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이 사람의 삶

자죽염 만들어낸 한의사 주경섭

“진시황제가 찾던 불로장생의 묘약, 유황정 기운이 배어 있죠”

  • 김서령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 사진·정경택 기자

자죽염 만들어낸 한의사 주경섭

2/7
이 시절, 독사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동해산 마른명태 다섯 마리를 고아 먹여 낫게 한 것이나 폐암 환자를 수백 마리의 땅벌에 쏘이게 하여 치료한 사례 등은 천문지리의 원리를 꿰뚫은 선생의 직관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선생은 아홉 살 때 한반도에 전래된 소금 제조법을 보완, 소금을 대통 속에 다져 넣고 송진 관솔 등을 이용해 강한 화력으로 아홉 번을 구워야 제대로 법제된 소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조부께 피력하기도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왜 소금을 구워서 사용해야 하는지, 왜 대통이나 송진 등을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다만 습관적으로 그렇게 해왔을 따름이다.

열여섯 살 때는 의주에서 횡포를 일삼던 일본인 청년들을 제압한 뒤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다. 선생은 항일운동의 영웅 변창호 선생이 이끌던 모화산 부대에 들어가 항일전투에 참여했고, 이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러시아, 묘향산 등지를 떠돌면서 병자를 구료한다. 오지(奧地)를 전전하던 이 시절의 선생은 탄광 광부들 사이에 유행하던 진폐증을 탕약과 쑥뜸요법을 병행해 완치했으며, 죽염제조 실험을 거듭한다.

스물여섯 살 때 일경에 체포돼 춘천형무소에서 복역하다 모진 고문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복역 1년6개월째 형무소를 탈출, 묘향산으로 들어가 선생 자신이 창안한 인산쑥뜸법, 곧 영구법(靈灸法)으로 병을 치료해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때 함께 고문받았던 동지들 중 쑥뜸을 뜨지 않았던 이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대부분 생명을 잃는다. 묘향산에 들어간 선생은 당대의 걸출한 선지식이던 송만공, 김수월, 하동산, 방한암 스님들과 교유하고, 1945년 광복을 맞아 당시 은신해 있던 의주 천마산 영덕사에서 하산해 서울로 온다.

정부 수립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양·한방 종합병원과 동서의과대학 설립을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1950년에는 당시 내무장관이던 백성욱 박사를 통해 대통령에게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고 예언하며 대책수립을 건의했으나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권이 미국만을 추종하는 사대주의로 기우는 한편 개인독재로 치닫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제안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희망을 버리고 세속을 떠나 다시 입산한다.

1950년부터 선생은 충남 공주 마곡사 부근, 계룡산 감나무골, 계룡산 용화사 부근, 전북 남원과 운봉마을 등지에서 머물다 1957년 경남 함양으로 건너온다. 함양읍내에 잠깐 기거하다 삼봉산 살구쟁이마을(杏亭洞)에 인산초당을 짓고 함지박을 깎으며 생계를 이어간다. 숨어 살아도 명성은 드러나 서울과 각처에서 선생의 신약과 철학을 배우러 몰려왔고, 어느 곳이든 선생이 머물던 곳에는 기적 같은 구료의 신화가 계속된다.



함양으로 낙향하기 직전 1980년에 선생 최초의 저술인 ‘우주와 신약’을 펴냈고, 이듬해엔 우주와 신약을 한글화한 ‘구세신방’을 출간했으며, 함양읍 운림초당에 거처하던 1986년 불멸의 대저술인 ‘신약’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고는 곧바로 노구를 이끌고 전국을 돌며 공개강연회를 열어 83세 때인 1990년까지 도합 스물두 차례의 강연회를 통해 공해독(公害毒) 시대의 건강법을 제시한다. 그러다 84세 때인 1992년, 가족과 제자들을 모이게 한 뒤 ‘세상에 남기고 가는 말’을 녹음해두고 세상을 떠난다.

주경섭 원장이 인산 선생을 찾아간 것은 ‘신약’이 발간된 1986년 즈음이다. 책을 보고 선생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1968년생인 주 원장은 당시 18세에 불과했다. 어려서부터 관심사가 특별한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UFO에 빠져 지냈다. 조지 애덤스의 ‘UFO 동승기’ 같은 책을 접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빨려들었다.

UFO, 단전호흡… 心에 취한 소년

초등학교 6학년 즈음에 이미 소설 ‘단(丹)’의 주인공인 봉우 권태훈 옹의 만수한의원에 드나들며 단전호흡을 배웠다. 일곱 살 위의 작은형과 늘 함께였다. 중1때는 ‘옴’을 염하면 그 진동으로 물의 파장이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세검정 근처 안동민 선생의 집에 다녔다.

“하루 두 시간씩 물동이를 앞에 두고 들여다보면서 옴을 염하고 그랬지요. 배낭 메고 삼각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지금도 어딜 가면 주 원장은 양복차림에도 배낭을 메고 다닌다. 학교공부는 관심 밖이었고 정신세계에만 팔려 지냈다. 그러다 중학 졸업 후 고교과정을 뛰어넘고 대입검정시험에 합격한다. 그러나 진학은 포기하고 형을 따라 아예 강원도 깊은 산골짝에 들어가 박힌다. 호흡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철암 근처 7가촌이라는 곳이었어요. 6·25전쟁 때도 전쟁이 난 줄 몰랐다는 심심산골 오지였지요. 거기서 둘이 한 달 생활비 만원으로 살았어요. 전기는 물론 없었고요. 제일 걱정이 양초였는데, 아까워서 잠깐 켜뒀다가 금방 끄고 관솔을 구해다 쓰곤 했거든요. 어느 날 굿당 하는 아주머니가 양초를 잔뜩 가져다주고 갔어요.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어디어디에 가면 공부하는 형제가 있는데 그 애들에게 초를 주라’는 계시가 내렸다나요.”

2/7
김서령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 사진·정경택 기자
연재

이사람의 삶

더보기
목록 닫기

자죽염 만들어낸 한의사 주경섭

댓글 창 닫기

2022/08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