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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김정희 세한도 부작란도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김정희 세한도 부작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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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때라야 안다

김정희 세한도 부작란도

‘부작란도’

앞의 문장에 이어 김정희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공자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라 했으니, 그대의 정의야말로 추운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조(節操)가 아닐까.”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란 추운 계절이 돼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언행을 다룬 유교의 고전 ‘논어(論語)’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찾아오는 이 거의 없는 제주도 대정에 유배 와서 김정희는 새삼 권력과 인간과 의리를 생각하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소나무, 잣나무와 같은 제자 이상적의 아름다운 의리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선비 정신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특히 저와 같은 여성의 경우 아무리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조선 사회는 가부장적 사회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세한도’가 감동적인 것은 어려운 시절에 나누는 의리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두 번 어려운 시절을 겪게 되지요. 진정한 친구와 동료란 바로 이때 힘이 돼주는 이들입니다. 모두 다 돌아선 채 나를 멀리하더라도 끝까지 내 옆에 남아 나를 지켜봐주고 때때로 격려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리와 사랑이 아닐까요.



의리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바른 도리입니다. 설령 손해를 보더라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 의리는 사대부라면 가져야 할 덕목의 하나였습니다. 가부장주의로서의 유교 문화를 싫어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이제껏 나눠온 믿음에 대한 신뢰라 할 의리가 새삼 그리워지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한도’는 제게 의리와 신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림입니다. 또, 삶의 고난을 의연하게 견뎌내는 기품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희일비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품격이 그리울 때면 저는 ‘세한도’를 찾아보곤 합니다.

추사의 작품 가운데 시선을 끈 또 하나는 ‘부작란도(不作蘭圖)’입니다. 제주와 북청에서 긴 유배 생활을 하고 돌아온 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라 하기도 합니다.

‘부작란도’는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진 독특한 작품입니다. 그림 한가운데엔 한 포기 난초가 놓여 있습니다. 난초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꽃은 그 반대인 왼쪽에 피어 있고, 자유분방하게 솟아오르는 기운이 한껏 느껴집니다. 여백에는 글씨가 가득 씌어 있습니다. 여백 맨 위에 쓰인 글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통로를 제공합니다.

‘난초 꽃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뜻하지 않게 깊은 마음속의 하늘을 그려냈다. 문을 닫고 마음 깊은 곳을 찾아보니 이것이 바로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이다.’

김정희에게 난초를 그리는 행위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한다기보다는 마음속의 하늘, 즉 맑고 푸른 정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유마거사의 ‘불이선’과도 같은 깨달음입니다. ‘불이(不二)’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난초 오른쪽에 쓰인 글은 이렇습니다. ‘(난을) 초서(草書)와 예서(隷書)의 이상한 글씨체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이를 이해하고 어찌 이를 좋아할 수 있으랴.’



김정희의 書畵一致

김정희는 글씨를 쓰듯 난을 그렸습니다. 그에게 글씨를 쓰는 것과 난을 그리는 것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서화일치(書畵一致)란 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앞서 말한  ‘불이’에도 대응하는 것이지요. 글씨와 그림은 하나이고, 미술 작품을 만드는 것과 정신의 고결함을 간직하는 것도 하나라는 게 김정희가 생각한 예술관인 듯합니다. 김정희에게 미술은 이렇듯 마음과 정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데 일차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셈이지요.

김정희의 작품들을 보면서 저는 미술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미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하지만 미술에 담긴 정신은 시간이라는 구속을 넘어서기도 합니다. 김정희에게 정신은 마음의 맑고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세한도’에 나타난 고결한 의리와 절조의 정신은 신뢰와 믿음이 무너지는 현대사회의 비정한 현실을 돌아볼 때 커다란 위로를 안겨줍니다.

더불어 그 정신은 세상의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으려는 굳고 의연한 마음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세한도’ 앞에 서면, ‘사랑하는 제자야. 스승은 지금 가장 외롭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 어려움을 저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끝까지 의연하게 이겨나가겠다. 너의 정성이 정말 고맙구나’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으로 미술은 쓸쓸한 마음의 따뜻한 거처입니다.


박 상 희



김정희 세한도 부작란도
● 1973년 서울 출생
●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신동아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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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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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세한도 부작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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