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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터 박영순의 커피 인문학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 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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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바그다드와 시리아에선 제작 시기가 15~16세기로 추정되는 커피 로스팅 도구들이 발견됐다. 손잡이가 긴 팬과 커피 생두가 타지 않도록 저어주는 긴 손잡이의 숟가락이 한 짝을 이룬 형태다. 그물국자 형태의 다공성 질그릇이나 철제 그릇 등 커피 볶는 도구와 분쇄기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1500년대를 전후해 커피를 로스팅하기 시작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초기의 로스팅 도구들은 화덕이나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생두의 색이 변하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볶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터키와 시리아의 장인들이 손잡이가 달린 냄비형 로스터나 긴 실린더형 로스터를 만들어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손잡이가 달린 실린더형 로스터가 처음 발견됐는데, 1650년쯤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구는 손잡이를 돌리며 편하게 로스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지만, 로스팅 정도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17세기에 커피 원두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는 일부 상인들이 무게를 늘리기 위해 납가루를 뿌렸다는 기록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터키시 커피

달이고, 우려내고 향미(香味) 변주곡

에티오피아 전통 방식의 커피 추출법 시연. [사진제공·커피비평가협회]

16세기 초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 시대부터 커피 추출법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전한다. 셀림 1세(1470~1520)가 1519년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커피를 알게 된 이래 오스만 제국의 궁중에서도 커피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궁 안에 커피를 담당하는 하인이 따로 지정될 정도였다.

오스만제국이 1536년 커피 생산지 예멘을 점령한 뒤엔 커피가 일반에게도 빠르게 퍼졌다. 졸음을 쫓는 각성 효과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듯한 작용 때문에 커피는 군인들에게도 지급됐는데, 이는 오스만제국이 점령한 수많은 나라에 커피가 전해지는 통로가 됐다. 마치 6·25전쟁 때 미군을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우리에게 전해진 것처럼.

이집트에서 이미 커피를 볶고 갈아 물로 끓여 마셨는지에 대해선 확인할 수 없지만, 이스탄불로 전해진 뒤론 터키인이 먹는 방식이라는 의미의 ‘터키시 커피(Turkish Coffee)’ 음용법이 뿌리를 깊게 내린다. 1655년 이스탄불에서 9개월 동안 체류한 프랑스의 장 테베노트는 커피콩을 볶은 뒤 빻아 체즈베(cezbe)라는 도구에 끓여 마시는 과정을 여행기에 자세하게 썼다.



체즈베에서 커피 가루를 끓이면서 거품이 넘치려고 하면 불에서 멀리하는 방식으로 거품을 줄이는 과정을 3번 반복한 뒤 달걀 반 개만 한 크기의 잔에 따라 마신다. 거품은 커피의 신선함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다. 거품을 많이 생기도록 끓이는 게 기술이라는 인식도 퍼졌다. 터키시 커피는 강렬한 맛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설탕을 넣거나, 향미를 좋게 하려고 카르다몸, 정향과 같은 향신료를 넣어 끓여내기도 한다. 터키의 커피 문화는 독특한 방식과 전통 계승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스탄불에서 추출법이 표준화한 커피는 오스만제국의 점령지 및 무역 경로를 따라 유럽에 닿게 된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멘으로 전해진 뒤 거의 1000년을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권에 갇혀 있던 커피가 마침내 종교도 대륙도 다른 유럽에 전해진 것이다. 커피의 유럽 시대는 커피의 효능과 카페인 ‘중독성’으로 초기에 안착한 측면이 있지만, 제대로 꽃피운 것은 맛과 멋을 추구한 유럽인의 문화적 취향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추출법과 음용법을 예고했다.

1096년부터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전쟁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유럽의 그리스도 문화와 서남아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교류시키는 발판이 됐다.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상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들어선 오스만제국과 소통하며 1615년 커피를 수입한다.

커피를 ‘신의 음료’로 받아들이며 밤새 코란을 외우기 위해 커피를 찾은 무슬림들과 달리 유럽의 그리스도교인들은 커피를 병을 고치는 건강식품으로 여겨 자주 마시면서 카페인에 빠져들었다. 앞서 교황 클레멘트 8세(재위 1592~1605)가 커피에 세례를 주면서 커피에 대한 유럽인의 거부감엔 빗장이 풀렸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음료로서 커피를 바라본 유럽인들은 음용법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어갔다. 우선 미세한 가루를 끓여낸 커피를 그대로 마시지 않고 주전자에 담아, 말린 풀로 마개를 끼워 따르는 방식으로 불쾌한 이물감을 없애려 했다. 훗날 필터 커피의 원조다. 커피의 유럽 상륙은 이처럼 향미를 추구하는 새로운 커피 문화의 시작을 알렸다.



비엔나 커피

커피가 유럽에 전파된 경로가 하나 더 있다. 이와 관련한 사건이 1683년 오스만제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빈(Wien) 전투다. 역사적으로 이슬람의 유럽 지배를 막은 전쟁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커피 역사에선 오스트리아에 커피를 전해 ‘비엔나 커피’를 탄생케 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오스만군은 폴란드군의 가세로 급히 퇴각하면서 산더미만 한 커피를 두고 갔다. 아랍 지역 출정이 잦아 커피의 가치를 잘 알던 군인 프란츠 콜시츠키(1640~1694)가 이를 활용해 1683년 빈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다. 고전음악의 탄생지답게 빈 사람들은 터키시 방식으로 커피를 끓이되 이를 여과장치로 거르고 우유와 꿀을 넣어 부드럽게 즐겼다.

비엔나 커피는 마부들이 흔들리는 마차에서도 커피를 흘리지 않도록 생크림을 얹어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오스트리아에선 마부의 커피라는 뜻의 ‘아인슈패너 커피(Einspanner Coffee)’라고 하는데, 어쨌든 유럽인의 손에 들어간 커피는 맛과 멋으로 치장하게 된다.

커피의 강한 쓴맛을 없애고 맛있게 즐기려는 시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1625년쯤 이집트 카이로에서 커피에 설탕을 넣어 마시기 시작하더니 1660년대엔 주(駐)중국 네덜란드 대사 니외호프가 커피에 우유를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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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순 |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 twit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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