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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술 이야기 20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와 스크루드라이버

안 되면 되게 하라! 궁즉통(窮則通)의 술

  • 김원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와 스크루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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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운전에 음주목욕, 음주수영까지 즐기는 알코올 중독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엔 수많은 술이 등장한다. ‘음주달인’ 주인공이 그중에서도 가장 쉽고 빠르게 만들어 들이켜는 술이 스크루드라이버다. 보드카와 오렌지주스, 그리고 잔 하나만 있으면 끝. 물론 공구함에 나뒹구는 진짜 ‘스크루드라이버’까지 갖추면 완벽한 칵테일 상차림이 된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와 스크루드라이버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1995년 작품으로 존 오브라이언의 반자전적 소설에 기초를 둔 것이다. 원작자 오브라이언은 영화 제작이 시작된 지 2주 뒤에 자살했다. 이 일로 한때 제작 중단이 고려되기도 했으나 오브라이언에 대한 추모 분위기 속에 촬영이 진행됐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 처음에는 흥행 성적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가와 평론가들의 호의적인 평가가 이어지면서 남자 주인공 역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1996년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전미비평가협회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아카데미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알코올에 중독돼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남자 주인공과 라스베이거스 거리에서 하루하루 생활을 꾸려나가는 창녀의 비극적 사랑을 그렸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극중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촬영에 들어가기 전 2주에 걸쳐 폭음을 하면서 친구에게 비디오 촬영을 부탁해 취했을 때의 말투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이 경험이 극중 인물 연구 중 가장 즐거운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벤 샌더슨은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극작가로 심한 알코올 중독 탓에 직장과 가정 등 모든 것을 잃어가고 있다. 영화는 벤이 한 대형 슈퍼마켓의 주류 코너에서 엄청난 양의 술을 카트에 채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동료 피터(리처드 루이스 분)를 찾아가 애걸하듯 돈을 빌린 그는 바로 술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취기에 횡설수설하면서 한 여인을 유혹해보려 하나 실패한다. 술을 줄이라는 여자의 충고에 “차라리 숨을 덜 쉬라고 하지”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그의 정신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바를 나온 그가 차를 몰면서 교통경찰의 눈을 피해 보드카를 병째로 들이켜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상징이다. 그 후 스트립쇼를 보면서 단숨에 술 한 병을 비우고 난 그는 거의 인사불성이 된다. 그 상태로 차를 몰다 거리의 창녀를 만나 모텔에 들어간 그는 “술 때문에 마누라가 떠났는지, 아니면 마누라가 떠나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지…”라며 한탄한다. 그날 밤 창녀와의 만남은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가 결혼반지를 잃고 마는 것으로 끝난다.



두 남자, 한 여자

밤낮으로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금단 증상으로 손이 떨려 글씨조차 제대로 쓸 수 없게 된 그는 마침내 직장에서 해고된다. 퇴직금이라는, 그의 기준으로는 목돈을 손에 쥔 그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집을 정리하면서 사진, 옷가지, 여권 등의 소지품들을 뒷마당에 모아 태운다. 그 와중에도 술을 마시는 것은 잊지 않는다. 그러고는 차를 몰고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떠난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벤은 거리를 횡단하던 여자를 칠 뻔한다. 그 여자는 조심하라며 손가락으로 욕을 하고 사라진다. 그녀는 세라(엘리자베스 슈 분)라는 이름의 창녀로 유리(줄리안 샌즈 분)라는 라트비아 출신 포주에게 고용돼 일하고 있었다. 벤과 세라의 우연한 만남은 이후 숙명적인 인연으로 이어진다.

벤은 하루 29달러짜리 싸구려 모텔에 투숙한다. 그 다음날 맥주를 마시며 라스베이거스 밤거리를 드라이브하다가 거리에 나와 있는 세라를 발견한다. 그는 반가운 나머지 그녀와 거래를 하고 자신의 숙소로 데려간다. 세라는 벤의 방에 잔뜩 늘어서 있는 술병들을 보고 놀란다. 벤은 세라에게 사실 성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며 그냥 자기와 이야기만 나눠달라고 한다. 세라가 “라스베이거스엔 왜 왔느냐?”고 묻자 벤은 “술 마시다 죽으러 왔다”라고 답한다. 세라가 피식 웃으며 “얼마 동안 술을 마시면 죽게 되냐?”고 되묻자 벤은 “아마 4주 정도면”이라고 대답한다. 데킬라를 마시며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세라는 벤에게서 포근함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그만 잠이 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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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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