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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미동맹 50주년, 흔들리는 한미 관계

이제 미국은 없다?

崇美에서 反美까지… 한국인의 복잡한 심리 분석

  • 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이제 미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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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것은 20대의 반미의식이 30대 못지않게 높다는 점으로,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이 세대 또한 미국 문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미국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 점에서 최근 반미 열풍에 20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반미 정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의 이런 반미의식은 이 세대의 특징으로 지목되는 서구적인 개인주의 의식과 일견 모순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앞서 지적한 정서적 반미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세대에 대한 미국적인 것의 압도적인 영향력이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반발의식을 불러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정서적 반미라 해서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의식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자료는 교육 수준에 따른 반미의식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중졸 이하에서 미국이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은 52.0%였으며,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사람은 33.3%였다. 고졸에서는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이 29.4%였으며,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사람이 64.8%였다. 대재 이상에서는 ‘아주 좋다’와 ‘약간 좋다’는 사람이 28.4%였으며, ‘약간 싫다’와 ‘매우 싫다’는 사람이 68.2.%였다. 조사 결과는 학력이 높을수록 반미의식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미국을 많이 알면 알수록, 미국과 접촉이 많으면 많을수록 미국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지난 1980년대부터 본격화한 반미의식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학생운동에서 비롯된 반미의식은 이제 전사회적인 담론으로 확장됐다. 둘째, 1980년대 반미의식이 이념적 반미에 가깝다면, 1990년대 반미의식은 논리적 반미와 정서적 반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나이 든 세대보다 젊은 세대의 경우가 대체로 반미의식이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최근 ‘여중생 사건’으로 반미의식이 크게 확산됐지만, 대체적으로는 반미의식과 친미의식이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반미의식과 친미의식의 공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때 지난 몇년간 반미의식이 확산돼 왔다고 해서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감소한 것은 아니다. 문화의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미국 문화의 영향력이 오히려 강화돼 왔기 때문이다. 조기유학 열풍은 그 단적인 사례이며, 할리우드 영화나 팝 뮤직 등을 필두로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다른 나라의 문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미국적인 것은 ‘표준적인 것’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란 다름아닌 ‘아메리칸 스탠더드’를 의미하고 있다.



반미와 친미의 공존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과 미국을 좋아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문제는 명확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가 다른 하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공적 영역에서는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사적 영역에서는 미국을 추종하는 역설적인 의식이 우리의 적나라한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를 약소국의 비애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반미의식과 친미의식의 역설적인 공존은 미국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역설적인 의식을 낳게 한 주요 원인은 일차적으로 미국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에 있다. ‘여중생 사건’으로 돌아가보면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분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건은 사과를 받거나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 기존의 태도를 고수하는 한 반미의식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 명확하다. 또한 이런 태도는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이익에도 결코 이롭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소파(SOFA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포함해 새로운 대한 정책을 전향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한미 관계는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도 미국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난 현대사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만큼 미국에 대한 애증은 불가피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정서적인 애증 병존을 넘어서 새로운 한미 관계의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한미 관계란 평등한 동반자 관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지속하는 데는 극단적인 친미의식이나 반미의식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용적인 친미와 실용적인 반미를 포괄하는 이른바 용미(用美)의 방법이다. 용미의 방법은 미국에 지혜롭게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이 포지티브섬(positiv-sum) 게임이 될 수 있게 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 용미 전략을 펴기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아마도 반미와 친미를 넘어서 미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그리하여 지혜롭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용미의식에 있을 것이다.

신동아 200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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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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