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호

〈새연재〉 북유럽 신화의 재발견

어벤져스, 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

“다시 북유럽 신화가 돌아왔다”

  • 김원익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문학박사

    apollonkim@naver.com

    입력2019-11-05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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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과 거인, 어둠과 빛, 삶과 죽음의 대결

    • 거인 이미르를 죽인 오딘 삼형제

    • 충돌과 갈등의 세상사, 북유럽 신화가 뜬 이유

    • 물푸레·느릅나무로 만든 인간, 구더기로 만든 난쟁이

    영화 ‘퍼스트어벤져’(왼쪽)와 ‘토르 : 다크월드’ 스틸 컷. [Marvel 제공]

    영화 ‘퍼스트어벤져’(왼쪽)와 ‘토르 : 다크월드’ 스틸 컷. [Marvel 제공]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 사건이 벌어진 시대순으로 보면 제1편은 ‘퍼스트 어벤져(The First Avenger)’로 불리는 ‘캡틴 아메리카(Captain America)’다.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3월, 무대는 노르웨이의 퇸스베르크 지역이다. 장갑차를 앞세운 히틀러의 측근 슈미트 장군이 사원 문을 밀치고 들어오더니 공포에 질린 사제를 보고는 다짜고짜 “대대로 숨겨왔던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사제는 “그것은 전설 속에나 존재한다”며 시치미를 떼지만, 슈미트는 사원의 홀 한가운데에 있던 커다란 관 뚜껑을 밀치더니 관 속 백골 손에 들려 있던 정사각형의 하얀 물체를 들어 찬찬히 살펴본다. 그리고 독백처럼 읊조린다. 

    “테서랙트(tesseract)는 오딘(Odin)의 최고 보물이었어!” 

    그러나 슈미트는 “테서랙트는 관에 묻어둘 물건이 아니다”라며 사제에게 “멀지 않은 곳에 뒀겠지?”라고 묻는다. 시선을 돌려 홀을 두리번거리던 슈미트는 한쪽 벽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걸 발견하고는 “위그드라실(Yggdrasil)이군! 세계의 나무!”라고 외친다. 나무의 커다란 뿌리 하나를 감고 있는 뱀의 눈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르자 ‘찰칵’ 소리를 내며 조그만 서랍이 벽에서 튀어나온다. 그 속에서 테서랙트가 발산하는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는 서랍 뚜껑을 닫으며 감격에 겨워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런데도 총통은 사막에서 보물찾기나 하고 있지!”



    세상을 몰락시킨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

    오딘 삼형제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미르, 로렌즈 프뢰리쉬, 1820~1908.

    오딘 삼형제에 의해 살해당하는 이미르, 로렌즈 프뢰리쉬, 1820~1908.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영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퍼스트 어벤져’ 시작부터 등장하는 오딘은 바로 북유럽 신들의 왕이다. 위그드라실은 북유럽 신화의 아홉 세상에 걸쳐 자라는 거대한 신목(神木)이다. 뱀은 그 나무의 뿌리를 갉아먹고 사는 니드호그(Nidhogg). 테서랙트는 슈미트의 말처럼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오딘의 보물은 아니지만, 오딘이 갖고 있던 신기한 보물에서 착안해 만든 것이다. 그 역할도 북유럽 신화의 안드바리(Andvari)의 반지를 빼닮았다. 반지를 차지한 사람은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지만 자칫 그 때문에 파멸을 당할 수도 있는 저주의 보물이다. 슈미트는 끈질기게 그것을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손아귀에 넣지만, 결국 영웅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으로 파멸하고 만다. 어벤져스 시리즈 첫 작품에 나오는 북유럽 신화는 소재나 모티프로 살짝 모습을 드러내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점점 그 비중을 높여간다. 그래서 ‘토르’ 편에서는 아예 이야기 전체가 북유럽 신화 일색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중의 엄청난 사랑을 받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나 영화 ‘반지의 제왕’도 북유럽 신화에 바탕한다. 우리나라의 토종 게임 ‘라그나로크’도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과 거인들이 벌인 최후의 전쟁 ‘라그나뢰크(Ragnaro˙˙k)’에서 따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세상은 ‘텅 빈 공간’을 의미하는 카오스(Chaos)에서 만들어진다. 카오스는 일반적으로 ‘혼돈’으로 번역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바로 이 혼돈에서 이 세상의 만물이나 신들이 생성된다. 그리스 신화의 세상은 태초에 혼돈에서 시작해 점차 질서가 잡힌 코스모스의 상태로 자리 잡아간다. 혼돈의 대명사인 폭력적 티탄신족을 제압하고 권력을 잡은 올림포스 신족이 그물망처럼 촘촘한 체계적 조직으로 발전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이 세상은 그리스 신화의 혼돈과 비슷한 ‘어둠’에서 시작된다. 어둠은 땅도 바다도 하늘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얼마 후 이 어둠에서 ‘무스펠헤임(Muspellheim)’과 ‘니플헤임(Niflheim)’이라는 두 공간이 만들어진다. 무스펠헤임은 ‘불의 나라’, 니플헤임은 ‘얼음의 나라’라는 뜻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이 세상의 만물이나 신들은 바로 이러한 이질적인 두 공간의 충돌과 갈등으로 생성된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의 세상은 그리스 신화에서처럼 코스모스의 상태로 발전하지 못한다. 충돌과 갈등을 거듭하다가 결국 라그나뢰크라는 파국으로 끝을 맺고 만다.

