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대통령이 막아도 대권 도전하겠다”

한화갑 민주당 최고위원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daum@donga.com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dhades@donga.com

    입력2005-01-11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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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후계자는 나. 경륜없는 인물로는 안된다
    • 이인제보다 내게 정통성 있다
    • 영남에서 거부감없는 호남정치인은 나
    • 동교동 역할은 끝났다. 이제는 제 갈 길 갈때
    • 노무현·김근태 연대는 나중에 생각할 일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미증유의 대참사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지만 이 사태 직전까지 최대 뉴스는 민주당 내부 갈등이었다.

    소장파는 물론이고 그 동안 신중한 행보를 지켜왔던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은 지난 9월초의 당정개편을 권노갑(權魯甲) 전최고위원의 ‘동교동계 구파’가 만들어낸 ‘졸작’이라고 몰아부쳤다. 이에 권노갑 전최고위원은 “동교동계는 당의 뿌리다, 동교동계 해체는 당의 해체를 의미한다”며 반발하는 등 공방이 치열했다.

    동교동계 내부의 신구파 갈등도 사태를 복잡하게 했다. 한때 당대표로 거론됐다 구파의 반대로 좌절된 신파의 리더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결정한 이상 인사에 따르자”는 입장을 취했지만, 이번 인사문제로 동교동 구파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이 혼란 와중에 신동아는 한화갑 최고위원을 만났다. 인터뷰에서 한위원은 대통령 허가 여부와 관계없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민주당 내에서 자신이 “정통성을 가진 최적임자”임을 강조했고 “민주화와 정권교체로 동교동의 역사적 임무는 끝났다.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며 동교동 구파와 결별 입장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리틀 DJ’라는 별명



    한화갑 최고위원은 ‘리틀 DJ’라고 불릴 정도로 어법이나 행동거지가 김대통령을 닮았다는 평을 듣는다. DJ의 곁을 벗어나지 않은 그의 30년 정치역정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선생님’ 면전에서 대권에 도전할 뜻을 내비치며 ‘마이웨이’를 선언했다면 분명 이변이다. 인터뷰는 지난 9월15일 일요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인영빌딩의 한미정책포럼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미국 테러사건에 대한 전망을 묻는 것으로 대화는 시작됐다.

    -국제정세에는 식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테러소식을 접하시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전문가에 비하면 지식이 없어요. 그러나 만약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했고 남북이 긴장관계에 있었더라면 이번 사태가 남북관계에 얼마나 좋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을까, 이 정도라도 긴장완화를 이룬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이 MD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해서 우리도 참여할 것을 종용하고 북한에 압력을 가하다면 남북관계가 더 긴장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이제는 평상시 전쟁에 대한 개념이 수정돼야지요. 전쟁은 군인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겠어요. 테러는 전선이나 후방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겁니다. 이제는 지구 전체가 전장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MD를 한다고 해서 과연 미사일로 이런 전쟁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중동정책이 아랍국가의 감정을 유발하고 테러를 촉발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은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테러에는 무방비였다는 것이 이번에 입증된 것 아닙니까. 지금과 같은 중동정책으로는 사우디 이집트 파키스탄 등 아랍권 내에 있는 미국의 우방도 지도층만 우방이지 국민 저변의 반미감정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봅니다. 미국에 대한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은 종말이 아닌 시작이라고 보고 대비해야 합니다.”

    -미국은 세계를 향해 ‘악과의 전쟁’에 동참해달라며 우리 나라에도 지원을 요청했는데.

    “우리 정부가 현명하게 판단하리라 믿습니다. 다만 미국은 과거 게릴라전에서 이겨본 적 없기 때문에 게릴라전에 특히 뛰어난 아프가니스탄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감정적 보복보다는 신중한 보복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도 ‘물심양면’의 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아는데 ‘군사적 동원’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그 대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도록 미국이 한반도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북한도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남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낙관적인 분위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새 주한 미대사도 이번 사태가 남북문제에 영향이 없다고 했어요. 남북대화가 계속되면 북한이 불량국가에서 제외되는 등 미북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됩니다. 우리 정부도 한국의 보수층을 끌어안고, 한반도 평화유지비용에 대해 야당과 대화하고 합의점 끌어내야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문제는 어떻게 될까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요. 과거의 여당은 안기부를 불러 물어봤지만 우리는 한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국정원은 정보 달라고 해도 안줘요. 국회 통외통위에서 의견을 듣는 정도지요.”

