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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기보다 팀워크가 우승 원동력”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 이영미|스포츠 전문기자

“개인기보다 팀워크가 우승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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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KBL 사상 첫 선수-코치-감독으로 우승 앞둬
  • ● 우승하는 꿈 많이 꿔 우승 확신
  • ● 주식으로 10억 날려 이혼 위기 겪기도
  • ● “내 몸엔 전창진의 피가 흐른다”
2016-2017 KCC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팀인 안양 KGC인삼공사의 김승기 감독(45). 현역 시절 ‘터보 가드’로 불릴 만큼 스피드가 탁월했던 김 감독은 은퇴 후 2006년 원주 동부 코치를 시작으로 부산 KT 수석코치 그리고 안양 KGC 수석코치를 맡았다. 그의 지도자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전창진 전 감독이다. 원주 동부에서부터 10년 가까이 감독과 코치의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2015년 안양 KGC 팀을 맡자마자 터진 전 감독의 승부조작 스캔들(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로 김 감독은 수석코치에서 감독대행으로 선수단을 이끌었고, 정규리그 4위에 오르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결국 구단은 2015년 12월, 그를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켰고, 김 감독은 올 시즌 창단 최초 정규리그 우승이란 화려한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2011-2012시즌 정규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챔피언결정전에서 원주 동부를 4승2패로 물리치고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적은 있다).

이제 통합챔피언이란 숙제가 남아 있는 김승기 감독. 그가 올해 챔피언결정전 정상에 오르면 KBL 사상 최초의 선수-코치-감독으로 우승을 거머쥔 사례가 된다.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고 있는 김 감독을 지난 3월 29일 안양체육관에서 만났다.



신기한 예지몽

3월 27일 2016-2017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승기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꿈 얘기를 꺼냈다. “우승하는 꿈을 많이 꾸다 보니 우승할 것 같았다”는 내용이었다. 김 감독과의 인터뷰는 이 꿈 얘기로 시작했다.



-꿈에 농구 패턴이 나오고, 꿈에서 가진 우승 반지가 10개도 넘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정말 그런 꿈을 꾼 건가.
“사실이다. 꿈을 아주 많이 꿨다. 꿈에서 너무 뛰어다녀 살이 찔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올 시즌을 준비하면서도 꿈을 꿨고, 시즌 내내 우승하는 꿈을 많이 꿨다. 농구 패턴이나 작전 등을 꿈에서 본 것도 사실이다. 그게 현실로 이뤄지기도 했고.”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정말이다. 작전이 그대로 진행될 때에는 나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경기 중 우리 팀 선수의 골이 성공해도 박수를 잘 안치는 편이다. 그런데 꿈에서 나온 작전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면 박수 칠 때가 있다. 그리고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꿈이었는데….”

-어떤 꿈인데 그런가.

“2015년 3월, 부산 KT 구단이 전창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후 나를 포함해 코치들의 거취 문제가 불거졌을 때다. 그날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내가 오세근, 이정현, 양희종 등 현재 KGC 선수들을 바로 이곳(안양체육관)에서 훈련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더 흥미로운 것은 평소 전혀 인연이 없는 KGC 인삼공사 김성기 사무국장도 그 꿈에 나타났다. 체육관 골대 밑에서 김 국장이랑 계속 얘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보였다. 아주 생생한 꿈이었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날 정도로. 꿈에서 깨고 난 후 기분이 묘했다. 갑자기 왜 KGC 선수들과 사무국장이 꿈에 등장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무슨 예지몽인가. 내용이 점점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꾸며낸 말로도 들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 당시엔 ‘개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안양 KGC에서 전창진 감독에게 감독 제의를 해왔고, 전 감독이 수락하면서 나랑 손규완 코치가 모두 KGC와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빨’은 없다

-신기한 건 전창진 전 감독이 승부조작 연루 혐의를 받으면서 감독직을 내려놓은 일이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전 감독으로선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 감독에겐 새로운 기회였다.
“당시 나도 같이 그만두려 했다. 그러나 선수들과 비시즌 동안 훈련하며 고생한 일들이 떠올랐고, 시즌을 앞두고 무책임한 결정을 하기 어려웠다.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주면서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갔다.”

