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적 입장에서 ‘대안적 사실’ 창작”
“평생 몸담았던 방송사 위상 추락”
“韓 공영방송, 영원히 친정부 편향이냐?”
MBC 이어 KBS가 만든 놀라운 ‘가짜 뉴스’
“尹 관련 가능성” 유시민의 엉뚱한 주장
이전투구 휘말릴까 논의 회피한 전문가들
진중권이 언론학자 수십 명 몫 했다
2021년 7월 26일 박성제 MBC 사장이 서울 마포구 MB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MBC]
“돌아보건대 조국 국면에서 JTBC는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게 ‘사실’을 보도했다. 그런데 결과는 신뢰도의 급락으로 나타났다. 반면 MBC는 노골적으로 당파적 입장에 서서 피의자에 유리한 ‘대안적 사실(허구)’을 창작했다. 특히 ‘PD수첩’은 그 목적을 위해 야바위에 가까운 날조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도 MBC의 신뢰도는 이 시기에 급격히 상승했다. 이처럼 한국의 대중은 사실보다 허구를, 대안적 사실을 더 신뢰한다.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다. 과거에 ‘나꼼수’도 신뢰도 최고를 자랑했었으니까.”
“딱 보니 100만 명” 박성제, MBC 사장 되다
2월 22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이사회를 열고 “조국 지지 집회 딱 보니 100만 명”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된 보도국장 박성제를 MBC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했다. 그 역시 최승호처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2012년 6월 MBC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가 2017년 12월에 복직한 방송민주화 투사였다.2월 24일 사장에 취임한 박성제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MBC 보도 편향성 문제가 있다. 야당이나 보수 신문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지난해 조국 사태에서 ‘친조국’ 편향이었다는 지적이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답을 내놓았다.
“보수 야당이나 언론을 중심으로 MBC 뉴스가 한쪽만 대변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데 난 생각이 다르다. 이를테면 우리는 조국 국면에서 검찰 주장은 재판에서 깨질 수 있기 때문에 일방적 검찰 받아쓰기는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국민들에게 선입견을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 재판 과정에서 검찰 주장 일부가 논박당한 것으로 안다. 그런 보도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신뢰도가 상승한 것이다.”
이 답은 앞으로 심화될 MBC의 비극을 예고한 것처럼 보였다. 그가 말한 ‘신뢰도’는 ‘특정 정치 팬덤의 신뢰도’였을 뿐이니 말이다. 이는 진중권이 앞서 거론한 한국일보 칼럼에서도 지적했던 것인데,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하자. 그는 “여기서 말하는 ‘신뢰도’란 보도의 객관성, 공정성 따위와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고 봐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그 매체의 보도가 설사 허위·왜곡·날조임이 밝혀진다 해도 그놈의 신뢰도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신뢰도라기보다는 차라리 호감도에 가깝다. 뉴스의 비판적 수용자는 사라졌다. 오늘날 대중은 자신을 콘텐츠의 소비자로 이해한다. 그들이 매체에 요구하는 것은 사실의 전달이 아니라 니즈의 충족. 그 니즈란 물론 듣기 싫은 ‘사실’이 아니라 듣고 싶은 ‘허구’다. 그 수요에 맞추어 매체들은 대중에게 듣기 좋은 허구, 흥미로운 대안적 사실을 창작해 공급하게 된다. 이번 조사에서 신뢰도가 오른 매체들은 대체로 다 그랬다.”
