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는 동반자들과의 관계를 한층 단단하게 엮어준다. 친한 사람과는 더욱 친밀하게 해주고, 서먹서먹한 관계도 금방 웃음을 짓게 만든다. 라운드하는 데만 소요되는 4시간 반 가까이 함께 걷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친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라운드 끝에는 상대방의 알몸까지 보게 된다. 이렇게 공통의 관심사에 집중하면서 하루 종일 시간을 나누다 보면 원수지간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카트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다면, 18홀을 돌면서 3~4㎞는 족히 걷는다. 샐러리맨에게 평소 이 정도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굳은 의지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국내 골프장은 대부분 산악지형을 활용해 설계됐다.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 삼림욕이 따로 없는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클럽이 볼에 정확히 맞았을 때 손으로부터 전해오는 쾌감은 오르가슴에 비견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목까지 치고 올라왔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골프 실력이 조금 모자라면 어떤가. 내기에서 돈을 잃으면 또 어떤가. 골프만큼 ‘느림의 미학’이 잘 적용되는 스포츠도 없다. 샷과 샷은 물론 홀과 홀 사이에서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잠시의 여유시간 동안 지난 홀을 복기할 수 있고, 자연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다.
그러자면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연습량과 실력이 꼭 비례하지 않는 게 골프다. 그렇다고 연습을 게을리 하면 눈에 띄게 표가 난다. 프로 골퍼도 수일간 클럽을 손에서 놓으면 스윙이 망가진다. 아마추어 골퍼가 처갓집 가듯 연습장을 찾으면서 보기 플레이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망상에 가깝다.
골프의 명언 중 ‘힘 빼는 데 3년 걸린다’는 말이 있다. 몸에서 힘을 빼는 데 무슨 3년씩이나 걸리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10년이 넘어도 힘을 빼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연습 스윙을 할 때는 타이거 우즈 부럽지 않다가도 막상 볼을 칠 때면 온몸이 경직되어버린다. 뒤땅은 기본이고 맞았다 싶어도 거리와 방향이 들쭉날쭉이다. 볼을 멀리 보내야겠다는 과욕이 불러온 악몽이다. 결국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프로 골퍼나 전문가들은 ‘골프는 90%가 멘탈게임’이라고 강조한다. 이 말은 아마추어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몸에서 힘을 빼고 볼을 정확히 맞히면 자신이 원하는 거리를 낼 수 있다. 몸에 힘을 잔뜩 주었을 때보다 방향성도 훨씬 좋아진다. 아마추어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실력에 비해 더 멀리, 더 좋은 성적을 내려는 욕심 탓이다.
실력 향상을 위한 손쉬운 방법
해외 골프장에서 우리나라 골퍼들은 금방 눈에 띈다고 한다. 어찌나 빨리 치는지, 36홀을 돌고 나서도 해가 중천에 떠 있다. 국내에서 몸에 밴 습관과 한 홀이라도 더 돌려는 욕심에 앞만 보고 전진한다. 해외 골프장의 이국적인 풍광이 기억 속에 자리 잡기 전에 빠르게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다.
경기도 안산의 제일CC는 흐드러지게 핀 2만여 그루의 벚꽃으로 유명하다. 4월 골프장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는 본격적인 골프시즌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강원도 삼척의 파인밸리는 울창한 삼림을 배경으로 계절에 따라 야생화가 아름다움을 서로 뽐낸다. 경기도 포천의 아도니스컨트리클럽은 골퍼들 사이에서 단풍나무로 명성을 얻고 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출입구 양쪽에 빨갛게 물든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여유를 갖지 않고 스코어에 욕심을 내면 제일CC의 벚꽃과 파인밸리의 야생화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 티업시간에 맞추기 급급해 가속페달을 밟으면 포천 아도니스의 단풍은 단지 조경을 위해서 심어놓은 나무에 불과하다.
이제 골프를 있는 그대로 즐기자. 동반자가 연습스윙을 하는 동안 잠시 홀을 둘러보면 짙은 녹음이 눈을 맑게 한다. 카트를 타지 않고 조금 빨리 걸으면 자연의 싱그러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골프만이 전해주는 재미를 즐기고 매력에 빠지면, 실력은 덤으로 따라온다. 느림의 미학을 골프에 적용하면 좀 더 나은 스코어카드를 받아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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