-당시 팀이 내외부적으로 상당히 어수선했다. 무엇보다 전임 감독 문제로 충격받은 선수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 게 어려운 숙제였을 텐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감독님이 계실 때는 심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갑자기 안 계시니까 당황했던 게 사실이다. 코치였을 때는 선수들의 몸 상태를 살피면서 천천히 컨디션을 끌어올렸는데 감독대행을 하면서는 조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서두른 것도 사실이다. 그때 손(규완) 코치가 ‘왜 안 하던 행동을 하느냐’며 걱정하더라. 처음부터 내심 우승을 욕심낸 모양이다.”

-그런 경험이 올 정규시즌을 이끈 배경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우승 감독이 듣기 싫은 얘기 중에 ‘선수빨’이란 말이 있다. 선수 덕으로 우승했다는 말인데, 김 감독도 우승 전후로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국내 최고 슈터 이정현, 한국 농구의 자존심 오세근, 주장 양희종, 외국인 선수 키퍼 사익스와 데이비드 사이먼으로 이뤄진 전력은 한마디로 ‘넘사벽’ 아닌가.
“그건 감독이 되어보지 않은 이상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다는 건 분명 큰 힘이 된다. 다양한 작전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개인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자존심 강하고 개성 넘치는 선수들을 한데 어우르는 게 결코 쉽지 않다. 정규시즌 우승을 앞두고 오세근과 이정현이 MVP 후보였다. 솔직히 그 둘 중 누가 MVP를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나중에는 서로 사이가 어색해졌고, 그로 인해 선수단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선수단을 발칵 뒤집어놨다.”


팀워크가 우승의 힘

-어떤 방법으로 선수단을 흔든 것인가.
“정규시즌 우승까지 가장 힘든 고비였던 순간이 5라운드 마지막 두 경기로 2월 25일 오리온전, 26일 부산 KT전이었다. 그 두 경기를 내리 지면서 삼성, 오리온과 공동 1위가 됐을 때였다. 계속 단독 1위를 달리다 그 경기들로 인해 발목이 잡히는 순간 선수들과 미팅을 했다. 나 나름의 D-데이였던 셈이다. 오세근, 이정현의 대립과 계속 1위를 해오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조금씩 나태해지는 것 같아 감독 되고 2년 만에 처음으로 욕을 하며 화를 냈다. 30분 동안 엄청난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동안 고생한 게 아깝지 않으냐, 우승이 눈앞에 있는데 사사로운 감정으로 팀을 망칠 것이냐고 화를 냈다.”

-효과가 있었나.
“그런 상황이 처음이라 선수들이 받은 충격이 꽤 컸을 것이다. 남은 6라운드에서 9연승을 해야 우승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후 거짓말처럼 9연승으로 6라운드 전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우승을 확정지었다. 9연승하며 인상 한번 안 썼다. 선수들이 시원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선수들도 9연승하는 과정에서 느낀 게 많았다고 하더라.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팀워크가 무너지면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분이 일어나면 선수들만 바보 된다는 사실도 주지시켰다. 주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세근, 이정현, 양희종에 사이먼, 사익스까지 뛰는 우리 팀을 상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단합만 되면 거칠 게 없는 팀이다.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던 순간에 그 미팅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로 뭉쳤다. 그 힘으로 우승에까지 이른 것이고.”

결국 MVP는 유효표 101표 중 65표를 얻은 오세근한테 돌아갔다. 이정현은 35표를 받아 2위에 올랐다. 오세근은 2011-2012시즌 신인상, 그해 챔피언결정전 MVP에 오른 적은 있지만 정규리그 MVP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근 두 시즌 동안 부상으로 고전한 오세근은 올 시즌 부상 없이 52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해 골밑의 버팀목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평균 33분 3초를 뛰며 평균 14.1득점 8.4리바운드 3.5어시스트로 활약했다. 가드 이정현도 52경기 모두 출전했고, 평균 33분 28초를 소화하면서 평균 15.4득점 3리바운드 5.1어시스트 1.8스틸로 빼어난 활약상을 보였다. 이정현은 국내 선수 평균 득점 1위에 올랐고, 오세근은 국내 선수 리바운드 선두를 차지한 바 있다.



고참의 힘

-아주 절묘한 시점에 팀 미팅을 가졌고, 그때 선수들의 마음을 제대로 흔들어준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본다.
“만약 내가 매일 화내고 욕하는 감독이었다면 그 미팅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2년간 단 한 번도 선수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내가 강하게 밀고 나가면 부러질 거란 생각도 들었다. 처음 KGC 선수들과 만났을 때의 내 위치는 수석코치였고, 선수들한테는 감독 김승기보다는 코치 김승기가 훨씬 편하고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감독 됐다고 해서 목에 힘주고, 선수들을 강하게 내몰았다면 선수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가 고참들이다. 팀을 이끌려면 베테랑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고참들이 중심을 잡아줘야 후배들이 따라간다. 그래서 많이 참았다(웃음).”

