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사진작가 권태균의 죽음에 부쳐

  • 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empas.com

    입력2015-01-22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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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나는 이제 허망하게 이승을 떠난 한 중년 남자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그는 35만km를 달린 진한 갈색의 낡은 SUV를 몰고 다녔다. 내비게이터가 없는 차다. 대신 낡아 해어진 뒷자리에는 너덜너덜한 축척 5만분의 1 두툼한 대형 지도책이 있다. 국내에서 축척이 가장 작아, 역으로 가장 자세히 나와 있는 때 묻은 지도다. 카키색 사파리 차림에 챙이 넓은 모자가 썩 잘 어울린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나오는 사진작가 킨케이드를 연상하면 쉽겠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 남쪽 산하를 누비고 다녔다. 그의 관심은 한국의 자연과 그 속에 부대끼고 사는 한국인이다. 출발은 ‘뿌리 깊은 나무’다. 이제 전설이 돼버린 이 잡지에서 그는 개발 광풍 속에 사라져가는 한국 문화와 역사, 한국인의 삶을 흑백사진에 담았다. 시절이 하수상해 잡지는 군사정권의 등장으로 폐간되고, 그는 중앙일보 출판부로 옮겨 작업을 계속한다. 언론매체에 등장한 그의 사진은 늘 사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개인적인 작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수차에 걸친 개인 전시회의 타이틀은 ‘노마드(nomad)’. 그는 이 땅의 사람, 그것도 가지지 못한 자, 수상한 세월이나 권력 또는 그 무엇에 휘둘려 뿌리까지 파헤쳐져 떠나야만 하는 자들의 곤고하고 남루한 삶을 렌즈에 담아왔다. 지난 정부 때는 청와대로 초대돼 의전비서실에서 4년 남짓 대통령의 동정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맡았다. 이른바 ‘대통령의 사진가’였다.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자리였다.

    그는 한없이 겸손한 사람이다.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소곤소곤 말하는 그의 수다는 마치 북미 평원을 날아 다니는 허밍 버드의 울림과 같이 소박했다. 그와 나는 지난 10년간 붙어 다녔다. 시베리아 냉기가 몰려온 겨울날, 그는 아직은 한창인 나이에 떠났다. 눈빛은 맑고 티가 없이 깨끗했으며 때때로 몹시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그는 꿈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추억은 이미지로, 또는 그리움으로 존재한다.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맨드라미 꽃과 소녀, 1990년 전남 진도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장례식을 마치고, 1988년 경남 합천



    ‘오지기행’과 ‘노래가 있는 풍경’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아이와 작약꽃, 1990년 경북 의성

    우리는 지난 10년간 매달 만나 공동 작업을 해왔다. 정부에서 발행하는 월간 ‘나라경제’의 시리즈물 ‘오지기행’이 그 시작이다. 지금에야 자연인 시리즈가 넘쳐나지만, 사라지는 것들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2000년대 초 그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한국과 한국인의 빛바랜 모습을 렌즈에 고스란히 담았다.

    오지기행은 큰 호응을 얻었으며 독자의 성원에 힘입어 전통의 지성지인 ‘신동아’로 옮겨 연재되기에 이른다. 강원도 비무장지대 오지에서부터 완도 앞바다 외로운 섬 노화도까지, 그와 함께 한 오지기행은 고향을 떠나온 보통 한국인의 큰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미디어에 비슷한 기획물을 등장하게 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그 많던 오지는 이제 없어졌다. 이후 우리는 동시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클래식 반열에 오른 노래의 배경과 현장을 기록에 남기기로 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신동아’의 ‘노래가 있는 풍경’이다. 송창식의 ‘고래사냥’, 김현식의 ‘골목길’, 김민기와 김광석과 양희은과 이문세 노래의 근원을 찾아다녔다.

    이승을 떠나기 사흘 전, 그와 나는 이 연재물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 수다를 떨며 유쾌하게 국제시장 골목을 걸어 다녔다. 부산 오뎅을 먹고 단팥죽을 나눠 먹고, 셔터를 연방 누르며 거리를 취재했다. 그런 그가 자다가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이승을 떠났다. 그렇다. 그는 갔다.

    그러나 만일 저승에서 비슷한 일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나 해왔던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그가 내게 들려주었던 슬픔을, 기쁨을, 외로움을, 그리고 아름다움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런 그가 갔다. 피안을 향해 눈 덮인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다. 아아, 그는 갔지만 우리는 그를 보내지 아니했다. 그가 어디선가 짓고 있는 웃음을, 속삭임을 나는 깊은 우정으로 느낀다. 그의 이름은 권태균. 그는 쉰아홉 나이에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떠났다.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오, 장려했느니 우리 시대의 작가여!

    소 주인, 1982년 경북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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