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리버드 운임제, 존별 선착순 탑승, 기내 콘서트…
- 성수기 요금 매력 없어 소비자 불만
- 일본, 태국 등 동북아 시장 진출 초읽기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명품 전략으로 차별화
- 조종사, LCC청사 등 인프라 확충 시급
진에어 승무원과 조종사는 청바지를 입고 근무한다.
우리나라에서 저가항공 시대가 열린 건 2005년 8월 한성항공이 청주~제주 노선에 취항하면서부터다. 이듬해 6월 제주항공에 이어 2008년 진에어 영남에어 에어부산이 첫 취항했다. 그 무렵 중부항공 인천타이거항공 코스타항공 퍼플젯 등 여러 저가항공사가 우후죽순 출범했지만 유가 폭등과 환율 파동의 이중고로 줄줄이 도산했다. 영남에어도 경영난으로 2008년 말 부도 처리됐고, 한성항공도 그해 10월 운항을 중단했다.
불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항공사는 든든한 모기업을 둔 제주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뿐이었다. 제주항공은 애경산업과 제주도가,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과 부산시 등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으며 진에어는 대한항공이 100% 출자해 만든 자회사다.
한동안 궁지에 몰렸던 저가항공 시장은 지난해부터 다시 살아났다.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의 3강을 후발주자인 이스타항공과 티웨이항공이 바싹 추격하는 모양새다. 아시아나항공 퇴직자가 주축이 돼 설립한 이스타항공은 2009년 1월 김포~제주 노선에 첫 취항했다. 한성항공의 후신인 티웨이항공은 지난해 9월 다시 비행기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이들 5개사는 기존 대형항공사보다 20~30% 저렴한 운임을 무기로 국내선 이용객을 공략해 저가항공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저가항공사의 국내선 점유율은 40%를 돌파했다. 2008년에는 9.7%에 그쳤으나 2009년 27.4%, 2010년 34.7%, 2011년 7월까지 40.7%를 기록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황금 노선으로 꼽히는 김포~제주 간 여객 수송 분담률은 50%를 넘어섰다. 이제 두 명 중 한 명은 제주도를 오갈 때 저가항공을 이용한다는 얘기다.
기종 단일화로 원가 절감
국내 최초로 1만원대 얼리버드 요금제를 도입한 이스타항공.
선발주자인 제주항공부터 살펴보자. 제주항공은 초창기 Q400이라는 프로펠러기로 운항을 시작했다. Q400은 캐나다 봄바디어사에서 들여온 78석 규모의 소형여객기로 소음이 심하고 승차감이 좋지 않은 것이 단점이었다. 2006년과 2007년에는 한 번씩 사고도 있었다. 이 때문에 제주항공은 2008년부터 미국 보잉사의 B737-800(189석 규모)으로 기종을 바꿔나갔다.
B737-800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B737 시리즈의 최신형이다. B737 시리즈는 100~500 버전을 클래식 기종, 600~900ER 버전을 차세대 기종으로 구분한다. 차세대 기종은 조종석의 각종 장비와 계기판이 모두 디지털 방식이어서 정교하고 안전하며 연료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항공은 현재 B737-800만 8대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6월 Q400 4대를 전량 매각해 기종 단일화를 실현했다. 기종마다 예비부품이 다르고, 승무원과 정비사에게 교육하는 내용도 달라 중복 투자가 불가피해서다. 기종 단일화는 원가 절감을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국내 노선은 제주를 기점으로 서울, 부산, 청주까지 오가는 3개 노선이 있다. 2009년 3월 인천~오사카 노선을 시작으로 국제선에도 진출했다. 현재 일본 홍콩 태국 필리핀 등 4개국에 11개 노선을 운항 중이다. 송경훈 제주항공 홍보팀 과장은 “국내선 운항이 불가능한 심야시간대를 활용한 동남아 지역 노선 확대는 항공기 가동률을 높일 뿐 아니라 운항시간에 관계없이 들어가는 항공기 리스비, 승무원과 정비사 훈련비, 보험료 같은 고정비를 분산시켜 원가 절감에 한몫하고 있다”며 “원가 절감은 저가운임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승무원들이 직접 펼치는 매직쇼와 어린이 승객을 위한 풍선아트 서비스 등은 제주항공 기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벤트다. 국제선 승무원은 슈퍼맨이나 백설공주 의상을 입고 음료와 기내식을 제공한다. 항공권을 조기에 구매하는 고객에게는 얼리버드 운임제도에 따라 특별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제주항공뿐 아니라 모든 저가항공사가 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저가항공사들의 운임 정책중 핵심인 이 제도는 파격적 운임 할인을 통해 예약이 시작되는 초기부터 좌석의 사전 판매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이는 곧 항공 수요가 현저히 줄어드는 비선호 시간대의 할인율을 크게 올려 선호 시간대에 집중된 승객을 분산시킴으로써 탑승률을 높여 수익을 늘리고 좌석난을 해소하려는 전략이다. 이에 힘입어 제주항공은 올여름 국내 저가항공사 최초로 국제선 누적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1만원대 초특가 항공권 ‘열풍’
한 승무원이 승객을 모델로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진에어는 김포와 제주를 오가는 국내노선 1개와 중국 태국 괌 마카오 등 6개국에 들어가는 국제노선 6개를 운항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존(Zone)별 선착순 탑승제와 가족운임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가족운임제도는 직계가족 3인이 국내 노선을 이용하면서 같은 항공기 탑승을 예매할 경우 정상 운임의 10%를 할인해주는 제도로 상시 적용된다.