‘검언유착 의혹’ 단독 보도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동아DB]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은 2011년부터 4년간 금융 당국의 허가 없이 투자자 3만 명에게 7039억 원을 불법 모금한 혐의로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2016년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에서 같은 수법의 범죄를 또 저질러 1심까지 2년 6개월이 추가된 상태였다. MBC 보도에 따르면 이동재는 이철에게 “검찰이 신라젠 미공개 정보 이용 의혹에 대해 수사를 제기했다”며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이후 이철은 지인 A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이동재를 만나게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동재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과 통화했으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수사에 협조하면 이철에 대한 수사를 막거나 수사팀에 이철의 입장을 전해 주겠다고 회유했다. 이에 대해 채널A는 저녁 뉴스 클로징 멘트에서 “사회부 이모 기자가 이 전 대표로부터 검찰의 선처 약속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아온 사실을 파악하고 즉각 취재를 중단시켰다”며 “이 기자가 취재원의 선처 약속 보장 등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인 적은 없지만 취재 방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채널A는 다만 “MBC가 신라젠 사건 정관계 연루 의혹과 무관한 취재에 집착한 의도와 배경이 의심스럽다”며 MBC의 보도에 강경 대응하겠다고 했다. 채널A는 MBC가 검찰에 선처 약속을 요구한 취재원과 채널A 기자가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하고 기자와 나눈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을 보도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MBC 보도 이후, 여권과 정부 인사들이 일제히 ‘검찰 때리기’에 나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KBS 라디오에 나와 “(MBC 보도가)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감찰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사실 여부에 대한 보고를 먼저 받아본 뒤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 감찰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MBC 보도에 힘을 실어줬으며, 이후 사실상 MBC 보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진중권은 페이스북에 “MBC 뉴스도 세팅된 것 같다”며 “프레임을 걸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그는 “언론은 보수적 논조를 취할 수도 있고, 진보적 논조를 취할 수도 있지만 언론은 언론이어야 한다”며 “얼마 전부터 MBC는 아예 사회적 흉기가 되어버린 느낌”이라고 썼다. 그는 “툭하면 권력과 한 팀이 되어 조직적으로 프레이밍(틀짜기) 작업을 하는 게 심히 눈에 거슬린다”며 “굳이 그 짓을 해야겠다면 제발 눈에 안 띄게 기술적으로 했으면 한다. 속이 너무 뻔히 들여다보여서 눈뜨고 봐주기 괴롭다”고 했다.
4월 3일 유시민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간 익명으로 거론되던 한동훈 검사장 실명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또 이날 이철의 대리인 노릇을 했던 A는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검찰’을 격하게 비난해 온 문 정권 골수 지지자 지모(55)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나중에 밝혀진 이름 그대로 쓰자면, 지현진이었다.
횡령, 사기 등으로 복역했던 지현진은 한때 검찰 수사에 협조한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의 내밀한 부분을 아는 금융전문가 행세를 하며 친여 매체에 출연해 현 정권을 적극 옹호했다. 스스로를 ‘제보자 X’로 칭해 온 그는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에 윤석열을 비롯한 검찰 관련 제보를 하고 김어준의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조국의 아내 정경심을 옹호하기도 했다.
“MBC가 사기꾼 대변인이냐, 사과하라!”
지현진은 2월부터 수차례 채널A 기자와 접촉해 모든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을 MBC와 열린민주당 측에 제공했는데, 조국 자녀의 허위 인턴 증명서 발급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는 4월 3일 페이스북에 ‘편지와 녹취록상 채널A 기자 발언 요지’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올렸다.“이철 대표님, 사실이 아니라도 좋다. 당신이 살려면 유시민에게 돈을 주었다고 해라.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다음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우리 방송(채널A)에 특종으로 띄우면 모든 신문과 방송이 따라서 쓰고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다.” 미리 말하자면, 이 말은 허위로 밝혀졌다.
4월 3일 진중권은 MBC 보도를 “사기꾼과 MBC의 컬래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철은 무려 7000억짜리 사기 범죄로 징역 14년을 선고받은 사람”이라며 “한마디로 사람을 속이는 것을 직업으로 가진 사기꾼”이라고 했다. 그는 “이 사기꾼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제보를 했는지, 채널A 기자를 통해 검찰과 무슨 딜을 하려고 했고 무슨 제의를 하려고 했으며 어떤 이유로 제의가 거절당했는지 확인한 다음 보도를 했어야 한다”고 했다.
