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통신·방송 융합, ‘부정 출발’ 눈총

신문사는 뉴미디어 진출 원천봉쇄, 방송·인터넷 언론엔 ‘빅브라더’ 길 열어

  • 글: 박창신 디지털타임스 기자, 한국외국어대 박사과정(신문방송학) parkchangshin@hanmail.net

    입력2004-10-26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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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성DMB에 제동 건 KBS, ‘언론 제왕’ 노린다
    • 방송3사에 휴대전화, 인터넷 등 첨단 뉴미디어 몰아주기
    • ‘오마이뉴스’에도 문 활짝… “영향력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 신문사는 DMB 등 진출 차단돼 쇠퇴 불가피
    • 미디어의 권력이동 시작, 정치권에도 큰 파장 예고
    통신·방송 융합, ‘부정 출발’ 눈총

    위성DMB가 본격 시행되면 TV 방송을 볼 수 있는 휴대전화가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언론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통·방융합은 5~6년 전부터 기술 세미나의 주된 이슈였다. 이 문제가 2004년 가을 새삼스럽게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통·방융합이 구체적인 상용 서비스 형태로 실현되기 직전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융합서비스의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에 따라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는 통합미디어 산업의 지형이 달라진다.

    무선과 유선을 불문하고 숨가쁘게 진행중인 통·방융합은 통신시장과 방송시장의 총체적 변혁을 예고한다. 방송법이 규정한 방송사업자의 방송시장, 그리고 전기통신사업법이 규정한 통신사업자의 통신시장은 이제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양 사업자는 기득권이 허물어지는 위기와 새로운 거대시장으로 진출할 기회를 동시에 갖게 된 셈이다. 통신사업자도, 방송사업자도 아닌 ‘종합 통신방송사업자’의 출현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은 통·방융합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대변한다. DMB는 통·방융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데, 그 이유는 DMB가 서비스의 융합(TV+전화)이자 단말기의 융합(휴대전화+TV수상기)이며, 사업자 융합(통신사업자+방송사업자)이자 네트워크 융합(방송망+이동통신망)이란 점에 있다.

    ‘손바닥 위의 TV혁명’

    DMB사업은 인공위성을 이용할 경우 위성DMB(주로 휴대전화 형태), 지상파를 이용할 경우 지상파DMB(주로 TV수상기 형태)로 구분된다.



    위성DMB의 경우 휴대전화 겸용 DMB 단말기는 사용용도에 따라 ‘DMB모드’와 ‘전화모드’로 바뀌도록 설계돼 있다. 소비자는 이 단말기를 때론 방송수신기로, 때론 전화단말기로 사용한다. 하나의 단말기로 TV를 시청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이동통신망으로 연결되는 ‘리턴패스 전용 버튼’을 눌러 상품을 구매할 수도 있고, 프로그램 진행자가 찬반을 묻는 질문에 키패드의 ‘1번’(찬성)과 ‘2번’(반대)을 눌러 생방송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도 있다.

    위성DMB 서비스의 가장 큰 의미는 TV시청 패턴이 바뀐다는 점. 현재의 TV방송은 일정한 시간대에 일정한 장소(거실 또는 방)에 머물러 있어야 볼 수 있다. 그러나 DMB 서비스가 실시되면 거실 한쪽을 차지하던 큼지막한 TV수상기가 불과 2인치 안팎의 휴대전화 액정화면 속으로 들어가 집 밖으로도 나갈 수 있게 된다.

    DMB는 ‘손바닥 위의 TV혁명’을 예고한다. 이는 방송의 ‘사적 소비’이며, 동시에 방송의 소비자가 공간적·시간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마이 TV’의 개막을 의미한다.

    지난 8월말 기준으로 정보통신부가 집계한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3612만명. 이는 전국 1700만 가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향후 어떤 기술방식이 이동휴대방송의 주류를 이룰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TV·라디오 방송이 휴대전화 안으로 흡수되는 것이 통·방융합의 주된 흐름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역방향의 흡수는 상정하기 어렵다. 흔히 TV가 인간과 가장 친숙한 매체라고 하지만, 사실 개인이 하루에 TV를 시청하는 시간은 일반적으로 3시간 미만이다. 이에 비해 휴대전화는 잠 잘 때조차 몸에서 떼어놓지 않고 이용하는 ‘TV보다 더 친숙한 개인미디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방송위원회는 2004년 10월6일 위성DMB를 통해 KBS·MBC·SBS 등 지상파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지상파 재송신을 일단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방송위의 이 같은 결정은 위성DMB사업을 추진하는 주체인 TU미디어(SK텔레콤과 특수관계의 회사)에겐 치명적이다. 향후 재검토 과정에서 지상파 재송신이 허용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사업성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면서 은행권으로부터의 자금 차입과 유상 증자 일정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통·방갈등 둘러싼 음모론

