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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액션 영화배우 열전 ⑪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2% 부족한 카리스마 비극적인 말로

  • 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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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영화를 보자. 암흑가 보스 장동휘의 아내 문정숙은 모함과 오해에 얽혀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둥서방이란 자가 마약중독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도시의 뒷골목 한구석에 문정숙이 서 있다. 다른 여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남자를 유혹하는데 그녀는 텃세에 밀린 것인지, 다른 여자들의 뒷전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문정숙의 얌전한 자태에 끌려 그녀에게 다가간 남자들은 얼굴에 난 흉한 상처를 보고는 질겁한다. 문정숙의 몸을 사려던 사내가 얼굴의 흉한 상처를 보고 자신을 속였다며 그녀를 때리려 하자, 둘 사이를 가로막는 사내가 나타난다. 이대엽이다. 그는 말로 하지 왜 여자를 때리느냐며 남자를 단숨에 제압한다. 그러고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나도 궁금해서 나왔는데 나하고 놉시다” 한다. 당당하고 구김살이 없다. 내뱉는 말은 짧고 명료하다. 그는 가난한 육체 노동자 신세여서, 밤거리 여자들의 신세를 지지만 적어도 야비하지는 않다. 상대가 창녀라도 지킬 것은 지킨다. 창녀들의 쪽방 마당에 들어서는 이대엽. 포주가 얼굴의 흉터 때문에 남자들과 트러블이 잦은 문정숙에게 방을 내주지 않으려 하자 지켜보던 이대엽은 “안되나? 갈란다 고마” 툭하고 내뱉고는 망설임 없이 돌아선다. 투박한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쪽방 주인과 계약이 성사되고 문정숙과 방에 들어간 이대엽. 문정숙은 방에 들어가자 불부터 끈다. 아침에 일어난 이대엽은 얼굴에 흉한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 “그래서 그랬고마” 수긍한다. 불행한 여자 앞에서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짧고 투박하지만 지저분한 창녀촌의 쪽방을 훈훈하게 만들 만큼 정이 넘치고, 이해심이 있다. 이만희 감독의 1964년 작 ‘검은머리’의 한 장면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만희 감독, 1963)에서의 이대엽은 또 어떤가? 언제나 말없이 내무반 귀퉁이에서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던 이대엽은 장동휘 분대에 전입해 온 최무룡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이란 말인가? 최무룡의 형은 이대엽의 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한 원수다. 대원들의 중재로 일단 화해는 한다. 자신의 동생을 최무룡이 죽인 것은 아니잖은가? 하지만 최무룡의 얼굴을 보면 억울하게 죽은 동생이 생각난다. 지금은 전쟁 중이고, 최무룡은 같은 분대의 전우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이대엽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운다. 울어서 푸는 수밖에 없다. ‘검은 머리’에서 무뚝뚝하지만 정이 철철 넘치는 사내였던 그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는 과묵하고 책임감 넘치는 병사를 연기해낸다.

투박한 경상도 사나이 이대엽

이대엽이 최무룡, 남궁원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빨간 마후라’의 한 장면.

이만희 감독과의 만남

1958년 경남 마산으로 촬영 간 한형모 감독의 눈에 들어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배우가 된 이대엽은 박노식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을 했듯 투박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를 영화 속에서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다. 전라도 사나이가 박노식이라면, 경상도 사나이는 이대엽이었다. 데뷔 초기 주로 한형모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는 한 감독의 1958년 작 ‘나 혼자만이’에서 김진규를 돕는 정의로운 청년 역을 맡아 평론가들에게 “키가 좀 작은 것이 흠이지만 장래를 보고 싶은 연기바탕을 가지 연기자”라는 칭찬을 받는다. 이후 주로 주인공을 돕는 정의로운 조연으로 출연하던 그가 개성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만희 감독 영화에 출연하면서부터다.

1963년 작 ‘YMS 504의 수병’을 보자. 패기 넘치는 젊은 장교 박노식은 해군 사상 최고 말썽꾼들의 똥배라는 YMS 504호의 함장으로 부임한다. 부함장은 노상 술에 찌들어 바람둥이 아내의 무기력한 남편인 자신의 신세를 저주하는 개망나니 싸움꾼 알코올중독자 장동휘이고, 하사관의 최고선임 이대엽은 마음에 안 들면 주먹부터 날리는 싸움꾼에 술주정뱅이다. 이두박근에 여자 나체 문신을 하고 눈에 거슬리면 언제나 ‘계급장 떼고 한판 붙어보자’며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병사에게 웃통을 벗으며 덤벼든다. 박노식은 이대엽과 꼴통 수병들의 싸움질을 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저런 꼴통들을 나더러 다루란 말이냐?”며.



이대엽과 이만희 감독의 두 번째 만남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었다. 이후 세 번째 만남 ‘검은 머리’에서 이대엽은 장동휘와 문정숙을 두고 삼각관계에 휘말리지만, 사내답게 문정숙의 행복을 빌고 떠나가는 택시운전사 역을 맡아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다. 이후 ‘빨간 마후라’(신상옥 감독, 1964)에 출연해 인기를 한 몸에 모은 그는 이후 반공 전쟁영화의 단골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다.

모든 배우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배우의 출연작 중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둔 영화에서의 연기가 그 배우의 연기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대엽의 대성공작은 ‘빨간 마후라’였다. 이후 이대엽의 캐릭터는 항상 의리 있고, 뚝심 있는 경상도 사나이로,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면 돕는 역을 했다. 비슷한 종류의 영화에서 비슷한 배역을 맡는 조연. 이것이 1960년대 중반까지 이대엽의 모습이었다.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을 만나면 배우는 성장한다. 이대엽의 연기를 물오르게 한 감독은 이만희였다. 그러나 개봉 이후 군사정권이 필름을 강제 소거해버려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은 영화 ‘7인의 여포로’(1965) 이후 이대엽은 이만희 감독 영화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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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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