MBC 보도 일주일 만인 4월 6일 시민단체인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동재 채널A 기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날 밸류인베스트코리아피해자연합 회원 5명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MBC가 사기꾼의 대변인이냐. 사과하라!”며 MBC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MBC가 4월 2일 이철의 서면 인터뷰 기사를 보도하면서 “저희 밸류(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는 결단코 사기 집단이 아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노력한 밸류에 상은 못 주어도 모욕을 주면 안 된다”는 이철의 일방적 주장을 내보낸 것에 대한 항의였다. 이들은 노사모 출신이자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창당 멤버인 이철의 배후에 정·관계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4월 14일 MBC 뉴스데이터팀 국장 이보경은 페이스북을 통해 최강욱이 4월 3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편지와 녹취록상 채널A 기자 발언 요지’에 대해 “있을 수 없는 거짓, 엽기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4월 9일 공개된) 채널 A의 56쪽 녹취록을 다 읽었지만, ‘(채널A 기자가) 사실 아니어도 좋다’ 운운했다는 대목은 없다”면서 “걍 오래된 최구라(거짓)의 향기가…”라고 썼다.
이보경은 언론 인터뷰에서 “기자의 입장에서 ‘사실이 아니어도 좋다’는 말은 떠올릴 수도 없는, 엽기적인 말”이라면서 “MBC 소속이냐 아니냐를 떠나 기자 집단의 한 일원으로서 최 후보가 거짓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이것이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용납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MBC 보도에 대해 “도대체 왜 제보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둘러야 했는지 의문스러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라면서 “조국 관련 MBC 보도를 보면서 내가 평생을 몸담았던 방송사의 위상이 추락하는 것이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2년 10월 4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MBC는 빼고 채널A만 압수수색하다니
4·15 총선에서 민주당이 177석을 얻는 압승을 거둔 이후 MBC가 여권의 ‘작전’ 또는 ‘공작’에 동참했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총선 2주 전인 4월 1일 MBC는 또 ‘단독’ 타이틀을 걸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바이오 기업 신라젠에 65억 원을 투자했다는 의혹을 톱뉴스로 방송했다. 이 기사는 이동재가 이철로부터 최경환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제보를 받았지만, 유시민의 부정 의혹에만 관심을 보였다면서 ‘검언유착’ 의혹을 강화하는 성격의 보도였다. 최경환 측은 즉각 보도 내용이 사실무근이라며 MBC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기사를 인터넷에서 삭제하고 관련 후속 보도도 막아달라며 방송금지가처분 신청도 법원에 함께 제기했다.그런데 방송 당시 “저희는 이번 의혹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취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던 MBC는 4월 20일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 신청 관련 답변서를 내고 “이 사건과 관련한 후속 보도를 구체적으로 예정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의혹을 제기한 MBC가 관련 취재를 통해 ‘65억 원 차명 투자’ 실체를 밝혀내는 게 상식적이건만 MBC는 총선이 끝나자 “후속 보도 계획은 없다”며 입증 책임을 포기한 것이다. 그사이 MBC 보도를 토대로 ‘윤석열 때리기’에 나섰던 이들 중 상당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계속 벌어졌다. 4월 28일 ‘채널A 기자·검사장 간 통화 논란’을 수사 중인 검찰이 MBC와 채널A에 대해 동시에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MBC는 기각하고 채널A만 발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날 영장이 발부된 서울 중구 채널A 본사, 이동재 자택 등 5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균형 있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한쪽만 영장이 발부된 것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가 애당초 부실한 영장을 청구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MBC 관련 영장에는 ‘신라젠 65억 원 투자 의혹’의 당사자로 보도한 최경환의 고소 내용, 채널A 기자가 이철 측 제보자 지현진을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촬영한 내용은 빠져 있었으며, 대신 MBC는 채널A 기자의 강요 미수 혐의 참고인으로만 적시됐다는 것이다. 4월 29일 윤석열이 서울중앙지검에 대해 “제반 이슈에 대해 빠짐없이 균형 있게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법조계에선 “윤 총장과 (친여적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간의 2차 충돌”이라는 말이 나왔다.