-코치 경력만 9년이다. 코치 생활의 노하우가 감독으로 팀을 이끌 때 도움이 된 건가.
“당연하다. 코치하면서 참는 법을 배웠다. 운동만 열심히 한다면, 팀에 도움이 된다면, 고참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후배들은 감독보다 선배들을 보고 배운다. 그래서 KGC를 이끌 때 베테랑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고참들이 내 의도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나로선 그런 그를 버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감독을 해보니까 때로는 악역을 맡아야 할 때도 있더라. 그걸 선수들이 이해해주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에 따라 팀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본다.”

-시즌 초반에는 구단에서조차 올 시즌 성적에 대해 비관적인 예상을 했다고 들었다.
“외국인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과의 호흡이 자꾸 엇박자를 냈다. 오세근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선수들을 뭉치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게 잘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 우리 단장님이 하신 말씀을 잊지 못한다(웃음). ‘지금 우리 팀 하는 거 보면 9위는 맡아놓은 것 같아’라고. 주전 선수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단장님한테 ‘진짜 9위 같아요? 한번 지켜봐주세요. 올해는 꼭 우승할 겁니다’라고 말씀드렸다. 1라운드에서 4승1패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업 앤 다운이 있었지만 우승에 대한 자신감을 버리진 않았다. 어려운 위기를 맞이해도 ‘그래도 우승한다’고 생각하며 밀어붙였다.”


미운 오리새끼 키퍼 사익스

-뛰어난 팀 성적에도 구설이 많았다. 특히 키퍼 사익스의 퇴출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건 나도 할 말이 있다. 사익스를 교체하려 했던 건 우리가 유독 삼성, 동부 등 언더사이즈 빅맨(프로농구는 2명의 외국인 선수 중 1명은 장신을, 또 다른 한 명은 193cm 이하의 단신을 둘 수 있다. ‘단신 테크니션’의 활약 속에 다득점 경기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178cm의 키퍼 사익스는 언더사이즈 빅맨이 아닌 ‘단신 기술자’다)이 있는 팀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우승을 위해선 작은 신장의 사익스 대신 언더사이즈 빅맨이 필요했기 때문에 교체를 고민한 건데 선수들이 사익스를 원해 끝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사익스한테는 인간적으로 미안하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 또한 팀을 위해 고민이지, 사익스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게 아니었다. 또 한 명의 외국인 선수인 데이비드 사이먼은 나와 많은 부분에서 교감하며 힘을 실어줬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말을 경청하고, 내가 요구하는 작전을 코트에서 수행해낸다. 그 배경에는 인간적인 신뢰가 자리한다. 사익스의 퇴출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도 사이먼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이해하겠다고 말했다. 급기야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우리 감독을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더라. 얼마나 고마운 얘기인가. 사이먼과 사익스의 활약이 우리 팀에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때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던 키퍼 사익스는 2016-2017 KCC 프로농구 6라운드 MVP에 선정되며 화려한 백조로 부활했다. 사익스의 맹활약 덕분에 KGC는 6라운드 전승을 이룰 수 있었다. 두 차례 퇴출 위기를 딛고 실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난 사익스는 4월 10일 펼쳐진 울산 모비스와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발군의 활약을 선보이며 팀이 승리하는 데 공헌했다.



‘난 네가 제일 무섭다’

