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규제 집착 ‘고무줄 잣대’로 불공정 시비 자충수

  • 글: 송성훈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ssotto@mk.co.kr

    입력2004-10-26 15: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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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2건 중 1건은 법원에서 ‘퇴짜’를 맞고 있다. 기업들이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내는 비율도 크게 늘고 있다. ‘말발’이 먹히지 않는 ‘경제 검찰’ 공정위의 위기와 고민.
    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공정위 내부에서는 학자 출신의 강철규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대기업 정책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가 없으면 변화가 있을 수 없고, 비판 없이는 개혁도 없다.”10월 첫 번째 월요간부회의에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국장들을 모아놓고 강조한 말이다.

    강 위원장의 이런 언급에는 최근 들어 언론의 뭇매를 맞으며 흔들리는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염려도 담겨 있지만 이를 계기로 삼아 공정위 본연의 책무를 되돌아보자는 의미가 강했다는 게 회의에 참석한 간부의 전언이다.

    과징금 처분에 대한 공정위의 패소율이 갈수록 높아져 공신력이 추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때만 해도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는 것이 공정위 주변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영창악기 부도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에 대해 잇달아 공정위에 패소판결을 내리면서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이유야 어떻든 공정위에게 9월은 어느 때보다 뼈아픈 한 달이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해야 할 공정위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들었을 때는 조직의 정체성이 흔들릴 만큼 최악의 위기상황이었다”며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보도 태도를 보인 언론에도 많이 실망했다”고 언론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위기’와 ‘정체성’이라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공정위를 흔들고 있는 것일까. 공정위에 대한 비판이 시작된 것은 9월초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2003년도 공정거래위원회 소관 세입세출결산 및 예비비 지출승인의 건 검토보고’에 나타난 패소율 통계가 알려지면서다.



    과거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해당 기업들이 제기한 소송 18건 가운데 10건(일부패소 3건 포함)에 대해 지난해 대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패소율이 55.6%에 달한다는 얘기로, 소송 2건 중 한 건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가 잘못됐다는 판결을 받은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만 해도 30%에 그치던 패소율이 2002년 47.1%, 지난해 55.6%로 최근 3년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부패소를 제외한 완전패소만 따져봐도 2001년 20%에서 지난해 38.9%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처럼 공정위의 조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들이 과징금 부과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기업 가운데 소송을 제기한 기업의 비율은 2001년 32.9%에서 지난해 43.2%로 크게 높아졌다. 패소율이 높아지면서 공정위 처분에 대한 신뢰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난해 패소율이 높아진 것은 그야말로 일시적 현상으로 공동행위 합의추정 조항의 해석과 관련한 소송이 지난해에 집중되면서 벌어진 것”이라며 “올들어 과징금 관련 소송에서 공정위는 단 한건도 패소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패소율 56%

    그러나 강 위원장의 해명대로 패소 사태가 법리적 해석 차이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일련의 법원 판결로 인해 공정위의 공신력이 크게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공정위에 대한 비판에 불을 붙인 것은 영창악기 부도사태였다.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에 대해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이뤄진 인수합병을 공정위가 나서서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인가해야 마땅한 사안을 놓고 공정위가 글로벌화 추세에 역행하는 폐쇄경제 시대의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공교롭게도 인수가 무산된 영창악기가 끝내 부도사태를 맞으면서 비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들은 “멀쩡한 기업을 공정위가 부도로 몰고 간 셈”이라며 “질 낮은 심판 때문에 얼룩진 스포츠 경기처럼 공정위의 무리한 판단이 기업회생과 경영합리화라는 커다란 이익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비난했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되레 소를 죽여버렸다는 비판이 집중된 것이다.