    자신에게 정보가 오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대화는 정치 문제로 급선회했다. 인터뷰 내내 한위원은 자신을 ‘대통령의 핵심측근’ ‘동교동계’로 표현하는데 대해 불편해 했다. “고급 정보도 없고 ‘전권’이 없는데 무슨 핵심이냐”는 것이었다. “동교동계 정기 모임이 있다는데 초청도 받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내가 핵심이냐’라고 반문했지만 그 동안 동교동계에서 중요한 역할도 하지 않았습니까. 정권 창출에 기여한 동교동이 지금은 잡음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동교동이 정권교체에 기여했다면 저는 한 멤버로서 역할을 했을 뿐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수십년 동안 제가 좋아서 그분(DJ)을 추종하다 보니까 한식구처럼 지내게 된 거죠. 권력의 핵은 대통령이 계신 청와대입니다. 누가 실세고 핵심이냐는 얼마나 대통령을 자주 접하느냐 이걸로 결정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그분이 취임하신 뒤로 저는 오란 말 없이는 못 갑니다. 청와대라는 곳이 오란 말 없으면 못가는 곳이고 들어가서는 나가란 말 없으면 못나가는 뎁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시고 난 뒤로 저는 핵심이 아닌 겁니다. 과거의 측근인 겁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에 일어난 일을 저는 몰라요.”

    없는 얘기라도 만들어 권력 핵심이라는 냄새를 풍기고 싶은 게 ‘정치인의 본능’인데 한위원은 되레 자신은 핵심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동교동계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대통령 중심으로 보면 과거의 비서진들과 현재 청와대 비서진이 전부 동교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넓은 의미로 대통령을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교동이예요. 지금 동교동계라 하는 것은 과거 비서출신들을 말하는 거예요. 나는 비서 출신 중에서도 핵은 아니예요. 그러니까 동교동 얘기하면 두 가지인데 나를 포함해서 동교동이라 하는 분류가 있고 나를 제외하고 동교동이라 하는 분류가 있어요.”

    동교동이면 같은 동교동이지 굳이 ‘한위원을 제외한 동교동’이란 무엇일까. 한위원은 “우리는 같은 식구니까 내 의무가 있으면 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지만, 가끔 만나서 식사를 하곤 하지만 자기 생각을 터놓고 토의해본 적은 없다”며 구파중심의 동교동과 자신을 구분지었다.

    -한 달에 한번씩 동교동계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말을 자르며)그거 없습니다. 자주 모임을 갖는다는 얘기 들었어요. 근데 저는 거기에 참여가 안되요. 저는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왕따 당하고 있는 거네요.

    “왕따가 아니라 제가 기여를 못하는 거죠.”

    -한광옥 당대표 내정 뒤 당 내부 반발이 있을 때 한위원께서는 ‘논의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말이 있을 수 있지만 결정됐으니까 따르자’고 했습니다. 이를 보면 한위원은 동교동과 비동교동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어떤 경우든 제게는 대통령을 보호할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다. 저의 정치적 성장은 대통령의 보살핌 덕택이니까요. 대통령이 잘못하셨다면 몰라도 주위사람들 때문에 대통령이 곤혹스러울 때는 얘기를 해 줘야죠. 가교역할에 대해 주위의 기대가 많습니다만 그 역할을 하려면 ‘전권’이 필요한 거예요. 외교적으로 말하면 ‘풀 파워’죠. 그런데 저한테는 그런 것이 없어요. 외부에서는 제가 대화상대라고 저한테 물어요. 그러나 저는 위임받은 것이 없어요.”

    -지난 5월의 민주당의 정풍 파동과 워크샵 등을 보면서 민주적 정당이다 하는 지적도 하지만, 한편에서는 수권정당의 자격이 없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민주적 정당이라면 워크샵을 거쳐 건의를 올렸으면 공적인 시스템을 거쳐 실행이 되고 이루어져야 되는데 논의만 있지 실행되는 과정은 없습니다.

