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신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취임한 지 2개월도 안 된 정 장관이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설립 허가를 강행하자 그 배경을 놓고 무성한 의혹과 뒷얘기가 나돈다.
국내 유일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
카지노 운영권을 획득한 한국관광공사는 오는 11월 말까지 카지노 유치를 희망하는 사업자의 접수를 받고, 12월 중 선정된 호텔을 발표할 예정이다. 선정된 호텔은 2005년 하반기쯤 사업장을 개장한다. 이렇게 될 경우 2005년 한국은 카지노 17개를 보유, 아시아 최다 카지노 보유국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추가 허가 문제는 지난 10년간 ‘뜨거운 감자’였다. 정부가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마지막으로 허가한 것이 1994년. 그러다 김대중 정권 초기인 1998년 관광진흥법 통과 전후, 또 2000년 2월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이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추가로 허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카지노 개설 논의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번번이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그런데 취임한 지 2개월도 안 된 정동채 장관이 카지노 추가 개설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그 배경을 놓고 갖은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문광부가 내세운 신규 허가 이유는 표면적으론 설득력 있어 보인다. 관광수지 적자를 개선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특정 업체의 카지노 독점을 막겠다는 것. 더불어 특정업체에 대한 특혜 시비를 불식한다는 명목으로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에 사업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문광부가 내세운 근거는 여러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문광부는 그동안 ‘도심형 카지노’가 갖는 한계 때문에 ‘리조트형 카지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번에 신규허가를 내줄 3곳은 모두 ‘도심형 카지노’다. 일단 정책 추진에 일관성을 잃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카지노 유치 기대효과를 부풀렸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10월4일 국회 문광부 국감에서 “문광부는 카지노 신규허가시 1억5000만달러의 외화획득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으나, 13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최근 3년간 평균 가동률은 3.8%에 불과하다”며 “계산을 부풀려 정책을 결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욱이 전국 13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중 11개 업체가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 카지노 신규 허가가 관광수지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는 회의론도 끊이지 않는다.
우려와 비판에도 정책 결정이 강행된 데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9월7일 한국관광공사와 한국토지공사 주최로 열린 복합레저관광단지 활성화에 대한 공청회 축사에서 “장관 취임시 대통령에게 복합관광레저단지 활성화와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확대를 두 가지 중점과제로 전달받았다”고 밝혀 외국인 카지노 확대가 노 대통령의 의지임을 내비쳤다.
‘노심(盧心)’과 정 장관의 의기투합으로 밀어붙인 정책결정은 사방에서 협공을 받고 있다. 먼저 사행산업 종합대책 법안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덜컥 신규 허가를 결정한 이유가 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 2월17일 당시 이창동 문광부 장관에게 “사행산업이 사회윤리, 질서,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감안, 사행산업의 실태, 물질과 정신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고 종합대책을 마련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문광부는 2개 연구소에 의뢰한 사행산업 대책 연구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지만, 이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게다가 한국관광공사는 정 장관의 발표가 신문에 보도된 후에야 자사가 카지노 사업자로 선정된 사실을 알았다. 사업자 선정 기준, 사업 구상 방향 등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가운데 문광부로부터 “카지노 운영자로 선정됐다”고 통보받은 것이다. 이충기 경희대 교수(관광학부)는 “신규 허가의 목적에는 일부 동의하지만, 카지노를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고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없이, 성급하게 허가부터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발표 전 투자 제의
속전속결로 추진된 카지노 신규 허가는 사전 낙점설, 로비설 등의 소문을 낳았다. 문광부는 이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제주도 카지노 업계의 한 관계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주 지역 카지노 운영업체 임원 A씨가 신규 허가가 발표되기 며칠 전 모 인사에게서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서울 2곳, 부산 1곳에 지정될 예정이니 그중 한 호텔에 투자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 A씨는 이 인사가 귀띔해준 이야기가 며칠 후 정부 정책으로 발표되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A씨에게 투자를 제안한 인사가 브로커인지 정부 관계자인지를 확인하려 접촉을 시도했지만, A씨는 끝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제주지역 카지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위원회(이하 카생투)’ 정강 위원장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여건도 검토하지 않은 채 정책이 결정됐기에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최근 호텔업계엔 “카지노 업무를 담당해온 문광부 고위관계자 K씨의 승진이 내정됐으나 카지노 인허가와 관련한 의혹이 제기돼 정식 발령이 나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전임 장관 시절부터 카지노 핵심 업무를 맡아온 K씨는 지난 8월 초 승진했으나 2개월이 넘도록 정식 발령이 나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 것. ‘세계일보’는 이 사실을 두고 “카지노 로비전이 얼마나 과열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카지노 인허가가 아닌 다른 사안으로 K씨를 음해하는 몇 건의 투서가 접수돼 검증과정을 거치고 있다”며 “사안은 직위해제할 정도로 크지 않다”고 밝혔다. K씨의 인사 내막을 놓고 카지노 신규 허가에 대한 호텔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다양한 억측으로 번진 것이다.
