 아니다. 도인(道人)들이 모여 뜻 모를 이야기만 나누면서 사는 곳은 더더욱 아니다. 현재 산안마을에는 아이들 15명을 포함해 44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전직 교사, 사회운동가,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저 네 것 내 것 없이 살고 있을 뿐이다.
실현지에 거주하는 데 특별한 자격은 필요없다. 하지만 일단 야마기시즘 회원이 되기 위해선 무소유의 삶에 동의해야 한다. 그들은 이것을 참획(參獲)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거주하려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야마기시즘회에 내놓아야 한다. 이곳에서 살다가 간혹 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자신이 가져온 재산을 다시 내놓으라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산안마을 아이들에게는 동네 어른들이 모두 자기 부모나 같다. 아이들은 동네 아주머니를 부를 때 현주엄마, 유끼엄마 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현주’ ‘유끼’라는 이름은 그 아주머니의 아이 이름이 아니라 본인의 이름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해서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어른들도 서로 ‘서혜란씨’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부른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할 때도 하나같이 자기 아이들처럼 대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 이름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짓는다. 유아들은 마을 안에 있는 태양유치원에서 자란다. 결국 여기서는 모두가 엄마 아빠 삼촌 언니 동생이 되는 셈이다.
“더 좋은 곳 찾지 못했다”
산안마을 사람들은 명절에도 자기 가족을 찾아 고향집으로 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명절 때면 마을 사람들 모두 곱게 한복을 차려 입고 마을회관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생일이 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축하해주고 생일 떡을 나눠 먹는다. 그야말로 대가족이 아닐 수 없다.
사람 사는 동네에 특이한 이력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만, 산안마을에도 독특한 삶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많다. 경북대 농대 77학번인 황형섭씨(44)는 농민운동을 하려다 산안마을에 들어왔다. 대학에서 농촌문제연구소라는 서클 활동을 했던 황씨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각자 농촌 마을에 들어가 농민운동을 부흥시켜보려는 계획을 세우던 중 양계법을 배울 요량으로 야마기시즘회를 찾게 됐다.
“처음 특강에 참석했을 때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특강에는 일본인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우선 야마기시즘이라는 말 자체가 거리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듣다 보니 어느 날은 세상을 저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뭔가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현지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혹시 마을에서 나갈 생각은 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황씨는 “지금도 매일 하고 있는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가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더 좋은 곳을 찾지 못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웃는다. 총각으로 들어왔던 황씨는 산안 마을에서 변정희씨(40)를 만나 딸 둘을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야마기시즘의 특징 중 하나는 국경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니 국경이나 인종 같은 것은 전혀 따지지 않으리라. 그래서 전세계에 있는 실현지를 옮겨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은 일본과 가까워 특히 왕래가 잦다. 양국의 실현지에 있는 청년들이 서로 찾아가 잠시 살다 오기도 하고, 결혼을 하여 아예 눌러 앉는 경우도 있다. 윤성렬씨는 이를 보고 “청년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흐뭇해한다.
나가오 유끼(28)는 1994년 산안마을에 어린이 낙원촌 학생 스태프로 참여했다가 유상용씨(38)를 만나 결혼했다.
“처음엔 한국이란 나라에 호기심이 있어 찾아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고 한국이 마음에 들어 다시 찾게 됐습니다. 그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지요.”
유끼는 이제 한국말을 굉장히 잘한다. 현재 산안마을에는 유끼 이외에도 5명의 일본인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일본 실현지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로 지금은 산안마을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어 오순도순 살고 있다. 물론 한국의 청년이 일본의 실현지에서 결혼해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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