    “정치란 ‘끊임없이 명멸하는 현실사항을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무슨 문제가 제기됐다, 이것이 현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과거는 과거예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면 그것을 우선 해결해야지요.”

    -김근태 최고위원과 권노갑 전최고위원 간의 갈등이 심각합니다. 중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갈등이 계속되는 것 아닙니까.

    “어느 조직이든 무슨 문제를 놓고 토론할 때 대립도 있고 격론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이 내려졌을 때 거기에 따르는 것이 당원의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사문제에 있어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입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워도 현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정치상황이 다 그렇습니다.”

    이어 한위원은 김대통령의 당·정·청 인사와 관련,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일단 존중하자는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게 전개했다.

    “만인이 납득할 수 있는 그런 인사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같은 전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겁니다. 또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 기준에 안맞다고 해서 나쁘다, 이런 식으로 보지 말고 결정과정에 자유롭게 의견표출을 한 뒤 결과가 나오면 그것이 합법이냐 아니냐, 정당 같으면 당헌당규 대로냐 아니냐를 따져야 됩니다.

    인사권자 입장에서는 내게 편리한 사람을 쓸 수도 있다고 봐요. 그렇잖아요? 지역안배 인사는 절대로 효과적인 것이 못됩니다. 팀플레이가 안되기 때문입니다. 팀플레이하게 인사권자에게 권한을 주자 이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빴을 때 항의하자 이겁니다. 그런데 인사를 막 하자마자 항의하면 어떻게 인사권자가 인사를 할 수 있습니까. 권리침해가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정치인의 인사문제에 대한 한위원의 주장이 이어졌다.

    “기업하는 사람이 필요해서 사원모집하는 것이지 사원을 구제하기 위해 모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일하다보면 일 잘하는 사람에게 ‘진급시켜줘야 하겠다’는 판단이 드는 거예요. 그렇더라도 출발은 고용·피고용관계라 이겁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내가 저사람 데려다 키워줘야겠다, 그런 생각하고 스텝으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해서 쓰는 겁니다. 문제는 그 사람을 쓰는 사람이 고용인을 제어할 능력이 있느냐가 문제예요.”

    -대통령 주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접근을 봉쇄한 채 대통령 귀에 특정인물에 대한 정보만 입력할 경우 ‘정보의 편식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대통령도 판단능력이 있으십니다. 허허”

    -그 동안 대통령께 정책이나 민심을 전달한적 있습니까? 구두로나 서면으로나.

    “좋으실대로 판단하세요. 저로서는…”

    -인사권자가 쓰기 편한 사람을 뽑는다고 했습니다만. 일부언론을 보면 대통령이 아닌 특정인맥에 의해 인사가 결정되지 않았느냐 하는 주장이 나오는데….

    “(말을 자르며)그것도 대통령의 선택인거요. 그리고 대통령은 그걸 제어할 능력이 있다니까요. 신문사에 있는 분들 인사 이동할 때 인사권자에게 ‘나 이것좀 시켜주시오’하고 운동하는 사람 있는가 모르겠어요. 과거 나도 전라남도 도지사 나갈 때 대통령께 ‘나 도지사 나갈테니 시켜주시오’ 한 적이 있죠. 그것 말고는 ‘나 이것 시켜주시오’하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30년 이상 대통령을 모신 동교동 사람인데, 외부인사가 실권을 장악했다고 거기가서 부탁하면 내가 초라해져요. 지나친 자존심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 문제를 부탁해본 적이 없어요. 원내총무 했지만 (대통령이) 하라 하니까 한 거고 사무총장도 신문에 발표되니까 된줄 알았지. 그렇게 살았어요.”

    한위원은 동교동의 앞날에 대해 “민주화와 정권교체로 동교동의 역사적 임무는 끝났다.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며 사실상 권 전최고위원의 동교동 주류와 정치적으로 결별했음을 분명히 했다.

