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일은 오씨 등과 직접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계약기간이 끝나면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었는데도 계약갱신을 거부했다. 오씨 등이 자회사로 이적하지 않았다고 해서 해고한 것은 정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무효다.”
이제 사람 얘기를 해보자. 꽃다운 청춘을 투쟁의 강물에 흘려보낸 그녀를. 20대의 앳된 처녀에서 30대의 성숙한 여인으로 변모한 그녀를.
서울 용산역 대합실에 나타난 그녀에게선 코스모스 향기가 풍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이다. 선입관인지 몰라도 투사 이미지는 아니다. 지난 4년간 투쟁의 선봉에 섰던 그녀는 지금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다. 5개월 됐다. 지난해 11월 결혼했다.
우리는 용산역사 6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의 끈적거리는 햇살이 테이블 위에서 노닥거렸다. 창밖으로 펼쳐진 용산의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용산은 희망의 도시이자 분노의 도시다. 비정한 도시다. 제2의 강남을 꿈꾸는 장밋빛 청사진 이면엔 철거민들의 한과 고통이 서려 있다. 인터뷰는 내가 주제어를 던지면 그에 맞춰 그녀가 고백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분노
“5년간 싸우는 동안 사장이 5차례 바뀌었어요. 초기의 이철 사장을 빼고는 다들 대화 자체를 거부했어요. 정부, 특히 노동부에 대한 분노가 컸지요.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의원은 도와줄 것처럼 말해놓고는 실제로는 도와주지 않았어요. 위선이었던 거죠. 물론 가장 큰 분노의 대상은 철도공사죠. 법적인 판단에 맡기겠다, 1심 판결이 나오면 따르겠다고 약속하고는 이제 와 항소하겠다니까요. 무책임하고 기만적인 행위죠. 이는 단체협약 위반이기도 합니다. 단협안에 1심 판결에 따른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거든요.”
오씨의 말마따나 코레일은 1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판결 직후 “여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 고등법원에서는 다른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항소 방침을 밝혔다.
“그간 회사는 진정성을 갖고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고 비판한 그녀는 사측의 불법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노동부가 철도공사에 보낸 공문을 보면 ‘KTX 여승무원 일은 외주화할 수 없다’고 돼 있어요. 승무 업무는 상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도급이나 파견은 불법이라는 거죠. 철도공사의 정규직 인원은 제한돼 있어요. 그래서 편법으로 홍익회를 이용해 채용한 거죠. 입사 당시 잠시 위탁근무를 하는 것이라며 2년 뒤엔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믿었죠.”
2004년 1년짜리 계약직으로 입사한 오씨는 소속이 몇 차례 바뀌었다. 하는 일은 똑같은데 회사 이름이 계속 바뀐 것이다. 하나같이 코레일의 자회사였다. 2004년 3월 철도공사는 재단법인 홍익회에 승무 서비스를 이관하고 오씨를 비롯한 여승무원들을 공개 채용했다. 홍익회는 철도청 근무 중 공상(公傷)으로 퇴직한 자와 순직한 자의 유가족에 대한 원호를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다.
2004년 12월 승무 업무가 한국철도유통으로 넘어가면서 홍익회는 원호사업만 맡게 됐다. 오씨의 소속은 철도유통으로 바뀌었다. 철도유통은 승무 서비스와 함께 철도역 구내 및 열차 내 식품과 물품 판매를 맡았다. 여승무원들은 코레일이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은 채 승무 서비스를 철도유통에 넘기자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철도유통 근무는 불법파견에 해당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승무 업무의 특성상 코레일이 실질적인 사용자 지위에 있으므로 자신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들은 정부기관에 진정서를 넣는 한편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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