    서리거인과 암소 한 마리

    이미르가 아우둠라의 젖을 먹는 모습을 그린 그림 ‘아우둠라’, 니콜라이 아브라함 아빌드가드, 1777.

    이미르가 아우둠라의 젖을 먹는 모습을 그린 그림 ‘아우둠라’, 니콜라이 아브라함 아빌드가드, 1777.

    북유럽 신화에서 불과 얼음의 공간은 각각 남쪽과 북쪽을 거점으로 삼으며 세상을 양분한다. 두 공간을 대변하는 불과 물은 원래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상극이다. 물은 아무리 드센 불길이라도 잠재울 수 있으며, 불은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증발시킬 수 있다. 그래서 북유럽 신화에서 불과 얼음의 공간은 생성되자마자 영역 확장을 위해 내부에서 엄청난 싸움을 벌인다. ‘왕좌의 게임’ 시리즈의 원작 소설 제목이 ‘얼음과 불의 노래’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불과 빛을 섬기는 여사제와 얼음을 상징하는 화이트 워커가 맞대결한다. 북유럽 신화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날 두 공간이 마주하고 있는 경계선에서 갑자기 엄청난 수증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불의 공간이 뿜어대는 거센 화염에 얼음이 녹으면서 경계선에 조그만 틈이 생긴 것이다. 그 틈은 점점 커지더니 급기야 ‘긴눙가가프(Ginnungagap)’라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깊고 넓은 계곡을 이루었다. 이윽고 북쪽 니플헤임의 얼음 절벽에서 ‘흐베르겔미르(Hvergelmir)’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용천수처럼 솟아나 12개의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계곡으로 흘러 떨어지는 강물에서는 불의 공간에서 불어오는 열기 때문에 계속해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안개는 얼음 공간에서 불어오는 한기(寒氣)로 말미암아 서리로 변해 계곡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한기와 열기가 계속해서 만나면서 켜켜이 쌓인 서리에서 어느 날 마침내 북유럽 신화 최초의 생명체인 ‘이미르(Ymir)’라는 서리거인과 ‘아우둠라(Audhumla)’라는 거대한 암소 한 마리가 태어났다. 

    이미르는 영화 ‘진격의 거인’ 시리즈에서도 ‘유미르’라는 발음만 약간 다르게 차용하고 있는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크기의 거인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티탄(Titan)’족이나 ‘기간테스(Gigantes)’족보다도 훨씬 더 컸다. 기간테스가 해발 2000m가 넘는 그리스 산들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 정도였으니, 이미르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서리거인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거대한 암소 젖을 빨았다. 이미르는 그렇게 암소의 젖을 먹으면서 자신의 살만 불린 게 아니라 거인의 자식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이미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어느 날 잠을 자면서 흘린 땀으로 자식들을 만들어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태초에 혼자서 ‘하늘의 신’ 우라노스(Ouranos)를 만들어낸 것과 유사하다. 