    전남도지사 출마 얘기가 나오면서 화제는 선거 얘기로 옮겨졌다. 한 위원은 오래 전부터 당내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그런 만큼 그의 정치적 포부가 궁금해졌다. 지난 3월호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한최고위원은 대권도전의사를 묻는 질문에 “기차는 선로위를 가는 것이다. 각 개인에게는 주어진 운명이 있는 것이며 그 순리를 따르겠다”며 답변을 피해갔다. 거듭된 질문에도 “억지로 짜내려 하지 말라”면서 “당원과 국민들이 ‘당신은 할 수 있다’ 이렇게 됐을 때 나설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지 지금은 내가 어떻게 평가받는지 모르겠다”고 직답을 피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는 ‘당원과 국민의 답’을 받았을까.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때 최고득표로 당선됐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못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1등 당선시켜 주니까 뭐하느냐’, ‘왜 그렇게 침묵하고 있느냐’하는데 물론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제 의견 발표할 수 있으나 책임지는 모습은 아니예요. 당의 리더십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할 입장도 못됐고요. 변명 같지만 제 위치가, 입장이 그래요.”

    -정치인으로서는 국민에게 어필해야하는데 한의원은 그 대목에서 좀 부족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통령 부하라는 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임명한 대표에 대해 조금 마음에 안맞는다 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면 대통령이 불편해요. 그래서 제가 말을 아낀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인으로 어필하는 것보다 아직은 대통령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1순위네요.

    “그런 면이 있지요. 그러나 그 속에서도 국민에 대한 정치인의 의무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소장파 의원 가운데는 ‘한위원이 대표가 됐어야 하는데 그분이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의원도 있던데요. 정치인이라면 당대표를 욕심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렇죠. 정치인이니까. 그런데 저기 감투가 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무조건 차지하려고 달려가요. 그러나 나는 저 감투를 내가 감당할 능력이 있느냐 이걸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소극적이 돼요. 제가 자라 온 정치적 환경이 내 소리를 낼 입장이 아니었어요. 대통령이 계시기 때문이죠. 이번에도 저는 대표가 안된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 입으로 말 안했는데 신문에서 권노갑 전최고 등 동교동 구파에서 한화갑을 민다 그래요. 그런데 다음날 기자들한테서 전화가 와서는 ‘권 전최고위원은 한화갑이 아니라고 한다’이러더군요. 글쎄 그러면 그런 모양이지…. 허허허”

    말끝을 웃음으로 흐렸지만 한위원은 이번 대표 파문에 적지않게 마음을 상한 눈치였다. 당시 얘기를 하면서 그는 얼굴도 붉어지고 목소리도 톤도 높아졌다.

    “신문에 보니 그런 얘기가 있었어요. ‘대표를 할래, 후보 경선에 나설래’ 선택을 요구받았다고, 그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선불출마)조건을 다는 대표는 안하겠다고 했어요.”

    -기억 나십니까. 지난 3월호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대권출마 의사를 물어봤는데 정확한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신동아 독자들에게 ‘나는 이런 꿈을 갖고 있다’고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조건이 되면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어느 시점에 가서 공식 선언을 하겠습니다. 준비를 하고 있어요.”

    -출마준비를 하시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십시오. 한때 호남후보 배제론까지 나왔었는데요.

    “대한민국 대통령들을 지역성을 갖고 뽑았습니다. 다음 선거도 이런 지역성이 작용할 겁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역대립이 ‘내 지역에서 대통령을 차지하자’ 그것 때문에 일어난 겁니다.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대통령이 나왔습니다. 강원도에서도 대통령 나왔죠, 경상도에서는 네 분이나 나왔죠. 전라도도 나왔죠, 충청도도 나왔죠, 수도권만 안나온 거예요. 그런데 대한민국 대통령은 당선되면 수도권 대통령이예요. 수도권에 살잖아요.

    그러니까 각 도에서 대통령을 차지했으니 소원풀이를 했다 이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진짜 나라를 생각해서 뽑아보자는 겁니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당내 경선이나 본선을 통해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해요. 그렇다면 나도 내 나름대로 거기에 뛰어들만한 자격이 있지 않느냐, 그리고(출신 지역이) 호남이라서 안된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면 경상도에서 대통령이 네 분이나 나왔는데 그건 정당한 겁니까. 사람이 태어날 때 어느 지역에 태어나겠다고 계약하고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한위원은 “얼마전에 진주에 갔더니 그곳 기자들이 나보고 ‘경상도에서 거부감을 갖지 않는 유일한 호남정치인’이라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일단 말문을 연 한 위원은 오랫동안 고민한 듯 자신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돼야할 근거들을 차근차근 공개했다.