6월 10일 열린 ‘80년 제작거부 언론투쟁 40년 세미나’에서 진보 논객이기도 한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현 언론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KBS와 MBC는 해직기자나 언론노조 출신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사장을 맡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공정 언론을 위해 싸웠던 방송인들이 다시 사장으로 취임했다”며 “한국의 공영방송은 영원히 친정부 편향일 수밖에 없는거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정파적 저널리즘이 한겨레·경향신문과 KBS, MBC 공영방송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시청률과 청취율, 구독률을 무기로 응집력 높은 그들의 저널리즘 이해나 정파적 언행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KBS·MBC’처럼 역사적 반동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검언유착’이 아니라 ‘권언유착’이다”
2022년 1월 27일 한동훈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에서 열린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이사장은 2019년 12월 유튜브 ‘알릴레오’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추측되는데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 뒤 이듬해 4월과 7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동훈 검사가 있던 (대검) 반부패강력부 쪽에서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뉴스1]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는 정치권과 거대 언론사와 함께 작정하고 치밀하게 나왔다. 내 입장에서는 잘해 보려고 한 거다. 억울한 사람들(VIK 피해자 3만 명)의 원한을 풀어주려고 했는데. 4월 예정돼 있던 일본 연수 출국 전에 빨리 성과를 내고 가려 하다가 이렇게 됐다. 한 검사장에게도 많이 미안하다.”
이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MBC가 보도한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윤석열에게 대검의 수사자문단 소집을 중단하고 수사 결과만 보고받으라고 지시했다.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검찰총장을 압박해 쫓아내려는 속내가 뻔히 보인다”고 주장했다.
7월 5일 진중권은 “수사지휘권 발동 사태로까지 이어진 이 사건의 발단은 사기꾼 지현진이 최강욱-황희석(열린민주당 최고위원)과 꾸민 ‘작전’이었다”며 “이들의 음모론을 현실로 둔갑시키는 데에는 MBC가 동원됐다”고 했다. 그는 또 “추미애 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사기꾼과 협업을 하니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정권 차원의 도덕적 스캔들”이라고 주장했다. 진중권은 또 “이 사건의 본질은 ‘검언유착’보다는 차라리 ‘권언유착’에 가깝다”며 “저쪽에 물리량에서 밀리다 보니, 프레임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7월 17일 김동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동재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영장 기각·발부 사유는 통상 20~30자 정도임에도 김동현은 이례적으로 229자 발부 사유를 냈다. 특히 김동현이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사유를 든 것에 대해 법원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언론과 검찰의 신뢰 회복은 영장 발부 사유와 아무 관련이 없다”며 “중립성이 생명인 판사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영장판사가 이 사건은 검언유착 사건이라고 전제하고 판단을 한 것 같다”며 “법원 전체에 흙탕물을 뿌리는 행동이다. 부끄럽고 황당한 사유”라고 했다. 일부 평판사는 “여당 대변인 논평 같아 놀랐다”고 했다.
‘어용 방송’에서 MBC를 능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7월 18일 밤 KBS는 메인 9시뉴스에서 한동훈과 이동재가 “4월 총선을 앞두고 만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놀라운 뉴스였지만, ‘가짜 뉴스’였다. 이 ‘가짜 뉴스’의 수명은 단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이동재의 변호인이 관련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 반박하자 KBS는 19일 밤 9시뉴스에서 사과했으니 말이다.