존별 선착순 탑승제는 승객이 공항 내 발권 카운터에서 존을 선택해 탑승 순서에 따라 해당 존에서 원하는 좌석을 고를 수 있게 한 것이다. 진에어 관계자는 “승객이 원하는 자리에 앉기 위해 일찍부터 줄을 서고 대기함으로써 지연·결항률이 낮아지고 공항 내 카운터수가 적더라도 원활한 업무가 가능해 공항에 내는 카운터 임대료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승무원과 조종사는 청바지를 입고 근무한다. 승객에게 친근함을 주기 위해서다. 진에어라는 이름도 예서 나왔다.
제주항공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음료를 서빙하고 있다.
다른 항공사와 차별화한 요금 제도로는 기업우대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기업우대프로그램은 출장이 잦은 기업이나 기관의 임직원에게 특별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용실적에 따라 할인율을 차등 적용한다. 지금까지 1만개 기업이 가입했다. 에어부산이 취항하는 모든 지역 내 다양한 업체에 탑승권을 제시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플라이 앤드 펀’ 프로그램도 이색적이다. 김해공항에서 김포나 제주로 가는 승객 중 유아를 동반한 승객에게는 유모차 무상 대여서비스를 제공한다.
올해로 취항 3년째인 이스타항공은 최근 누적 탑승객 400만명을 돌파했다. 2년 연속 고객만족도와 국내선 탑승률, 수송 실적 부문에서도 업계 1위를 기록하며 국민항공사로 비상하고 있다. 국내 항공사 최초로 1만원대 얼리버드 요금제를 도입한 것이 주효했다. 이 요금제를 적용하면 김포~제주 편도항공권을 1만9900원에 살 수 있다.
이스타항공이 보유한 기종은 B737-600 1대와 B737-700 5대다. 이들 여객기는 김포~제주, 청주~제주, 군산~제주의 3개 국내노선과 인천을 기점으로 일본 나리타(도쿄), 치토세(삿포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까지 오가는 3개의 국제노선을 비행한다. 7월1일 첫 취항한 인천~나리타(도쿄) 노선은 이전까지 대형 항공사만 운항하던 황금노선이었다. 이스타항공은 도쿄 왕복항공권을 선착순 400명에게 19만9000원에 판매해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초특가 외에 항공기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로 독특하게 꾸민 기내 디자인도 이스타항공만의 자랑거리다.
김포~제주 노선을 운항 중인 티웨이항공은 8월25일 누적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9월 첫 취항 이후 저가항공사 중 최단 기간인 11개월 만에 이 같은 기록을 세운 것이다. 올 상반기 운항정시율도 80.2%로 저가항공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운항정시율은 항공기가 정비 결함에 따른 지연이나 결항 없이 운항 시간표상에 나타난 출발 시각으로부터 15분 이내에 출발한 횟수를 전체 운항 횟수로 나누어 산출한 백분율로, 기상이나 공항 등 외부요인이 배제된 각 항공사의 항공기 운항능력을 검증하는 대표적인 국제지표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지난해 말 실시한 1만원 항공권 이벤트와 초특가 얼리버드 요금제도가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며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 항공사는 주중 편도항공권을 1만5000원, 주말 편도항공권을 2만원에 살 수 있는 얼리버드 요금제를 실시하고 있다. 올 상반기 유류할증료와 공항이용료를 제외한 평균 항공료는 4만5000~5만원 선이었다. 티웨이항공은 B737-800 항공기 4대로 김포~제주 노선만 하루 36회 운항하고 있다. 오는 10월 태국 노선에 이어 연말에는 일본 노선에 취항할 계획이다.