수상한 시민단체 ‘외카련’
카지노 신규 허가 배경을 둘러싸고 의혹의 시선을 받는 단체가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카지노 신규 허가 분위기를 조성하고 여론몰이에 나선 ‘외국인전용카지노 개혁추진연대(이하 ‘외카련’)’다. 이들은 시민단체를 표방하며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신규 허가를 적극 주장해왔다. 그러나 실제 구성원은 대부분 카지노 유치에 관심을 둔 호텔 관계자로 알려졌다.
이들은 9월3일 문광부가 외국인 카지노를 신규로 허가하겠다고 발표하자 단체활동을 마감했다. 외카련이 주장해온 것처럼 카지노 사업자로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가 선정된 것도 눈길을 끈다. 다음은 외카련 인터넷 사이트(www.coreacasino.org)에 오른 글이다.
“…마침내 9월3일, 정부로부터 한국 외국인 전용 카지노 발전을 위한 개혁안 발표라는 획기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부의 발표는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특정업체의 산업독점을 해소하고… 특히 정부의 발표안 가운데 신규허가 대상을 한국관광공사와 그 자회사로 한정한다는 내용은 일반 영리기업에 허가할 경우 나타날 특혜시비가 문제 된다면 국가가 나서서 직접 경영해야 한다는 우리 주장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어서 그 의미가 큽니다.”
외카련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외카련 대외협력실장 조월제씨는 오크우드호텔을 운영하는 한무컨벤션 종합기획부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부친이자 서울동방관광(주) 대표인 조용장씨는 외카련 대표직을 역임했다. 그는 저서 ‘카지노 코리아’를 통해 “한 그룹의 카지노 운영 독점은 부당하며 카지노 신규 허가로 관광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3년 금융감독원 기업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용장씨는 오크우드호텔에 식음료를 납품하는 동전개발(주)의 2대 주주이기도 하다.
롯데호텔 등 다른 특급호텔들도 외카련을 음성적으로 적극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카지노 사업 유치를 꿈꾸는 호텔들이 힘을 모은 것이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분석했다.
사전 로비설에 대해 한무컨벤션 조월제 과장은 “인터뷰에 응하고 싶지 않다. 외카련 활동을 이미 접었고, 그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외카련 활동에 참여했을 뿐”이라 답했다. 한무컨벤션측은 경쟁사가 흘린 음해성 소문에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호텔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은밀하게 간택됐다면 구태여 카지노 신규 허가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홍보하고 나설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한편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외카련이 시민단체를 자처한 것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도박산업규제와 개혁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이하 ‘도박규제 네트워크’)’ 위원장은 “외카련은 단체활동을 시작할 때 자신이 카지노 산업의 이해 당사자임을 극구 부인했다”며 “이들이 벌인 운동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카지노 운영자가 아닌 장소 임대업자는 얼마나 수익을 얻을까. ‘외국인 카지노 정책 토론회’ 개최를 주도한 열린우리당 이경숙 의원측은 “카지노 운영자보다 오히려 카지노를 유치한 호텔이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카지노가 적자를 내더라도 호텔 임대료는 꼬박꼬박 내야 하기 때문이다.
카지노 운영자 파라다이스는 현재 서울 쉐라톤워커힐호텔에 연 보증금 60억원과 임대료 명목으로 매달 6억원을 지급하고 있다. 더불어 ‘콤프(판촉비·Complimentary)’ 명목으로 호텔에 지급하는 객실·식음료 이용비가 300억원에 육박한다. 워커힐호텔은 카지노 부대 효과로 연간 400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호텔업계가 카지노 유치에 사활을 거는 데는 언젠가는 카지노 운영권을 획득하리란 기대도 한몫한다. 1960년대 말 한국관광공사가 카지노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파라다이스가 그 사업을 인수한 전례가 있다.
특급호텔의 靜中動 유치전
특급호텔들은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로 카지노 유치 경쟁에 나섰다. 경쟁은 벌이되 12월 카지노 유치 사업자가 확정될 때까지 괜한 구설에 오르지 않겠다는 조심스런 태도다. 현재 카지노가 들어설 수 있는 요건을 갖춘 곳은 서울 특급호텔 15개와 1개의 국제회의장. 부산은 4개의 특급호텔과 1개의 국제회의장이다. 호텔들은 정치권 관계자들을 끌어들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이론을 뒷받침해줄 교수들과 접촉하는 등 물밑 작업에 한창이다.
