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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 코앞인데 과학기술 교육 비전은 깜깜”

‘내년 2월 퇴임’ 서남표 KAIST 총장

  • 김희균│동아일보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

“대통령선거 코앞인데 과학기술 교육 비전은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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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도, 학생도 경쟁과 실적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고 호소했다. 특히 재학생들의 잇단 자살은 사회 전체에 충격을 줬다.

“대통령선거 코앞인데 과학기술 교육 비전은 깜깜”
“내가 처음 KAIST에 왔을 때부터 걱정한 것이 학생 자살이었다. 내가 있던 MIT에도 학생이 자살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MIT를 본떠 정말 좋은 병원을 만들었다. MIT 재직 시절의 지인에게 기부를 받아서 2010년 봄 캠퍼스 내에 병원을 열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우수한 의료진이 많이 내려왔고, 시설도 최고다. 여기서 암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한 교수도 여럿일 정도로 교직원과 학생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데 병원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 자살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한동안 말을 멈췄다.) 이런 얘기는 아무 데서도 못했지만…, 고민 끝에 학생 자살에 대한 통계까지 내봤다. 주로 봄에, 8년 주기로 자살사건이 많이 발생하더라. 결과는 나왔는데 원인을 밝히지 못해서 안타깝다.”

총장 퇴진 사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던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속내를 꺼냈다. 학교에서 좋은 일을 추진하려고 해도 무턱대고 반대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얘기였다. 병원을 세운다고 했을 때는 물론 체육관을 다시 짓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에 부딪혔다고 회고했다.

“처음 학교에 와서 보니 체육관이 못쓰겠더라. 학생 수가 얼마 안 되던 옛날에 지은 터라 1만 명을 넘어선 학생을 수용할 수 없는 시설이었다. 낡기도 하고. 주말에 내가 체육관에 가보면 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스포츠 콤플렉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걸 어디다 짓느냐가 문제였다. 곰곰이 생각하다 기존 체육관을 허물고 더 크게 짓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왜 있는 건물을 허무느냐’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 아이들을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을 만들겠다는데도 이유 없이 반대를 한다. 막상 체육관을 멋있게 지어놓고 이제는 거기서 졸업식도 할 정도로 잘 쓰고 있으니 반대하던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세계에서 1등이 되려면 자꾸 외부의 좋은 것을 보고 비교해야 하는데 학교 안만 보고 얘기하는 게 답답했다.”

“한국 교육, 달라져야 한다”



서 총장은 KAIST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 되려면 미래를 이끄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뽑은 카드는 EEWS(Energy, Environment, Water, Sustainability), 즉 에너지와 환경, 수자원,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분야다. 서 총장의 역점 사업인 모바일 하버나 녹색교통대학원도 여기서 나왔다. 그는 “이제는 인류가 100년 넘게 기술을 쌓아오다보니 기존의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 하나를 하기가 정말 힘들어졌다. 그런데 우리가 녹색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과거의 모든 기술이 틀린 것이 된다.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대신 전기차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가 EEWS다”라고 말했다.

대학의 발전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초중고 교육으로 이어졌다. 한국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서 새로운 한자어에 약한 서 총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 ‘Advanced’라는 단어를 꺼냈다. 한국 교육에서 이해가 안 가고, 또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이라며.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선행학습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서 총장이 취임한 이후 KAIST는 과학고 출신 위주였던 신입생 구성을 다양하게 바꿨다. 일반계고 출신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뽑고, 외국 고교 출신도 10%가량 된다. KAIST 관계자는 외국 고교 출신들은 고교 때 미적분을 안 배워서 초반에 힘들어하지만 3, 4학년이 되면 교과 성취도는 물론 리더십과 자신감도 좋아진다고 귀띔했다. 서 총장이 선행학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생각할 때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이다. 다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하는데, 그게 왜 생겼는지를 모른다. 선행학습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뭔가? 선행을 한 애들이 실제로 덕을 보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럼 왜 덕을 보게 됐느냐. 물론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더 하는 거야 좋은데, 그게 왜 입시에서 덕이 되어야 하냔 말이다. 선행학습 때문에 초중고교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국에서 부모들이 그거 시키느라 애들 들볶고 더 들쑤시는데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는 차이가 없다. 미국에서도 한국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올 때는 성적이나 진도가 더 나은데 대학을 마칠 때는 나을 게 없다. 진정한 공부로 먼저 배웠다면 대학에서도 계속 더 우수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는 어릴 때부터 선행학습에 치이고 볶이다보니 아이들의 인성도 거칠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한국의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 또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의심하는 게 걱정이라고 했다.

서 총장은 “한국 네티즌들이 어떤 가수가 미국 명문대를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며 몰아붙였다는 뉴스를 봤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가수 타블로가 미국 스탠퍼드대 출신이 아니라고 비방한 타진요 사건을 언급한 것. 서 총장은 타블로라는 이름은 모르지만 이 사태만큼은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 이런 현상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일어난다고 보나?

“말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어른이고 아이고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유대계는 저녁 식사를 할 때 자녀에게 부모와 대등하게 토론하는 법을 가르친다. 의견이 다르면 다른 거고, 거기서부터 절충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는 빙빙 돌려서 이야기를 한다. 앞에서는 아무 말 안 하다가 뒤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속 얘기도 그냥 하고, 듣는 것도 직설적으로 받아들여서 한국에서 바보가 될 때가 많다. 하하하. 남들이 나를 보고 웃는다. 말한 사람 뜻은 그게 아닌데 잘못 이해하고 혼자 좋아한다고. 소통의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 물론 문화적 차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건 잘못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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