    가이아가 무엇으로 우라노스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르는 왼쪽 겨드랑이에 흥건하게 고인 땀으로 남자와 여자 거인 하나씩을 만들어냈다. 또한 자신의 한쪽 다리로는 다른 쪽 다리와 짝을 이루어 머리가 여섯 개 달린 거인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미르가 혼자서 만들어낸 이 세 명의 거인이 바로 북유럽 신화에 출연하는 모든 거인의 조상이다.

    오딘 삼형제가 만든 세상

    긴눙가가프에 던져지는 이미르, 캐서린 파일, 1930.

    긴눙가가프에 던져지는 이미르, 캐서린 파일, 1930.

    암소 아우둠라도 니프헤임 절벽에서 떨어져 계곡에 흩어져 있는 얼음조각을 먹으며 살았다. 니플헤임 쪽 절벽에서 떨어진 얼음 조각은 소금기가 배어 입맛을 돋우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암소가 커다란 얼음덩이 하나를 핥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 사람의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암소가 같은 얼음을 계속 핥자 둘째 날에는 머리 전체가 드러났고, 셋째 날에는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신이 한 명 돋아났다. 그렇게 한참을 반듯하게 누워 있던 신은 얼마 후 잘 잤다는 듯 긴 하품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 신이 바로 북유럽 신들의 조상인 ‘부리(Buri)’다. 암소 아우둠라가 얼음 조각에서 신의 형상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면 마치 조각가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부리는 갓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었다. 얼마 후 많은 수로 불어난 거인족을 아내로 맞아 아들 ‘보르(Bor)’를 낳았고, 보르도 성인이 되자 거인족 여자 ‘베스틀라(Bestla)’와 결혼해 ‘오딘’ ‘빌리(Vile)’와 ‘베(Ve)’라는 삼형제를 낳았다. 보르의 아들 삼형제는 캄캄한 계곡 속에 갇혀 사는 게 무료했다. 그들이 태어난 계곡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북쪽은 차디찬 얼음이, 남쪽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가로막는다. 얼음 절벽에서 12개의 물줄기만 폭포수처럼 흘러 떨어지면서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그들은 계곡을 재미나고 활기찬 곳으로 만들기 위해 뭔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딘 삼형제는 여러 번의 회의 끝에 서리거인 이미르를 죽여 그의 시신으로 계곡을 재정비하기로 결심했다. 그 방법 외에는 계곡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 재간이 없었다. 그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어느 날 곤히 잠들어 있던 서리거인을 칼로 찔러 살해했다. 그러자 이미르의 몸에서 솟구쳐 흘러나은 엄청난 피가 순식간에 계곡을 휩쓸었다. ‘핏물 쓰나미’였다. 그새 많은 수로 불어나 집단을 이뤄 살고 있던 이미르의 후손 거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거의 모두 핏물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이미르의 손자였던 ‘베르겔미르(Bergelmir)’와 그의 아내만 살아남았을 뿐이다. 

    이미르의 피로 일어난 홍수가 잦아들자 오딘을 비롯한 삼형제는 죽은 이미르의 살로 얼음조각뿐인 황량한 계곡에 비옥한 대지를 만들었다. 커다란 뼈로 대지의 산들과 암벽들을 만들었다. 자잘한 뼈와 부러진 뼈, 이빨로는 산의 바위, 바다의 암초, 모래와 자갈을 만들었다. 이미르의 시신에서 쏟아진 피와 땀으로는 호수를 만들기도 했지만, 주로 바다로 만들어 대지를 둘러쌌다. 이 뿐 아니었다. 이미르의 두개골로는 하늘을, 뇌수로는 구름을 만들었고, 불의 나라인 무스펠헤임에서 튕겨 나온 불꽃을 캄캄한 하늘에 박아 해와 달과 행성, 그리고 온갖 별을 만들었다. 

