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이웃의 눈으로 본 한중일 삼국사

  • 고승철│저널리스트·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koyou33@empas.com

    입력2011-02-22 15: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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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의 눈으로 본 한중일 삼국사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2<br>유용태 박진우 박태균 지음, 창비, 414쪽(1권) 412쪽(2권), 각권 1만8000원

    네덜란드의 소도시 마스트리히트. 인구 15만명의 이 도시는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3개국의 국경지역에 있다. 시민들은 맥주를 마시러 독일로 건너가기를 즐기며 저녁식사를 하러 벨기에 식당으로 가기도 한다.

    1991년 12월9~10일 이틀 일정으로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이 열렸다. 당시 파리특파원으로 활동하던 필자는 이 회담을 취재하러 갔다. 유럽연합(EU)의 탄생을 매듭짓는 중요한 회의였다. 치열한 논의가 이어져 10일 자정이 되어서야 회담이 끝났다.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은 11일 오전 1시10분에야 시작됐다. 유럽을 통합한다는 내용을 담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그렇게 태어났다. 조약을 살펴보니 황당무계했다. 회원국들이 앞으로 단일통화를 사용한단다. 가능할까? 당시에 필자뿐 아니라 다른 언론인들도 미심쩍은 눈길로 봤다.

    세월이 흘러 유로화(貨)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프랑(프랑스), 마르크(독일) 등은 사라졌다.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제1차, 2차 세계대전에서 혈전을 벌인 프랑스와 독일은 수백 년 구원(舊怨)을 풀고 유럽통합의 쌍두마차를 끌었다. 양국 전문가들은 중·고교에서 쓰는 유럽역사 교과서도 함께 만들었다. 오랫동안 적대국이었던 이들이 공통 역사서를 만들다니 대단한 성과 아닌가. EU 회원국들은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에 따라 대학생들을 활발하게 교류하게 하는 등 교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눈을 동아시아 쪽으로 돌려보자. 한·중·일 3국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까. 흔히 ‘유교문화권’이니 ‘한자문화권’이니 하며 공감대가 넓은 것으로 묘사한다. 서양인 시각에는 그렇게 비칠지 모르지만 동양 3국 국민은 외모만으로도 서로의 국적을 분간할 만큼 이질적 요소를 금세 감지한다.

    사관(史觀)도 크게 차이 나리라. 한국은 중국에 대해 오랫동안 조공을 바쳤지만 1990년대 중국의 개방 초기 때는 낙후된 중국을 보고 우월감을 가졌다. 한국은 35년간 일본 식민통치를 받았으나 고대, 중세까지만 해도 일본에 선진문물을 전수했다는 자부심을 지녔다. 중국은 오래된 역사, 세계 최대 인구, 높은 경제성장률 등을 바탕으로 세계 패권을 노리며 한국, 일본을 ‘작은 나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한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 2강 경제국이었다는 자긍심으로 여전히 중국, 한국에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



    3국 사이에 영토 다툼이 일어날 소지도 크다. 한일 간에는 독도, 한중 간에는 백두산, 중일 간에는 센카쿠열도(중국 이름으로는 댜오위다오 열도)가 분쟁 예상 지역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한반도 역사를 왜곡했다. 일본은‘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워 일본이 오래전에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요즘 중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역사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청(淸)나라의 역사를 복원하는 사업에 학자 1500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예산은 12억위안. 청 왕조 붕괴 100주년이 되는 2012년에 새로 쓴 ‘청사(淸史)’를 완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프로젝트의 정식 명칭은 ‘국가청사찬수공정(國家淸史纂修工程, 약칭 청사공정)’이다. 공정의 목적은 서양세력에 의해 몰락한 청 왕조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청이 이룬 사상 최대의 영토, 다민족 국가 건설 등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국가 통합문제를 해결할 교과서로 활용할 것으로 추정된다.

    6년 각고 끝에 낸 역사서

    통합유럽과 달리 한·중·일 3국에서는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편이다. 3국이 공동 역사 교과서를 마련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하겠다. 그렇더라도 그런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된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덩치가 큰 중국과 일본이 정면대결로 이견을 좁히지 못한다면 한국이 중재자로 나서도 좋을 듯하다.

    역사학자 3인이 공동 집필한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매우 의미 있는 역저(力著)다. 중국사 전공자인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일본사 전문가인 박진우 숙명여대 일본학과 교수, 한국 근현대사 분야의 권위자인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이 6년여 각고 끝에 펴낸 책이다. 이들은 매월 한 차례 집필회의를 열어 의견을 조율했다. 가장 유의한 점은 하나하나의 사건이 국가 간에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호작용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다. 한국사, 중국사, 일본사를 각각 병렬적으로 길게 설명한다 해서 해결되지 않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집필 취지를 서문의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확인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국사/세계사의 이분체제는 사실상 메이지유신 이래 제국일본에 의해 구축된 사관과 역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다. 자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가 그것이다. 자유로운 사고를 억압하면서 동아시아지역을 두 진영으로 갈라놓은 냉전시대가 끝나고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선 이후, 바로 동아시아가 하나의 지역사로 파악될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 만큼 제국의 유산으로 인해 그동안 우리 스스로 소외시킨 동아시아 이웃들의 역사적 경험을 지역사의 관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절실해졌다.

