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무룡이 좌·우익이 대립하던 6·25 전쟁 중 서울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는 인물을 연기한 1966년 작 ‘잃은 자와 찾은 자’의 한 장면.
산언덕에 위치한 카메라가 먼 아래 해변을 보여준다. 해변에는 한 남자가 서 있다. 다음 장면은 해변에 서 있는 남자의 정면. 나운규로 분한 최무룡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카메라 프레임을 만들어 풍경을 바라본다. 나운규의 손가락 프레임 안으로 오몽녀와 한 남자가 들어온다. 그들은 나운규의 마지막 작품 ‘오몽녀’의 출연 배우들이다. 나운규의 손가락 프레임 안에서 그들은 연기를 시작한다. 쇼트가 바뀌면서 영화 속 장면이 실연되고, 그들의 감정이 고조될 무렵 미친 듯이 연기를 지시하는 나운규의 허벅지까지 파도가 밀어닥친다. 나운규는 가슴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에도 아랑곳 않고 연기를 지시한다. 영화감독의 광기와 집념이 고스란히 표현된 멋진 장면이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쓰러진 나운규를 배우들이 해변으로 끌어내면서 카메라는 다시 산언덕으로 올라가 장면을 마무리한다.
이 장면을 보는 내내 나는 숨이 멎어버릴 것 같았다. 조강지처 아내와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병든 어린 딸을 냉혹하게 외면하고 동가식서가숙 장안의 기생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무의미하게 인생을 방기하는 삶. 그것은 자신의 영화를 검열해 가위질하는 숨 막히는 현실에 대한 자학적인 저항의 모습이다. “어차피 아쉽게 끝날 운명. 어차피 아쉽게 끝날 영화. 어차피 아쉽게 끝날 사랑”이라며 자신의 생명과 재능을 낭비해버리는 삶을 택한 나운규는 폐병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신(神)에게 묻는다. “운명의 근본은 무엇인가? 인생의 해석은 또 무엇인가? 신이여. 우리 주먹으로 해결하자!”
나운규의 모습을 빌려 최무룡은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검열과 자신에 대한 저평가에 대해 분노한다. 나운규의 영화에 대한 집념과 광기로 숨 막히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피를 토하고 혼절해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누워 있는 병실에서도 나운규는 “진행! 진행! 내일 촬영 준비는?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화를 끝내고 싶다”며 기어이 일어나 ‘오몽녀’를 촬영하기 위해 촬영장으로 들어서서는 “이 나운규의 생명을 절약합시다” 소리치고 ‘레디 고’를 외쳐 영화의 라스트 장면을 찍고 “내 가슴이 뽀개진다”면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숨을 거둔다.
영화의 라스트. 완성된 ‘오몽녀’가 극장에 걸리고 극장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극장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수천의 관객, 표를 사려고 줄을 선 수많은 관객 옆 도로에 나운규의 영정을 든 장례행렬이 지나간다. 자신의 목숨을 불살라 하얗게 타버릴지라도 자신이 만든 영화를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하는 영화감독의 욕망. 그것은 나운규의 열망이었고, 최무룡의 열망이기도 했다.
저평가된 명장
걸작 ‘나운규 일생’을 만든 이후 최무룡은 액션 영화를 한 편 만드는데 그것이 ‘제삼지대’(1968)다. 영화가 시작되면 울퉁불퉁한 돌덩이가 화면에 가득 찬다. 물론 진짜 돌덩이가 아니라 스티로폼을 깎아 그 위에 색칠한 가짜 바위이긴 하지만 그다지 조악해 보이지는 않는다. 카메라가 서서히 뒤로 빠지며 화면 안으로 세 개의 돌덩이가 더 드러난다. 돌을 깎아 만든 한자 영화 제목 제삼지대! 타이틀 시퀀스가 끝나면 어디선가 날아온 잭나이프가 나무에 박히고, 잭나이프를 피해 고개를 숙여 화면 아래에 있던 박노식이 몸을 일으키며 액션 신이 시작된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대여섯 명의 악당을 노려보는 박노식의 앙각(仰角) 바스트 샷으로 신을 열고 카메라는 박노식의 액션을 나눠 찍지 않고 한 호흡으로 멀리서 길게 찍어낸다. 어라. 최무룡은 액션신도 잘 찍는 걸! 박노식이 악당들을 모두 처치하자 다시 카메라는 액션신의 첫 화면과 같은 앵글로 돌아와 땀에 젖은 박노식의 앙각 바스트 샷으로 마무리된다. 신의 열림과 닫힘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엿보이는 첫 액션 신이다.
자기 이름을 당시 화제를 모으며 등장한 모노레일에서 딴 ‘모노레로 박’이라 하며 허세를 부리고 술을 마시기 위해 싸움질을 하고, 사람을 패야 밥이 나오고, 주먹질을 해야 잠자리가 생긴다며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박노식에게는 동경대를 다니며 김지미와 사랑을 약속한 지식인 동생 최무룡이 있다. 잘난 동생이 어머니에게 효도할 기회마저 빼앗아간다고 화를 내는 한심하고 극악무도한 형 박노식은 폭행 청부를 받고 사람을 찌를 때 한 치 한 푼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고 정확하게 찌른다며 호언장담하는데 그가 범죄를 저지른 현장이 공교롭게도 동생 최무룡과 김미지의 데이트 장소였다. 최무룡은 사람을 찌르고 도망친 형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형무소로 간다. 동생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형 박노식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며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가서 훈련을 받고 지도원이라는 감투를 쓰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까지 북에서 배운 고문 기술을 쓰는 잔혹한 짓을 저지르며 입신출세에 모든 것을 건다. 출감한 최무룡은 사랑하는 김지미가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갔다는 말에 낙심해 자신을 이름도 성도 없는 무법자라 칭하며 점점 폭력의 길에 들어서고, 급기야 민단의 고문을 지키는 요짐보(用心棒), 즉 보디가드가 된다. 이쯤 되면 관객은 박노식과 최무룡 형제의 피 튀기는 대결과 화해를 예상할 것이다. 당시 모든 영화가 그랬듯 악당 박노식은 최무룡에 의해 죽어가며 길고 긴, 그래서 하품까지 나오는 대사를 읊조리며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리라.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마주 선 형과 아우는 대결을 하지 않고 박노식이 슬쩍 빠지면서 조총련계 야쿠자 20명과 최무룡 혼자서 대결하는 조건을 걸고 싸움이 시작된다. 20대 1의 대결은 장검을 휘두르는 액션이다. 최무룡은 그동안 검도를 익혔는지,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액션장면을 연출한다. 1960년대 말 홍콩 무협 영화 ‘방랑의 결투’(호금전 감독, 1966)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장철 감독, 1967)가 한국에 상륙해 홍콩 무협영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최무룡은 당시 인기 있는 액션 장면을 따라 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고 자신의 취향을 따른 액션신을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