    위성DMB 지상파 재송신을 반대한 진영은 지역방송사 노동조합 간부들이 이끄는 ‘지역방송협의회’와 방송노조의 상급단체인 ‘언론노동조합’이다. 이들은 이른바 ‘통신재벌’의 공세적 방송시장 진출에 따른 방송의 위기, 지상파 재송신에 의한 지역방송의 고사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재송신이 허용될 경우 ‘방송위 해체’ 투쟁에 나설 것임을 경고했다. 이에 방송위는 ‘재송신 유보’ 결정을 내렸으며, TU미디어의 사업계획은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번 갈등을 방송 진영과 이동통신 진영 간의 이른바 ‘통·방충돌’로 보는 관점도 있다. 방송사 노조와 TU미디어가 거대한 양 세력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방송계에는 연간 매출액 50조원을 헤아리는 통신시장의 거대 사업자가 통신시장 규모의 10분의 1에 불과한 방송시장을 공략하는 데 대해 거부감이 존재한다. 휴대전화 사업자가 이동방송 시장을 선점하고 나면 통·방융합시장의 헤게모니가 통신사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의 역동적 신규투자를 두고 방송 진영에선 “산업자본이 공공의 재산인 방송시장을 침탈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다른 시각도 있다. 이동휴대방송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일군의 통신·방송 사업자들과 또 다른 통신·방송 사업자들이 드러내지 않았을 뿐,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공동전선을 펴면서 격돌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필자는 이 견해에 동의한다. 지방방송을 보호해야 한다는 로컬리즘적 접근이나 통신·방송간 대결이라는 식의 접근은 통·방융합의 시대적 흐름에 걸맞지 않은 좁은 견해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특정 사업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논리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사실 SK텔레콤의 위성DMB 진출에 가장 긴장하고 있는 사업자는 방송사가 아니다.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자인 KTF와 LG텔레콤이다. 휴대전화로 구현될 위성DMB 서비스 확산은 결국 현재 업계 1위인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시장지배력을 굳힐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될 경우 KTF와 LG텔레콤은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가입자마저 SK텔레콤에 빼앗길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KBS, KTF·LGT에 손 내미는 이유

    DMB는 그 자체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월평균 수신료 수익(ARPU)을 높이면서 모바일 통신·방송서비스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기존의 휴대전화 번호는 유지하면서 서비스회사만 바꿀 수 있는 번호이동성제도는 현재 이동통신 2, 3위 그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위성DMB가 개시되면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위성DMB는 이동통신 시장 분할구도를 새롭게 재편할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것이다.

    위성DMB 사업자에게 자사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방송위의 위성DMB 재송신 불허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KBS는 KTF 및 LG텔레콤과 지상파DMB의 상호 협력사업을 긴밀하게 협의해왔다. 이는 KBS의 DMB팀이 이런저런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얘기한 사실이다. SK텔레콤이 추진하는 위성DMB사업을 견제하면서 지상파DMB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KBS는 수도권 지하철 구내, 대형건물 내부 등 지상파DMB 음영(陰影)지역을 해소할 지상 중계망의 구축방안을 SK텔레콤의 경쟁사업자들과 매우 구체적인 수준에서 협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 불가(不可)를 둘러싼 이슈는 본질적으로 통신 대 방송, 거대 통신사업자 대 방송노조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위성DMB와 지상파DMB의 시장 선점 경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KBS를 중심으로 한 지상파DMB 진영이 위성DMB를 견제하는 것은 특정 통신재벌(SK텔레콤)의 방송시장 진출을 막는 효과도 있지만, 또 다른 통신재벌을 편드는 부차적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하겠다.