서울 시내 특급호텔 중 유력하게 거론되는 업체는 롯데호텔, 리츠칼튼, 한무컨벤션의 오크우드호텔이다. 이 세 업체는 2002년 컨소시엄을 구성, 정부에 “한 업체가 서울의 카지노를 독점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신규로 허가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들은 카지노 산업에 관심을 갖고 발빠르게 준비해 온 만큼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호텔은 최근 카지노 유치 준비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잠실 롯데호텔이 1980년대 초 호텔을 신축하면서 카지노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 900~1000평의 공간을 확보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전 롯데호텔 관계자는 “롯데호텔 사장이 직원들과 함께한 공식석상에서 카지노 유치에 의욕을 보였다”며 “1000평의 공간에 이미 카지노 기기가 설치돼 있고, 일본 고객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다른 호텔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리츠칼튼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신규 카지노 낙점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다. 미국의 스티븐 솔라즈 전 하원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리츠칼튼의 카지노 운영 문제를 거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에 ‘리츠칼튼이 카지노 사업권을 따놓았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리츠칼튼 홍보팀은 “호텔을 설계할 때부터 카지노 유치를 고려, 900여평의 공간을 마련해뒀다. ‘카지노 문화는 저급하다’는 인식을 불식시킬 만한 고급스러운 카지노 문화 정착을 위해 별도의 팀을 꾸려 비밀전략을 수립하는 중”이라 밝혔다. 제주 크라운프라자호텔에서 카지노를 운영한 경험을 살리고 세계적 브랜드라는 강점으로 승부하겠다는 계산이다.
한무컨벤션의 오크우드호텔은 2001년 호텔 신축 당시 인허가도 받지 않은 채 카지노 공간을 만들다가 언론에 노출돼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과의 연계설 등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한무컨벤션의 박병구 부사장은 “한국관광공사의 입찰에 투명하게 참가할 것”이라며, “카지노 시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있지만 아직 공개할 순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랜드힐튼호텔은 강북의 호텔 중 대표적으로 카지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대부분 특급 호텔이 강남에 몰려 있는 것을 감안, ‘지역안배론’에 승부수를 던질 생각이다. 이들에게 을지로 롯데호텔은 최대의 경쟁자다.
입지·시설로 승부수
부산에서는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경북관광개발공사가 카지노 사업권을 갖게 될 것이란 소문이 나돌아 부산시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경북관광개발공사가 카지노 운영권을 가져가면 카지노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이 모두 경상북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산 특급호텔들도 카지노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오가는 것은 기본. 문화관광위 소속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를 만나 홍보전을 펼치는 데 여념이 없다.
부산에서 카지노장이 들어설 만한 여건을 갖춘 곳은 해운대그랜드호텔, 부산 롯데호텔, 웨스틴조선비치호텔, 부산메리어트, 벡스코(BEXCO) 등. 이중에서 해운대그랜드와 부산 롯데호텔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해운대그랜드호텔은 호텔 개장 때부터 100억원을 들여 카지노를 꾸민 만큼, 카지노 유치에 사활을 걸겠다는 방침이다. 1000평 정도의 카지노 공간을 확보한 것은 물론 수영장, 볼링장, 영화관 등 복합 레저시설로 다양한 즐길거리를 제공하겠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들은 “카지노의 입지로서 관광특구인 해운대가 가장 적절하다”고 제안하며 ‘입지 경쟁력’을 내세운다.
부산 롯데호텔의 경우 ‘일본 관광객 투숙률이 70%를 상회한다’ ‘공항, 부두, 고속철역에서 모두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며 최적지임을 홍보하고 있다. 지하 1층에 마련된 1000평 상당의 카지노 공간과 VIP전용 주차장도 홍보 포인트. 부산 롯데와 서울 롯데 중 사업권이 어디로 돌아가느냐가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거리다.
부산시가 출자해 만든 벡스코는 “특혜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없고, 부산시민에게 이익을 환원할 수 있으므로 카지노장 유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 선정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정작 한국관광공사는 방침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오용수 한국관광공사 신규수익사업기획단장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호텔을 선정할 것”이라며 “호텔 선정 기준은 아직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호텔 못지않게 카지노 유치에 몸이 단 곳은 지방자치단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 공약으로 ‘카지노 유치’를 내세운 지자체가 상당수 있다”며 “‘카지노 유치가 지자체 경기 회생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란 맹신이 팽배해있다”고 전했다.
카지노 사업을 둘러싸고 지역끼리 대립각을 형성하기도 한다. 적자에 시달리는 8개 카지노를 떠안고 있는 제주도와 내국인 전용 카지노를 보유한 강원도는 ‘내국인 카지노 추가 허용’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현재 제주도의 카생투 관계자들은 강원랜드 관계자들에게 “내국인 관광객이 슬롯머신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협의안을 제안한 상태다.