진중권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 음습한 공작(KBS 보도)의 배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이번엔 (KBS와) 서울중앙지검과의 연결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일각에선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정치권으로 넘어간 게 KBS로 흘러들어간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며 “어느 쪽이든 결국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에서 흘린 것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X의 정권은 허위, 날조, 왜곡, 공작 없이는 유지가 안 되나 보다”고 했다.(KBS ‘가짜 뉴스’에 얽힌 진실은 2년 3개월 후에 밝혀진다. 2022년 10월 27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에 따르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였던 신성식이 KBS 기자에게 거짓 정보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MBC와 KBS의 무서운 인간들”
MBC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보도가 가진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한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 [지호영 기자]
그러나 이동재의 대리인인 주진우 변호사는 입장문을 내고 “MBC 보도 내용은 녹취록 전체 취지를 왜곡한 편향된 보도로서 내일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겠다”며 “녹취록 공개 후 MBC 측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주진우는 “누가 봐도 취재를 잘해 보라는 덕담이지 협박해서라도 특정 정치인에 대한 제보를 강요하라고 한 것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느냐”며 “내일 전문 공개가 되면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7월 21일 이동재와 한동훈의 대화 녹취록 전문이 공개된 가운데, 진중권은 해당 녹취록 내용을 두고 “누군가 ‘악마의 편집’으로 공중파 통해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KBS도 그렇고 MBC도 녹취록 내용을 왜곡해 보도했다. MBC의 경우엔 KBS에서 이미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를 한 시점에서 그 짓을 했다”며 “혼자서라도 이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건데, 역시 MBC”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적 이유에서 사안을 무리하게 ‘검언유착’으로 몰고 가다가 역으로 ‘권언유착’의 꼬리를 밟힌 셈인데, KBS와 MBC는 취재원이 누구였는지 밝혀야 한다”며 “이 사람들, 무서운 인간들”이라고 덧붙였다.
7월 24일 오전 유시민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검언유착 사건은 검찰이 언론에 외주를 준 사건” “윤 총장도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많다” 등의 엉뚱한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진중권은 “녹취록 공개로 KBS, MBC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자신이 직접 나선 모양”이라며 “한마디로 오늘 열릴 수사심의위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시간 맞춰 여론조작을 하겠다는 거다. 역시 MBC고, 이번엔 김종배가 자락을 깔아줬다. 종배 씨, 그렇게 살지 마라”고 말했다.
이날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검언유착’ 의혹을 받아온 한동훈에 대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압도적 다수로 권고했다. 그러자 검찰 내부에서는 “추미애 법무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무리하게 수사를 끌고 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이동재의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 수사팀 내부에서도 반대의견이 다수였지만 이성윤이 밀어붙였다는 얘기도 나오기 시작했다.
8월 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는 이동재를 강요미수 혐의로 기소했지만, 끝내 공소장에 한동훈과 이동재가 공모했다는 내용은 포함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법원은 이 전 기자를 무슨 사유로 구속한 것이냐”는 얘기가 나왔다. 법원이 검찰도 증명 못 한 이동재와 한동훈의 공모 여부를 단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제 검찰 수사는 여권이 MBC를 이용해 벌인 권언유착으로 넘어가야 한다”며 “윤석열 총장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윤석열에겐 이미 그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문 정권과 서울중앙지검의 목표는 오직 ‘윤석열 죽이기’인 것처럼 보였으니, 그런 상황에서 수사 대상은 오직 ‘검언유착’이었을 뿐 ‘권언유착’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한국이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사회’라는 걸 웅변해 주었다. 이전투구에 휘말려들고 싶지 않은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했다. 이건 언론 문제였음에도 대부분의 언론학자들은 이 사건을 외면했다. 내가 이 글에서 진중권의 주장을 많이 소개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언론학자 수십 명의 역할에 해당하는 몫의 개입을 했고, 나중에 밝혀진 바와 같이 탁월한 분석과 해석을 많이 제시했다. 무력했던 언론학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그의 활약은 2021~2022년에도 계속된다.
* 2월호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MBC의 비극③’으로 이어집니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1월호 표지.