    “우리 당의 입장에서 볼 때도 제가 최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을 계승 발전시키는데도 제가 적임자입니다. 당의 정체성을 얘기할 때도 제가 적임자라고 믿습니다. 역사의 연속성을 얘기할 때도 제가 적임자예요. 지난번 최고위원 선출 때 제가 1등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당에서 나만큼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어요. 제 자랑해서 미안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업적을 계승·발전시켜 마무리짓는 것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거지요.”

    -경선에서 당선되려면 조력자들이 필요할텐데 ‘누구와 연대하겠다’ 그런 구상은 있습니까.

    “차츰차츰 전개과정에서 결말이 나겠죠. 경선은 자기 실력대로 당원의 심판을 받는 자리입니다. 그렇기에 누구 원망도 못해요. 심판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심판을 통해 정리가 돼야지 말로 정리하면 천년이 가도 정리가 안돼요.”

    -기왕 대선에 대한 포부를 말씀했으니까, 21세기 지도자는 어떤 비전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고 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이 정책입니다. 그러나 누가 그 정책을 시행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한 거죠. 지금 리더십은 과거와 다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의 리더십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입니다. 그런데 그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역사적 산물이에요. 반독재 투쟁할 때 앞장서신 분들이 그 두분이에요. 두 분 뒤로 사람이 모여든 겁니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됐습니다. 미국 프리덤하우스에서 한국을 미국이나 일본, 독일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로 색칠을 했잖아요. 우리도 경제발전을 통해서 여유가 생겼어요. 그러면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이 뭐냐, 과거처럼 먹고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공정하고 원칙에 부합되고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옆집 아저씨’같은 편안함을 주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리더십’, 이게 중요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판단력과 결단력이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칙을 가지고 국민에 대한 봉사 일념으로 노력하면 국민화합은 저절로 돼요. 원칙을 갖고 하는 데는 반대할 사람이 없어요. 제 이름이 한(韓)국에서 화(和)합을 이루는데 으뜸(甲)이라는 뜻입니다. 그건 제 이름하고도 부합이 돼요. 국내화합이 돼야 남북화합을 이루는 거구요. 아무튼 대통령을 포함해서 국회의원까지 정치인의 덕목은 좋은 정책을 가지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경쟁에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미지가 문제입니다. 김대통령이 보기에 한위원은 옛날 비서입니다. 국민들도 ‘한화갑은 DJ의 비서’라는 이미지로 기억합니다. 상도동 출신 중에서도 비서 이미지를 지우려 여러 사람이 노력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름의 극복 비법이 있습니까.

    “비법이라기 보다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길 밖에 없지요. 김영삼 대통령도 장택상 선생 비서였지 않습니까. 허허허.”

    -생활정치 하려면 행정경험이 풍부한 것이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현정권 하에서 장관이라도 지냈다면 모르지만, 그 핸디캡은 어떻게 극복하겠습니까.

    “사실 과거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이나 도지사, 구청장, 군수 후보를 고를 때 행정경험자 위주로 고른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우리 당 소속이 서울시 25개 구청 가운데 23곳에서 구청장을 하고 있는데 당료 출신이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1등 구청장이에요. 행정경험이 많은 구청장보다 당료들이 행정하는 것이 훨씬 활력이 있고 주민들 생활에 보탬이 되고 있어요.

    행정국가라면 몰라도 지금은 세계를 향해 뛰는 시대입니다. 그런 조건과 자질을 갖췄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도지사라도 하고 된 사람 있나요? 없잖아요. 최규하 대통령이 관료출신이라지만 가장 짧은 기간 재임했고 성공한 대통령도 못됐습니다.”

    이렇게 한위원은 민주당내 대선 주자로 명함을 내밀었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미 앞서가는 경쟁자들과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특히 이인제 최고위원은 동교동 구파의 지원까지 확보한 채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다. 뒤늦게 출발선에 선 한위원의 눈도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터, 이인제 최고위원에 대한 평가와 대응 전략이 궁금해졌다.