    서문에서 밝힌 대로 베트남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꽤 자세히 소개돼 눈길을 끈다. 베트남은 중국에 긴 세월 동안 조공을 바쳤고 자국 영토에서 외국 군대들이 몰려와 치열한 전쟁을 벌인 사실 등이 한국역사와 적잖은 공통점을 가졌다.

    병자호란 이후 200년간 평화 유지

    이 책의 장점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400년 근현대사의 큰 흐름을 통합적 시각으로 조망했다는 데 있다. 먼저 중국의 명(明)이 바다 진출을 금지한 해금(海禁)정책 시기를 탐구했다. 이어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를 침탈한 제국주의 시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시기, 1970년대 이후의 탈(脫)냉전 시기 등으로 시대를 크게 4개로 나누었다. 항목별 설명에서 여러 나라 역사를 골고루 다룬 점이 돋보인다. 저자들은 ‘연관과 비교’라는 서술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15세기에 명은 해금정책을 펴고 쇠퇴기에 빠졌다. 이 책에 따르면 이 무렵에 벌어진 임진조일전쟁(壬辰朝日戰爭·임진왜란)과 그 여파로 일어난 병자조청전쟁(丙子朝淸戰爭·병자호란) 이후 약 200년간 동아시아에는 평화 체제가 유지됐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고 조선, 일본, 베트남을 ‘소중심’으로 하며 류큐(琉球·오키나와), 몽골, 티베트 등을 ‘주변’으로 하는 위계화된 형태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아편전쟁(1840~42)의 의미를 중시한다.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무력 앞에 무릎은 꿇은 청 왕조는 1842년 난징조약을 맺고 영국에 숱한 이권을 넘겨준다. 난징조약은 국가 대 국가 사이에 맺은 근대적 국제조약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일본 지도층은 서양의 힘을 확인하고 서양과 맞서 싸우기보다는 서양과 교역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서둘러 개항을 결정했다. 조선 조정은 일본의 개항과 메이지유신(1868)에 대해 의미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한 반면 아편전쟁 정보에 관해서는 연행사절을 통해 제때 파악했다. 조선은 서양의 통상요구를 거절했다. 천주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천주교도와 민중이 손을 잡고 민란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메이지유신 직후에 일본은 타이완을 침공하고 류큐를 합병하는 등 바깥으로 몸집을 불렸다. 일본의 팽창에 맞서는 청, 러시아는 일본과의 한판 승부를 불사했다. 마침내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터졌다. 이들 열강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의 땅과 바다는 남의 나라끼리 붙는 패권 경쟁의 싸움터가 되었다. 양대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합병하는 등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로 부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전쟁 특수(特需)를 누리던 일본은 큰 타격을 입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고 1929년 세계대공황의 여파가 일본에도 밀려오자 민심이 흉흉해졌다. 테러와 쿠데타가 이어지자 일본 군부는 테러 진압을 명분으로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일본 파시즘이 대두한 것이다. 일본은 동남아를 장악하기 위해 ‘대동아 공영권’이란 명분을 내세웠다.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전쟁 도중에 진행된 타이~미얀마 철도공사에서 연합군 포로 6만명과 민간인 노무자 20만명이 동원됐다. 이 가운데 7만4000명이 희생당했다. 일본의 이런 만행은 영화 ‘콰이강의 다리’가 잘 묘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양대 강국 사이에는 냉전(冷戰)이라는 새로운 갈등이 전개됐다. 이 여파로 한국과 베트남은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민족끼리 싸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16억달러라는 엄청난 전쟁 특수를 누렸다. 미국이 전쟁 물자를 일본에 주문한 덕분이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부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어 벌어진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과 일본은 전쟁특수를 맛봤다. 이웃 나라의 참극을 틈타 떼돈을 번 셈이다.

    옛 소련이 붕괴하면서 좌우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냉전은 끝났다. 아시아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중국은 개방정책을 펼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놓고 다투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동아시아 여러 나라 국민은 국경을 넘어 취업을 한다. 이주 노동자들의 불평등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이슈다. 노동자들의 이주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2005년 한·중·일 3국의 학자 및 교사들이 함께 펴낸 ‘미래를 여는 역사’라는 역사서보다 몇 걸음 앞섰다. 진지한 성찰을 담았고 객관적 위치를 유지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400년, 역사로 소통하다!’라는 부제가 책 내용과 딱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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