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수 물고기종은 작은 뇌 속에 집단생활을 위한 지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체 절단에 따른 물고기의 고통감지능력은 고등동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테레사 버트 드 페레라의 실험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많은 동물이 자신이 지각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먼 곳까지 제대로 찾아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껏해야 자기 주변밖에 감지할 수 없는데 어떻게 멀리까지 돌아다니는 것일까. 그녀는 멕시코 눈먼 동굴 물고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물고기의 지각 범위는 5cm에 불과하지만, 서식 공간은 30m나 된다. 그 넓은 공간을 어떻게 제대로 돌아다닐까.
스페인의 크리스티나 브로글리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드 페레라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그들은 어류가 원시적이므로 뇌가 덜 발달하고 학습능력도 떨어질 것이라는 기존 견해를 반박했다. 그들은 발생학 및 신경해부학적으로 뇌의 진화는 더딘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 어류나 육상 척추동물이나 학습 및 기억과 관련된 부위의 능력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 학습 및 기억을 담당한 뇌 부위는 일찌감치 진화했고 그 뒤로 별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류도 신경학적으로는 포유류나 조류처럼 복잡한 공간을 학습하고 기억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테이케는 어류가 주변 환경의 인지 지도를 작성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문제는 지각 범위보다 더 넓은 공간의 지도를 어떻게 작성하는가에 있었다.
머리에만 고통감지기 22개
테레사는 육상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어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봤다. 침팬지, 쥐, 비둘기, 꿀벌에 이르기까지 육상동물들은 특징적인 이정표들을 순서대로 연결해 서식 공간을 기억하는 능력을 지녔다. 어류도 그렇지 않을까?
그는 어항에 원형 통로를 만들어놓고 모양이 서로 다른 이정표 네 가지의 거리, 순서, 조합을 변화시켜봤다. 물고기들은 낯선 환경을 접하면 더 빠른 속도로 헤엄치면서 새로운 인지 지도를 작성하려 애썼다. 실험 결과 물고기들은 이정표의 절대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위치와 순서 변화에도 반응했다. 즉 뇌 속 공간 지도에 지형지물의 순서를 기입했고 각 공간을 순서대로 연결지음으로써 전체 서식 공간을 파악한 것이다.
이렇듯 어류는 집단 문화가 있고, 기억력과 학습력이 있으며, 지형지물을 이용해 넓은 공간을 파악하는 능력도 갖췄다. 인간과 물고기의 거리가 꽤 가까워진 듯하다. 그래도 아직 둘 사이에는 미지의 계곡이 있다. 이를테면 고통은 어떨까? 물고기도 우리처럼 고통을 느낄까? 물 밖으로 꺼냈을 때 물고기가 펄떡거리는 행동은 덫이 발목을 꽉 물었을 때 아파서 펄쩍펄쩍 뛰는 사슴의 행동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물고기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고통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원론적 문제에서부터 논란을 빚었다.
그런데 최근 영국의 한 연구진은 물고기가 고통을 느낀다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냈다. 린 스너든 연구진은 무지개송어가 해로운 물질에 노출됐을 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모르핀을 투여하자 무지개송어의 비정상적인 행동의 강도가 약해졌다. 최초의 비정상적 행동은 그저 반사반응이 아니라 해로운 물질을 접했을 때 느끼는 통증임이 분명했다.
이어 연구진은 몸에 손상이 가해졌을 때 고통을 느끼는 ‘통각 수용기’가 물고기에게 있는지 살펴봤다. 그들은 마취시킨 물고기의 머리에 기계적 자극, 열 자극, 화학적 자극을 주면서 신경 활동을 기록했다. 그들은 물고기의 머리에서 적어도 한 가지 자극에 반응하는 수용체를 58개 찾아냈는데, 그중 22개가 기계적 압력과 고열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통각수용기라고 보았다. 그 가운데 18개는 화학적 자극에도 반응하는 다형 통각수용기였다. 그 수도 양서류, 조류, 포유류와 비슷했다. 통각수용기를 충분히 갖췄기에 물고기도 고통을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동물의 권리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육상 동물이나 어류나 비슷한 정도로 고통을 느낀다면, 광어나 우럭이 입을 벙긋거리며 살아 있는 상태에서 날것으로 그 신체를 먹어들어가는 ‘생선회’는 논쟁의 대상이 돼야 하지 않을까. 바늘로 물고기의 입을 꿰는 낚시 역시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