    이 대목에서 모호해 보이는 것이 MBC와 SBS의 입장이다. 양사는 TU미디어에 각각 지분 5%씩(약 64억원)을 투자한 위성DMB의 주요 주주인데, TU미디어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았다. MBC 노조가 통신에 의한 방송융합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SK텔레콤에 적대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했으나 MBC 경영진은 이렇다 할 의견을 내지 않았다. KBS가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을 반대한 것은 지상파 방송에서의 확고한 주도권을 지상파DMB를 통해 확산시키고, 이를 이동휴대방송의 플랫폼 시장까지 연장하겠다는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엔 이율배반적인 측면이 있다. KBS는 이미 1TV와 2TV를 SK텔레콤의 이동통신 멀티미디어 서비스인 ‘준(June)’을 통해 실시간 재송신하고 있고, 이는 MBC와 SBS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KTF의 ‘핌(Fimm)’에서는 MBC와 SBS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방송위원회는 2003년 2월 발표한 ‘DMC, 데이터방송 및 DMB 등 디지털방송에 관한 종합계획’에서 DMB를 “CD 수준의 음질과 데이터 또는 영상서비스가 가능한 신규 서비스’라고 정의했다. 이어 DMB를 전송수단(지상파/위성)에 따라 지상파DMB와 위성DMB로 구분했다.

    정부, 방송사 일방적 옹호

    DMB의 매체속성을 ‘신규 서비스’라고 규정한 점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DMB가 새로운 방송서비스라면, KBS·MBC·SBS 등 기존의 지상파 방송사업자와 새롭게 지상파 방송사업에 참여하려는 신규 사업자가 공평한 입장에서 대등한 경쟁을 펼치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DMB에 대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입장은 최근 들어 모호해졌다.

    정통부와 방송위는 지난 7월8일, 만 4년 동안 계속돼온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송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지상파 디지털TV의 약점인 이동수신 문제를 지상파DMB로 해결한다”는 취지로 입장을 정리했다. 실제로 최근 KBS·MBC·SBS 등은 지상파DMB를 ‘지상파 디지털TV의 보완매체’, 즉 지상파 DTV 미국방식(ATSC-8VSB)의 이동수신 약점을 보완해 이동환경에서도 지상파TV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매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입장은 지상파DMB 사업자 선정에 있어서 기존 지상파 방송사업자인 KBS·MBC·SBS에 매우 유리한 것이다.

    국가 기간방송으로 지상파DMB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KBS로선 위성DMB가 지상파DMB보다 먼저 출범함으로써 통신사가 미래의 이동휴대방송시장을 선점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이해관계가 이번 위성방송의 지상파 재송신 반대로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각 통신·방송 사업자가 DMB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벌이는 경쟁, 그 과정에서 나타난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 불가결정은 통·방융합과정에서 벌어지는 ‘헤게모니 싸움’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통·방융합 논란은 DMB를 놓고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국내 유선통신시장의 1인자인 KT는 지난 6월11일 서울 목동과 경기도 분당지역 200가구를 시작으로 ‘홈엔’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홈엔 서비스는 유선 초고속 인터넷망을 활용한 TV서비스(IP-TV)를 주력으로 삼는데, KT는 홈엔 서비스에 대해 ‘TV’ 또는 ‘방송’이라는 표현을 결코 쓴 적이 없다. 그럼에도 KT의 홈엔을 TV로 봐야 하는 이유는, 홈엔의 사업모델이 ‘초고속 인터넷으로 TV를 본다’는 IP-TV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T는 지난 6월 서비스 개시 당시 SBS 대하드라마 ‘장길산’, 영화 ‘내 사랑 싸가지’, 드라마 ‘4월의 키스’, 어린이 만화 ‘별나라 요정 코미’를 전화선을 이용해 TV로 보여줬다. KT의 초고속 인터넷 통신망은 가입자의 가정에서 홈게이트웨이(일종의 셋톱박스)를 통해 TV수상기로 직접 연결되는데, 5.1 돌비 채널에 DVD급의 선명한 화면을 제공한다. KT는 말하자면 유선에 의한 통·방융합 사업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

    눈치 보며 방송사업 뛰어든 KT

    KT는 방송시장을 자사의 필연적인 미래사업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방송’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뿐이다. KT는 홈엔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정보통신부가 강력하게 주창해 화두가 된 ‘광대역통합망(BCN·Broadband Convergence Network)’의 초기 단계 서비스라고 설명하는데, 따지고 보면 BCN은 통신과 방송의 구분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BCN은 진대제(陳大濟) 장관이 이끄는 정보통신부가 2003년 7월 기존의 차세대 통합네트워크(NGcN)를 대체하면서 새롭게 제시한 개념이다. 실내 실외 거리 공원 도로 등 장소에 상관없이 원하는 정보와 오락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도록 융합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KT가 굳이 ‘방송’임을 자인하지 않는 것은 방송위원회나 방송노조의 반발을 피하려는 의도 때문으로 보인다.

