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Interview

“왜 검도에 미쳤냐고? ‘뒤’가 깨끗하니까!”

66세에 검도 8단 ‘入神’ 이국노 (주)지주 회장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왜 검도에 미쳤냐고? ‘뒤’가 깨끗하니까!”

3/3
마패가 된 검도 7단증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자 검도 얘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7단 때 일본 도쿄에서 이런 일도 겪었어요. 한국플라스틱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일할 때인데, 업계 원로 예닐곱 분을 모시고 가와사키중공업에 가서 볼일을 보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어요. 여행사 직원이 공항에 먼저 가서 수속을 밟겠다며 우리 일행의 여권을 모두 걷어갔거든요. 신분이 불확실하다며 모두 경찰서로 끌고 갔죠. 일제강점기에 학교를 다닌 원로 몇 분이 유창한 일본어로 ‘가와사키중공업에 의향서를 교환하러 다녀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려 공항에 가는 길이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보내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제가 담당 경찰관 앞에 가서 지갑에서 검도 7단증을 꺼내 책상에 탁 내려놓았죠. 검도 단증은 세계적으로 동일해요. 그 경찰이 단증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거수경례를 붙이며 ‘와카리마스’(알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아마 검도를 했던 사람인가봐요. 그러더니 우리를 경찰버스에 태워 공항까지 정중히 데려다 줬어요. 검도 7단에 대한 존경을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들 도대체 그게 뭔데 일본 경찰이 저렇게 깍듯하게 태도가 바뀌느냐고 어리둥절해했죠. ‘검도 7단증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마패다’고 말해줬죠, 하하.”

▼ 검도를 한 게 사업에도 도움이 됐습니까.



“큰 도움이 됐죠. 검도가 뒤가 깨끗하듯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남의 돈은 떼먹지 않아요. 월급을 적게 주더라도 반드시 제때 줍니다. 그래야 직원이든 거래처든 사람이 따라요. 그리고 권모술수 안 쓰고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합니다. 검도처럼 앞도 그렇지만 등을 봐도 깨끗하게 회사를 운영합니다. 그래야 제품을 만들 때 거짓말을 안 해요. 좋은 물건 만들려고 더 노력하고 제품에 진실성이 담겨야 회사가 오래갑니다. 우리 회사처럼 플라스틱 파이프 만드는 공장이 지금까지 600개쯤 있었어요. 그중에 40년 이상 살아남은 회사는 2개뿐입니다. 저보다 먼저 시작한 김원기 회장이 하는 45년 된 회사가 있고, 우리 회사는 올해로 41년 됐죠. 나머지 회사는 모두 부도나거나 중간에 주인이 바뀌었어요.”

▼ 사훈이 ‘立正’이던데….

“1980년대에 사훈을 그렇게 정했어요. 사업 시작하고 나서 사기도 당하고 배신도 당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서 ‘나라도 정의롭게 살아보자’고 결심했죠. 사훈을 ‘정의를 바로세운다’는 뜻으로 ‘立正’으로 했어요. ‘正立’이라고 하면 바르게 세운 것이란 정적인 의미가 강한 반면 ‘立正’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라는, 동적인 의미가 강해요.”

墨虎에서 墨仙으로

이 회장의 사무실 탁자에는 빛바랜 사진이 여러 장 꽂혀 있다. 그 가운데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추기경님과 만난 것도 검도가 인연이 됐어요. 1980년대 말 대만에서 열린 검도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추기경님 옆자리에 앉게 됐어요. 혈기가 왕성할 때라 함께 탄 선수들과 ‘추기경님 옆자리에 앉아서 10분만 얘기하면 100달러를 주겠다’고 내기를 걸었어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아서 ‘내가 갈 테니 10달러씩 걷어라’ 하고는 옆자리에 앉았죠.

대만에서 서울로 오는 3시간 동안 추기경께 평소 궁금했던 것을 죄다 물어봤어요. ‘불기와 서기가 500년 정도 차이가 나고, 예수가 불가의 제자라는 얘기가 교황청 양피책자에 적혀 있다는데 맞느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추기경께서 ‘그런 얘기도 있다. 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만은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어떤 질문에도 기가 막히게 답해주셨어요.

추기경을 뵙고 난 뒤 천주교에 귀의해서 영세를 받았죠. 그때 비행기에서 ‘나중에 꼭 한번 찾아뵙고 싶다. 만나주시겠느냐’고 여쭸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이 사진은 중소기업중앙회장에 출마했을 때 천주교 신자인 조합 이사장들과 함께 추기경을 찾아뵙고 찍은 거예요. 추기경께서는 비행기에서 잠깐 만나 얘기를 나눈 사람과의 약속도 지켜주셨어요.”

이국노 회장은 8단 승단 이후 겸양지덕을 몸소 실천하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검명(劍名)을 ‘묵호(墨虎)’에서 ‘묵선(墨仙)’으로 바꿨다.

“소망하던 8단 승단을 이루고 나니 스스로 몸가짐을 더 조심하게 돼요. 앞으로 묵가의 겸애사상을 실천하며 남에게 더 베풀고 배려하며 살아갈 작정입니다.”

‘호랑이’에서 ‘신선’으로 검명을 바꾼 때문일까. 날카롭고 매섭던 이 회장의 눈매가 한결 선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신동아 2014년 1월호

3/3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목록 닫기

“왜 검도에 미쳤냐고? ‘뒤’가 깨끗하니까!”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