    이어 추석연휴 직전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은 공정위에 대한 일련의 비판에 쐐기를 박았다. 1999년 삼성SDS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 230억원어치를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 등 삼성관계인 6명에게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삼성에 부과한 과징금 158억원에 대해 대법원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확정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공정거래를 저해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었고, 이에 따라 공정위의 무리한 판결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이러다 보니 공정위 조사에서 위법행위가 적발된 기업으로선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과정과 조사결과 발표과정에 이미 여러 차례 기업 이름이 거론되는 바람에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데다 소송으로 인해 수년에 걸쳐 쏟아부은 시간적·물리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당한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공정위의 결정이 늘어날수록 그 피해는 당사자인 기업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덩달아 공정위 내부의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 내부에서는 최근 결정에 대한 자성보다는 과거 공정위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오락가락한 과거 공정위의 결정들이 지금 와서 정당한 제재조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공정위의 원죄로 인해 일어나는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지적처럼 최근 공정위 결정에 힘이 실리지 않는 것은 공정위가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른바 ‘원죄’와 관련해서는 우선 1999년 현대자동차의 기아차 인수와 2000년에 이뤄진 SK텔레콤의 신세기이동통신 합병을 예로 들 수 있다. 당시 현대자동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이 70%를 웃돌게 되고, SK텔레콤도 신세기통신을 합병하면서 시장점유율이 사실상 50%를 웃도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공정위는 이 두 건의 인수합병에 대해선 모두 허가를 내줬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인수합병을 통해 업계 1위가 되는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50%를 웃돌거나 상위 3개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0%를 넘을 경우에는 공정위에서 이를 제한할 수 있다. 공정위가 합병에 제동을 건 삼익악기와 영창악기의 사례는 전자에 해당하고, INI스틸의 한보철강 인수합병은 후자의 경우가 된다.

    다시 현대차와 SK텔레콤 사례로 돌아가보자. 당시 공정위는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현대자동차에 3년간 트럭 부문에 대해서만 규제했을 뿐 시장점유율이 사실상 70%를 넘어도 인수합병을 허가해주었다. 또한 신세기통신을 인수해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어선 SK텔레콤에 대해 공정위는 ‘1년간 시장점유율을 50% 미만으로 유지할 것’을 명령했을 뿐 인수를 불허하지는 않았다.

    당시 공정위는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를 허가하면서 산업합리화 규정에 따른 예외인정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해도 괜찮다는 논리였다.

    또 SK텔레콤은 신세기통신을 인수하더라도 KTF LG텔레콤 등 경쟁업체 3개사가 있어 경쟁구조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며 인수합병을 허가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삼미특수강 주식을 취득한 인천제철도 2000년 9월 공정위로부터 3년간 냉연강판 가격규제 조치를 받았을 뿐 별다른 제재조치를 받지 않았다.

    기업들이 공정위의 결정을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업체별로 시정조치의 강도가 다르다는 점에 있다. 일부에서는 노골적으로 ‘고무줄 잣대’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2002년 12월, 고합을 인수한 코오롱은 생산설비 일부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았으며, 지난해 8월 LG화학과 호남석유화학은 대산공장 설비를 분할해 인수하는 방식으로 현대정유 주식을 취득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공정위는 무학소주의 대선주조 인수는 아예 허가하지 않았다. 최근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를 불허한 것도 비슷한 사례. 공정위가 가격 또는 생산량 조절 등의 규제보다는 인수합병을 원천적으로 막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연구위원은 “현대차의 기아차 인수는 누가 보더라도 사실상 독점인데도 공정위가 이를 허가해준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산업합리화 규정에 따른 예외인정 조항이 1999년 4월에 폐지되는 바람에 삼익악기에는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쟁정책을 전공한 경제학자들은 물론 공정위 관계자들도 속셈을 털어놓을 때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실 비판받아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도 과연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면 국제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 역시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조치를 불허한 것은 옳은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박사도 “삼익악기 건은 여러 정황을 보더라도 인수합병을 허가하지 않는 게 맞다”고 견해를 밝히면서도 “현대차 SK텔레콤 등의 사례에서 보듯 과거 공정위가 인수합병을 (무리하게) 허가해준 결정 때문에 기업들이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연구소 전문가는 “과거의 ‘원죄’를 떠안고 있는 공정위가 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바람에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정체성 논란, 비상 걸린 공정거래위