    KT의 IP-TV는 특히 지역별로 방송구역이 분할된 지역방송 사업자와 케이블TV방송 사업자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각 가정마다 고화질(HD)TV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되면 지역방송과 케이블TV의 존재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제도와 방송환경에서 통신과 방송의 경계영역에 진출하려면 방송임을 내세워서는 곤란하다. 이는 최근 TV방송서비스 진출을 타진하는 통신사업자들에게 외국의 컨설팅 업체, 국내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사항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방송법과 제도, 방송환경의 폐쇄성이 통·방융합을 가로막고 있다.

    통·방융합의 갈등 소지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오는 2006년 2월 서비스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휴대인터넷(와이브로)도 TV방송프로그램 제공이 유력한 서비스가 될 공산이 크다. 무선 상태에서 초고속인터넷의 광대역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와이브로 역시 DMB와 유사한 형태의 새로운 미디어. 따라서 DMB, IP-TV, 와이브로 등 각종 신규 매체가 등장하는 격변기에 과연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다. 방송사업자들은 이 경쟁의 과정에서 자신들이 ‘콘텐츠 제조공장’쯤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방송권력 탄생?

    통·방융합은 미디어 융합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몇몇 방송사의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법적 지위가 분명한 언론매체는 신문, 방송, 뉴스통신사다.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방송법,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록된 미디어가 이른바 법적 언론이다. 그런데, 이들 3가지 언론은 ‘미디어 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과는 상관없이 서로에 대한 소유나 경영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언론사가 신문, 방송, 뉴스통신을 한꺼번에 장악할 경우 예상되는 여론형성의 독점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법률로 교차소유와 상호겸영을 금지해놓은 것이다.

    통신·방송 융합, ‘부정 출발’ 눈총

    DMB사업에서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 일본은 한국보다 한 발 앞서 DMB 서비스를 개시했다.

    방송법 제8조는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사가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 또는 보도채널을 운영하거나 그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정간법 제3조는 일간신문과 뉴스통신이 방송법상의 방송국을 겸영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미디어의 디지털화’ ‘디지털 컨버전스’라는 21세기 미디어 환경에서 방송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종이가 전하는 텍스트(신문)와 전파가 전달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방송)를 놓고 볼 때, 수용자는 보고 들으며 읽을 수도 있는 방송 콘텐츠를 선호하게 마련이다. 이미 방송사의 영향력은 신문사를 앞서고 있다. 예정대로 방송사가 통·방융합의 새로운 미디어를 독식한다면 방송사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세계 일류급인 한국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는 방송사가 새로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iMBC는 지난 7월 음반제작사인 예당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해 온라인 유료음악서비스를 시작했다. SBSi도 10월20일부터 ‘SBS뮤직파크’라는 이름으로 유료 음악서비스를 시작한다. KBS의 경우 이동통신(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퀄컴사와 이동 및 휴대방송 사업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통한 TV시청은 이동통신 및 단말기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날로 확산될 전망이다.

    통신망의 광대역화는 머지않아 초고속인터넷과 TV가 환상적으로 결합할 것임을 예고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실제로 초고속인터넷 통신망을 통한 TV서비스는 ‘브로드밴드TV’(또는 IP-TV)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KT와 하나로통신 등에 의해 보편화될 전망이다. 위성DMB도 방송사 입장에선 또 하나의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방송시장이 이동수신 시장으로까지 일대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융합의 시대에 이들 소수 방송사의 영향력이 아무런 제한도 받지 않고 비약적으로 커지는 데에 과연 아무런 문제점이 없는지를 진지하게 따져볼 시점이다.

    전체 방송시장에서 3분의 2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 3사는 지금도 여론독점,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형편이다. TV수상기에 이어 수천만 대에 이르는 휴대전화, 인터넷이 3개 방송에 집중된다면 미디어계의 ‘빅브라더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방융합은 정보통신 분야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정치적 사회적 이념적으로도 파장이 매우 큰 사안이다. 뿐만 아니라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뉴미디어를 누가 손에 쥐느냐는 것은 미래의 권력지도를 그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현재 여론주도층에선 통·방융합이 갖는 이런 중차대한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신문에는 유리한 잣대

    새로운 미디어 시대가 다가오고 있지만 현행 법률은 신문과 방송을 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지상파DMB의 경우 일간신문과 그 계열사는 지분투자와 주식소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 3월 방송법 개정 때 지상파DMB가 ‘지상파 방송’으로 규정되면서 정간법상의 일간신문과 뉴스통신법상의 뉴스통신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됐다.