국내외 저가항공 경쟁 본격화
정부가 2009년 국제선 항공사 자격 요건을 완화하면서 저가항공사들은 앞 다퉈 국제노선에 취항했다. 이제 티웨이항공까지 국제노선을 운항하면 각사 간 노선 쟁탈전이 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국내선만으론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탓이다. 국제선은 한·중·일 하늘길이 열린 데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돼 탑승객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항공진흥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저가항공사가 진출할 수 있는 6시간 내 운항거리 지역인 중국과 동남아 여행객의 증가율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선에서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 상반기 저가항공사의 국내선 점유율은 절반에 육박했지만 국제선 점유율은 3%에 그쳤다. 지난해보다 3배가량 여행객이 늘어난 동남아 지역 수송 분담률도 고작 5.4% 수준이다. 5개사의 여객기를 다 합쳐도 31대에 불과하다. 외국계 저가항공사와 싸우기엔 우선 규모 면에서 한참 밀린다.
아시아 최대 저가항공사인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는 보유항공기가 110대에 연간 실어 나르는 승객이 2600만명에 달한다. 에어아시아는 지난해 11월 인천-콸라룸푸르 노선에 취항했다. 운임은 기존 항공사의 반값이다. 일본, 싱가포르, 태국의 항공사도 잇따라 저가항공 설립과 한국 노선 취항 의지를 나타내 국내 저가항공사들을 위협하고 있다.
전일본공수항공(ANA)은 7월 에어아시아와 손잡고 에어아시아재팬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에어아시아재팬은 ANA가 51%, 에어아시아가 49%를 투자한 저가항공사로 내년 8월부터 국제선 운항을 시작할 계획이다. 도쿄 나리타공항을 근거지로 한국 노선도 개설할 방침이다. ANA는 이와 별도로 홍콩의 한 투자그룹과 손잡고 ‘피치’라는 저가항공사를 설립했다. 피치는 연말부터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다. 법정관리 중인 일본항공(JAL)도 호주 콴타스항공 자회사인 제트스타와 손잡고 저가항공사 설립에 나섰다. 싱가포르항공과 타이항공도 각기 자회사 형태로 저가항공사를 설립해 내년부터 한국~중국 노선에 취항할 계획이다.
티웨이항공 관계자는 “동북아 하늘 길을 장악하려는 저가항공 경쟁이 본격화하면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지만 기존 항공사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진에어 관계자도 “일본, 중국, 동남아 노선은 1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국내선 경쟁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가격과 서비스 면에서 외국계 항공사와 대등한 싸움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노선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항공료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국제노선에서 살아남으려면 항공료를 일반 항공사의 50%선으로 낮춰야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선 운임도 지금보다 더 싸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여름 휴가철 대목을 맞은 일부 저가항공사는 김포~제주 노선의 항공료를 대형항공사의 요금보다 1만2000원 적게 책정해 무늬만 ‘저가’라는 원성을 샀다. 부산~제주 노선의 경우 1700원 차에 불과했다. 저가항공사들이 대형항공사보다 20~30% 싸다고 광고하는 저렴한 항공권은 주로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운항하는 것이었다.
“국내 여건상 파격 할인 힘들다”
저가항공사는 여행객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에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평소 할인율인 20~30%도 유럽 저가항공사의 50~70%에 비하면 무색하다.
유럽 저가항공사들은 서비스를 철저히 유료화하는 대신 기본 운임을 최대한 낮춘다. 잉글랜드의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가 대표적이다. 라이언에어 항공기에는 비행기 좌석번호가 없다. 탑승하는 순서대로 앉게 한다. 창가나 복도에 앉고 싶으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수화물도 돈을 내야 짐칸에 실을 수 있고, 기내에 반입하는 가방 사이즈도 규정을 초과하면 돈을 더 받는다. 신문, 잡지는 물론 기내식, 음료도 유료다. 이 항공사는 실속파 고객에게 큰 호응을 얻어 지난해 항공운항실적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저가항공사 이지젯은 탑승시간을 줄이려고 티켓 발매를 하지 않는다. 신분증이나 예약번호를 확인하는 전산 시스템을 이용해 항공권의 발권 관리, 배달, 확인 등에 드는 막대한 경비를 절감했다. 불필요한 서비스도 없앴다. 1~3시간 정도의 단거리 노선에서는 기내식을 원하는 승객에게만 유료로 제공한다. 철저한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항공권 가격이 결정되며 모든 좌석의 90% 이상이 인터넷 예매로 판매된다. 67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이지젯의 탑승률은 84%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저가항공사들도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하고 추가 서비스를 유료화하면 운임을 더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저가항공사들은 국내 여건상 유럽과 같은 파격 할인이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음료 제공을 비롯한 각종 부대 서비스를 유료화할 경우 우리나라 정서상 승객의 반감을 살 소지가 높고, 무엇보다 공항 이용에 따른 운항원가 부담이 크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진에어 관계자도 “유럽은 주요 도시 거점공항이 아닌 외곽공항을 이용해 항공운임을 낮춘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저가항공사가 이용할 만한 외곽공항이 없어 거점공항을 이용하며 대형항공사와 동일한 공항세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언에어는 더블린-파리 노선을 운항할 때 파리에서 30㎞ 떨어진 샤를드골 공항 대신 직선거리로 70㎞ 떨어진 외곽의 부배 공항을 이용한다. 런던 노선을 운항할 때도 런던 도심에서 20㎞ 떨어진 히드로 공항이 아니라 그 두 배가 넘는 거리에 있는 관문인 스탠스테드 공항을 쓴다.