지자체들의 카지노 유치전
대구시는 이번 카지노 신규 허가 지역에서 제외돼 허탈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구시청 관광진흥과 관계자는 “국회와 문광부에 ‘카지노 유치 계획서’를 보내고, 관광도시로서 대구의 장점을 적극 홍보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카지노 신규 허가에 관련된 법안이 5개나 돼 카지노의 대량 설립 가능성도 예상된다. 최근 발표된 기업도시법에 따라 관광·레저 도시를 준비하는 곳은 전남 해남·영암, 충남 서산, 서귀포, 광양 5개 지역이다. 이 지역에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기업이 나타날 경우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신규 설립이 가능하다. 지난해 1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외국인이 국내 관광사업에 5억달러 이상 투자했을 경우 카지노장을 설치할 수 있게끔 제도화했다.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강원랜드 관련법 등도 신규 허가 규정을 갖고 있으며, 인천시는 인천신도시관련특별법에 따라 2012년까지 인천공항 배후지인 용유·무의도 일대에 카지노가 포함된 국제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한 ‘영종도 프로젝트’의 실현 여부도 귀추가 주목된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카지노가 들어설 경우 공항 이용객이 대거 카지노에 몰리는 것은 물론, 서울지역의 카지노에도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영종도에 카지노를 신규로 설립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자에 시달리는 인천의 올림포스호텔 카지노를 영종도로 이전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도박규제 네트워크 이진오 위원장은 이러한 지자체 카지노 열기에 대해 “사행산업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철학도 없이 양산한 카지노 허가 법안들이 한국을 ‘카지노 공화국’으로 만들 것”이라며 우려했다. 그러나 문광부는 이러한 고민이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문광부 김찬 관광국장은 “기업이나 개인이 사업의 경제성을 면밀히 검토한 후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무더기로 카지노가 들어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지노가 성공적 외자유치와 경기부양의 ‘절대해답’이 아니라는 지자체 관계자의 말은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인천시 관광진흥과의 한 관계자는 “인천 용유·무의도 일대에 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미국 기업 CWKA사의 진입이 무산됐고, 이 지역에 들어서기로 한 해상관광호텔도 착공만 한 채 공사에 진전이 없는 상태”라며 “이런 상황에서 카지노 유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미국의 투자개발회사 SCI는 제주도에 카지노 리조트를 건설하려 했지만, 이곳에 들어설 카지노가 ‘외국인 전용’이란 사실을 알고 난 후 투자를 망설였다. 결국 지난 2월 한국관광공사가 SCI중문단지 입주 적격자 지정을 해지한다고 발표하며 카지노 리조트 유치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카지노를 유인책으로 내세운 관광·레저 단지 조성사업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양대 조민호 교수(관광학부 호텔경영학과)는 “카지노 확대로 관광적자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 카지노가 진정한 관광상품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나 말레이시아의 겐팅 하일랜드처럼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 다양한 볼거리를 만드는 데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카지노 감독기구 설치돼야
카지노 신규 허가 논란을 계기로 카지노 및 우리나라 사행산업 정책 전반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먼저 외국인 카지노 확대로 예상될 통상압력에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경희대 이충기 교수(관광학부)는 “외국인 카지노가 확대되면 카지노 설립이 법적으로 금지된 일본 같은 국가로부터 ‘내국인까지 개방하라’는 통상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국제법상 카지노 허가에 대한 법률안을 조정하는 등 주의 깊은 조처가 필요할 것”이라 당부했다.
카지노 감독기구 설립도 중요 이슈로 떠올랐다. 카지노 신규 허가에 대한 주무부처를 통일하고, 제대로 된 업체가 카지노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감독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러한 제도를 참고할 만한 국가는 바로 호주다. 주(州)별로 1개의 카지노 감독기관이 설치된 호주는 카지노 수요가 반드시 존재해야 카지노 설립을 허가한다. 우리도 ‘선(先) 카지노 감독기관, 후(後) 카지노 허가’방식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일정 수준에서 카지노 수를 고정하는 ‘총량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지역간 불균형 문제와 특정기업의 독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의 경직된 카지노 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카지노 신규 허가를 둘러싼 논쟁은 항상 기존 카지노업자들의 수성(守城) 전략과 진입을 노리는 사업자들의 공격 전략이 맞부딪치며, 무수한 정치권 커넥션 의혹을 만들어왔다. 도박규제 네트워크 이진오 위원장은 “지금껏 한국의 카지노 정책은 사업자들의 입김과 이해관계에 휘둘려 결정되기 일쑤였다”며 “정책결정에서 국민의 이익과 정서를 고려한다면, 끊임없이 제기되는 특혜 시비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