    위성DMB의 경우 법적으로 신문도 33%까지 지분참여가 가능하지만, 주요 주주가 된 기업은 5%(64억원)씩의 지분을 투자한 MBC와 SBS뿐이다. TU미디어는 방송시장 진출을 앞두고 우호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MBC와 SBS의 사업참여를 원했고, MBC와 SBS는 신규 방송 플랫폼의 지분확보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TU미디어와 손을 잡은 것이다. 언론사 중에선 YTN(5억원), 한국경제TV(와우TV 5억원), 매일경제TV(MBN 1억원) 등이 참여했는데, 향후 어떤 신문사가 직접 지분을 투자하더라도 SK텔레콤 주도의 사업에 구색을 맞추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비가 수백억원에 불과해 방송사업 경험이 없는 중견 벤처기업들도 뛰어든 지상파DMB사업의 경우 신문사의 참여만 불가능하다. 반면 인터넷신문사는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인터넷언론사’라는 개념이 추가되는 등 사실상 인터넷언론이 ‘언론’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지상파DMB사업에선 정간법상의 언론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업에 참여하도록 빗장을 풀었다. 인터넷언론의 대명사인 ‘오마이뉴스’가 최근 지상파DMB사업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신문은 채널사업이 아니라 지상파DMB의 사업권을 직접 신청해도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최근 신문시장의 침체 상황에서 몇몇 신문사는 방송시장 진출의 유일한 돌파구로서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중앙일보의 중앙방송(Q채널과 히스토리채널), 매일경제의 MBN, 한국경제의 와우TV가 신문사에서 출발한 대표적 TV방송 채널인데, 아직까지 시청률 성적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형편이다. 또 조선일보 등이 PP 인수나 PP 설립을 통한 시장 진출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세계일보도 최근 모 PP의 인수를 추진했다가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방송 겸업 허용돼야

    신문사의 PP시장 진출은 방송사의 PP시장 진출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경우 PP 자회사를 통해 자사 콘텐츠를 재활용함으로써 2차, 3차의 부가가치 창출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반면 신문사가 텍스트 위주의 뉴스콘텐츠를 PP사업에 활용하는 방식은 한계에 이르렀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미디어리서치가 지난 9월27일∼10월3일 조사한 케이블TV 시청 점유율 순위를 보면, 보도채널인 YTN만이 유일하게 10위 안에 포함돼 있을 뿐이다. 반면 MBC드라마넷(2위), SBS드라마플러스(4위), KBS드라마(6위), MBC ESPN(8위), SBS스포츠(10위), MBC무비스(14위), KBS스포츠(17위) 등 지상파 3사 계열 PP가 수위를 점령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사가 경쟁력 있는 영상 제작물을 생산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 및 겸영 금지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여권은 일부 신문사의 소유구조와 시장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언론개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결론적으로 신문과 방송의 겸업은 허용돼야 한다. 이에 대한 금지는 미디어 융합의 환경에서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대방송과 정치권력이 결탁하면?

    무엇보다 방송이 신문사를 소유하거나 겸영할 이유가 없어졌다. 통·방융합의 시대적 대세 속에서 방송사는 방송콘텐츠를 재활용하는 것만으로도 영향력 확대와 이윤 극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정간법과 방송법상 신문과 방송의 상호겸영 금지는 오로지 신문의 방송 진출, 신문의 뉴미디어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나타내면서 신문의 고립을 가속화할 뿐이다. 이러는 사이 시장지배적인 소수 방송사만이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인터넷방송, 새로운 방송서비스 영역(DMB 등)으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이들을 제어할 방법도 없다.

    또한 통·방융합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에서는 매체의 형태가 종이인지, 전파인지, 인터넷 통신망인지, 휴대전화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글이 됐든, 영상이 됐든 간에 모든 콘텐츠는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어 통일된 프로토콜을 통해 다양한 그릇(미디어)에 담겨 동시 다발적으로 유통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통·방융합의 뉴미디어가 지향하는 바다.

    따라서 이런 융합의 환경에서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금지함으로써, 사실상 신문의 뉴미디어 시장 진출만을 금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적이다. 아울러 이는 극소수 거대방송이 여론을 독점하는 폐해를 낳을 뿐 아니라 이런 독점언론과 특정 정치권력이 결탁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위험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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