    북유럽 신화의 이미르는 중국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반고’를 빼닮았다. 중국 신화에서 세상은 거대한 알에서 비롯된다. 알 속이 카오스인 셈이다. 알 속의 카오스에서 거인 반고가 태어나고, 그는 태어나자마자 무려 1만8000년 동안 알 속에서 쿨쿨 잠만 잔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거인 반고가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자 알이 두 조각나면서 하늘과 땅이 생긴다.

    인간의 조상 ‘아스크(Ask)’와 ‘엠블라(Embla)’

    아스크와 엠블라를 창조하는 회니르, 오딘, 로두르, 1895.

    아스크와 엠블라를 창조하는 회니르, 오딘, 로두르, 1895.

    알 속의 맑은 기운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어둡고 탁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 하지만 거인 반고는 하늘이 다시 내려앉을까 걱정돼 하늘을 한 손으로 떠받치고 발로 땅을 힘차게 누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거인은 날마다 쑥쑥 자랐고 하늘과 땅 사이도 그만큼 벌어졌다. 

    다시 1만8000년이 흐르고 훌쩍 커진 거인의 키만큼 하늘과 땅의 거리는 9만 리(里)가 된다. 이제 하늘과 땅도 단단히 자리를 잡아 다시 붙을 염려가 없어졌다. 할 일이 없어진 거인은 시름시름 앓더니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이어 그의 몸은 세상만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거인 반고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 목소리는 천둥소리, 왼쪽 눈은 해, 오른쪽 눈은 달, 피는 강, 핏줄은 길이 됐다. 피부는 밭이 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별이 됐다. 털은 풀과 나무가, 이와 뼈는 금속과 돌, 땀은 빗물과 이슬이 됐다. 

    신화에서 시간은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신화의 시간은 현실의 시간처럼 순차적이지 않고 비약적으로 아주 빠르게 흐른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쌍둥이 동생인 아폴론을 낳는 어머니(레토 여신)를 돕는다. 갓 태어난 제우스도 단 며칠 만에 아버지 크로노스와 맞먹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 삼형제의 천지창조 작업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오딘을 비롯한 신들과 피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베르겔미르 거인 부부의 자손들은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대지에는 아직 신을 공경할 인간은 없었다. 이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한 오딘 삼형제는 어느 날 대지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인간을 만들 적당한 재료를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죽은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 가지였다. 그들은 두 나뭇가지로 각각 자신들의 모습을 본떠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만들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들이 바로 모든 인간의 조상 ‘아스크(Ask)’와 ‘엠블라(Embla)’다. 그들은 비록 뒤늦게 대지에 정착했지만 신들이나 거인 못지않게 재빠르게 자손들을 퍼뜨려갔다. ‘아스크’와 ‘엠블라’는 고대 노르웨이어로 각각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라는 뜻이다. 

    인간을 만든 뒤에도 오딘 삼형제의 창조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이미르의 남은 시신이 썩으면서 생긴 구더기를 보고 그것을 활용할 묘안을 생각해냈다. 그래서 구더기에게 인간의 모습을 닮았으면서도 그와는 다른 아주 작은 갖가지 형태를 부여한 다음 초인적인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어 그들을 사악하고 음흉하며 해로운 부류인 ‘난쟁이’와 선하고 착하며 이로운 부류인 ‘요정’으로 나누었다.

    난쟁이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

    루아스 후아드, ‘거인 스퉁과 난쟁이들’, 1900년대.

    루아스 후아드, ‘거인 스퉁과 난쟁이들’, 1900년대.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네, ‘파멸할 운명의 신들의 싸움’ (라그나로크 신화 중 한 장면), 1882.

    프리드리히 빌헬름 하이네, ‘파멸할 운명의 신들의 싸움’ (라그나로크 신화 중 한 장면), 1882.