이스타항공은 항공기마다 다른 독특한 기내 디자인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유럽 저가항공사처럼 운항노선과 항공기 수가 많지 않은 것도 항공료를 낮출 수 없는 요인이다. 운항노선과 항공기가 많으면 예비부품 유지비, 정비비 등 고정비를 분산시켜 원가 절감을 꾀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적어도 30대의 항공기를 보유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조금만 도와주면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키워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저가항공사의 국내선 점유율이 40%를 넘어선 만큼 LCC 전용터미널 건립과 대형항공사와 상생할 수 있는 공정한 노선분배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은 저가항공의 수요가 커짐에 따라 나리타공항에 LCC 전용터미널을 설립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한동안 김포공항 이마트 부지에 LCC 전용 터미널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터미널을 신축하면 시설을 간소화해도 저렴한 사용료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백지화한 상태다. 한 관계자는 “저가항공사의 공항 사용료를 낮추는 것도 쉽지 않다”며 “다른 항공사들과의 형평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연·결항률은 항공사의 얼굴
내년 본격화할 동북아 저가항공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저가항공사 스스로도 대외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꾸준한 정비와 빈틈없는 안전관리는 필수다. 항공기 결함으로 인한 지연이나 결항은 항공사의 이미지와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8월17일 인천에서 오사카로 가려던 제주항공 항공기의 엔진이 정비 도중 이상 징후를 보여 교체작업에 들어갔다. 제주항공은 국내선을 운항하는 항공기를 인천공항으로 불러들여 문제가 된 항공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태워 오사카로 보냈다. 그 바람에 출발시간이 당초보다 2시간가량 지연됐다. 또한 엔진 교체작업이 끝나기까지 다른 국내선 항공기가 국제선을 소화하면서 국내선 항공편이 3일간 결항됐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비행기가 뜨기 전 예방정비 과정에서 엔진 이상이 발견됐고,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교체를 결정했다. 다른 항공기의 남은 좌석까지 총동원해 승객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고 해명했다.
사실 운항 지연이나 결항은 비단 제주항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토해양부가 최근 발표한 분석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국내 항공사의 지연·결항률은 평균 0.27%였다. 이 자료에서 제주항공은 대한항공과 함께 가장 낮은 0.15%의 지연·결항률을 기록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저마다 전문적인 정비인력을 갖추고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안전기준과 항공법 제116조에서 명시한 운항 및 정비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문제는 철저한 정비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대형항공사의 경우 엔진을 정비하고 교체하는 동안 대체기를 투입해 본래 스케줄을 최대한 소화할 수 있지만 저가항공사는 적은 수의 항공기를 모두 쉴 새 없이 가동하기 때문에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지연이나 결항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체기를 투입할 만한 여력이 없는 저가항공사는 예비부품의 원활한 공급을 통해 지연·결항률을 낮출 수 있다. 대형항공사는 예비 엔진을 자체보유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B737-800 기종에 해당하는 예비 엔진만 7개를 가지고 있다. 언제라도 즉시 엔진 수급과 정비가 가능하다. 진에어는 모회사인 대한항공과 외주계약을 맺고 모든 정비를 맡긴다. 이 덕분에 대한항공의 안전수준과 동일하게 세계 수준의 정비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저가항공사가 이런 수준의 정비 인프라를 구축해놓은 건 아니다. 엔진을 바꿀 때도 해외 현지에서 부품을 들여와 교체작업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든다. 그로 인한 불편함은 고스란히 승객의 몫으로 남는다.
한 항공사 임원 A씨는 “결항이나 지연은 고객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정비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안전 유지는 저비용항공 업계 전체의 신뢰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종사 인력 확충도 저가항공사들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국내 저가항공사가 늘어나면서 조종사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아졌는데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최근 국토해양부가 조사한 조종사 충원 현황에 따르면 군 출신 34%, 외국인 26%, 자체적으로 육성한 인력 13%, 퇴직자 등 기타가 27%로 나타났다.
A씨는 “현재 노는 젊은이가 많은데 항공업계에서는 조종사가 턱없이 부족해 서로 조종사를 빼오거나 외국에서 데려오는 일이 허다하다”며 “꾸준히 증가하는 항공 수요에 맞춰 우수한 조종사 인력을 육성하려면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해소 차원에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저가항공사들이 국제선에 본격 진출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새로운 전략을 내놓았다. 이른바 명품화 전략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저가항공과 차별화하기 위해 객실 인테리어와 기내식 등을 일류호텔 수준으로 개선하고 품격 있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글로벌 1등 항공사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