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정대’ 아이들끼리 진행하는 캠프. 나이 성별 구별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서 있는 아이가 승수.
이번 호에서는 학교 밖에서 길을 찾는 한 청소년을 만나볼까 한다. 서울 근교 일산에 사는 열여덟 살 이승수(李丞洙) 군이다. 승수는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내가 승수를 알게 된 건 우리 큰아이 인연이다. 그러니까 지난해 이맘때, ‘학교너머’라는 단체에서 주관한 심포지엄이 있었다. 토론의 골자는 개별 단위 홈스쿨링을 넘어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예상외로 참가자가 많아 100명이 넘었다. 승수는 홈스쿨링을 막 시작한 때였고, 우리 식구는 토론 발제자로 나섰다. 참가한 부모와 아이들은 모두 할 말이 많았다. 홈스쿨링은 개별 가정의 특수한 경험이라 그 과정에서 오는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도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들은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부모는 부모끼리, 아이는 아이끼리. 생각 많은 어른과 달리 아이끼리는 금방 친해졌다.
그런 인연으로 승수는 올 초 우리 집을 혼자서 찾아왔다. 일주일쯤 머물며 함께 생활했다. 그러고는 얼마 전 가을걷이를 도와주러 또 왔다. 승수는 우리 식구와 일도 같이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글쓰기도 함께 하면서 식구처럼 지내다 갔다.
아이랑 수다 떨기
학교에 다니면서 입시에 짓눌린 아이는 대부분 입을 닫고 산다. 어른과 소통하기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 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늦게 돌아오는 나날들. 바쁘고 여유가 없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관심을 보이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기도 한다. 어쩌다 말을 시켜보아도 몇 마디 않고 입을 닫는다. 차츰 분위기가 무거워지니 그 다음부터는 무관심에 익숙해진다. 그러던 아이도 학교를 벗어나 자기 주도적인 배움을 하면서는 점차 수다스럽게 바뀐다.
고민이 많기에 할 말도 많은 거다. 나는 이런 아이와 종종 이야기를 나눈다.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무얼 하면서 지내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이렇게 묻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걸 알게 된다. 이야기가 깊이 들어갈수록 아이는 솔직해진다.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서로 이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다로 넘어간다. 수다는 여러모로 좋은 것 같다. 나는 아이를 좀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고, 아이는 대화를 통해 자기 정리를 하게 된다.
승수가 올 초 우리 집에 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훌쩍 큰 키에, 여드름투성이 얼굴. 나하고는 사실상 첫 만남이라 궁금한 게 많았다. 승수는 어눌하지만 할 말이 많았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내가 당시 쓴 일기 가운데 일부만 옮겨본다.
“승수가 우리 집에 온 목적이 뭐니?”
“두루 체험을 하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무슨 체험?”
“지난번에는 인제 자원이네 갔었는데. 거기서는 복분자 심는 일이랑 집짓기 일을 조금 했었거든요. 저는 귀농에도 관심이 있어요. 여기서는 겨울이라 농사는 어떨지 모르겠고 도끼질이라든지 톱질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네가 귀농이라니, 왜?”
“도시는 답답하거든요. 시골은 좀 자유로울 것 같아요.”
“시골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잖아?”
“시골서 며칠 지내보니 공기부터 다르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