    공정위가 삼익악기의 영창악기(사진) 인수를 불허한 직후 영창악기가 부도나자 ‘공정위가 멀쩡한 기업을 죽였다’는 비난이 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02년 12월 말 언론사에 부과된 과징금을 급작스럽게 철회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공정위는 2001년 7월에 실시한 15개 신문·방송사 대상 부당내부거래 조사결과에 따라 부과한 182억원의 과징금을 전액 취소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당시에는 과징금 등으로 경영이 악화될 경우 언론사의 공익적 기능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되돌아보면 부끄러운 결정이었다”며 “이미 이의신청을 기각한 상태에서 공정위가 전원회의를 열어 스스로 내린 과징금 부과조치를 거둬들인 것은 절차상으로도 할 말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요즘 무더기 패소사태가 벌어진 부당내부거래 조사에 대한 법원의 결정만 보더라도 그렇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대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를 바로잡겠다는 취지에서 진행한 공정위 조사가 초기에는 꽤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후 대기업들이 제도적으로 많이 변했는데도 공정위가 기존의 잣대만을 무리하게 들이댄 것이 화근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도 “이른바 ‘건수 올리기식’의 무리한 조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개발연구원 임원혁 박사도 “공정거래법 체계상 미비점이 있다”며 “부당내부거래가 공정거래를 저해했다는 점을 입증하기에는 두 사안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법 자체만 놓고 보면 패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결국 법체계상 미비점과 함께 공정위의 무리한 부당내부거래 조사가 최근의 패소사태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이런 질문에 그야말로 ‘공정한’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업계는 업계대로 공정위는 공정위대로 시각 차이가 너무도 분명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대기업 정책이 공정위의 주된 업무인 것처럼 비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공정위가 재벌정책 일변도로 나아가는 데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강철규 위원장이 비록 학자 출신의 외부인사이기는 하지만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이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하고 있다. 그러나 위원장이 대기업 정책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보고할 때나 국회에 나가서 답변할 때 대기업정책과 관련해서는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지만 소비자보호나 하도급관련 정책 등에 대한 내용에 접어들면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권 박사도 “공정위가 경제집중억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는 실제로 막을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며 “30대 기업집단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나 1인당 소득이 높아질수록 경제집중도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기업 성장과정에 집적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인권 박사는 특히 출자총액제한제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박사는 “공정위는 출자와 투자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출자총액규제를 받는다는 사실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는 기업이 많다. 가령 자산규모 5조원부터 규제를 받게 돼 있어 4조원 후반대에만 7개 대기업 그룹이 집중돼 있다. 자산이 늘어나는 것을 꺼리는 현상 때문에 몇 년째 그 자리에 정체돼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투자를 가로막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사례를 밝혀주면 고치겠다고 장담하지만 이것도 기업생리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는 것이 이 박사의 설명이다.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밝히는 것은 기업의 영업비밀 차원에서도 불가능한 얘기일 뿐 아니라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개별기업에겐 위험부담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규제 위주 벗어나야

    물론 출자총액제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각종 예외규정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뭐냐’는 비판도 있지만 ‘누더기라도 입고 있는 것이 벗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여러 경제학자가, 공정위가 앞으로 대기업 규제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소비자보호정책이나 경쟁정책 등에 업무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임원혁 박사는 “선진국에서 대기업정책은 증권거래법이나 사적소송제도를 통해 이뤄진다”며 “한국에선 공정거래법이 규제의 차선책으로 기능해왔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기업들도 공정위의 대기업 규제정책 폐지만 소리 높여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적 구제제도나 감독제도 강화를 동시에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권 박사도 “경쟁유지와 경쟁촉진 정책이 공정위의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며 “정책당국이 너무 대기업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정위 업무의 가장 큰 목표가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업종전문화 및 소유분산’, 외환위기를 경험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기업구조조정촉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기업지배구조개선’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가장 큰 목표인 경쟁촉진이나 소비자보호와는 관계없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 보호 등에 초점 맞춰야

    따라서 공정위의 위상과 관련해 소비자보호관련 정책과 경쟁정책 강화가 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재경부 산하에 있는 소비자보호원을 공정위로 이관하는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정위 관계자도 “시장개혁로드맵 3개년 계획이 끝나는 2∼3년 뒤면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대기업관련 정책이 사실상 사라질 것이므로 대기업정책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며 “최근 소비자보호원 이관에 관심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공정위의 또 다른 관계자도 “재경부에서는 꼬리격인 소비자정책 관련업무가 공정위에선 최우선 업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공정위가 대기업정책과 소비자정책까지 맡을 경우 공룡화할 우려가 있고, 15개 정부부처가 모두 관련된 소비자정책을 총괄하기 위해선 소비자보호 기능을 재경부가 계속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재로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무튼 공정위가 안팎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일관성을 띠지 못했던 공정거래 정책이 최근 신뢰성에 위기를 초래한 점을 감안하면 공정위가 먼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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