    -대권경쟁은 상대가 있는 게임입니다. 민주당 내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앞선 주자가 있습니다. 이인제 최고위원 얘기인데요,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까 말한 것처럼 제겐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면에서도 (이최고위원과) 비슷한 면도 있겠지만 틀린 점도 있을 거예요. 성(姓)도 틀리고 이름도 틀리고 사람 모습도 틀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대통령은 국가원수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걸맞는 품격이 필요한 겁니다. 경륜도 중요합니다.

    결국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대의원들이 1차 선택하고 나중에는 국민이 선택하는 거 아닙니까. 네거티브 경쟁은 정치를 흐리게 해요. 모든 후보들이 각자의 장점으로 경쟁을 하자는 겁니다. 지금 우리 정치가 정치지도자마다 나쁜 사람으로 부각이 돼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성장하려는 후배들이 맨날 상대와 선배의 단점만 발견해 그걸 딛고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장점경쟁을 하자 이겁니다.”

    -김대통령이나 동교동 쪽에서 누구를 지원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나 동교동 핵심멤버들이 지지할 사람을 정하고 한위원에게 양보하라고 할 경우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도 그런 현상이 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1971년도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씨 세분이 겨룰 때 두 분은 유진산 당수에게 선택을 맡겼잖아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선택권을 포기 안했어요. 당원보고 선택하라고 해라, 그래서 후보가 됐잖아요. 30년 전 얘기 아닙니까. 그 사이 우리 민도가 얼마나 높아졌습니까. 그런 식으로 정치 패턴이 고착돼서 어떻게 자력으로 지도자가 성장할 수 있습니까.”

    뜻밖에도 강경한 출마의사였다. 자신의 정치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의 1971년의 당내 대선후보 경쟁 때의 일까지 거론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단단히 결심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DJ의 지시로 정치적 꿈을 접었던 1995년 지방선거 때의 아픈 기억을 상기해보았다.

    -지난 1995년 전남도지사 출마할 때는 김대통령의 반대로 뜻을 꺾었는데요. 이제는 대통령이 반대한다고 해도 뜻을 굽히지 않을 겁니까.

    “제가 판단해서 행동할 겁니다. 제가 판단해서 행동해야지 언제까지나 (대통령의) 돌봄 속에 머문다면 독립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다른 것은 대통령의 뜻을 존중하겠지만 국민에게 봉사하는 경쟁에서만은 강행하겠다는 뜻입니까.

    “제 소신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한위원은 인터뷰 말미에 생각이 난 듯 “경선출마에 대해 이제는 대통령도 용인할 것이다”라는 말을 덧붙여 달라고 주문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가끔 정가에 파문도 일으키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그런 주문을 받습니다만 그것도 자연스럽게 해야지요. 소극적인 얘기 같지만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제 운명대로 살아갑니다. 억지로 운명 만들려 하지 않고요.”

    -소장파들과는 수시로 만납니까.

    “못만납니다. 그 사람들 성명도 발표하고 하는데 ‘왜 나하고 상의 안하냐’고 하면 사전에 저한테 귀뜸하면 제가 말릴 것이 뻔하고, 또 외부에 자신들의 배후에서 한위원이 사주한다는 소문이 날까봐 소장파 쪽에서 저를 생각해 아예 연락을 안한다고 그러더군요.”

    지금은 잠복해 있지만 언제고 민주당의 분란거리가 될 당·정·청 인사문제에 대해 거듭 물어보았다. 과연 한위원은 자신이 인사권자의 위치에 선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우회적 질문으로 내심을 떠보았다. 그러나 그는 거듭 ‘차선(次善)의 정치학’을 거론하며 핵심을 비켜갔다.

    “그것은 말로 하는 것보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 행동으로 보여줘야 실감이 나는 겁니다. 저도 지구당 간부 구성 같은 인사를 해보았는데 아무리 잘해도 불만 있게 마련입니다. 결국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팀워크를 해쳐서는 안됩니다.”

    내년으로 다가온 당내 경선 일정에 대해서도 한위원은 “주위사람과 상의해서 차차 얘기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난 뒤가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리고는 그의 평생에서 가장 바쁜 가을을 연 날로 기억될 햇살 따가운 9월15일의 오후 일정을 위해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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