    북유럽 신화에서 난쟁이는 ‘트롤(Troll)’ ‘코볼트(Kobold)’ ‘드워프(Dwarf)’, 요정은 ‘엘프(Elf)’라고도 불리며 신이나 거인, 그리고 인간들과 판이한 문화권을 형성한다. 난쟁이들은 무척 탐욕스러웠다. ‘반지의 제왕’에서 보석이나 보물을 탐내는 ‘골룸(Gollum)’처럼 금속을 다루는 대장일에 뛰어난 소질이 있다. 이에 비해 요정들은 평화를 사랑한 나머지 동물이나 식물을 아끼고 보호한다. 

    오딘 삼형제가 이렇게 창조 작업을 마무리했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일이 몇 가지 남아 있었다. 그들은 가끔 대지에서 강한 바람이 불면 이미르의 두개골로 만든 하늘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하늘이 무너질까 불안해진 그들은 난쟁이들 중 가장 힘센 녀석 넷을 골라 하늘의 네 귀퉁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단단히 잡고 있으라고 명령했다. 

    하늘의 동서남북 네 곳을 받치고 있는 난쟁이들의 이름은 각각 ‘아우스트리(Austri)’ ‘베스트리(Vestri)’ ‘Sudri(수드리)’ ‘노르드리(Nordri)’이다. 이 난쟁이들의 이름에서 바로 영어의 동서남북이라는 단어(East, West, South, North)가 유래했다. 

    얼마 후 오딘 삼형제는 무스펠헤임의 불꽃으로 만든 해와 달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우선 해와 달의 최적의 하늘길을 정하고, 그것들을 싣고 노선을 따라다닐 마차를 마련했다. 이어 마차를 몰 적임자로 ‘문딜파리(Mundilfari)’라는 거인의 자식인 ‘솔(Sol)’과 ‘마니(Mani)’ 남매를 택하고, 그들을 각각 해와 달의 신으로 삼았다. 

    ‘솔’과 ‘마니’는 각각 ‘해’와 ‘달’을 뜻하는 말이 됐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태양신은 남신 아폴론(Apollon)이고, 달의 신은 그의 쌍둥이 누나인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이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에서 태양신 ‘솔’은 여신, 달의 신 ‘마니’는 남신이다. 

    하늘의 질서가 정해지자 이번에는 밤과 낮을 돌볼 신들이 필요했다. 오딘 삼형제는 거인 중 하나인 노르비(NorviDS)의 딸 ‘노트(Nott)’에게 칠흑같이 검은 말이 끄는 밤 마차를 맡기고 밤의 여신으로 삼았다. 또한 노트의 아들 ‘다그(Dag)’에게 눈이 부시게 빛나는 말이 끄는 마차를 맡기고 낮의 신으로 삼았다. 

    ‘노트’와 ‘다그’는 각각 ‘밤’과 ‘낮’이라는 뜻이며, 북유럽인들은 밤과 낮이 그들을 싣고 다니는 말들 때문에 그렇게 어둡고 밝게 빛난다고 생각했다. 영어의 ‘Night’와 ‘Day’는 바로 북유럽 신화의 낮과 밤의 신 이름인 ‘Nott’와 ‘Dag’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낮의 신 ‘헤메라(Hemera)’는 밤의 여신 ‘닉스(Nyx)’의 자식이지만 남신이 아니라 여신이다. 

    북유럽 신화에서 태초에 무스펠헤임과 니플헤임 사이에서 시작된 충돌과 갈등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칠 줄 모른다. 신과 거인, 어둠과 빛, 삶과 죽음, 정의와 불의, 선과 악 사이의 충돌과 갈등으로 그 이름만 바꿀 뿐이다. 그래서 북유럽 신화의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충돌과 갈등이다. 모든 이야기는 이런 충돌과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아마 북유럽 사람들이 세상을 충돌과 갈등의 역사로 바라본 탓이리라. 충돌과 갈등은 오늘날 세상사 아닌가. 다시 북유럽 신화가 돌아왔다.


    김원익
    ● 1961년 전북 김제 출생
    ● 연세대 독문학과 졸업(문학박사), 독일 마부르크대 수학
    ● 신화연구가, (사)세계신화연구소 소장
    ● 저서 : ‘신화, 인간을 말하다’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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