-플레이오프에 오른 울산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과 고양 오리온의 추일승 감독보다 후배이다. 이런 선후배 관계가 경기할 때 영향을 미친 적이 있나.
“경기력에 영향을 받진 않지만 선배 감독과의 경기를 풀어가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다. 코치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나보다 나이 어린 감독들과의 경기는 부담이 덜한 편이다. 유재학 감독한테는 두 번이나 ‘말렸다’. 우리 팀 전력에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그걸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런 틈을 발견해내는 것도 베테랑 감독의 노하우라고 생각한다. 나이 어린 감독은 거기까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위축되거나 긴장되는 건 없다. 얼마 전 추일승 감독을 만났는데 날 보고선 ‘난 네가 제일 무섭다’고 말씀하시더라. 칭찬으로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감독 되고 나서 너무 힘든 나머지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거의 매일이었다. 전창진 감독님의 부재로 내가 이 자리에 공짜로 앉게 된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진행됐어도 코치 경력만 놓고 보면 언젠가는 감독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감독님과 함께 좋은 성적을 냈었고, 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며 코치 이상의 역할을 했다는 걸 주위에선 다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전 감독님의 불행한 일로 인해 행운을 거머쥔 것처럼 말하는 농구인들로 인해 심적 고통이 컸다. 내가 감독님을 몰아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만두고 싶었다. 심적 부담을 내려놓고 편하게 지내고 싶었다. 물론 선수들의 신뢰와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지만 지난 2년의 시간은 내게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감독대행 시절, 김승기 감독은 10년의 시간 동안 바늘과 실처럼 움직이던 전창진 전 감독의 공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전 전 감독의 하차는 자신의 하차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전 전 감독의 뒤를 이어 팀을 맡는 게 모양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만둘 결심을 하면서 가장 미안했던 사람이 자신과 함께 시즌을 준비하던 선수들이었다. 그 때문에 갈등을 했을 뿐 다른 욕심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주위 농구 선배들이 내게 응원을 보내주셨다. 그만두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만류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선수들 앞에 서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그런 과정에서 선수들도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받았다. 팀의 존폐가 거론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고, 시즌 개막을 앞둔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절실했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을 떠올리며 “최악의 상황에서 시즌을 맞이했고, 선수들과 함께 그 어려움을 이겨나갔다”고 설명한다.

-선수 시절 얘기를 해보자. ‘터보 가드’로 명성을 날렸지만 무릎 부상으로 은퇴한 이력이 있다. 당시 무릎 부상이 심한 상태였나.
“1년이라도 더 뛰고 싶었지만 도저히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가 됐다. 지금도 그 무릎이 좋지 않다. 날씨가 궂으면 시큰거리는 느낌도 들고. 당시 연봉이 깎일까봐 부상을 숨기고 뛰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연봉이 깎이면 경제적 타격이 커 부상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점점 몸이 망가졌고 어쩔 수 없이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 내 경험에 비추어 선수들에게 부상당하면 망설이지 말고 수술하거나 재활에 집중하라고 얘기해준다. 연봉은 걱정하지 말고 치료하는 데 신경 쓰라고 하면서 말이다. 부상당한 선수들을 볼 때마다 선수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참아준 아내에게 고마워

-은퇴 이후 곧장 코치 생활을 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은 덜 수 있었겠다.  
“그렇지 않았다. 주식에 손을 댔다가 10억 원가량의 빚을 졌다. 이혼 위기까지 갔다가 참고 기다려준 아내 덕분에 10년 동안 그 빚을 거의 다 갚았다. 처음에는 아내가 걱정할까봐 숨기고 지냈는데 나중에 모든 걸 알게 된 후 아내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는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인생의 밑바닥으로 주저앉은 시기였다.”

-헤어지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인내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겠다.
“정말 결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김승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들만 둘인데 고3, 중3이다. 모두 농구를 한다. 한 아이의 농구 실력이 뛰어난 편이다. 여건이 된다면 ‘농구인 2세’로 잘 키워볼 생각이다(웃음).”



농구가 살려낸 아버지

-농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 프로팀에 갈 때 스카우트비와 연봉, 계약금 포함해서 2억5000만 원을 받았다. 아버지가 당시 신장이 좋지 않았는데 그 돈 덕분에 치료를 잘 받았고, 지금 건강하게 지내신다. 만약 내가 프로팀에 가지 못했더라면 아버지는 치료를 받지 못해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우리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 아버지가 ‘내 아들이 위대해 보인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 문자 보고 많이 울었다. 사실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을 때 가족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고생하신 부모님, 날 믿고 기다려준 아내에게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려 했는데 눈물이 쏟아질까봐 꾹 참았다. 그 인사는 통합챔피언을 달성한 이후로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김승기 감독은 평소 전하지 못한 전창진 전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나타냈다.

“내가 지도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모두 감독님 덕분이다. 이전 기자회견을 통해 내 몸에는 ‘그분’의 피가 흐른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감독님 밑에서 코치 생활하며 많은 걸 보고 배웠다. 힘들 때마다 감독님 생각을 많이 한다. 나를 이끌어주신 그 마음 잊지 않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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